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양에서 4년간 살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동북지방에서 한국인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병이 있다면 風濕病일 것입니다.
내복을 잘 안입는 한국에서의 습관을 중국에서 그대로 고집한다면
찬바람이 무릅뼈를 파고 들어 다음해 봄에 선자리에서 그대로 주질러 앉아
못 일어나게 됩니다. 중국사람들, 특히 동북삼성 사람들 초가을부터 내복입고
겨울엔 개바지라는 털실로 짠 내복을 또 껴입습니다.그나라에 가면 그나라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면 최소한 풍토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주재원들께
처음 적응훈련을 할 때, 스타킹처럼 생긴 털내복을 사도록 알립니다.
혹여 풍습병에 걸리면 서양의를 신뢰하시는 분은 醫大1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한의(中醫)를 중시하시는 분은 了寧省 中醫院(요령대근처 소재)에 가십니다.
뼈 전문(골절)병원인 대동구 골절병원은 한국의 적십자 병원과 대형병원에 초청받아 견학하신 의사선생님이 여럿 계시고 의료비가 중국인과 같이 내니 불만 없었던 경험이 있습니다.,蘇家屯의 血全병원은 경희대와 결연을 맺어 MRI촬영도 되며 뱀의 독을 소량 넣어 혈전을 치료하는 병원으로 유명하며 중풍예방약 치료약이 유명하더군요. 한국인을 봉으로 알아 입원비 비싼것이 흠이구요.
치과병원은 소가툰에 한국인 기공사분이 투자하여 조선족 의사들로 구성된
치과병원이 있습니다.시내 中山路에는 동북삼성 최대규모의 기공소를 겸한 치과병원이 있고 南五馬路와 和平路가 만나는 곳에는 캐나다인이 열고있는 치과병원이 있습니다. 환경이 아름다워 한국인들이 많이 가지요.(개인적으로 저는 피본 경험이 있습니다.) 심양거리거리에 외국에서 공부하거나 일부 기술을 배워온 치과병원이
여럿있습니다. 五愛路의 五腔牙科..믿을만한 병원입니다.
갑자기 전문용어가 생각나지 않는데 잇몸에 뼈를 심어 이빨을 해넣는 작업,
아직 일반적이지 않고 한국이 앞섭니다. 그러나 이빨을 갈아 본을 떠서 끼우는 작업은 기술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7병원은 피부과 전문병원입니다.
산부인과도 꽤 유명한 전문병원이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의사는 전문적인 직업으로 사회적인 지위가 보장되고 존경을 받고 있지만
10년전의 중국현실은 그렇지 못하더군요.2000년 전후해서 병원도 국가의 지원을
많이 못받고 있고 각 단위별로 수익을 내어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월급을
자체해결하라는 지시가 전달되자 각병원별로 관고가 많이 나가고 의사들은 약값을 과다책정하는 일이 많아 졌습니다. 항의를 아니하면 3일치로 충분한 약을 한달치를 처방해줍니다. 일반 老百性들도 예전의 무료에 가까운 의료비를 내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병원에 대한 분통을 터뜨립니다. 월500여원으로 사는 사람이 한번 병원에 가면 100여원 쉽게 지출하게 되고 입원을 할라치면 금방 1000원 ,2000원이 쉽게 나와 울며 꾸러다니는 현상을 쉽게 접했지요.
한국인이 아프면 경미한 증상은 약방으로 가고,좀더 신중한 분은 각 전문 병원으로 가지요.중국에서 의료보험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중의원을 간다면 진찰권을 (1원과 2원짜리가 있습니다.)사서 전문의의 프로필을 읽은뒤 정하여 지정된 병실에 가서 진료하고 처방된 약을 병원안의 약방에서 탑니다.
결국 약값에서 수익을 내게 됩니다.
한국의 대기업에서 홍보차 조선족의사를 내세워 병원하나를 설립해선 한국의 방송사에 홍보해 취재하게 하고 한국서오는 내빈들 병원으로 안내해 유명해진 병원이 있습니다.그러나 실내막을 알만한 분들 모두 알며 그한짐이나 되는 약이 효험이 있는지 아리송할뿐...
한국분이 한국인을 위한 병원을 연다면 서탑이나 화평로 중산로 정도에 자리를 잡으면 호응이 좋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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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Dr KIM (1)
>
>
심양에 특수 전문 병원을 진출하려는 의사입니다..
>
>갑자기 궁금한것이 생겼는데요.
>
>심양에 한국사람들은 아프면 어디로 가느냐는 것이죠..
>
>약방에 가나요 병원에 가나요?
>
>의료보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고 있지요.
>
>잘되면 오는 7월중 병원을 오픈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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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심양 분류 기타 조회수 102 추천수 0 다운횟수 :0
글쎄요 (3)
딱히 방법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나마 서탑가에 있는 조선족 병원으로 가는 방법이 있을것이고, 중국어 실력이 되거나 통역이 있다면 일반 중국병원에 가도 무방할 것입니다.
심양으로 진출하려고 하신다구요. 제가 미흡하나마 정보를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따로 연락을 주십시요. mhims@hanmail.net
심양의 거리를 지나칠 때면 항상 뭔가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물론 이미 한국에서 만들어진 버릇이지만, 간판을 유심히 쳐다보며 응 여기도 있네 아 저기도 있구나 라며 병원 간판을 헤아리는 것이다.
중국의 모든 사업체는 개혁 개방 이전에는 모두가 국영 기업 이었다.
개혁 개방 이후 중국 정부는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민영화 작업에 들어갔고 그 작업은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개체호(개인 사업자)의 수는 아주 미미했다.
그러나 지금 심양의 거리엔 한국에선 상상 못할 대형 음식점들이 호화로운 실내장식으로 무장하여 손님을 맞고 있다.
10년 만에 상전벽해가 되어 버렸다.
개혁 개방에 발맞추어 중국인민들은 한 몫 잡기에 혈안이 되 있는 실정이다.
허나 의료 시장은?
심양에 거주하는 한국 분들은 누구나 중국 병원의 불결함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곤 아 한국인을 위한 병원이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심양의 병원은 1병원에서 7병원까지 모두 중국 정부 소유의 공립병원이다.
