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녕 벽진이씨 이장곤과 이승언 묘(어느 묘가 발복처인가)
1. 간산에서 눈여겨 볼 점
* 이장곤(李長坤 1474~1519)은 드라마에 등장해도 좋을 일화를 가진 인물이고 그의 아버지 이승언(李承彦)은 벽진이씨 창녕파(대종회는 이신지의 참판공파, 이장곤을 시조로하는 소지파인 정도공파로 분류한다)의 실질적인 파조라 할 수있다.
* 간산 포인트는 ①이장곤의 묘는 장익호 유산록에서 말하는 태백산하 상제봉조와 같은 곳인가 ②이장곤의 묘 위에 있는 2기의 네모꼴 석축 고총은 누구의 무덤인가 ③창녕파의 발복지는 어느 묘인가?
2. 벽진이씨(碧珍李氏)와 창녕계(系)
* 시조는 고려개국공신 벽진백 이총언(李悤言; 858~938)이고 인구는 11만(2015년). 고려조에서 명문거족이었는데 이태조와 세조의 등극에 반항한 탓으로 몰락했다. 벽진이씨 발상지는 성주 벽진면 수촌리 경수당이고 벽진장군 묘는 외기리 959에 있으며, 종택은 월곡리809 완정고택이다. 벽진은 성주의 옛 지명이고 성주를 본관으로 하는 이씨는 6개(六李)가 있다.
* 고려 인종(1109~1146) 때 7세손 이방화가 성주 초전 월곡1리 명곡마을에 입향하였는데 풍수가 자손들이 크게 현달하면 떠나라고 했다. 8대 후 16세손 이희경의 아들 5형제가 고관이 되고 숙질과 함께 8판서가 되면서 쇠퇴 기미를 보이자 풍수 말대로 뿔뿔이 흩어졌다. 넷째 이신지(李愼之)는 1500년경 창녕으로 이주하였고 그 후손들이 창녕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명곡마을은 문화유씨들이 들어와 다수의 만석꾼들이 살았고 벽진이씨들도 2백년 뒤 다시 들어와서 재건하였다.(두사충이 명당이라고 극찬하였다고 하나 시기적으로 의문이다)
* 창녕계는 이승언계가 주류인데 이장곤의 가계는 아래와 같다.
증조부; 이신지(5형제중 4남)
조부; 이호겸
부; 이승언
본인; 이장곤(5형제중 4남)---前부인 청주경씨, 後부인 중화양씨.
자; 이덕남(양씨 소생?) ---손자; 이충서---증손; 2명
3. 이장곤 묘(창녕 대합면 대동리 산6, 금호재)
* 금호(琴湖) 이장곤은 기골이 장대하고 문무를 겸한 인물이다. 연산군 갑자사화 때(1504년) 이극균의 추종세력으로 몰려 거제도로 귀향갔는데 연산군은 이극균등을 처형하고 이장곤을 처형하기 위하여 서울로 압송하라는 명령내렸다. 그 소식을 들은 이장곤은 거제도를 탈출하여 함흥으로 도피하던 중 우물가에서 처녀를 만나 물을 청하자 처녀가 바가지에 물을 떠고 버들잎을 띄워서 주었다. 이장곤이 그 연유를 묻자 급하게 물을 마시면 탈이 날 수 있어서 그랬다고 답하였다. 그 처녀는 양씨로 부모가 천민이었으나 이장곤은 처녀가 현명하다는 것을 알고 백정 양씨집에 데릴 사위로 얹혀 살았다. 이장곤은 잠이나 자고 일을 하지 않아 장인 장모로부터 천대를 받았으나 양씨부인은 정성으로 공양했다. 중종반정(1506년)후 선생은 양씨부인을 데리고 귀경했다. 임금은 도피생활 실정을 듣고는 양씨부인의 공을 인정하고 후부인으로 신분을 격상시키고 부모들도 면천시켜 주었다. 선생은 무공을 세우며 승승장구하여 병조판서를 역임하였는데 사화때 희생자를 줄일려고 애쓴 탓으로 믿보여 파직을 당하고 낙향하여 유유자적하다가 46세로 졸(卒)했다. 홍명희의 임꺽정 소설에 이교리와 백정딸 양씨 이야기가 등장하고 양씨와 임꺽정이 외척으로 묘사되면서 선생의 일화는 가지를 처서 확대되었다.
* 묘소배치---이장곤 묘비에 양위(兩位)라고 새겼는데 부인은 청주경씨이다.양씨 묘비가 근자에 세워진 것을 보면 임금이 후부인으로 격상시켜준 것을 문중에서 무시한 것은 아닐까?
* 묘소 뒤에 있는 사각형 고총2기---고려말 내지 이조초기 형태의 고총인데 관리가 소홀하여 봉분 주위에 잡목 무성할 때가 있다. 이씨문중은 무명의 선조 묘라고 함에 대하여 창녕조씨 김천(참의공)파 문중은 파시조 조심(曺深, 조경수의 3남)의 조모 벽진이씨(조부는 曺遇禧 ?~1350)의 묘라고 주장한다.
앞서 기재한 바와 같이 이신지가 창녕에 이주한 시기는 1450~1500년으로 추정하므로 고총이 이씨의 선조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조씨문중은 희미한 증거라도 있을 터이니 조씨부부 묘라고 보아야 옳을 것 같고 그러한 연유가 있으로 이장곤 묘가 이 곳에 들어 왔을 것이다.
* 유산록의 산도(낙동강의 위치)를 보면 태백산아래 상제봉조는 이장곤 묘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고총 아래에는 안산이 사룡(死龍)이므로 금호선생 묘는 초등급이다. 천심십도에 맞추어 보면 고총 위에 있을 것 같으나 그곳 역시 당판이 허술하여 소혈이다.
4. 이승언 묘(창녕 부곡리 130, 부곡재)
* 이신지가 창녕으로 이주한 이후의 선조들 묘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이 묘는 중등상급에 가까운 대혈이다. 화왕산 백옥산을 거쳐온 간룡이다. 입수 뒤에 속기가 뚜렷하고 청백이 앞으로 길게 내려가면서 작은 봉우리를 여러개 달았다. 재물있고 자손이 많을 자리 같다.(2024.6)
* 이승언 쌍분---
첫댓글 감사합니다.
예!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