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엔 없는 것이 없다
고창에 처음 갔던 건 단풍이 한창이던 11월 초였다. 대한민국에서 단풍으로 가장 유명한 산으로 알려진 내장산이 전라북도 정읍에 있기에 내장산 단풍도 구경할 겸 가까운 고창에도 들린 것이다. 정읍은 내장산 외에는 딱히 볼 것이 없어 2박 3일의 여행 일정 동안 정읍에만 있기엔 심심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무성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내장산 말고도 다른 여행 일정을 짜는 것이 가능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무성서원이 그렇게 중요한 서원 인지도 몰랐다. 이런 연유로 내장산 산행 하루, 고창 여행 하루의 일정으로 전라북도 여행을 떠났다.
정읍에 있다가 고창으로 가니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내륙 지방인 정읍과 달리 고창은 바다와도 접해 있으며, 정읍의 내장산에 버금가는 명산인 선운산도 있었다. 게다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고창 고인돌 유적, 잘 보존된 읍성인 고창읍성과 무장읍성, 봄이면 온통 보리로 뒤덮이는 학원 농장 등 고창에는 없는 것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내장산을 들릴 때가 단풍철이기 때문에 수많은 선택지 중 선운산에 가는 걸 택했으며 이는 지금도 정말 잘 한 선택이라고 믿고 있다. 선운산의 단풍은 어떻게 보면 내장산의 단풍보다 더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환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선운산 단풍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다시 고창으로 간 건 몇 년 뒤였다. 5월에 고창 학원농장의 청보리가 한창이라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고창의 청보리밭을 들리기 위해 주말 이틀의 짧은 시간 동안 고창에 들린 뒤 군산으로 넘어가 보령을 거쳐 올라오는 바쁜 일정을 세웠다. 고창만 들러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지만 이렇게 여정을 짠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고창은 계절마다 그 아름다움이 절정인 곳이 많이 있기에 각 계절마다 가장 아름다운 곳을 찾아가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5월에는 학원농장의 청보리밭이 한창일 때라 다른 곳은 별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야기 15 - 고창 고인돌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양식으로 우리나라에 대체로 3만여 기 이상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중에서도 전남과 전북을 포함한 한반도 서남해안 지역에 밀집 분포하고 있다. 그중에서 전라북도에 분포한 고인돌은 그동안 꾸준한 발굴과 조사가 이루어져 약 2,600여 기 이상의 고인돌이 분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고창은 전북 지방의 고인돌 중에서 63% 이상인 1,665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어 단일 구역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밀집 분포된 사실로 유명하다.
고창지역 고인돌은 2003년에 205개 군집에 1,655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그 이후 2005년 문화유적분포지도에서는 1,327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고, 2009년 군산대학교박물관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고창 고인돌 유적을 제외한 174개 군집에 1,124기가 보고되었다. 최근까지의 자료에 의하면 고창 지역의 고인돌은 185개 군집에 1,600여 기 이상이 확인되고 있다.
고창 고인돌은 죽림리와 상갑리, 도산리 일대에 무리 지어 분포한다. 성틀봉과 중봉의 남사면에 산의 등고선 방향으로 위치하고 바로 앞은 고창천이 흐르고 있다. 죽림리 일대의 442기의 고인돌과 도산리 고인돌 5기를 포함하여 447기의 고인돌이 밀집 분포하며 이는 세계적으로 그 사례가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또한 숫자의 방대함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식, 이른바 탁자식과 변형 탁자식, 기반식(바둑판식), 개석식 등 각종 형식이 혼재되어 있어 고인돌의 발생과 전개 및 그 성격면에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고창지역 고인돌 발굴조사는 1965년 국립박물관에 의해서 상갑리 고인돌 3기가 처음으로 조사되었으며, 1983년에는 고창 아산 댐 공사로 인해 용계리와 운곡리에 걸쳐 22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고, 현재 원광대 학교 박물관 정원에 이전 복원되어 있다. 1992년에는 고창 고인돌 유적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목적으로 죽림리 2 지구 3군의 16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고, 1999년 서해안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죽림리와 예지리 고인돌이 조사되었다. 2003년 태풍 루사에 의해 죽림리 2419호 고인돌은 완전히 도괴되었고, 2433호 고인돌은 유수에 의해 도괴의 우려가 있어 재해 고인돌로 명명하고 2004년 원광대학교박물관에 의해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2004년 고창-담양 간 고속도로 구간인 부곡리에서 20여 기의 고인돌이 발굴 조사된 바 있다.
