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스럽고 성스러운 시대에, 시골에 은거하는 절행이 뛰어난 선비가,
구름 덮인 산기슭에 밭이랑을 갈고, 내 낀 강가에 낚시를 드리우느니, 이밖에는 일이 없도다.
빈궁과 영달이 하늘에 달렸으니, 가난함과 천함을 걱정하리오,
漢나라때 궁궐문이나 관아 앞에 銅馬를 세움으로 명칭한 金馬門과, 翰林院의 별칭인 玉堂署가 있어, 이들은 임금을 가까이서 뫼시는 높은 벼슬아치로, 이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로다.
천석으로 이루어진 자연에 묻혀 사는 것도, 仁德이 있고 수명이 긴 壽域으로 盛世가 되고, 초옥에 묻혀 사는 것도, 봄 전망이 좋은 春臺로 성세로다.
어사와! 어사와! 천지를 굽어보고 쳐다보며, 삼라만상이 제각기 갖춘 형체를 멀리서 바라보며,
安靜된 가운데 넓고도 큰 흉금을 열어제쳐 놓고 홀로 술을 마시느니, 두건이 높아 머리뒤로 비스듬히 넘어가, 이마가 드러나서 예법도 없는 데다 길게 휘파람부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초가삼간이 너무 좁아, 겨우 무릎을 움직일 수 있는 방에는, 지행 높고 한가한 사람이,
야금을 타고․책 읽는 일을 벗삼고․집 둘레에는 소나무와 대나무로 울을 하였으니,
찢기어진 생계와 산뜻하게 가슴깊이 품고 있는 회포는, 속세의 명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어디서 나리오.
저녁 햇빛이 맑게 개인 곳에 다다르고, 흰 갈대꽃이 핀 기슭에 비쳐서 붉게 물들었는데, 남아 있는 내에 섞여 부는 바람결에 버드
나무가 날리거든,
하나의 낚시대를 비스듬히 끼고․세속 일을 잊고서 갈매기와 벗이 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선비는 무엇을 일삼아야 하느냐, 뜻을 높게 가질 뿐이로다.
과거급제란 명예로움은 내 뜻을 손상시키고, 이익과 출세란 덕을 해치는 것이로다.
모름지기 책 가운데서 성현을 뫼시옵고,
언어와 정신을 맑은 달밤에 잘 가다듬고․고요히 수양하여,
내 한 몸이 바르게 된다면 어디러로 못 가리오.
굽어보고․쳐다보아 크고 넓게 포용하는 모습이 왕래가 평이로워지느니, 내 갈 길을 알아서 뜻을 세우지 아니하리오.
벽처럼 선 낭떠러지가 만 길은 되는데, 내 마음은 활달하여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고 변하지 않느니,
뜻이 커서 말함이 시원스러운데다, 책 읽어 아득한 옛 현인을 벗으로 삼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韓愈가 산에 들면 산이 깊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숲에 들면 숲이 빽빽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마음은 너그럽고도 한가한 들판에서 밭을 갈고, 쓸쓸한 물가에서 낚시를 드리울 수 있는, 살만한 곳을 가려 점쳐서 정하였느니,
시골사람의 의복에다 野人의 관을 쓰고 살면서, 물고기와 새밖에는 벗이 없도다.
향그러운 교외에는 비가 개이고, 수많은 나무들에는 꽃이 떨어진 뒤에,
명아주지팡이를 짚고서, 십리되는 시냇머리를 한가하게 오고 가는 뜻은,
마치 증점씨(曾點氏)가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무우(舞雩)로 바람
을 쐬며 돌아오는 산뜻한 그 기분과, 정명도(程明道)가 꽃을 곁에 두고 버드나무를 좇아 거닐던 기분도 이렇던가 어떻던고.
따스한 햇볕과 청명한 날씨에 부는 바람이 불거니․밝거니 하여 흥취가 내앞에 가득하여지느니,
침착하고도 여유있는 가슴속이, 천지만물과 더불어 상하가 함께 흘러가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내집은 저 後漢적 范萊蕪가 끼니가 떨어질 정도로 가난하였어도, 태연자약하게 초야에 묻혀 살았듯, 前漢적 蔣元卿이 뜰앞의 꽃과 대나무 아래에다 세갈래 길을 여고, 求仲과 羊仲으로 더불어 조용히 놀기를 구하였도다.
평생동안 덧없는 인생이 이렇다고 어떠하리.
진실로 은거하여 뜻을 구하고, 죽어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대부가 타는 수레와 복장이 진흙처럼 천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오, 종묘에 두는 그릇에다 공적을 새긴 이름도 아득한 후세에는 흙먼지에 지나지 않는도다.
천번이나 갈았는 서릿발 서슬이 푸른 날카로운 칼날일지라도 이 뜻을 끊으랴.
韓昌黎는 세번이나 상서를 올림에, 그 때마다 귀양을 감으로써 벼슬길이 막혔는데, 그것은 나의 뜻에 각기 달랐고,
杜子美는 三大禮賦를 올림에 드디어 벼슬길이 트였다고, 내 마침내 그러한 도를 행하랴.
두어라, 그들은 그들의 작위를 가지고 행하나, 나는 나의 正義를 가지고 행하는데, 남의 수놓은 비단옷(벼슬)을 원치 않으매,
세간의 만사가 모두 천명에 달려 있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십년동안 마음에 생각한 일을 어찌하여 위로 임금님께 여쭈어 알게 하리오.
운수가 기이하여 내 계책을 봉하여 둔 지가 오래되었도다.
벼슬하면 임금에게 충성함에 이르게 되고, 백성에게는 은택을 내려 주어야 하는 것인데, 이는 나의 천부의 재능이 아니던가.
경서를 궁구하는 가운데, 성현의 도를 배우기 위한 데다 뜻을 두고 이리하랴.
차라리 쉬지 않고 글을 읽어서, 배움에 힘쓰는 저 언덕과 구릉이 있는 은거처에서, 세상을 숨어살아도 고민이 없으매,
나를 따르는 벗님네 뫼옵고 史書庫의 綠牙籤을 표지로 한, 장서가 가득한 창앞에서 성현의 경서를 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궁구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하나의 병풍에다 하나의 평상을 두고, 왼쪽에는 경계가되는 箴言을․오른쪽에는 마음에 아로새길 座右銘을 두고,
귀신의 눈으로 볼 제는 번갯불같이 밝게 보이므로, 어두운 방안이라고 제 마음을 못 속이며,
하늘이 들을 제는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리므로, 사사로이 하는 말이라도 망발을 하랴.