그리고 중국 의과대학 병원이 있고 시설이 제일 우수하다는 군인 병원이 있다.
의사들은 모두 고용인에 불과 하고 이 곳의 의료 서비스는 한국과 비교하면 아직은 그 차이가 큰 실정이다.
의사의 월급은 2000위앤 (과장급) 정도 신참의사들은 1000위앤 정도이므로 특화된 의료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난망일 것이다.
그래도 심양에 당당한 개체호 로써 병원 사업의 큰 획을 써 나가기 시작한 의사들이 있다.
제일 눈에 띠는 것이 박애 치과 병원 집단이다.
심양 요소 요소에 박애 치과 체인점을 낸 중국 판 치과 체인 그룹이다.
다음이 오신 치과 집단 박애가 미국과의 합작인데 반해 오신은 오스트리아와 합작한 거대 치과이다.
이 역시 박애만큼은 아니지만 심양 곳곳에 분점을 가지도 있다.
다음은 하씨 안과 병원이다.
마치 영등포의 김 안과를 연상시킬 정도의 대규모 안과 병원이다.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우리나라 안과 병원 찜 쪄 먹을 정도의 시설과 규모를 자랑한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딱 이 정도에서 대형 사설 병원은 끝이 난다.
주변 1시간 이내 인구가 2000만이 넘는 심양의 의료 공간이 이 정도에 불과 한 것은 심양의 수치라고 해야 할지...
우리나라 70년대에 동네에 병원이 고작해야 하나 뿐인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의대에 우수한 인재들이 들어가면서 의료 시장은 점점 커지기 시작해 지금은 아예 포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내가 보기에 의사들의 전성시대는 70년대 후반 이 아니었나 싶다 그 당시 개업의들은 모두 건물주로 변신을 했으니 말이다.
지금 중국이 그 때 그 시절이 아닌가 싶다.
물론 우리의 실정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의료 사업은 그 배타성으로 인하여 누가 감히 도전을 못하는 특수성이 있다.
즉 의사가 아니고는 병원을 내지 못하는 배타성 말이다.
다른 사업의 경우 잘 된다 싶으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경쟁업체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지만 병원의 경우 다른 의사들 만이 경쟁 상대이다.
의사가 귀했던 70년대~90년대초 까지는 그야말로 무풍지대 였던 것이다.
중국의 의료 시장은 지금이 태동기라 보여 진다.
한국의 경우 눈만 돌리면 보이는 병원 간판을 이 곳에선 아주 찾기가 힘이 들다.
그나마 개체호로서 개업에 나선 업종은 현재 제일 많은 것이 중의 다음이 치과 그 다음이 성형외과 이다.
중의는 전통 중국의학이므로 논외이고 성형은 미용과의 구분이 확실치 않아 정말 병원인지 아니면 미용실인지 모를 정도이므로 제일 확실한 업종은 치과가 분명하다.
현재 선진국의 의사 일인대 인구수의 적정 비율은 1000명에서 3000명 정도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인구 5000만에 치과의사 2만 명 이므로 치과의사 일인당 2500명이 라는 계산이 나온다.
폭을 좁혀 현재 구로구에 약 120명 정도의 치과 개원의가 30만 의 주민을 상대하므로 그 비율은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
중국의 경우 14억의 인구에 3만명의 구강과 의사 있다고 하니 그 비율은 치과 의사 한 명당 4만 7000명이 된다는 말이다.
숫자 상으로 라면 우리 치과의사의 거의 20배에 달하는 잠재 고객이 있다는 얘기다.
다만 경제적 여건과 민도의 차이로 인하여 우리 보다 적은 환자 수를 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이 아니다.
중국 경제의 빠른 성장으로 미루어 보아 현재까지 제일 낙후된 복리 사업 이 더 빠른 속도로 차고 올라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국민 소득 3000불을 달성하면 제일 먼저 관심을 쏟는 분야가 의료 건강 분야이다.
즉 결론적으로 중국 의료 시장은 지금이 투자하기에 제일 좋은 시기라는 것이다.
그럼 외국인이 중국 의료사업에 어떻게 뛰어들 것인가
차근 차근 연구 검토 해 보기로 하자...
작년 5월의 일이다.
중국에서 발생한 싸스가 중국을 강타하고 동남아 등지로 퍼져나가 해외 여행 자체가 곧 싸스 감염으로 인식되어 온 나라가 긴장할 때 였다.
그 때 나는 일년에 세 네 번은 비행기를 타야 하는 내 역마살을 어찌 진정 시킬까 고심 고심 하다가 중국 내 싸스 안전 지대인 흑룡강성으로 여행 목적지를 삼아 여장을 꾸려 가족의 우려도 무시한 채 곧바로 출국해 버렸다.
가는 곳은 흑룡강성 제 2의 도시인 치치하알.
목적이 여행도 관광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즈니스도 아닌지라 4박5일간 무얼 하며 보낼까 고심하다 치치하알의 조선족 촌인 명성촌에서 김치 공장을 하시는 아저씨에게 치치하알 병원 탐방과 의료진과의 면담을 주선해 달라 부탁하였다.
그래서 들린 곳이 치치하알 제 1 병원 이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중국은 그 시에서 제일 큰 규모의 병원이 1 병원 그 다음이 2병원 3병원 순서대로 이름을 붙인다.
치치하알 이라는 도시가 그리 번화한 도시가 아니기에(그래도 인구 600만이다) 병원의 시설이나 규모 역시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병원장은 나와 동갑인 안과가 전공인 여선생이었다.
병원장과 함께 구강과를 둘러보니 의료 설비가 우리 80년대 초반 지방 중소도시의 치과 수준이라 보면 딱 맞았다.
실내 장식은 전혀 없이 도끼다시 바닥 위에 치과용 진료의자와 낡은 수납장 뿐 이다.
첫 인상은 미안한 말이지만 더러움, 의사들 모습에서도 우리의 깨끗한 의사상과는 달리 시골 이발사 같은 분위기에 아직 멀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날 들린 중서병원 (중의와 양의가 같이 있는)은 새로 지은 건물이라 그런지 다소 깨끗 하였다.
