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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7)
벳자타 못과 실로암 못
1. 벳자타 못
현재 예루살렘 구시가(Old City)의 동쪽 성벽에는 성 스테파노의 문이 있다. 이 성문은 “사자의 문”, “양 문”(Sheep Gate, 느헤 3,1), “안나의 문”, “마리아의 문”이라고도 불린다. “안나의 문”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인 안나의 집이 성문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 스테파노의 문 근처에는 성 안나 성당(Church of Saint Anne)이 있다. 비잔틴 전승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와 그녀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의 집터에 경당이 세워졌다. 이 성 안나 성당 바로 옆에 요한 5장의 치유 사건이 일어난 벳자타 못(Pool of Bethzatha)이 있다. 좌우 두 개의 못으로 이루어진 벳자타 못은 가로 50m, 세로 150m, 깊이 15m 가량이었다.
기원전 8세기에 빗물을 저장하기 위해 둑이 만들어졌는데 이사 7,3; 2열왕 18,17에서 “윗저수지”로 소개된다. 이 저수지의 물은 바위를 깎아 만든 수로를 통해 다윗 성 안으로 흘렀다. 기원전 200년경에 대사제 시몬은 이 수로를 터널로 바꾸었다. 시몬은 예루살렘 성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기존의 둑 남쪽에 두 번째 못을 만들어 쌍둥이 못을 건설하였다. “오니아스의 아들 시몬은 대사제로서 생전에 주님의 집을 수리하고 자기 생애에 성전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는 안뜰의 높은 벽의 기초를 놓았고 성전을 둘러싸는 담을 높이 쌓아 올렸다. 그는 자기 생애에 저수 동굴을 팠는데 그 웅덩이 둘레는 바다 같았다.”(집회 50,1-3) 그 후 여러 세기 동안 못의 동쪽에 있던 자연 동굴들은 목욕 시설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종교적인 역할뿐 아니라 병을 고치기 위한 기능도 하였다. 사실 이 둘은 분리되지 않았다. 쌍둥이 못은 사용되지 않았는데, 헤로데 대왕이 성전에서 제물로 사용될 동물들을 씻는 이스라엘의 못(Pool of Israel)을 성전 근처에 만들었다.
현재 예루살렘 신시가(New City)의 남서쪽에 위치한 홀리랜드 호텔(Holyland Hotel)에는 제2성전(Second Temple) 시대의 고대 예루살렘 모형이 있다. 이곳에서 두 개로 이루어진 당시 벳자타 못의 모형을 확인할 수 있다.
▲ 이스라엘 박물관의 고대 예루살렘을 모델로 한 벳자타 못
요한 5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그 뒤에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예루살렘의 ‘양 문’ 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1-3절) 벳자타라는 이름은 “자비의 집(House of Mercy)”을 의미하는데 치유의 성소에 적합했다. 벳자타 못에서 예수님은 서른여덟 해나 앓던 병자를 고쳐 주셨다. 요한 복음서에서 언급된 다섯 주랑을 확인한 이는 오리게네스(231년경)였다. 그는 쌍둥이 못에서 가장자리의 네 주랑과 가운데의 한 주랑을 언급하면서 요한 복음서의 다섯 주랑과 처음으로 연결하여 소개한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벳자타 못의 주랑을 보았는지는 의심스럽다.
▲ 옛 성전 바깥에서 발견된 정결 예식터
당시 벳자타 못은 정결 예식터였다. 벳자타라는 이름은 그 지역 골짜기에서 따온 것이다. 유다인들이 성전에 들어가기 전 자신의 몸과 희생 제물을 씻던 저수지로서, 성전 주위에는 이런 예식터가 여럿 있었다. 실로암 못도 그 가운데 하나로 추정된다. 옛 이스라엘인들은 정결 예식터에 치유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예수님도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던 사람 눈에 진흙과 침을 개어 바른 다음,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신 걸 보면 말이다(요한 9,6-7). 벳자타 못도 그런 치유 효과가 있다고 믿었는데, 나중에는 그 믿음이 지나쳐 아클레피오스라는 신에게 신전까지 지어 바쳤다고 한다. 벳자타 못이 처음 만들어진 시대는 기원전 8세기로 추정한다. 빗물을 모아 성전에 물을 대던 저수지였던 듯하다. 일부 학자들은 “마전장이 밭에 이르는 길가 윗 저수지”(이사 7,3-4)가 이곳이었다고 본다. 이 추정이 맞는다면, 이 저수지는 이사야가 남왕국 임금 아하즈를 대면한 장소가 된다. 아하즈가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고 아시리아와 계약을 맺으려 하자, 이곳에서 그를 꾸짖었다. 당시 아하즈는 북왕국·아람 동맹의 위협 앞에서 갈대처럼 떨던 상황이었는데, 끝내 이사야의 충고를 따르지 않고 아시리아와 계약을 맺어 굴종의 대가를 호되게 치렀다. 기원전 200년에는 대사제 시몬이 벳자타 못의 물 공급량을 늘리려고 두 번째 저수지를 만들었으며, 그 이후부터 못이 둘로 나뉘게 된다. 이는 주랑 다섯 채가 딸린 곳으로 벳자타 못을 소개한 요한 5,2 묘사와도 일치한다. 주랑은 사람들이 다니는 복도 같은 공간을 뜻한다. 그러므로 벳자타 못은 ‘해 일’(日)자처럼 주랑 다섯, 저수지 둘로 이루어진 형태였던 것이다. 위치는 예루살렘 성 바깥으로 북동쪽에 있던 ‘양문’ 근처였다(3절). 양문은 번제 양을 성전으로 가져갈 때 사용한 문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들은 양을 제물로 바치기 전에 벳자타 못에서 정결하게 씻었다. 주랑 아래에는 못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는데,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 물이 출렁거리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천사들이 내려와 물을 젓는 거라고 여겨(공동번역 4절 참조), 병을 낫게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축제를 맞아 예루살렘에 올라오셨다가 이곳에서 한 병자를 보시고, “건강해지고 싶으냐?”