군자가 경계하고․삼가며 몹시 두려워하는 것은, 은암한 곳보다 더 잘 드러나는 곳은 없고, 세미한 일보다 더 뚜렷해진다는 게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
앉은 모습은 尸童氏처럼 반드시 공경하고․장중한 태도로 앉아야
하고, 얼굴빛과 몸가짐은 엄숙하고․단정하게 가져서 무엇인가 생각하는 것처럼, 낮에는 하루종일 쉼 없이 노력하고, 저녁에는 반성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뜻은,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잘 섬김으로써, 내 몸 밖에서 오는 누끼치는 일을 물리쳐 없애고,
온몸이 令을 좇아서, 아비는 의롭고․어미는 자애롭고․형은 우애롭고․아우는 공경하고․아들은 효성함으로써, 五常을 싫어함이 없어야만,
백성들이 잘 다스려져 평안한 세상이 되게 하고, 사업을 모두 이루고자 하였더니,
때가 아닌지 운명인지, 마침내 성공함이 없었고, 세월은 나와 더불어 기다려 주지 않으니, 흰머리의 늙은이로 숲과 샘이 있는 은거처에서 할 일이 다시 없도다.
우습다, 산의 남쪽과 물의 북쪽인 양지바른 곳에다 내 발자취를
거두어 감추고, 평생동안을 한가하게 늙어가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감상의 길라잡이]
조선 선조 때의 문인 권호문이 지은 경기체가. 현존하는 경기체가 가운데 가장 마지막 작품이다. 제목에는 8곡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7곡만이 문집인 <송암별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의 서문에서 작자는 "고인이 말하기를 노라라 하는 것은 흔히 시름에서 나오는 것이라 하였듯이 이 노래 또한 나의 불평에서 나온 것이니, 한편 주자의 말처럼 노래함으로써 뜻을 펴고 성정을 기르겠다."라고 제작 동기를 피력하였다. 이로 보아 작자는 강호자연의 유연한 정서생활을 노래하면서 그것을 성정을 닦고 기르는 도학의 자세로 받아들였으며, 그러면서도 그 이면에는 외로움과 불평이 서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작자는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였으며 산림처사로 자처하면서 산수에서 노닐며 노래로써 시름을 달래었다. 작자의 어머니가 천비(賤婢)였다는 점에서 벼슬길에 제약이 있었을 것은 확실하며, 웅대한 학덕을 지니고도 크게 펴보지 못한 데서 오는 소외감과 불평이 응어리져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의 제5연을 보면 그의 의기가 얼마나 드높으며, 그러면서도 불평에 가득 찬 사람이 세상을 저 아래로 내려다보는 태도가 여실히 나타나 있다. 그리고 작품의 전편에 표면적으로는 강호자연 속에 파묻혀 한가로이 지내는 즐거움을 노래하고 태평성대에 한 일민(逸民)으로서 자연을 사랑하며 유유히 살아가는 삶을 드러내었지만, 이면적으로는 홀로 즐기는 소외감과 마음껏 의기를 펴보지 못하는 불평이 짙게 깔려 있다.
요점 정리
형식 : 경기체가
연대 : 조선 선조
작자 : 권호문
주제 : 자연속의 묻혀사는 한정의 즐거움(이면에는 소외감과 마음껏 의기를 펴지 못하는 불평)
내용 연구
제목에는 8곡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7곡만이 문집인 '송암별집'에 수록되어 있다. 1860년에 민규가 지었다는 '충효가' 1편이 더 알려져 있으나, 이 작품은 경기체가가 이미 소멸된 지 3세기나 지난 뒤에 단지 그 양식을 흉내낸 작품에 불과하므로 문제삼을 것이 없다. 따라서, 이 작품은 쇠퇴기 혹은 소멸기의 형태적 변형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즉, 전통적인 경기체가의 양식은 1연이 6행으로 되어 있는 연장체로서 각 연의 제 4행과 제 6행에 "위 景긔엇더하니잇고"라는 특별한 구조적 기능을 하는 구절이 반드시 놓여지고, 각 행의 음보수에 있어서도 제 1~3행까지는 3음보격으로 제4~6행까지는 4음보격으로 되어 있고, 각 연은 전대절과 후소절로 크게 나누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각 연이 전대절과 후소절로 나뉘어 있지 않을뿐더러 행수에 있어서도 4보격이 압도적으로 중심을 이루고 있다. 또, 경기체가 특유의 구조적 기능을 하는 "景긔엇더하니잇고"라는 구절은 각 연의 맨 끝에 1회씩만 실현되어 있다. 이처럼 경기체가 고유의 정통적 양식에서 크게 이탈하여 장형화하고 4보격이 중심이 된 것은 인접 장르인 가사문학의 작품 활동이 활발한 시기에 있었으므로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의 서문에서 작자는 "고인이 말하기를 노래라 하는 것은 흔히 시름에서 나오는 것이라 하였듯이 이 노래 또한 나의 불평에서 나온 것이니, 한편 주자의 말처럼 노래함으로써 뜻을 펴고 성정을 기르겠다"라고 제작 동기를 피력하였다. 이로 보아 작자는
강호자연의 유연한 정서생활을 노래하면서 그것을 성정을 닦고 기르는 도학의 자세로 받아들였으며, 그러면서도 그 이면에는 외로움과 불평이 서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작자는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였으며 산림처사로 자처하면서 산수에서 노닐며 노래로써 시름을 달래었다. 작자의어머니가 천비였다는 점에서 벼슬길에 제약이 있었을 것은 확실하며, 웅대한 학덕을 지니고도 크게 펴보지 못한 데서오는 소외감과 불평이 응어리져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의 제 5연을 보면 그이 의기가 얼마나 드높으며, 그러면서도 불평에 가득찬 사람이 세상을 저 아래로 내려다 보는 고고한 태도가 여실히 나타나 있다. 그리고 작품의 전편에 표면적으로는 강호자연 속에 파묻혀 한가로이 지내는 즐거움을 노래하고 태평성대에 한 일민(逸民)으로 자연을 사랑하며 유유히 살아가는 삶을 드러내었지만, 이면적으로는 홀로 즐기는 독락 소외감과 마음껏 의기를 펴보지 못하는 불평이 짙게 깔려 있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화 자료
권호문(權好文)
1532(중종 27)∼1587(선조 20). 조선 중기의 문인·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장중(章仲), 호는 송암(松巖). 안주교수(安州敎授) 규(淚)의 아들이다. 1549년(명종 4) 아버지를 여의고 1561년 30세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1564년에 어머니상을 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청성산(靑城山) 아래에 무민재(無悶齋)를 짓고 그곳에 은거하였다.
이황(李滉)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같은 문하생인 유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 등과 교분이 두터웠고 이들로부터 학행을 높이 평가받았으며, 만년에 덕망이 높아져 찾아오는 문인들이 많았다.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내시교관(內侍敎官) 등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56세로 일생을 마쳤으며, 묘지는 안동부 서쪽 마감산(麻甘山)에 있다.
