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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들을 죽기까지 사랑하사 구원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귀한 만남의 복을 허락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탈북민들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후원하시는 나균용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함께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저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계획과 뜻 가운데 북한 땅에서 태어난 *** 입니다.
북한에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바라봐 주지 않는 아주 가난하고 비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저의 육신의 아버지를 어린 나이에 잃게 되었고, 홀로 남으신 어머니는 세 자녀를 먹여 살리려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저와 저의 가족들은 헤어 나올 수 없는 가난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 속에서 배고픈 아픔과 가난 속에서 사는 아픔을 알게 되고, 지도자를 잘못 만나서 살아가야 되는 비참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 역시 힘들게 살아가고 어떤 가족은 전체가 하룻밤에 굶어 죽어나가고 아사로 많은 사람이 죽고 북한정권에서는 어떤 몇몇 사람들을 소 한 마리 도둑질해서 중국에 팔았다는 이유로 또는 말도 안 되는 죄를 뒤집어 씌어 총살형에 처하고 이러한 끔직한 일들을 목격하면서 참 인생이 비참하게 느껴졌습니다.
북한의 독재자 김일성 사망 후 1994년 7월 이후부터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그 시기 배급제로 공급되던 식량이 끊어지면서 참 많은 사람들이 아사로 무리로 죽어나가는 비참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는 세 자녀를 먹여 살리려고 참 많은 애를 썼지만 그 가난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가난을 겪으면서 사람이 먹지 못할 술깡치, 두부콩물 다 빼고 남은 비지로 끼니를 때워야 했고 비지마저 살 돈이 없어 솔나무 속껍질을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풀이 나올 시기가 되면 산에 가서 먹는 풀인지 못 먹는 풀인지 알지도 못한 채 초록색으로 생긴 풀이면 무작정 뜯어 와 배를 채워야만 했습니다.
그 시기 많은 북한 주민들은 어려움 속에 가난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사람으로서 죽기 전 소원이 흰쌀밥 한 그릇 배부르게 먹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두세 시간을 도보로 걸어서 쇠 구루마(밀차)를 끌고 산에 가서 나무를 잘라 오면 하루해가 다 갑니다. 다음날 톱으로 켜서 도끼로 쪼개고 단을 묶고 장마당(시장)에 나가 팔아서 식량을 조금 사다가 연명을 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삶도 오래가지 못해 산들은 벌거숭이가 되고 점점 나무장사로 먹고 살기에도 어려움이 오기 시작합니다.
이어서 북한장마당(시장) 장사 중 밑천이(재정) 적게 들고 힘은 힘대로 들고 구차하고 남는 것이 없는 장사는 음식을 만들어 파는 것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여러 가지 음식장사로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고 많은 애를 써봤지만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식량이 없어 굶기도 많이 하고 빌어먹으러 많이 다니고 길을 걸을 때면 땅바닥에서 혹여나 뭘 얻을까 하고 늘 고개를 숙이고 살피며 걸어다녔던 기억도 납니다. 야채가 나오는 시기가 되면 12살 된 남동생은 밤에 몰래 농장에 가서 도둑질을 해서 호박 몇 개 뜯어오면 온 가족이 그것으로 끼니를 때우고 살아야 했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사연들과 아픔들이 있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일들도 많고 기억이 있으나 다 글로 남길 수 없을 정도로 몇 날 며칠을 이야기해도 해도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삶을 살며 사람이 왜 태어났을까?
사람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사람의 끝은 어딘가? 알려주는 사람도 알 수도 없었습니다. 21살 성인이 된 저는 막막한 삶 가운데 더 이상은 버티고 살 수가 없어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 가족들 살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신매매하는 브로커를 찾아 ‘저를 중국에 보내주세요’ 부탁을 하게 됩니다.
두만강 지역이나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가려니 국경을 군인들의 철저한 감시가 있기에 그냥 넘을 수는 없었습니다.
무작정 죽기 살기로 강을 넘은 사람들이 있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고 군인들 총에 맞아 죽고 얼어 죽고, 강을 넘다가 잡히면 맞아 죽었습니다.
100% 안전이 보장되진 없지만 그나마 안심하고 강을 넘을 수 있는 길은 인신매매를 선택해야 만 했습니다. 인신매매자들은 국경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을 돈으로 매수해 중국 쪽 브로커와 북한 여성들을 돈을 받고 파는 사람장사를 하는 것입니다. 인신매매하다 발견되면 그들이 받아야 될 처벌은 총살형이나 중한 처벌을 받게 되니 그들 역시 목숨 건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족들과 헤어져 저는 가족들과 저의 생계를 위해 중국 땅에 팔려오게 되었습니다.