이곳에 독립 채산제 형태로 입주한 치과는 좀 형편이 나아서 대만제 진료의자와 현대적인 진료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진료 영역도 교정 심미치과 등 다양하여 이 곳에서 비교적 고소득을 올린다 하였다.
다음날 이곳 치치하알 시내의 요지에 개업한 정양치과의원을 들러 보았다.
한 7~ 80 평 되는 공간에 빽빽이 들어선 진료의자와 누가 환자고 누가 의사인지 모르게 서있는 무수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만남을 주선한 장애인협회 이사장인 왕거 따지에(술 자리에서 띠디 따지에 연분을 맺었다)가 원장인 리완쪼 선생을 데리고 나왔다.
리 원장은 우리를 비교적 현대식 장비로 꾸민 2 진료실로 우리를 데리고 가더니 치치하알 치과 시장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시작한다.
요는 한국에 비해 진료비는 많이 싸지만 대신 환자는 무지하게 많다는 것이다.
자기 치과는 진료의자가 43대 이고 고용 의사가 47 명 이라고 한다.
거의 대학 병원급 규모에 나는 입이 벌어져 그래 하루에 환자는 얼마나 보느냐 물으니 황당한 대답이 들려온다.
"700명"
훗날 중국인 특유의 과장임을 알게 되었지만 (후에 합작을 상의하러 갔다가 고용 의사에게 정확한 실상을 알게됨) 당시 내가 받은 충격은 대단 하였다.
일인 평균 진료비를 10000원(한국돈) 만 잡더라도 하루에 700 만원 인데 그럼 이 친구 돈을 긁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한국에 돌아와서도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양반 한술 더 떠서 첫 만남에서 불쑥 합작을 하자고 제의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의 치과 수준과 성형 외과 수준이 세계적이라는 것을 중국인들은 다 알고 있다. 당신이 이 곳 치치하알에 치과를 차리기만 하면 대박이 날 것이다. 당신과 내가 합자해서 당신의 선진 기술과 나의 꽌시로서 치치하알 치과 시장을 평정하자.'
700명 환자를 본다고 했을 때 보다 더욱 황당한 느낌이 왔다. 그러나 그 유혹이 너무나 달콤하였다.
다음날 내가 묵고있는 민항따샤에 왕 지에가 술 두 병을 들고 찾아 왔다. 내가 요즈음도 즐겨 마시는 베이따창을 가지고 말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왕 지에가 속에 있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자기 딸과 사위가 치과의사 인데 하면서 치치하알에 자기의 꽌시를 동원해서 병원을 내주겠다. 병원 건물은 장래를 생각해서 매입을 하는 것이 좋다 이곳의 최고 번화가 시세가 평방미당 4000위앤이다 등등
두 사람에게서 합작 제의를 받은 셈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나름대로 중국 의료 시장의 가능성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을 하였다.
중국인들이 선 제의가 들어올 정도라면 시장성은 확실한데 과연 수익성은 어떤지가 문제 였다.
치치하알 치과의 진료 수가는 한국의 수가에 비해 10분의 1 정도인데 그러면 한국과 같은 정도의 수입을 올리려면 환자 역시 10배를 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혼자 서는 절대 불가능한 얘기이고
정양치과 정도의 규모로 차려서 중국 의사 많이 고용해서 나는 지도와 자문만 해준다면 뭔가 될 것 같기도 하였다.
몇 번을 생각해도 그 방법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수가를 한국 수준으로 한다면 외국인과 한국인만을 상대로 해야 하는데 이 방법은 한계가 있고 특히 더 이상 발전이 없을 것 같았다.
또한 잘되는 내 병원 포기하고 중국에서 터를 잡아야 하는데 한국에서보다 수입이 나리라는 보장이 절대 없다.
그래서 최소한 진료 의자 20대 이상의 규모의 대형 치과를 염두에 두고 중국 진출의 꿈을 키우기 시작하였다.
한국에 외국의사가 진료하는 외국 병원 설립이 허용이 될까?
중국에 외국의사가 진료하는 외국 병원 설립이 허용이 될까?
1번의 정답은 부뙤(no) 2번의 정답은 뙤(yes)
중국이 한국 보다 낙후되어 있다지만 의료개방이란 측면에선 한국보다 훨씬 앞서 가있다.
우리나라는 최근 경제특구에 한해서 외국병원의 진출을 허용한다고 발표를 하자마자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중국은 2005년 WTO 가입에 앞서 이미 외국 병원의 진출을 중국 의료기관과의 합자 합작에 한해 허용한다고 합법화 시켜 놓았다.
WTO 가입 후에는 독자 설립도 가능하지 않을까 일각에선 점을 치고 있다.
현재 북경에 진출한 외국 의료 기관의 수는 약 200~300개 정도이다.
거의가 중국 측과 합자 합작 형태로 진출을 하였는데 주로 아동과 와 산부인과가 많고 투자 주체는 거의 다가 미국이다.
심양의 박애 치과 집단 역시 미국과의 합자 인 것을 보면 핑퐁 외교를 통해 처음으로 죽의 장막을 걷어낸 미국은 역시나 미국이로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중외 합자 의료기관은 규정된 법령이 없어 위생국이나 공상국을 통하거나 아니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과의 꽌시를 통해 설립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중국진출 초기에 우리 기업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뭐든 녹녹치 않은 법, 중국 정부는 외국투자유치정책을 정비하면서 중외합자합작 의료기관 설치에 관한 건을 위생부와 대외무역경제합작부에 맡기고 부령 제11호로 '중외합자·합작 의료기관 관리 실행법규'를 제정해 2000년 7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법과 제도가 완비되면 일단은 골치가 아파진다. 공무원은 상전이 되고 민원인은 법이라는 거미줄에 잡힌 파리 신세가 되버린다.
뉴 밀레니엄을 맞아 개비된 ‘중외합자합작의료기관관리실행법규’를 찬찬히 살펴보자.
병원을 설립하고자하는 중외 쌍방의 조건은 아래 요건을 만족시켜야한다.
중외 쌍방은 독자적 민사책임법인 이어야하고
국제 선진 수준의 의료기관 관리경험을 보유하여야 하며
국제 선도적 지위를 차지하는 의학기술과 설비를 제공하여야 한다.