안동의 송암서원(松巖書院)에 제향되었다. 그는 평생을 자연에 묻혀 살았는데, 이황은 그를 소쇄산림지풍(瀟灑山林之風)이 있다고 하였고, 벗 유성룡도 강호고사(江湖高士)라 하였다. 저서로는 ≪송암집≫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경기체가의 변형형식인 〈독락팔곡 獨樂八曲〉과 연시조인 〈한거십팔곡 閑居十八曲〉이 ≪송암집≫에 전한다.
≪참고문헌≫ 松巖集, 朝鮮詩歌史綱(趙潤濟, 博文出版社, 1937).(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乍晴乍雨(사청사우) 개었다가 다시 또 비 내리네
金時習(김시습)
乍晴乍雨雨還晴(사청사우우환청)
잠깐 개었다 비 내리고 다시 개였다 비 내리니,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
하늘의 이치도 그러한데 하물며 세상인심이야.
譽我便是還毁我(예아편시환훼아)
나를 높이는 듯 하더니 곧 도리어 나를 헐뜯고,
逃名却自爲求名(도명각자위구명)
명예는 마다더니 도리어 공명을 구하는구나.
花開花謝春何管(화개화사춘하관)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봄이 어찌 하리오 만,
雲去雲來山不爭(운거운래산불쟁)
구름이 오고 가는 것을 산은 다투질 않는다.
寄語世人須記認(기어세인수기인)
세상 사람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알아두소!
取歡無處得平生(취환무처득평생)
기쁨을 얻는다하여도 평생 누릴 곳은 없다는 것을!
요점 정리
지은이 : 김시습
형식 : 칠언율시
운자 : 청, 정, 명, 쟁, 생
주제 : 세상 인심의 변덕스러움을 한탄함
내용 연구
乍晴乍雨(사청사우) : 개었다 비오다 함
황세정 : '하물며 세상인정이랴', 반어형
변시 : 문득 이에, '便'은 음이 '변'으로 문득
도명 : 공명의 길에서 도망치다
화수 : 꽃이 지다.
득평생 : 평생의 소원을 얻다.
이해와 감상
세상 인심의 변덕스러움을 날씨에 읊은 것으로 세속적인 명리를 떠나 무위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작자의 인생관의 피력이다. 1.2구는 변덕스러운 세태인정이요, 3,4구는 그를 부연한 한 예시이다.
산민(山民)
김창협(金昌協)
말에 내려 인가를 찾아가 보니, 下馬問人居(하마문인거)
아낙네 문간에 나와 맞이하네. 婦女出門看(부녀출문간)
띠집 처마 아래 손을 앉게 하고, 坐客茅屋下(좌객모옥하)
나를 위해 밥과 반찬 내어오네. 爲我具飯餐(위아구반찬)
남편은 어디에 나가 있는지, 丈夫亦何在(장부역하재)
아침에 소 끌고 산에 올랐는데, 扶犁朝上山(부리조상산)
산밭을 일구느라 고생을 하며, 山田苦難耕(산전고난경)
저물도록 돌아오지 못한다네. 日晩猶未還(일만유미환)
사방에 이웃이라고는 없고, 四顧絶無隣(사고절무린)
닭과 개만 산기슭을 오르내린다. 鷄犬依層巒(계견의층만)
숲 속에는 사나운 호랑이 많고, 中林多猛虎(중림다맹호)
나물을 뜯어도 얼마 되지 않네. 採藿不盈盤(채곽불영반)
슬프다, 외진 산림 무엇이 좋아서 哀此獨何好(애차독하호)
가파른 이 산중에 있는고? 崎嶇山谷間(기구산곡간)
저 쪽의 평지가 좋기야 하지만, 樂哉彼平土(낙재피평토)
원님이 무서워 갈 수가 없구나. 欲往畏縣官(욕왕외현관)
[시어, 시구 풀이]
닭과 개만 산기슭을 오르내린다. : 인적이 드문 산골에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숲 속에는 사나운 호랑이 많고, : 뒤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아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학정(虐政)의 무서움’을 말한 고사 성어와 상통한다.
원님이 무서워 갈 수가 없구나. : 학정(虐政)의 가렴주구(苛斂誅求)에 시달리는 백성의 처지를 말하고 있다.
[핵심 정리]
지은이 : 김창협(金昌協 1651-1708) 호 농암(農巖). 조선 후기
의 학자․문신. 저서로는 <농암집(聾巖集)> 등이 전한다.
갈래 : 한시. 오언고시(五言古詩)
성격 : 사실적. 비판적
어조 : 현실을 개탄하는 연민과 탄식의 목소리
제재 : 산간 사람들의 가난한 생활
주제 : 가혹한 정치에 시달리는 산골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
출전 : <농암집(聾巖集)>
▶ 작품 해설
산촌에 살아가는 백성들의 가난하고 열악한 삶의 원인이 가혹한 지방관의 수탈 때문임을 제시하고 있다. 백성들은 사방에 이웃이라고는 없는 외로움과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 가난하고 열악한 생활 환경에도 불구하고 산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원님이 무서워서’이다. 즉 이 작품에서 지은이는 백성의 어려운 처지에 관심을 보이면서 관리의 횡포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의 한시들이 현실의 문제점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이전 사대부들이 지은 관념적 한시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누항사(陋巷詞)
박인로(朴仁老)
어리고 우활(迂闊)산 이 우 더니 업다.
길흉 화복(吉凶禍福)을 하날긔 부쳐 두고,
누항(陋巷) 깁푼 곳의 초막(草幕)을 지어 두고,
▶ 핵심 정리
지은이 : 박인로(朴仁老 1561-1642) 조선 시대 무신. 호는 노계(蘆溪). 또는 무하옹(無何翁). 임진왜란 때에는 수군에 종군하였고, 39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수군만호에 이르렀으나, 후에 벼슬을 사직하고 독서와 시작(詩作)에 전념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안빈낙도하는 도학사상, 우국지정이 넘치는 충효 사상, 산수 명승을 즐기는 자연애 사상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송강과 함께 가사 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지며, 가사 7편과 ‘오륜가’ 등 시조 72수가
<노계집(蘆溪集)>에 전한다.
갈래 : 가사. 은일(隱逸)가사
연대 : 광해군 3년(1611)
율격 : 3(4).4조 4음보 연속체
문체 : 가사체. 운문체
성격 : 한정가(閑情歌)
구성 : 서사, 본사, 결사의 3단으로 짜여져 있다.