고창 고인돌 유적은 단일 구역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군집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한 지역에 분포하며, 고인돌 축조과정을 알 수 있는 채석장의 존재 등 동북아시아 고인돌 변천사를 규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를 인정하여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등재기준 제3항(독특하거나 아주 오래된 것)을 적용, 세계유산적 가치를 인정하였다.
학원농장, 그리고 예기치 않았던 보물인 고창 고인돌 유적
금요일 늦은 밤에 고창읍에 도착해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 일찍 학원 농장으로 떠났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여행을 했던 터라 학원농장으로 가는 첫 버스를 반드시 타야만 했다. 학원농장의 청보리밭은 이미 유명세를 탔기 때문에 약간만 늦어도 사람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원농장이 위치한 공음면으로 가는 농어촌 버스도 그다지 많은 것도 일찍 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아침 7시임에도 학원농장을 찾은 여행객들의 수가 꽤 많았다. 특히 거대한 카메라를 들고 청보리밭 이곳저곳을 다니며 연신 셔터를 눌러 대는 사진가들이 많았다. 학원농장의 청보리밭은 사진으로 담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따뜻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보리는 고창의 야트막한 언덕과 어울려 마치 한국이 아닌 듯한 풍경을 뽐낸다. 청보리밭 사이에 심긴 아름드리나무는 학원농장을 운영하는 주인의 미적 감각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국적인 풍경을 보기 위해 저 멀리 홋카이도 비에이나 후라노의 라벤더 밭으로 떠나곤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대형 농장이 주로 없는 대한민국에서 드넓은 들판이나 초원을 보기 위해선 평창의 삼양목장이나 육백마지기 그리고 고창의 청보리밭이 그 예다. 홋카이도의 라벤더도 물론 예쁘긴 했지만 내 눈에는 우리 조상들이 추운 겨울을 날 수 있게 만들고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보리밭이 오히려 더 아름다웠다.
보리밭을 보고 난 뒤 북쪽에 있는 무장읍성에 들렀다.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1417년에 만들어진 읍성은 조선시대 읍성의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는 성이다. 낙안읍성과 해미읍성, 그리고 같은 행정구역에 속해 있는 고창읍성의 유명세에 미치지 못해 찾는 사람은 적지만 무장읍성 또한 한국의 아름다운 읍성 중 하나다. 무장읍성의 남문인 진문루를 비롯해 성 안의 객사와 관아가 남아있으며, 읍성을 둘러싼 해자도 있어 적의 침입에 확실하게 대비한 흔적까지 엿볼 수 있다.
무장읍성에 들린 뒤 상하농원과 고시포 해수욕장까지 가고 나서 고창읍으로 향했다. 고창 고인돌은 다음에 들리려고 생각했지만 상하면에서 고창읍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걸 확인하고 나도 모르게 고인돌 유적 가까운 곳에서 하차했다. 군산으로 향하는 버스가 출발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둘러 고인돌 유적을 둘러보고자 했다.