또한 현지 의료서비스 능력, 의료 기술, 자금과 의료 시설 부족을 보충하거나 개선 할 수 있는 여건 보유하여야한다.
그리하여 설립된 중외 합자, 합작 의료기관의 조건은
반드시 독립적인 법인이어야 한다.
투자 총액이 인민폐 2,000만원(한화, 약 29억원)보다 적어서는 안 된다.
중국 측의 주식 소유나 주주 권리가 최소 30% 가 되어야 한다.
합자, 합작 기한은 20년을 넘지 못한다.
성(省)급 이상의 위생행정부문에서 규정한 기타 조건을 만족 시켜야 한다.
위 조항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한군데에서 억 소리가 나오는 걸 알게 된다.
투자자본 최소한 2000만 위앤에서 일반 개인 투자자는 그냥 꽁지를 말게끔 되어 있다
그리고 중방측의 지분 30% , 선배 투자자들 말로는 1%라도 중국 측의 지분이 있으면 중국 애덜 한테 휘둘린다고 들었다.
그리고 중국 측 투자는 국유 재산으로 하고 국가 평가기관에서 자산의 재 평가 후에 투자를 한다고 했다.
즉 건물이나 토지로 투자하겠다는 말인데
내가 처음 합작을 시도했던 중의병원은 중의병원이라는 이름이 가진 가치 곧 무형자산으로 30%의 지분을 맞추려고 하였다.
즉 그냥 날로 먹겠다는 의도다. 일전 한푼 투자 안하고 2000만위앤의 30%를 거저먹고 경영권 행사 까지 한다면...
이건 답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중국 정부는 외국의료기관의 진출은 허용하지만 30억 이라는 자본을 들여와야 하며 30%의 지분을 중방 측에 부여함으로써 자국민에 의한 통제가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현재 이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합법적으로 들어간 병원이 있는지?
SK차이나와 합작한 북경시 조양구에 최근 개업한 아이캉 병원이 그렇다고 하는데 속사정은 잘 모르는 일이다.
첫 출발에서 난관에 부딪힌 나는 의문에 사로 잡혔다.
지금 중국에 진출한 많은 외국 병원들이 설마 이 조건을 다 맞추었을 리는 없고 도대체 무슨 방법을 써서 개원을 한 것 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 북경과 대련 두 군데 치과의원을 개원시킨 모 컨설팅 업체를 찾아 나섰다.
과연 해법의 열쇠는 무엇인가 알아내기 위해...
‘이제는 중국이다’ 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왜 우리는 중국으로 진출을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명철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었다.
점점 어려워지는 국내의 개원가의 실정 과 욱일승천하는 중국시장의 잠재력 이 맞물려 상승효과를 이루고 더욱이 2005년 WTO가입이라는 호재가 겹쳐 하루 빨리 중국에 진출해야만 하는 것이 정답처럼 보였다.
그 점에 있어서는 나의 견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입지 선정과 마케팅의 공략 대상에 대해서는 서로 간에 이견을 보였다.
컨설팅 업체가 가진 컨셉은 ‘한국의 선진 의료기술로 무장한 고급 치과가 중국의 상위 5%를 대상으로 고급 진료를 한다.’ 라는 것이다.
그들이 가진 생각의 주요 골자는 중국의 상위 5%는 한국의 상류층 이상의 경제력과 구매력이 있으므로 그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고 병원의 입지나 장식 또한 상위 5%라는 타겟을 염두에 두고 결정되고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상위 5%라 하면 7000만이 넘는 숫자이다.
일견해서 이거야말로 노다지 시장이란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별로 마음에 와 닿질 않았다.
그 7000만이 서울의 강남 지역처럼 한 지역에 몰려 사는 것도 아닐 테고 사실 부자의 지갑을 여는 것이 오히려 빈자의 지갑을 여는 것보다 더 어려운 법이다.
어쨌거나 컨설팅 업체가 추천하는 개업의 최적 장소는 북경, 상해, 심천 의 세 지역으로 압축되었다.
이들 세 지역은 한국의 경제력에 버금갈 정도로 쫓아 왔기에 이 지역에서 고급 진료를 한다면 틀림없이 성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란 나라가 지닌 최대의 강점은 무엇인가?
바로 그들의 무한정한 인구에서 나오는 값싼 노동력이 아니던가.
그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해야지 극소수의 상류층을 위한 마케팅이라니
문턱을 높이면 일반 라오바이싱 (보통 사람) 은 치료 받을 엄두도 못 낼 것이고 의심 많은 중국 부자는 눈치만 살필 텐데 결국 중국 내 거주하는 한인 상대 밖에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한국보다 환자 수는 적을 것이고 또 아무리 고급 진료를 한다 해도 한국만큼 진료비를 받을 수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환자 수도 적고 진료비도 싸다면 낮 설고 물 설은 타향 땅 중국에서 개원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내 생각이 맞는지 그들 생각이 옳은지는 모르는 일이다.
머리 속에서 아무리 생각을 굴려봐야 백문이 불여일견이요 백견이 불여일행이라.
그래 ‘그렇다면 귀 회사에서 개업시킨 치과의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라고 물어보았다.
북경 왕징 단지 내 개원한 모 치과의 현재 상황은 그리 썩 좋지 않은 듯 했다.
왕징 이라는 곳이 한국인 밀집 거주 지역이기도 하지만 높은 진료비는 중국인들의 래원을 막는 큰 방해 요인임이 드러났다.
왕징 단지 내의 한국인만을 상대로 하는 치과가 되어버리니 내가 우려했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아까 말을 했듯 한국보다 적은 환자에 적은 진료 수가를 받는다면 이 컨설팅 업체의 영업 전략은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들이 선택한 지역인 북경 상해 심천의 세 지역은 현재 세계 각국의 경제 전쟁터이다.
병원 역시 세계의 유수한 병원 체인이 눈독을 드리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이 지역에 일개 동네 치과원장인 내가 명함을 들이밀고 한자리 끼워달라는 건 ...
큰 소리 치는 것도 말빨이 먹히는 곳에 가서 해야지
옆집 순이 북경 간다고 나도 덩달아 보따리 쌌다간 쪽박 차고 몸 버리기 십상이다.