표현 : 대구법, 설의법, 과장법, 열거법
제재 : 빈이무원(貧而無怨)의 삶
주제 : 누항(陋巷)에 묻혀 빈이무원(貧而無怨)을 추구. 산림에 묻혀 사는 선비들의 고절한 삶과 현실의 부조화
출전 : <노계집(蘆溪集)>
▶ 시어 풀이
어리고 : 어리석고
우활(迂闊)산 : 세상 물정에 어두운
더니 : 더한 사람이
누항(陋巷) : 누추한 곳
석은 딥히 : 썩은 짚이
셥히 : 섶[薪]이. 땔감이
설 데인 : 덜 데운. 뜨겁게 데우지 못한
옴길넌가 : 옮길 것인가
안빈 일념(安貧一念) : 빈궁에 처해서도 마음이 편하여 근심하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
수의(隨宜) : 옳은 일을 좇음
날로 조차 : 날이 갈수록
저어(齟齬)다 : 어긋나다
뷔엿거든 : 비었는데
병(甁)의라 : 술병이라고
기한(飢寒) : 굶주림과 추위
절신(切身)다 : 몸을 끊는다고. 몸에 절실하다
이질가 : 잊겠는가
분의 망신(奮義忘身) : 의(義)에 분발하여 자기 몸을 잊음
말녀 너겨 : 말겠노라고 마음먹어
우탁 우랑(于槖于囊) : 전대와 망태
병과(兵戈) : 병정과 창, 곧 전쟁을 뜻함
감사심(敢死心) : 곧 죽고야 말려는 마음
이시섭혈(履尸涉血) : 주검을 밟고 피를 건너감
지연고 : 치렀던가
일노장수(一奴長鬚) : 긴 수염이 난 종
노주분(奴主分) : 종과 주인 간의 분수
이졋거든 : 잊어버렸거든
고여춘급(告余春及) : 나에게 봄이 왔다고 일러 줌
경당문노(耕當問奴) : 밭갈기를 종에게 물음
눌려 : 누구더러
궁경가색(躬耕稼穡) : 몸소 밭을 갈고 씨를 뿌리어 곡식을 거둠
분(分) : 분수
신야경수(莘野耕叟) : 잡초 많은 들에서 밭갈던 늙은이. 산야에서 밭을 갈다 입신하여 은 탕왕의 재상이 된 이윤(伊尹)을 말함
농상경옹(瓏上耕翁) : 밭두둑 위에서 밭갈던 늙은이. 진나라의 진승을 말함
한기태심(旱旣太甚) : 가뭄이 이미 크게 심하여)
갈고젼 : 갈고자 한들
쇼로 갈로손가 : 소[牛]로 갈겠는가
시절(時節) : 농사를 짓기에 좋은 시기
서주(西疇) : 서쪽에 있는 두둑
녈비 : 잠깐 오다가 갠 여우비. 지나가는 비
도상무원수(道上無源水) : 길 위에 흐르는 근원 없는 물
쇼 젹 듀마 : 소[牛] 한 번 주마
엄섬히 : 엉성히. 탐탁하지 않게
녀긴 : 여긴. 생각한
업슨 : 달이 없는
허위허위 다라가셔 : 허우적허우적 달려가서
구디 다든 : 굳게 닫은
어득히 : 우두커니. 멀찍이
아함이 : 인기척. ‘에헴’ 하는 소리
양구(良久)토록 : 꽤 오래도록
옵노라 : 나올시다
초경(初更) : 저녁 7-9시
거읜디 : 거의 지났는데
혜염 만하 : 헤아림(걱정)이 많아
공니나 갑시나 : 공짜로나 값을 치나
거넨 집 : 건넛집
수기치(雉) : 수꿩을
옥지읍(玉脂泣)게 : 구슬같이 기름이 끓어 오르게
간 이근 : 갓 익은
삼해주(三亥酒) : 정월 셋째 해일(亥日)에 빚은 좋은 술
미편(未便) : 편하지 못함
사셜 : 말씀
실위(實爲) : 사실로. 참으로
혈마 : 설마
먼덕 : 멍덕. 짚으로 만들어 머리에 쓰는 것
수기 : 숙여
설피설피 : 맥없이 어슬렁어슬렁 걷는 모습
즈칠 : 개가 짖을
와실(蝸室) : 달팽이 집. 작고 누추한 집
: 새벽
비겨 안자 : 의지하고 앉아
대승(戴勝) : 오디새
종조(終朝) 추창(惆悵) : 아침이 마칠 때까지 슬퍼함
소뷔 : ‘쟁기’의 사투리. 논밭을 가는 연장의 하나
볏 : 보습 위에 대는 쇳조각
보님 : 볏이 움직이지 않게 끼우는 일
엉긘 : 엉킨
허당반벽(虛堂半壁) : 빈 집 벽 가운데
슬듸업시 : 쓸데없이. 공연히
거의거다 : 거의 다 지났다
후리쳐 더뎌 : 팽개치어 던져
구복(口腹) : 먹고 사는 것
위루(危累) : 누가 됨. 거리낌이 됨
어지버 : 아, 슬프구나
이져다 : 잊었도다
첨피기욱(瞻彼淇燠)혼 : 저 기수(淇水)의 물가를 보건대. <시경>의 ‘위풍(威風)’ 중에서 ‘기욱장’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것임
유비군자(有斐君子) : 빛나는 군자. 교양 있는 선비
님 : 임자가
무심(無心) : 아무런 생각이 없음. 아무 걱정이 없음
다토리 업슬 : 다툴 이가 없는 것은
다문 인가 : 다만 이것뿐인가
무상(無常) : 보잘것없는. 못 생긴
지취(志趣) : 뜻과 취향(趣向)
이렁 : 이랑. 밭두렁
무겨 : 묵혀
더뎌 : 던져
이시면 : 있으면
말렷노라 : 말려고 하노라
슬히 너겨 : 싫게 여겨
혜다 : 내젓는다고
불리 너겨 : 부럽게 여겨
손을 치다 : 손짓을 한다고
명(命) 밧긔 삼겨시리 : 운명 밖에 생겼으리
단사표음(簞食瓢飮) : 간소한 음식. 곧 어려운 생활
온포(溫飽) :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음. 의식이 풍족함
외다리 : 그르다 할 사람이
삼긴 로 : 타고난 대로
▶ 시구 연구
이 우 더니 업다. : 나보다 더한 사람이 없다
뷘 쇡일 이로다. : 빈 배 속일 뿐이로다. 작자의 궁핍한 삶이 절실하게 표현된 구절이다.
隨宜(수의)로 살려 니 날로조차 齟齬(저어)다. : 옳은 일과 길을 쫓아서 살려 하나 갈수록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현실과 신념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자탄을 노래한 구절이다.
히 不足(부족)거든 봄이라 有餘(유여)하며, : 가을에 식량이 부족한데 더구나 봄에 여유가 있겠는가
兵戈(병과) 五載(오재)예 - 몃 百戰(백전)을 지연고. : 전쟁 오 년에 죽음을 감수하면서 시체를 밟고 피를 건너다니며 몇 백 번이나 싸웠던가. 임진왜란에 참전한 일을 노래한 것이다.
耕當問奴(경당문노)인 눌려 물고. : 밭갈기를 종에게 묻는 것이 당연하나, 종이 없으니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아므려 갈고젼 어 쇼로 갈로손고. : 아무리 갈고자 마음을 먹은들 어느 소로 갈 것인가? 농우(農牛)가 없음을 자탄하는 말이다.