고인돌 유적 입구에는 고창 고인돌 박물관이 있어 고창의 오랜 역사와 그 흔적에 대해 알 수 있다. 고인돌이 있었다는 건 고창이 곧 오래전부터 살기 좋았던 곳이라는 걸 의미한다. 고인돌이 무엇인지와 세계의 다른 거석문화에 대해 소개한 뒤, 고창 고인돌이 위치한 매산마을의 청동기 문화와 옛 모습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박물관을 나와 하천을 건너 산으로 가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의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화순 고인돌 또한 그 밀집도가 높지만, 고창 고인돌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고인돌이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놀랄 수밖에 없다. 수만 많은 것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을 동시에 볼 수 있고,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 돌을 캐낸 채석장도 있어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고창 고인돌 유적은 6개 코스로 나뉘어 있어 화순 고인돌 유적보다 적은 힘을 들이고도 더 많은 고인돌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코스를 대표하는 고인돌 (2509호)은 상석길이 3.4m, 높이 1.5m 길이의 거대한 고인돌이다. 상석은 바둑판형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입체화 된 것이지만, 하부구조는 길이 2.2m, 높이 70cm의 판석 2개가 80cm의 간격을 두고 평행으로 괴어 있는 변형된 탁자형을 보여준다. 이와 달리 2513호는 5개 굄돌이 나타나고 있는 전형적인 바둑판형 고인돌이다. 이처럼 1코스에서는 다양한 양식의 고인돌을 한눈에 접할 수 있는 곳이다.
2코스는 동서로 약 276m에 걸쳐 41기가 열을 지어 있는데, 이곳에서 특이한 것은 2428호 고인돌이다. 이 고인돌은 고인돌 형태는 지상석곽식 고인돌로 분류되는데 남방식에서 볼 수 있는 굄돌이 나타나 고인돌의 변천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독특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무게가 120~150t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 고인돌인 2406호는 우리에게 경외감을 주는 동시에 고인돌 축조와 관련된 많은 의문점들을 제기한다.
3코스는 고창 고인돌 유적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탁자형과 바둑판형의 중간 형태인 지상석곽형의 고인돌이 집중 분포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매장부가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는 고인돌과 무덤방의 형태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4코스에서는 총 23개소의 고인돌 채석장이 발견되었다. 정상부의 성틀봉 주변에서 15개소, 중봉 주변에서 8개소가 조사되었고, 주로 7~8부 능선 지점에 군집을 이루며 넓은 범위에서 존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채석된 암석은 대부분 데사이트질 응회암으로 일단 절단한 암석은 산의 경사를 이용하여 하여 완만한 지역으로 옮긴 후 인력을 이용하여 고인돌을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상석의 운반 및 축조에 있어서는 이곳 고인돌군 중 가장 무거운 140톤의 상석을 운반하기 위해 1200명의 인원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여 당시 고인돌 축조에 있어서 계층 분화에 의한 권력의 발생을 짐작하게 한다.
마지막 5코스는 상갑리와 봉덕리~죽림리에 걸쳐 이어지는 곳이다. 지표조사 결과 고인돌이 가장 많이 밀집된 지역으로 바둑판형 고인돌 135기와 지상석곽형 고인돌 25기 그리고 형태가 불분명한 60기 등 크기가 2m 내외의 소형 고인돌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곳이다. 지석이 많은 다지석형 고인돌을 접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인돌을 천천히 보고 싶었지만 제한된 시간 때문에 사진으로 급하게 담은 뒤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예상된 시간보다 버스가 늦게 와 택시를 탈까 생각도 했지만 버스를 타고 제시간에 고창 버스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군산으로 향하는 동안 고인돌 유적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음에도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톤헨지나 모아이 석상처럼 눈에 띄는 형태는 아니지만 우리 한국인들의 정체성이 확립된 시기가 청동기까지 거슬로 올라간다는 점에서 엄청난 가치를 지닌 유적임에도 말이다. 그렇기에 전라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고인돌 유적을 방문해 보라고 추천한다. 고인돌을 보고 별 생각이 들지 않는 사람도 많겠지만 적어도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찾아가 우리 조상들의 먼 과거에 대해 생각할 기회라도 가져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