북경 상해 심천만이 중국은 아니다.
80년대 중반 내가 갓 개원을 했을 무렵 서울은 슬슬 개원 포화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의사들의 개원불패의 신화는 어느덧 사라지고 급기야 개원이 어려워 목을 매는 의사까지 속출하곤 했다.
그러나 서울이 아닌 지방은 여전히 개원 불패의 신화를 이루어 가고 있었고 서울의 병원에비해 최소 3 배 이상의 환자를 소화해 내고 있었다.
비록 서울 보다 수준이 떨어지고 진료비가 싸다지만 몰아닥치는 환자들로 인해 의사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내가 생각한 지역은 동북 3성이었다.
처음 합자 제의를 받은 치치하알의 정양치과의 모습이 눈에 밟혀서 인지 동북 3성 쪽의 어느 지역에 개업하든 환자에 치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내심 정한 지역이 심양이었다.
한국인의 진출도 활발하고 우리 동포인 조선족도 20만이 살고 있고 치치하알 만큼 낙후되지도 않았고 한국에서 진출한 치과라 하면 적당히 대우도 받을 것 같았다.
심양의 시장조사를 한 것도 아니고 또 누가 추천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직관으로만 결정을 했건만 지금 돌이켜 보면 아주 잘한 결정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타겟을 중국의 보통 서민으로 잡았다.
중국의사를 최대한 고용해서 볼 수 있는 만큼 최대의 환자를 보는 전략을 세웠다.
정양치과 리완쪼 원장이 말했듯 중국은 돈은 없지만 사람은 무지하게 많다고 몇몇 사람에게서 큰 돈을 빼먹느니 아주 많은 사람한테서 푼돈을 빼먹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연히 치과는 한국에서처럼 원장 하나에 간호사 둘 셋의 구멍가게 치과가 아닌 초대형 치과가 될 것이다.
자 이쯤 되면 병원이 아니라 기업이 되 버린다.
컨설팅 업체에 나의 생각을 얘기하고 심양에서 대형치과 개원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함께 실타래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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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병원 차리기 3
그러나 그 자신만만한 컨설팅 회사 역시 자본금 2000만 위앤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에서 자유롭지 못 했다.
중국에서 본인 소유의 합법적인 병원을 만들려면 필히 투자 자본금 2000만 위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경과 대련의 이미 진출시킨 치과의 경우는 어떤 방법을 썼단 말인가?
나의 길지 않은 중국 생활에서 비교적 자주 들을 수 있었던 말이 “사람을 찾는다.” 라는 것이었다.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서 그 분야에 관계된 사람을 찾아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오래된 중국식 해결법이다.
사실 이른바 꽌시를 통해 해결을 보는 방법은 우리에게도 낮선 방법은 아니다.
우리나라야 말로 인맥 학맥 출신지 등등으로 똘똘 뭉쳐진 나라가 아니던가.
사회가 투명해지기 전까지 우리사회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인간관계를 통해 문제 해결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인간관계를 무시할 수가 없다.
이 회사의 방법도 오랜 중국 주재원 생활을 한바 있는 사장님의 꽌시를 통해 위생부 쪽의 사람을 소개 받는다. 즉 그쪽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 개인이 우리 돈 30 억을 투자하기란 어려우므로 중외합자의료기관 관련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통용되던 원내원 진출 방식을 통해 치과를 개설하는 것이다.
원내원 진출 방식을 소개하기에 앞서 외국의사가 과연 중국 내에서 합법적인 진료를 할 수 있는 가에 대해 살펴보자.
결론을 먼저 말한다면 중국정부는 <<외국의사 중국 내 단기 행의(行醫) 관리법>>을 제정하여 외국의사가 중국 내에서 합법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20조에 달하는 관리법에 따라 외국의사가 중국에서 합법적인 의료행위를 하려면
먼저 중국 의료기구의 초청 또는 초빙이 있어야한다.(초청과 초빙의 차이가 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리하여 초청을 한 의료기구와 외국의사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시급 이상의 위생행정부문에 등기 신청을 하여야 한다.
등기 신청 시 제출하는 자료는 다음과 같다.
신청서, 외국의사 행위증서, 외국의 의료행위 허가서, 건강증명서
그리고 초청기구의 증명 또는 협의서 또는 유관 민사책임 부담성명서 등이다.
등기 기관은 30일 내로 심사를 마친 후에 서면 통보를 하고 <외국의사 단기 행의허가증>을 발급한다.
이 허가증의 유효기간은 1년을 넘지 않는다.
외국의사는 허가증을 받기 전에 입국비자를 받고 거류증이나 체류증을 받아야한다.
헌데 중국 법조항 마지막 부분에 항상 감초처럼 끼는 조항이 있다.
본 규정은 어떤 어떤 부서에서 책임지고 해석한다.
이 조항이 중국 측의 전가의 보도이다.
해석하기 나름에 따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마다 시 마다 요구조건이나 절차가 모두 틀린 형편이다.
행의 면허를 제일 처음 발급했던 북경의 경우는 요즘 시험까지 보는 모양인데 합격률이 10%에 불과해 이미 투자를 완료한 의사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모양이다.
심양의 경우는 간단한 구술시험으로 끝내고 상해는 취업증 만으로 행의면허를 준다고 한다.
흑룡강 성의 경우 위생부 직원들은 외국의사 단기 행의관련 법조차 있는지 없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면 발급받기 쉬운 곳에서 면허를 받고 타 지역에서 진료를 한다면...
중국 정부도 짱구가 아니다 한 지역에서 받은 면허는 다른 지역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자 그럼 원내원 진출방식 이란 것을 알아보자.
원내원이란 말 그대로 병원 내 병원을 의미한다.
기존의 중국 의료 기관 내에 한국 의료기관을 개설 하는 것으로 합자 합작에 관한 법률제정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지금까지 제일 많이 이루어졌던 방법이다.
기존의 중국 병원의 공간 일부를 임대하여 병원을 개설하는데 그 중국병원에서 초빙하는 방법으로 행의 면허를 취득한다.