즐기는 - 줄을 모다. : (걱정거리가 많이) 즐거운 농부들의 노랫소리도 흥없이 들리고, 세상 인심을 모르는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平生(평생) - 업노왜라. : 평생 한 가지 뜻은 따뜻이 입고, 배부르게 먹는 것에 있지 않다. 선비로서의 삶을 성실히 살아나가려는 자세를 노래한 것이다.
▶ 전문 풀이
(서사) 어리석고 세상 물정에 어둡기는로는 이 나보다 다한 사람이 없다.
모든 운수를 하늘에다 맡겨 두고
누추한 깊은 곳에 초가를 지어 놓고
고르지 못한 날씨에 썩은 짚이 땔감이 되어
세 홉 밥에 다섯 홉 죽(초라한 음식)을 만드는 데 연기가 많기도 하구나.
덜 데운 숭늉을 고픈 배를 속일 뿐이로다.
살림살이가 이렇게 구차하다고 한들 대장부의 뜻을 바꿀 것인가.
안빈낙도하겠다는 한 가지 생각을 적을망정 품고 있어서
옳은 일을 좇아 살려 하니 날이 갈수록 뜻대로 되지 않는다.
가을이 부족한데 봄이라고 여유가 있겠으며
주머니가 비었는데 술병에 술이 담겨 있으랴.
가난한 인생이 천지간에 나뿐이로다.(안빈의 신념과 생활의 곤궁함)
(본사) 배고픔과 추위가 몸을 괴롭힌다 한들 일편단심을 잊을 것인가.
의에 분발하여 내 몸을 잊어서 죽어서야 말겠노라고 마음 먹어
전대와 망태에 한 줌 한 줌 모아 넣고
전란 5년 동안에 죽고 말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주검을 밟고 피를 건너 몇백 전쟁을 치루었던가.(임진왜란 참전)
한 몸이 겨를이 있어서 집안을 돌보겠는가
늙은 종은 하인과 주인의 분수를 잊어버렸는데
나에게 봄이 왔다고 일러 줄 것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밭 가는 일은 마땅히 종에게 물어야 한다지만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몸소 농사를 짓는 것이 내 분수에 맞는 줄을 알겠도다.(전란 후 돌아와 몸소 농사)
들에서 밭 갈던 은나라의 이윤과 진나라의 진승을 천하다고 할 사람이 없지마는
아무리 갈려고 한들 어느 소로 갈겠는가.
가뭄이 몹시 심하여 농사철이 다 늦은 때에
서쪽 두둑 높은 논에 잠깐 갠 지나가는 비에
길 위에 흐르는 물을 반쯤 대어 놓고는
소 한 번 빌려 주마 하고 엉성하게 하는 말을 듣고
친절하다고 여긴 집에
달이 없는 저녁에 허우적허우적 달려가서
굳게 닫은 문 밖에 우두커니 혼자 서서
‘에헴.’ 하는 인기척을 꽤 오래도록 한 후에
‘어, 거기 누구신가?’ 묻기에 ‘염치 없는 저올시다.’(농사 위해 농우를 빌리러 감)
‘초경도 거의 지났는데 무슨 일로 와 계신가?’
‘해마다 이러기가 구차한 줄 알지마는
소 없는 가난한 집에서 걱정이 많아 왔소이다.’
‘공것이거나 값을 치거나 간에 주었으면 좋겠지만
다만 어젯밤에 건넛집 사는 사람이
목이 붉은 수꿩을 구슬 같은 기름에 구어 내고
갓 익은 좋은 술을 취하도록 권하였는데
이러한 은혜를 어떻게 갚지 않겠는가?
내일 소를 빌려 주마 하고 굳게 약속을 하였기에
약속을 어기기가 편하지 못하니 말씀하기가 어렵구료.’
정말로 그렇다면 설마 어찌하겠는가
헌 모자를 숙여 쓰고 축 없는 짚신을 신고
맥없이 물러나오니
풍채 적은 내 모습에 개가 짖을 뿐이로구나.(농우를 빌리러 갔다가 수모만 당함)
작고 누추한 집에 들어간들 잠이 와서 누워 있겠는가.
북쪽 창문에 기대 앉아 새벽을 기다리니
무정한 오디새는 나의 한을 돕는구나.
아침이 끝날 때까지 슬퍼하며 먼 들을 바라보니
즐기는 농부들의 노래도 흥없게 들리는구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한숨은 그칠 줄 모른다.
아까운 저 쟁기는 볏보임도 좋구나.
가시가 엉킨 묵은 밭도 쉽게 갈 수 있으련만
빈 집 벽 한가운데 쓸데없이 걸려 있구나.
봄갈이도 거의 다 지났다. 팽개쳐 던져 버리자.(돌아와 한탄하며 봄갈이농사 포기)
(결사) 자연을 벗삼아 살겠다는 한 꿈을 꾼 지도 오래더니
먹고 사는 것이 누가 되어 아, 슬프게도 다 잊었도다.
저 냇가를 바라보니 푸른 대나무가 많기도 하구나.
교양 있는 선비들아, 낚싯대 하나 빌리려무나.
갈대꽃 깊은 곳에서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의 벗이 되어
임자 없는 자연 속에서 절로절로(근심 없이) 늙으리라.
무심한 갈매기야, 나더러 오라고 하며 가라고 하랴?
다툴 이가 없는 것은 다만 이것뿐인가 생각하노라.(강호에의 꿈을 되새김)
못 생긴 이 몸이 무슨 소원이 있으리오마는
두세 이랑 되는 밭과 논을 다 묵혀 던져 두고
있으면 죽이요 없으면 굶을 망정
남의 집 남의 것은 전혀 부러워하지 않으려고 하노라.
나의 빈천을 싫게 여겨 손을 헤친다고 물러가며
남의 부귀를 부럽게 여겨 손을 친다고 나아오랴?
인간 세상의 어느 일이 운명 밖에 생겼겠느냐?
가난하면서도 원망하지 않음이 어렵다고 하건마는
내 생활이 이러하되 서러운 뜻은 없노라.
한 사발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의 어려운 생활을 이것도 만족하게 여기노라.
평생의 한 뜻이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는 데는 없노라.
태평스런 세상에 충성과 효도를 일을 삼아
형제간에 화목하고 벗끼리 신의 있게 사귀는 일을 그르다 할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 밖의 일이야 태어난 대로 살아가려 하노라.(빈한한 처지지만 안빈낙도하고자 함)
▶ 작품 해설
이 작품은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이 찾아와 누항(陋巷) 생활의 어려움을 묻자, 이에 답한 작품이라 전한다.