고 물으신다(5절). ‘물이 출렁거릴 때 자기를 넣어 줄 사람이 없다’고 그가 한탄하니, 주님은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으로 병에서 해방시켜 주셨다(10절). 실로암에서와 달리 말씀으로 치유하신 까닭은, 당시 백성이 벳자타 못에 신전을 세울 만큼 물의 치유 효과를 맹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유다인들은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되자 예수님을 박해했는데(16절),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병을 고친 탓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들것을 들고 걸어가게’ 한 것이 문제였다. 지금도 웬만큼 아프면 안식일이 끝난 뒤 병원에 가지만, 생사를 다투는 병이나 사고가 난 경우는 율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들것을 들고 걸어간 게 왜 문제인지 의아할 수 있지만,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무거운 짐을 옮기지 않도록 가방도 메지 않는다. |
5세기 중반에 예수님의 치유 기적을 기념하는 경당이 세워졌다. 이 경당은 615년에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1009년 칼리프 알-하킴(al-Hakim)이 그리스도교 성지를 파괴한 이후, 십자군 시대에 이 폐허 위에 다시 성당이 세워졌다. 성 안나 성당은 웅장한 로마네스크식으로 성모 마리아의 집터에 세워졌다. 1192년 7월 25일에 살라딘은 이 성당을 이슬람 종교 학교로 바꾸었다. 1856년에 오스만 터키 제국은 크림 전쟁 때 지원해 준 프랑스에게 감사의 의미로 성 안나 성당을 선물하였다.
▲ 벳자타 못에서 본 성 안나 성당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성 안나 기념 성당
(Feast of the Nativity of Mary at the place of the birth)
On 8 September the birth of the Madonna is celebrated. The festivity was remembered with a mass in the Basilica of St. Anne in Jerusalem.
2. 실로암 못
▲ 실로암 못으로 내려가는 계단
키드론 계곡의 기혼 샘(Gihon Spring)은 예루살렘 초기 정착 시기부터 유일한 물 공급원이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기혼 샘에서 기름부음을 받았다.(1열왕 1,45) 기혼 샘의 물을 실로암 못까지 끌어들이기 위해 히즈키야는 터널을 만들었다. “기혼 샘의 위쪽 물줄기를 막아 다윗성 서쪽 밑으로 돌려 끌어들인 것도 바로 히즈키야이다.”(2역대 32,30) “히즈키야의 나머지 행적과 그의 모든 무용, 그리고 그가 저수지와 수로를 만들어 도성 안으로 물을 끌어들인 일에 관해서는 유다 임금들의 실록에 쓰여 있지 않은가?”(2열왕 20,20) 히즈키야 터널(Hezekiah’s Tunnel)은 전체 길이가 약 512m이다. 평균 폭은 60cm, 높이는 1.45-5m에 이른다. 물의 깊이는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20-80cm이다.
▲ 맨 끝에 히스기야 터널의 출구
실로암 못(Pool of Siloam)은 이사 8,6에서 “잔잔히 흐르는 실로아 물”로 묘사된다. 요한 9장에서 예수님은 눈먼 이를 고치시는데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그에게 이르셨다. ‘실로암’은 ‘파견된 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그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7절) 루카 13,4은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전한다.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실로암 못의 초기 형태는 역사 속에 이미 사라졌다. 아마도 헤로데 대왕이 예루살렘 건설의 큰 계획을 세웠을 때 실로암 못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되었을 때 실로암 못의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 “그 다음날 로마 군대는 강도들을 하부 도시에서 몰아내고 실로암 지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불태웠다. 로마 군대는 도시가 불타는 광경을 보고 기뻐했지만 약탈할 것이 없어 실망했다. 저항군이 상부 도시로 달아나기 전에 이미 모든 것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유다 전쟁사』 6권 363)
▲ 히즈키야 터널 내부
보르도(Bordeaux) 순례자들(333년)의 기록에 따르면, 실로암 못에는 네 개의 주랑이 있었는데, 고고학적 발견에 따르면, 이것은 135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건설된 못을 가리킨다. 실로암 못은 요한 9장의 치유가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곳을 순례하였다. 실로암의 첫 성당은 450년경에 황제의 부인인 에우도키아(Eudokia)에 의해 세워졌다. 고고학적 발굴은 570년경의 피아첸차(Piacenza) 순례자가 묘사한 “사람들은 여러 계단으로 실로암까지 내려간다. 실로암 위에 큰 성당이 있는데, 그 아래로 실로암의 물이 솟아오른다.”라는 기록을 입증하였다. 실로암의 성당은 614년에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런데 실로암 물의 치유 능력에 대한 믿음은 비잔틴 순례자들에 의해 강조되었고, 아랍인들에게도 계속되었다. 여러 문헌들은 실로암 못 주위의 주랑이 15세기까지 있었다고 암시한다. 1890년대에는 실로암에 이슬람 사원이 세워졌다.