병원 개설하는데 들어간 비용과 시설 등 모든 것이 외국의사 것임에도 법적으로는 중국 병원 소유가 된다.
만일 중국 측과 불화가 생긴다면 투자 자본 중 일전 한 푼 못 건지고 중국을 떠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고 또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현재 장춘에 중국과 합작해서 초대형 치과를 차린 J 원장의 경우 처음 진출 했던 상해에서 투자자본 2억을 그냥 다 날리고 만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행의면허를 1 년에 한번씩 연장을 해야 하는데 중국 병원 측에서 서류를 안 만들어주면 그 길로 종치고 마는 것이다.
컨설팅 업체가 개원시킨 왕징의 S병원은 위생부 소유의 병원이 중국인에 의해 위탁 경영되고 있었고 그 중국인과 계약을 통해 병원의 일부 공간을 임대 받은 상황이다.
모든 칼자루는 위생부가 가지고 있는 것이고 쉽게 말해 시한폭탄을 안고 가는 상황이라 말 할 수 있다.
대련의 경우는 조건이 좀더 안 좋았다.
모든 것을 병원을 임대해준 건물주의 꽌시로서 처리한 모양인데
임대료 대신 나눠 먹기로 했는데 수익분배 면에서 너무 불리하게 계약을 맺었다.
그 회사 사장이 관련 잡지에 기고한 글을 보면 기회의 땅 중국에서 장미 빛 꿈을 펼쳐보지 않으시렴니까 로 되어 있지만 막상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사장 자신도 북경과 대련에 개원한 원장님에게 원망을 듣고 있는 처지라니 나 역시도 중국에 품었던 환상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 품었던 환상은 깨졌을지 몰라도 중국에 병원을 내겠다는 의지는 더욱 견고해 졌다.
중국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걸린다는 중국병이 옮은 것이다.
나와 중국과의 인연은 사실 각별하였다.
첫 여행이 대만이었고 그 후 북경 청도 연태 홍콩을 여행하고 급기야 2001년도엔 아들과 함께 중국 대륙을 일주하여 쿤제랍패스를 넘어 파키스탄까지 실트로드를 따라 여행을 했다.
운남 계림 산서의 명승지까지 두루 섭렵한 것도 모자라 싸스가 한창일 때는 하얼빈과 치치하알을 갔다 왔으니 말이다.
그 모든 여행이 자유 여행인지라 영어가 안 통하는 중국에서 살아남으려고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해 지금은 웬만한 일상대화는 별 막힘 없이 하고 있다.
컨설팅 회사의 수수료도 만만치 않았다. 한국 직원을 중국에 파견하여 일을 추진해야하므로 엄청난 부대비용이 산출되었다.
그리고 합법적인 개원을 하려면 30억의 투자비용 역시 필연이었고,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이 회사는 없었다.
해서 내가 직접 부딪혀 보기로 마음을 먹고 인터넷을 뒤져 심양의 컨설팅 업체들을 수소문해 일괄적으로 메일을 보냈다.
이러이러한 사람이 심양에 병원을 내고 싶어하는데 도움을 달라 하고.
답장이 딱 한군데서 왔고 그 회사 사장이 현재 우리가 새로 만든 투자회사의 총경리인 L사장이다.
한국의 중소 종합병원의 경리부장을 몇 년한 경력이 있어 적절한 상대자를 만난 것이다.
좀더 근사하게 말을 만든다면 유비가 삼고초려 끝에 공명을 얻었다고나 할까...
우리는 한달 간에 걸쳐 E-mail을 교환하며 중국 내 병원 설립에 관한 자료, 심양의 병원 실태, 특히 치과업계의 현황 등을 공부하며 심양 내 한국치과 설립에 초석을 다져나갔다.
그리고 나의 첫 심양 방문 일정을 잡았다.
L 사장이 나에게 보낸 심양시 방문 일정은 보고만 있어도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신세계빈관에 여장을 풀고 우리는(구로구 요식업회 부회장과 동행을 했다) 곧바로 서탑가에 위치한 L사장의 사무실로 달려갔다.
L 사장이 브리핑을 해준 심양시의 실태와 치과 현황은 아래와 같았다.
심양시의 중추를 이루는 구는 심하구 화평구 두 구이다.
심하구 에는 심양의 상징인 청나라 고궁과 고궁 옆으로 심양 최고의 번화가인 중가가 있다.
중가는 차 없는 거리로 이 곳의 임대료는 서울을 뺨 칠 정도이다.
그리고 동북 삼성 최대 도매시장인 오애 시장이 고궁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다.
화평구는 중가에 버금가는 태원가가 있으며 특히 한국인 밀집거주지역인 서탑이 있다.
이 두 구가 심양시를 경제적으로 떠받치고 있는 구로서 병원을 내려면 이 곳에서 내야한다고 했다.
심양이라는 지역을 살펴보니 그 생김새가 서울을 옮겨 놓은 듯한 형국이다.
한강 만큼 크지는 않지만 시의 남쪽을 가로질러 흐르는 훈하강이 있고 그 훈하 남쪽을 서울의 강남지역처럼 개발하겠다는 시정부의 계획도 사실은 우리 강남개발을 벤치마킹 한 것이다.
심하구 화평구 두 구는 우리 종로구와 중구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심양 주위의 무순 요양 안산 철령 등 위성도시는 마치 우리의 부천 성남 광명 의정부와 유사하였다.
우리 수도권 인구를 2000만 잡듯이 심양권 인구 역시 2000만을 웃돌면 웃돌았지 적지 않을 듯 싶었다.
이 거대한 도시에 정부가 운영하는 치과는 두 곳이었다.
중국의과대학 부속 구강 병원 과 심양시 구강병원 이다.
두 곳의 월 별 환자 수와 평균 진료비 그리고 스탭 구성도를 L 사장이 보여 주었다.
중국의대 구강병원은 새로 7층 건물 두 동을 지어 시 구강병원보다 규모를 훨씬 더 키웠다, 그러나 통계상으로 시 구강병원의 반도 못 되는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시 구강병원의 하루 평균 내 원 환자 수는 약 300명 일인당 일일평균 진료비는 120 위앤, 한 달에 약 100만 위앤의 매출을 올리는 셈이다.