한음이 노계의 고생스런 생활상을 물었을 때, 가난하지만 원망하지 않으며 안빈낙도하는 심회와 생활상을 읊은 작품이다. 내용은 임진왜란을 겪고 난 뒤 곤궁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가난을 원망하지 않고 도(道)를 즐기는 장부의 뜻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웃집에 농우를 얻으려 갔다가 뜻대로 되지 못하고 돌아와 세상 일에 대한 체념적 심회를 읊기도 하고, 속세의 물욕을 떠나 청풍명월과 벗하여 대자연과 더불어 한가롭게 살아 보자는 초월적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런 작품의 내용은 사대부의 소외되고 어려운 처지를 직시하고 현실 생활의 빈궁함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조선 전기의 가사가 보여 주었던 자연 완상의 세계와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누항(陋巷)’이란 ‘논어’에 나오는 말로, 가난한 삶 가운데도 학문을 닦으며 도를 추구하는 즐거움을 즐기는 공간을 말할 때 자주 사용된다. 이 시는 제목에서부터 가난하나 원망하지 않는 ‘빈이무
원(貧而無怨)’의 경지나 자연을 벗삼아 ‘안빈낙도(安貧落島)’함을 알게 해 준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작품은 당대의 산림에 묻힌 선비들의 고절한 삶과 현실의 부조화를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심화 학습 자료
‘노계가사’에 대한 평가
노계 박인로의 가사는 열정과 자구(字句)의 세련미에 있어서 송강 정철에게 일보를 양보한다 하겠거니와, 특히 그 시가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한자나 고사성어, 전고(典故)가 너무 많이 사용된 단점이 있으나, 수사나 조어(造語)의 묘는 ‘송강가사’에서 보는 것과 유사한 점이 다분히 보이며, 더욱이 초기의 작품은 풍부한 어휘에 그 필자가 웅렬(雄烈)하여, 무인다운 기상이 가득차 있으며, 신선미와 기백이 잘 드러나 있다. 시가 문학사상 정철,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 시대 3대 시가인으로 꼽힌다.
선상탄(船上歎)
박인로(朴仁老)
늘고 병(病)든 몸을 주사(舟師)로 보실, 을사(乙巳) 삼하(三夏)애 진동영(鎭東營)려오니 관방중지(關防重地)예 병(病)이 깁다 안자실랴? 일장검(一長劍) 비기 고 병선(兵船)에 구테 올나, 여기진목(勵氣瞋目)야 대마도(對馬島)을 구어보니 람 조친 황운(黃雲)은 원근(遠近)에 사혀 잇고, 아득 창파(滄波) 긴 하과 빗칠쇠.
선상(船上)에 배회(徘徊)며 고금(古今)을 사억(思憶)고, 어리미친 회포(懷抱)애 헌원씨(軒轅氏)를 애노라. 대양(大洋)이 망망(茫茫)야 천지(天地)예 둘려시니, 진실로 아니면 풍파 만리(風波萬里) 밧긔, 어 사이(四夷) 엿볼넌고 무 일 려 야 못기를 비롯고? 만세천추(萬世千秋)에 업 큰 폐(弊) 되야, 보천지하(普天地下)애 만민원(萬民怨) 길우다.
어즈버 라니 진시황(秦始皇)의 타시로다. 비록 잇다 나 왜(倭)를 아니 삼기던들, 일본(日本) 대마도(對馬島)로 뷘 졀로 나올넌가? 뉘 말을 미더 듯고, 동남동녀(童男童女)를 그도록 드려다가, 해중(海中) 모든 셤에 난당적(難當賊)을 기쳐 두고, 통분(痛憤) 수욕(羞辱)이 화하(華夏)애 다 밋나다. 장생(長生) 불사약(不死藥)을 얼나 어더 여, 만리 장성(萬里長城) 놉히 사고 몇 만년(萬年)을 사도고? 로 죽어 가니 유익(有益) 줄 모로다. 어즈버 각니 서불(徐巿) 등(等)이 이심(已甚)다. 인신(人臣)이 되야셔 망명(亡命)도 것가? 신선(神仙)을 못 보거든 수이나 도라오면, 주사(舟師)이 시럼은 전혀 업게 삼길럿다.
두어라, 기왕불구(旣往不咎)라 일너 무엇로소니? 속졀업 시비(是非)를 후리쳐 더뎌 두쟈. 잠사각오(潛思覺悟)니 내 도 고집(固執)고야. 황제 작주거(黃帝 作舟車) 왼 줄도 모로다. 장한(張翰) 강동(江東)애 추풍(秋風)을 만나신들 편주(扁舟) 곳 아니 타면 천청해활(天淸海濶)다. 어 흥(興)이 졀로 나며, 삼공(三公)도 아니 밧골 제일강산(第一江山)애, 부평(浮萍) 어부생애(漁父生涯)을 일엽주(一葉舟) 아니면, 어 부쳐 힐고?
일언 닐 보건, 삼긴 제도(制度)야 지묘(至妙) 덧다마, 엇디 우리 물은 판옥선(板屋船)을 주야(晝夜)의 빗기 고, 임풍영월(臨風咏月)호 흥(興)이 전혀 업게오? 석일(昔日) 선중(舟中)에 배반(杯盤)이 낭자(狼藉)터니, 금일(今日) 주중(舟中)에 대검장창(大劍長錩)이로다. 가지 언마 가진 다라니, 기간(其間) 우락(憂樂)이 서로 지 못도다.
시시(時時)로 멀이 드러 북진(北辰)을 라보며, 상시(傷時) 노루(老淚) 천일방(天一方)의 디이다. 오동방(吾東方) 문물(文物)이 한당송(漢唐宋)애 디랴마, 국운(國運)이 불행(不幸)야 해추(海醜) 흉모(兇謀)애 만고수(萬古羞)를 안고 이셔, 백분(百分)에 가지도 못 시셔 려거든, 이 몸이 무상(無狀) 신자(臣子)ㅣ되야 이셔다가, 궁달(窮達)이 길이 달라 몬 뫼고 늘거신, 우국 단심(憂國丹心)이야 어 각(刻)애 이즐넌고? 강개(慷慨) 계운 장기(壯氣) 노당익장(老當益壯) 다마, 됴고마 이 몸이 병중(病中)애 드러시니, 설분 신원(雪憤伸寃)이 어려올 건마, 그러나 사제갈(死諸葛)도 생중달(生仲達)을 멀리 좃고, 발 업 손빈(孫矉)도 방연(龐涓)을 잡아거든, 물며 이 몸은 수족(手足)이 자 잇고 명맥(命脈)이 이어시니, 서절 구투(鼠竊拘偸)을 저그나 저흘소냐? 비선(飛船)에 려드러 선봉(先鋒)을 거치면, 구시월(九十月) 상풍(霜風)에 낙엽(落葉)가치 헤치리라. 칠종칠금(七縱七禽)을 우린 못 것가?