중국 땅에 와서 저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수많은 일들과 아픔들이 있었고 그것을 통해 나의 마음은 분노와 상처들만 남아있었고 사람이 인생을 왜 살아야 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남아야 되는지? 나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지? 답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중국에 팔려온 지 3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글로는 다 남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중국에 흑룡강성에 중국한족들이 사는 마을에 팔려갔다가 그 곳에서 도망쳐서 나와 **라는 곳의 어느 한 회사에서 12시간제로 일을 하게 됩니다. 한 달간 일을 하게 되면 월급을 중국 돈으로 400원을 받게 됩니다.
쉬지 않고 일을 하면서 조선족이신 회사 사장님에게 부탁을 해서 북에 있는 가족들을 찾아주기를 부탁을 드리고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어느 날 중국 ** 브로커를 통해 어머니의 가족들과 연결이 되었고 가족들의 소식을 전화로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가족들이 살아가는 형편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굶어 죽게 된 상황에 남은 것은 허름한 집, 그 집을 팔아 음식 장사 밑천을 삼아 연명을 해야만 했던 어머니와 저의 형제들은 한 동네에 과부로 혼자 살고 있는 큰 언니 시댁에서 함께 살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을 전해들은 저는 참 마음이 아팠고 제가 일하고 있던 회사의 사장님에게 저의 가족들 상황을 말씀드리고 1년간 일을 열심히 하겠으니 저를 믿고 중국 돈 4천원, 1년간 일을 해서 받을 수 있는 재정을 먼저 요구하고 이 돈을 브로커를 통해 가족들에게 송금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 착하지 않은 브로커를 만나 제대로 되려면 30%는 브로커가 가지게 되고 70%는 저의 가족들에게 전달이 되어야 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거꾸로 30%의 재정만 가족들에게 전달이 된 것이었습니다.
참 감사한 것은 그렇게라도 전달이 되었기에 그나마 그 돈으로 자그마한 집을 구하고 남은 것으로 장사밑천 삼아 가족들이 살 수 있었고,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을 만나고 성경 말씀 창세기 요셉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저의 상황을 비춰보게 됩니다.형들의 손에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서 왔지만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날 일들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사 고난을 감당하게 하시고 마침내 애굽의 총리로 세워 많은 일들을 하셨고, 또한 흉년에 식량이 없어 죽어가는 가족들을 요셉을 통해 살리시는 하나님....
저 역시도 요셉과 같은 훌륭한 인물은 아니지만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던 저의 가족을 살리시려고 저를 중국으로 인도하시고, 그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내게 하시고 저를 통해 어려움 속에 있는 가족들을 살릴 수 있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1년 후 저는 **에서 만나게 된 탈북민 자매와 함께 한국으로 가려고 연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복음을 듣게 되었고 나의 아픔과 슬픔들을 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제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크신 은혜가운데 저는 천국과 지옥 간증을 듣고 천국과 지옥이 실재하고 있음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껏 돈을 벌어야 살 수 있다는 저의 생각이 바뀌어 돈보다 소중한 것 생명이니 북에 있는 나의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한국 선교사님을 만나 성경말씀과 예배는 어떻게 드리는 것인가를 철저히 훈련받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교회 집사님들은 얼마나 반대하시는지요, 북한이 어떤 곳인데 다시 들어간다고 그러냐며 가다가 붙잡히기라도 하면 어쩌냐고 많이들 걱정하며 불가능한 일이라고 거듭 반대를 하였지만 북한에는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죽이고 정치범수용소로 보내고 하기 때문에 복음을 듣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가족 이 아니면 복음을 들을 수 없기에 다시 북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혹시 가다가 잘못된다하여도 천국소망이 있었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저의 작은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고 지켜주셨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저에게 딸아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말씀해주셨고, 저를 훈련시키시는 선교사님을 통해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시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탈북하기도 어려운 그 곳으로 다시 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죽음도 막을 수 없는 복음의 능력이 함께하기에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북한에 들어가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주일마다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북에 들어가서의 자세한 간증은 다 기록할 수 없지만, 사람의 생각으로나 힘으로 사람으로서 해낼 수 없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입니다.