평균 진료비 120 위앤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얘기다.
중국은 아직 모든 의료 수가가 물가국에 의하여 통제를 받고 있다 마치 우리 진료 수가가 의료보험 당국에 의하여 결정이 되듯
해서 우리의 보험 수가와 비교를 해보면 치료 수가만큼은 우리의 반 정도는 쫓아 온 것 같다. 역으로 우리 의료 보험 수가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도 있지만.
단 비 보험이 되는 보철 수가는 역시나 한심한 수준이었다, 우리의 5분의 1 정도나 될까?
병원의 규모는 치료의자 60대 치료 의자 한 대당하루 5명의 환자를 소화해 내는 폭이다.
이 역시 비효율적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직원의 수가 250여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중국이 아직 계획경제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증명해 준다.
될 수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고용의 기회를 주려는 듯 청소부의 수가 60명이란 것을 보았을 땐 실소가 터져 나왔다.
다음날 첫 면담을 위해 심양 중의대학 부속 병원을 찾아갔다.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중의병원이라는데 병원장이 우리 동포인 조선족 출신이라는데 우선 호감이 갔다.
회의실에 오성홍기와 태극기를 교차시켜놓고 아주 큰 찻잔을 놓고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중국측은 병원장과 외사처장 그리고 국제변호사.
우리는 나와 요식업 부회장 L사장 그리고 통역
그러나 대화내용은 실망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이미 다 알고있는 합자합작 관련법의 확인에 지나지 않았다.
나로서는 중의 병원을 이용해서 30억 투자라는 그물망을 벗어나고 싶었는데 중의병원 측은 30억의 70%인 21억을 한국 측이 투자하고 30%에 해당하는 지분은 중의병원이 지닌 무형자산으로 대신하겠다는 것이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새로 만드는 합자병원은 중국의대부속 구강병원보다 더 커야된다며 염장을 질렀다.
7층 건물 두 동 규모의 그 병원보다 더 크게 짓는다면 도대체 얼마를 투자해야한다는 말인지.
그래 그러면 그 잘난 당신병원의 치과를 구경하자 했더니, 우리는 중의과병원이라 치과는 형편이 없네 치과의사는 봉급만 축내는 친구들이네 하며 꼬리를 만다.
과연 명불허전
이런 곳에서도 진료를 할 수가 있을까?
기계는 과연 돌아갈까?
여기 앉아있는 친구들 의사 맞어?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첫 면담에서 허망하게 낭패를 봐야만 했다.
다음날 들린 심양시 구강병원에서 나는 어제 잃었던 활력을 다소 되찾아다.
장력 병원장의 환대도 그렇거니와 구강병원의 기자재가 우리 한국산 이므로 은연중 솟아오르는 자부심을 느꼈다.
이 병원은 특이하게도 언청이 수술 전문 병원이었다.
6층의 구강외과 병동 전체가 거의 언청이 수술 환자로 꽉 차 있었다.
각 과별 진료실을 구경하며 그 전의 치과 견학에서 볼 수 없었던 생동감을 느껴 비로소 치과다운 치과를 본 듯했다.
구강병원 견학에 앞서 시 의정처장과의 면담이 있었는데 의정처장 역시도 법령집과 규정집을 펼쳐놓고 그 이상의 얘기는 해주질 않았다.
위생국 공무원다운 세심함과 조심성을 엿 볼 수가 있었다.
오후에 들린 심양시 제 2 병원은 한국인 거리인 서탑가에 근접해 있다.
그래서 정이 더 가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심양 들어오기 전에 L사장은 2병원 외사과장과 면담에서 ‘2 병원의 한쪽을 내 주겠다 그 곳에서 마음껏 치과 진료를 하라’는 약속도 이미 얻어낸 바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비영리 법인인 2 병원이 나를 위해 영리 법인 허가를 또 받아내야 하고 이미 사용하고 있는 병원의 설비를 이전하고 인테리어를 다시 하고 등등 산적한 문제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투자 자본에 대한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다는 것이다.
그 다음날은 장진 심하구 구청장과의 면담이 이루어졌다.
구청장은 내가 투자를 한다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겠다 약속하고 방산국 국장으로 하여금 우리를 접대하라 지시하고 자리를 떴다.
30억 투자금 문제가 풀린 것은 구청장과의 면담이 끝나고 공상국 직원들로부터 였다.
내가 진정으로 중국에 투자할 의사가 있는지 운을 떠보고 확실하다 싶으니까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그 방법이란 중국 내 외국인 투자 제한 업종을 외국인이 투자하고 싶을 때 쓰는 방식이었다.
가령 외국인이 중국에서 출판사를 차리고 싶다 그러나 외국인은 출판사를 차릴 수가 없다.
출판사를 차리는 제일 쉬운 방법은 중국인 명의를 빌려 차리면 된다. 그리고 공증을 통해서 이면 계약을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다소 위험하다 여기서 더 발전된 방법이 외국인이 출판에 관한 자문회사를 차린다, 물론 100% 외국 독자 기업이다. 그리고 중국 현지인 이름으로 출판사를 차린다. 둘 간에 투자 자문 계약을 한다.
출판사를 차리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독자회사 이름으로 합법적인 송금을 한다.
출판사의 모든 재산의 소유권은 외국 독자회사 것이므로 투자자본에 대한 보호는 확실하게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자문 비용으로 합법적인 수익이 발생하므로 본국으로의 송금 역시 별 문제가 없다.
30억에 대한 부담이 없어진 나는 L사장과 나는 다시금 개원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먼저 내 명의로 된 독자기업 진명미용유한공사를 낸다.
독자기업 명의로 병원 건물을 매입한다.
이것이 나의 대중국투자의 핵심이다. 중국부동산가격의 향후 가치 상승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중국 건물을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리모델링한다.
이 곳에 중국 인 명의의 진명 치과를 낸다.
진명미용유한공사와 컨설팅 계약을 맺고 한국 투자의사들에게 단기행의허가증을 발급한다.
건물도 우리 것이고 기계, 장비 모두 우리 소유 이므로 최소한 중국의사가 들고 튈 염려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개원 전략을 짠 우리는 제일 먼저 미용유한공사의 영업집조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진명미용유한공사이다.