준피 도이(蠢彼島夷)들아 수이 걸항(乞降) 야라. 항자 불살(降者不殺)이니 너를구 섬멸(殲滅)랴? 오왕(王) 성덕(聖德)이
▶ 핵심 정리
지은이 : 박인로(朴仁老 1561-1642) 조선 시대 무신. 호는 노계(蘆溪). 또는 무하옹(無何翁). 임진왜란 때에는 수군에 종군하였고, 39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수군만호에 이르렀으나, 후에 벼슬을 사직하고 독서와 시작(詩作)에 전념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안빈낙도하는 도학사상, 우국지정이 넘치는 충효 사상, 산수 명승을 즐기는 자연애 사상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송강과 함께 가사 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어지며, 가사 7편과 ‘오륜가’ 등 시조 72수가 <노계집(蘆溪集)>에 전한다.
갈래 : 전쟁 가사
연대 : 선조 38년(1605년). 노계 45세 때
율격 : 3(4).4조 4음보 연속체
문체 : 가사체, 운문체
표현 : 인용법, 대구법, 은유법
내용 : 작자가 임진왜란 후, 통주사(統舟師)로 부산에 와서, 왜적인 물러갔으나 태평 시대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우국충정을 노래함
주제 : 전쟁의 비애를 딛고 태평성대를 누리고 싶은 마음. 우국단심(憂國丹心)
의의 : ‘태평사(太平詞)’와 함께 전쟁가사의 대표작. 감상에 흐르지 않고 민족의 정기와 무인의 기개를 읊었다.
기타 : 표현상 예스러운 한자 성어와 고사가 지나치게 많다. 왜적에 대한 적개심은 그럴 만하나 모화사상(慕華思想)이 나타나는 점이 흠이다.
출전 : <노계집(蘆溪集)>
▶ 시어 풀이
주사(舟師) : 수군(水軍) 통주사(統舟師)
을사(乙巳) : 선조 38년(1605년)
삼하(三夏) : 여름에
진동영(鎭東營) : 동쪽을 지키는 군영
관방중지(關方重地) : 변방의 중요한 땅
여기진목(勵氣瞋目)야 : 기운을 내고 눈을 부릅떠서
조친 : 쫓긴
황운(黃雲) : ‘전운(戰雲)’의 비유
어리미친 : 어리석고 미친
헌원씨(軒轅氏) :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황제(皇帝)의 이름. 처음으로 곡물 재배를 가르치고 문자, 음악, 도량형 등을 정했다고 함
사이(四夷) : 사방의 오랑캐
못기 : 만들기
비롯고 : 시작했는가
업 : 끝없는
보천지하(普天之下) : 온 천지에
만민원(萬民怨) : 배를 만들었던 헌원씨에 대한 원한
라니 : 깨달으니
삼기던들 : 생기게 하였던들. 만들었던들
졀로 나올넌가 : 저절로 나올 것인가
동남동녀(童男童女) : 총각과 처녀
그도록 : 그토록 들여다가
난당적(難當賊) : 감당하기 어려운 도적
기쳐 : 끼치어. 남기어
수욕(羞辱) : 수치와 모욕
화하(華下) : 중국
밋나다 : 미친다[及]
놉히 사고 : 높이 쌓고
사도고 : 살았던가
로 : 남처럼
서불(徐市) : 진시황 때의 술객(術客)
이심(已甚) : 매우 심함
인신(人臣) : 신하
수이나 : 쉽게나. 빨리나
시럼 : 근심
삼길렷다 : 생겼겠다
기왕불구(旣往不咎) : 이미 지난 일을 탓하지 않음
일너 : 말해
후리쳐 더뎌 : 팽개쳐 던져
잠사각오(潛思覺悟) : 깊이 생각하고 깨달음
왼 : 그릇된
장한(張翰) : 중국 진(晉)나라 때 사람. 왕이 대사마를 삼았는데 가을 바람이 불자 고향이 그리워 벼슬을 그만 두고 낙향했다고 함
편주(扁舟) : 조각배
천청해활(天淸海闊) : 하늘이 맑고 바다가 넓음
삼공(三公) :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밧골 : 바꿀
일엽주(一葉舟) : 자그마한 배
부쳐 힐고 : 맡겨 다니겠는가
삼긴 : 생긴
엇디 : 어찌하여
물은 : 무리는
: 나는 듯한. 빠른
판옥선(板屋船) : 널빤지로 만든 배
임풍농월(臨風弄月) : 바람과 달을 보며 시를 짓고 놂
빗기 : 비스듬히
석일(昔日) : 옛날
배반(杯盤) : 술잔과 쟁반. 술상
낭자(狼藉) : 마구 흩어져 있어 어지러움
금일(今日) : 오늘날
가지 언마 : 똑같은 배건마는
다라니 : 바[所]가 다르니
멀이 : 머리
북신(北辰) : 북극성. 임금이 계신 곳
상시노루(傷時老淚) : 시국을 근심하는 늙은이의 눈물
오동방(吾東方) : 우리 나라
해추흉모(海醜凶謀) : 왜적의 흉악한 꾀
만고수(萬古羞) : 천추에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
시셔 : 씻어
무상(無常) : 변변치 못함
궁달(窮達) : 곤궁과 영달. 즉, 신하와 임금의 신분
뫼옵고 : 모시고
각(刻) : 시각
계운 : 못 이기는
노당익장(老當益壯) : 늙으면서 더욱 씩씩함
됴고마 : 조그마한. 보잘것없는
설분신원(雪憤伸寃) : 분함을 씻고 원한을 풀어 버림
사제갈(死諸葛) : 죽은 제갈공명
생중달(生仲達) : 한 사마중달(사마의)
손빈(孫臏) : 중국 전국 시대의 병법가
방연(龐涓) : 손빈의 친구. 손빈의 재주를 시기하여 그의 다리를 잘랐다가 그에게 죽음을 당함
자 잇고 : 갖추어 있고
서절구투(鼠竊狗偸) : 쥐나 개와 같은 도적. 곧, 왜구
저그나 저흘소냐 : 조금이나마 두려워할쏘냐
거치면 : 휘몰아치면
칠종칠금(七縱七擒) : 제갈공명이 남만 왕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 준 일
준피도이(蠢彼島夷) : 꾸물거리는 섬나라 오랑캐. 곧, 왜적
수이 : 빨리
항자불살(降者不殺) : 항복하는 자는 죽이지 않음
오왕(吾王) : 우리 임금
욕병생(欲竝生) : 함께 살고자 함
요순군민(堯舜君民) : 태평성대의 백성
일월광화(日月光華) : 해와 달의 빛. 곧, 임금의 성덕
조부조(朝復朝) : 아침이요 또 아침임. 태평 세월이 지속되어 아주 밝고 빛남을 비유
창만(唱晩) : 저녁 무렵을 노래함. 늦도록 노래함
어주(魚舟) : 고기잡이배
해불양파(海不揚波) : 바다에 파도가 일어나지 않음. 곧 태평성대
▶ 시구 연구
늘고 병(病)든 몸을 - 보실 : 늙고 병든 몸을 배를 돌보는 수군(水軍)으로 보내시므로. 임금에 대한 충성심과 자신의 현재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낸 표현이다.