사선을 넘어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왔다는 저의 얘기를 들은 가족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주일이 되어 새벽 5시가 되면 가족들과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성경 하나 가지고 신음소리로 드리는 찬양과 기도, 생명 걸고 드리는 예배를 우리 아버지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북한의 지하성도들이 목청껏 찬양하며 큰 목소리로 하나님 아버지를 찾으며 기도의 함성이 북한의 하늘을 울릴 그날을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북의 가족들과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여 1년 반쯤 되었을 때 생계의 어려움으로 또 다시 탈북을 시도하여 중국으로 오게 됩니다. 재 탈북하여 인신매매로 팔려갔다가 또 다시 도망하여 **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중국 조선족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2년간 중국에서 살면서 첫째 아이를 낳게 되었고, 한국으로 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중국 **을 통해 라오스와 태국을 거쳐 한국에 입국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에 온 지 8년의 삶을 살면서 최소한 한국에서는 밥 지을 쌀이 없어 굶어본 일은 없고 옷은 화려하게 입지는 못해도 주변 분들이 입다가 준 옷들을 깨끗이 씻어 입을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집은 14평의 작은 집에서 6명의 식구가 살아도 불평하지 않고 감사히 살 수 있는 것은 따뜻한 물 잘 나오고 난방시설이 잘 되어 있어 추운 겨울에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으니 참 감사하고 이전에 제가 북한에서 겪고 탈북 후 중국에서 겪어 온 삶에 비하면 현재 얼마나 감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요.
먹고 쓰고 입는 것, 절제하면서 더 어렵게 살고 있는 가족들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모든 상황을 다 아시고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 북에서 전화가 올 즈음에는 주변에서 헌금으로 채워주시고 설과 추석 때가 되면 에스더기도운동에서는 북의 가족들에게 송금을 할 수 있도록 헌금해주십니다. 그래서 저는 가족들에게서 전화가 오면 이 돈은 하나님이 주신 돈이니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한 도우면서 살아야 된다고 당부합니다.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신다. 정직하게 사용하면 다음에도 헌금을 채워주셔서 또 보낼 수 있으니 얼마 되지는 않지만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외면하지 말고 살라고 꼭 당부합니다.
전화 한번 하려면 거의 백리 길을 걸어 안전한 곳에 가야 전화통화를 할 수 있는데 가족들과 통화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0분 아니면 5분 이내에 끊어야 됩니다.
전화통화라도 마음껏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전화통화하면서 식구들이 다 잘 있는지 안부 인사만하고 “통일이 멀지 않았으니 우리 서로 만날 날을 기대하면서 살자!”라고 꼭 말하고 전화 끊고 송금하고도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는 신실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전국의 통일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도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저는 탈북민으로서 복음통일의 사명자로 하나님이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살길 원하여 아버지의 뜻이 나의 비전이 되어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고 죽으라면 기쁨으로 순교할 수 있게 되길 기도하며 살아가렵니다.
한국생활 시작하면서 에스더기도운동을 만나 훈련받고 통일을 위해 기도하며 8년 되는 지금 네 아이의 엄마로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이 저의 삶에 무엇을 뜻하셨든지 그대로 이루어지길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어려운 속에서 살고 있는 북한의 영혼들을 아파하면서 복음 통일을 위해 탈북민 신학생들을 세워주시고자 기도해 주시며 헌금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복이 임하시고 물질을 더 풍성히 채우사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의 마음을 늘 나누는 귀한 은혜가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이 한반도가 예수님 안에서 속히 하나가 되길 소망합니다.
한 민족이 둘로 갈라진 지 70여 년의 세월, 아픔과 고통은 더 말할 여지가 없는 이 작은 한 민족을 긍휼히 여기사 하나가 되게 하시고, 고통 속에 억압 속에 갇혀 살면서 신음하고 있는 아버지의 잃어버린 자녀들을 어둠속에서 빛으로 구원해주시길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요즘 날씨 너무 덥습니다. 북한에는 더 더운 날씨에 더위 먹어 죽는 영혼 없게 하시고 더더욱 배가 고파 굶어 죽는 영혼도 없게 하시고 도움의 손길들을 더해 주시길 원하며, 그들에게 먹을 것, 입을 것, 쓸 것 공급하시고 더 간절히 원하옵기는 예수님 믿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목청껏 온 마음을 다해 찬양하는 그날이 속히 오길 원하고 또 원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자녀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며 오늘도 신실하게 살아 역사하시는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지금 탈북민 4자매가 함께하는 소그룹 성경읽기를 7월말 중으로 마무리하고 8월 1일부터 신약성경 매일 10장씩 한 달 일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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