주책 자본금 100만불에 영업범위는 치아미백 이다.
일단 자본금의 15%를 넣어두고 우리는 심하구의 내 놓은 건물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L사장은 심하구내 의 몇 몇 건물을 이미 수배해 놓았다.
위치상으로 나쁘지가 않고 가격 면에서도 내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물건으로 모두 고궁(심양시 의 국보인 궁궐 2004년 6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음) 주변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준비해 놓은 건물을 보기 전에 이미 심양의 부동산 넷에 들어가 부동산 시세를 조회해보았다.
일반 중국인들이 사는 아파트가 평방미터당 평균 3000위앤 정도이고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 들은 내부 장식 없이 3500위앤 에서부터 내부 장식포함해서 6000위앤 까지
일반 상가는 평방미터당 4500위앤에서 5000위앤 정도 였다.
물론 위치에 따라 가격차가 많이 나겠으나 보통의 위치에 그저 그런 상가의 평균 시세가 5000위앤이라 보면 맞았다.
심양의 최고 번화가인 태원가와 중가는 물건도 없지만 가격 역시 내 능력 밖이라 논외로 치고 서탑가는 한국인 밀집지역이라 내 구상과는 거리가 있는 지역이다.
L사장이 추천한 건물은 중가에서 한 블록 떨어진 청나라 문화거리에 있는 낡은 4층 건물이었다.
판매 조건은 이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어서 평방미터당 4500위앤 으로 총 건평이 1600평방미터 이므로 720만 위앤정도의 가격이었다.
우리의 입맛에 맞게 새로 지어서 그 정도 가격이라 나는 즉석에서 OK 하고 즉시 계약을 추진해보라 하였다.
그러나 이 건물 매입이 두고두고 나를 속 썩힐 줄은 그때는 몰랐었다.
처음에는 가격을 가지고 줄다리기를 두세 달을 했다.
4800위앤을 죽어도 받아야 하느니 우리는 4500위앤으로 하자 된다, 안 된다로 싱갱이 하다가 결국 우리 뜻대로 타협을 보고 계약 날짜를 잡았다.
중국 사람들과 계약서 쓰는 일에 대한 많은 일화를 책에서 읽은 지라 쉬울거라 생각은 안 했지만 이 사람들은 정말 심했다.
L사장에게서 전화가 온다 ‘모월모일 몇 시 몇 분에 계약서 쓰기로 했습니다.’
‘몇 시 몇 분은 또 뭡니까?’
‘그 날자 그 시간이 길하답니다’
그러나 그 날짜에 맞추어 가보면 중국 측은 보이지도 않는다, 왜 그러냐니까 회의 중 이란다.
외국인과의 계약이라 매사 불여튼튼 이란다.
이러기를 세 차례 결국 L 사장이 두 손 들고 말았다.
‘안 되겠습니다 원장님, 다른 건물 찾아봅시다.’
그리하여 찾아낸 건물이 지금 우리가 매입한 6층 건물이다.
당시에는 중국인들의 무책임성과 신의 없음에 무척 화가 났었다.
후일담이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고충도 있었다고 한다.
매입하고자 하는 건물이 청나라 문화거리에 있으므로 별도로 문화재관리국의 관리를 받는다고 한다.
우리가 요구하는 조건이 철거 후 재건축하여 판매하라는 것인데 당시의 상황이 고궁이 세계문화유산등록이 되느냐 안 되느냐 (참고로 2003년 일차 심사에 고궁은 불합격 했다, 그 이유과 주변 경관의 조건이 심사기준에 미달되어서 였다.)하는 시기적으로 미묘한 때라 재건축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중국 측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계약서를 쓰고 계약금을 받은 후에 재건축을 못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면 3배의 위약금을 물어야하니 재건축 허가를 받을지 장담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당연히 유보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계약을 빨리 성사시키고픈 우리 측 중개인의 등쌀에 날짜는 잡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당일 날 계약을 회피한 것이다.
새로 잡은 건물의 위치나 상태는 이 전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비록 예산은 초과되었지만 먼저 건물의 두 배에 달하는 면적과 건물 뒤편에 전용 주차장, 당장이라도 그 곳에 병원을 내도 될 만큼 잘 관리된 내부가 꿩 대신 닭이 아니라 닭 잡으려다 봉황을 잡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곳에 밝혀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건물은 국영 기업의 재산이다. 쉽게 말해 주인 없는 건물인 것이다.
담당자가 비싸게 팔아도 자기 주머니에 떨어지는 게 없고, 싸게 판다고 해서 지 밑천 나가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담당자 호주머니만 사적으로 채워주면 상당히 좋은 가격에 매입할 수가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에 만연한 부정부패에 나도 일조한 셈이 되었지만 공증사무소에서 퇴짜를 놀 정도로 싼 가격에 건물을 매입할 수 있게 되었다.
중개인 말로는 현재 이런 눈먼 건물들이 심양 시내에 부지기수란다.
정부의 민영화방침에 따라 국영기업들이 민영화 하면서 자산 정리에 나서는데 그 분 표현대로 주워 먹을 수 있을 때 빨리 주워 먹어야지 얼마 안 있으면 버스는 다 지나가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로왔다. 상대방은 계약금만 밭고 명의를 우리 이름으로 이전해 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단 우리가 생각 못한 변수가 터져 나왔다.
그건 바로 토지세 였다.
중국 정부 기업의 건물이므로 토지사용권은 획발의 형태이고 이걸 외국 기업이름으로 사들이니 출양으로 변경을 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 절차에 대해 아는 친구들이 없었다. 중개인도 모르고 담당 공무원도 모르고 우리는 공무원과 함께 중국 토지법을 공부하며 출양 신청 수속을 밟아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토지사용권의 비용이었다.
첫댓글 잇몸에 뼈를 심어 이빨을 해넣는 작업(임플란트)
그러고 보니 심양 이야기네요 ... 내용도 출실하고 .. 얼마전 치과 기공사 하신다는 분에게 보여드리려 했던 곳 같네요... 그때는 공사중 이었는데 ...
실전적 전투일지를 대하는 듯...흥미진진....마무리 단계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