▲ 실로암 못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주는 벽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실로암 못, 히즈키야
(Pool of Siloan and Hezekiah's Tunnel)
The Pool of Siloam in Jerusalem has a significant Christian archeological meaning. It is the Pool of Siloam in which, according to the Gospel of John, is the place where Jesus healed a blind man by putting a mud on his eyes and sending him to wash them with the water of the pool. The name Siloam is the Greek transliteration of the Hebrew name Shiloah, which means “send” or “let go.” Isn’t that interesting?
Now why is this site of the Pool of Siloam so unique?
Because if we can find archeological evidence of the location of the Pool of Siloam, we can be sure that Jesus has actually been at this site.
So where is the Pool of Siloam?
The Pool of Siloam is mentioned several times in the Bible. Isaiah 8:6 mentions the pool’s waters, while Isaiah 22:9 refers to the construction of Hezekiah’s Tunnel.
The Pool of Siloam is a rock-cut pool on the southern slope of the City of David, the original site of Jerusalem, located outside the walls of the Old City to the southeast. The pool is fed by the waters of the Gihon Spring.
Until 2004, people thought that the pool at the end of Hezekiah’s Tunnel was the right location. The Byzantine empress, Eudocia (400–460 A.D), was the first to build a church there, but was destroyed when Jerusalem was captures by the Muslims. Today we can see some of the church pillars located at that pool (now called the Byzantine Pool). For years, the Byzantine Pool of Siloam was a sacred destination for Christian pilgrims from all over the world.
In the autumn of 2004, during a sewer excavation in the area, stone steps were found. The shape of these steps and the fact that there was a corner to the steps led to the assumption that these were not regular steps but part of a Second Temple-period pool. Excavations commenced and confirmed that this is the original Pool of Siloam dating back to the time of Jesus.
This archeological finding made the Pool of Siloam one of few places in Jerusalem where we can be sure that today we can actually walk on stones that Jesus has actually walked on.
Hezekiah’s Tunnel
예루살렘에 있는 실로암 못은 중요한 기독교 고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로암 못은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 맹인의 눈에 진흙을 바르고 그를 보내어 못의 물로 씻게 하심으로 고치신 곳입니다. 실로암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이름 실로아(Shiloah)의 그리스어 음역으로 “보내다” 또는 “가게 하다”를 의미합니다. 흥미롭지 않니? 실로암 못의 이 장소가 왜 그렇게 독특한가요? 실로암 못의 위치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를 찾을 수 있다면 예수가 실제로 이 장소에 있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실로암 못은 어디에 있습니까? 실로암 연못은 성경에서 여러 번 언급됩니다. 이사야 8:6은 못의 물을 언급하고, 이사야 22:9은 히스기야 터널 건설을 언급합니다. 실로암 못은 원래 예루살렘이 있던 다윗 성의 남쪽 경사면에 있는 바위를 깎아 만든 못으로 구시가지 성벽 바깥 남동쪽에 있습니다. 수영장은 Gihon Spring의 물에서 공급됩니다. 2004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히스기야 터널 끝에 있는 연못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비잔틴 여제 에우도키아(400-460 A.D)가 처음으로 이곳에 교회를 세웠으나 예루살렘이 무슬림에게 함락되면서 파괴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웅덩이(지금은 비잔틴 웅덩이라고 함)에 위치한 교회 기둥 중 일부를 볼 수 있습니다. 수년 동안 실로암의 비잔틴 풀은 전 세계 기독교 순례자들의 성지였습니다. 2004년 가을, 해당 지역의 하수도 굴착 중에 돌계단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계단의 모양과 계단에 모퉁이가 있다는 사실은 이것이 일반 계단이 아니라 제2성전 시대 연못의 일부라는 가정으로 이어졌습니다. 발굴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예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원래의 실로암 못임을 확인했습니다. 이 고고학적 발견은 실로암 못을 예루살렘에서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이 실제로 걸으신 돌 위를 실제로 걸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히스기야의 터널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천주교 광주대교구
남동 5.18 기념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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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주 훌륭한 기획 기사입니다. 성경공부 하거나 성지순례를 앞둔 신자들에게 아주 좋은 정보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좋은 기사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