관방중지(關方重地)에 - 안자실랴. : 변방을 지키는 중요한 요충지이니 병이 깊다고 하여 앉아 있을 수 있느냐? 변방을 지키는 군인의 자세를 설의적인 표현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람 조친 황운(黃雲)은 원근(遠近)에 사혀 잇고, : 바람을 따라 이동하는 누런 구름은 멀리 가까이 쌓여 있고. ‘黃雲’은 ‘전운(戰雲)’의 비유로 아직도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음을 개탄하고 있다.
어리미친 회포(懷抱)애 헌원씨(軒轅氏)를 애노라. : 어리석고 미친 회포에 헌원씨를 애닯게 여기노라. 헌원씨는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었다. 여기서는 헌원씨가 배를 만들어 이러한 전란을 초래하였음을 애닯게 여긴 후 이러한 생각이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자책하고 있다.
대양(大洋)이 - 엿볼넌고. : 넓고 큰 바다가 우리 나라를 둘러싸고 있으니, 만일 배가 없었다면 어떤 오랑캐가 감히 우리 나라를 넘볼 수 있겠느냐?
보천지하(普天之下)애 만민원(萬民怨) 길우다. : 온 세상에 만 백성의 원한을 조장하는구나
석일(昔日)- 낭자(狼藉)터니 : 옛날 배 위에는 술잔과 술상이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더니. 소동파(蘇東坡)의 ‘전적벽부(前赤壁賦)’의 내용을 연상한 것이다.
상시(傷時) - 디이다. : 시대를 슬퍼하는 늙은이의 눈물을 하늘 한쪽에 떨어뜨린다
사제갈(死諸葛)도 - 멀리 좃고, :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쫓은 고사를 인용하고 있다.
발 업 - 잡아거든 : 방연이 친구인 손빈의 재주를 시기하여 손빈(손자)의 발을 잘랐으나, 뒤에 방연이 손빈에게 잡혀 죽었다는 고사를 인용하고 있다.
믈며 이 몸은 - 이어시니, : 손빈과 비교해 수족이 갖추어 있고, 제갈공명과 비교해 목숨이 살아 있으니
▶ 전문 풀이
(서사) 늙고 병든 몸을 통주사(수군)로 보내시므로 을사년(선조38년) 여름에 부산진에 내려오니, 변방의 중요한 요새지에서 병이 깊다고 앉아 있겠는가? 긴 칼을 비스듬히 차고 병선에 굳이 올라가서 기운을 떨치고 눈을 부릅떠 대마도를 굽어보니, 바람을 따르는 노란 구름은 멀고 가깝게 쌓여 있고 아득한 푸른 물결은 긴 하늘과 같은 빛이로구나.(통주사가 되어 진동영에 내려와 병선을 타고 적선을 바라봄)
(본사 1)배 위에서 서성이며 옛날과 오늘날을 생각하고, 어리석고 미친 마음에 중국에서 처음 배를 만들었다가는 헌원씨(중국 고대 전설적인 황제로 곡물 재배를 가르치고 문자, 음악, 도량형 등을 정했다고 함)를 원망하노라. 큰 바다가 아득하고 넓어서 천지에 둘려 있으니, 참으로 배가 아니면 거센 물결이 굽이치는 만 리 밖에서 어느 오랑캐들이 엿볼 것인가? 헌원씨는 무슨 일을 하려고 배 만들기를 시작하였는가? 왜 그는 천만 년 후세에 끝없는 폐단이 되도록 넓은 하늘 아래에 있는 많은 백성들의 원망을 길렀는가? (왜적의 침범이 배 때문이라 하여 처음 배를 만든 헌원씨를 원망함)
(본사 2) 아, 깨달으니 진사황의 탓이로다. 배가 비록 있다고 하더라도 왜족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일본 대마도로 빈 배가 저절로 나올 것인가? 누구의 말을 곧이 듣고 동남동녀를 그토록 들여서 바다의 모든 섬에 감당하기 어려운 도적을 만들어 두어, 통분한 수치와 모욕이 중국에까지 다 미친다. 오래 사는 불사약을 얼마나 얻어 내어 만리장성을 높이 쌓고 몇 만 년을 살았던가? 남처럼 죽어 갔으니 유익한 줄 모르겠도다. 아, 생각하니 서불(진시황 때의 술객術客)의 무리가 너무 심하다. 신하의 몸으로 망명 도주도 하는 것인가? 신선을 만나지 못했거든 쉽게나 돌아왔으면 통주사(나)의 이 근심은 전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진시황과 서불로 말미암아 왜적이 생긴 것을 개탄함)
(본사 3) 그만 두어라. 이미 지나간 일은 탓하지 않는 것이라는데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무 소용이 없는 시비를 팽겨쳐 던져 버리자. 깊이 생각하여 깨달으니 내 뜻도 고집스럽구나. 황제가 처음으로 배와 수레를 만든 것은 그릇된 줄도 모르겠도다. 장한(중국
진나라 사람으로 왕이 대사마를 삼았는데 가을 바람이 불자 고향이 그리워 벼슬을 그만 두고 낙향했다고 함)이 강동으로 돌아가 가을 바람을 만났다고 한들 편주(작은 배)를 타지 않으면 하늘이 맑고 바다가 넓다고 해도 어느 흥이 저절로 나겠으며 삼공(영의정 좌의정 우의정)과도 바꾸지 않을 만큼 경치가 좋은 곳에서 부평초 같은 어부의 생활을 자그마한 배가 아니면 어디에 부쳐 다니겠는가? (배가 있음으로 해서 누릴 수 있는 풍류의 흥취)
(본사 4) 이런 일 보면 배를 만든 제도야 매우 묘한 듯하다마는 어찌하여 우리 무리는 날 듯이 빠른 판옥선을 밤낮으로 비스듬히 타고 풍월을 읊되 흥이 전혀 없는 것인가? 옛날의 배 안에는 술상이 어지럽더니 오늘날의 배 안에는 큰 칼과 긴 창뿐이로구나. 똑같은 배이건마는 가진 바가 다르니 그 사이에 근심과 즐거움이 서로 같지 못하도다.(옛날과 지금의 배가 같지만 근심과 풍류가 다름)
(본사 5) 때때로 머리를 들어 임금님이 계신 곳을 바라보며 시국을 근심하는 늙은이의 눈물을 하늘 한 모퉁이에 떨어뜨린다. 우리나라의 문물이 중국의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에 뒤떨어지랴마는, 나라의 운수가 불행하여 왜적의 흉악한 꾀에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수치를 안고서 그 백분의 일도 아직 씻어 버리지 못했거든, 이
몸이 변변치 못하지만 신하가 되어 있다가 신하와 임금의 신분이 달라 못 모시고 늙었다 한들 나라를 걱정하는 충성스런 마음이야 어느 시각인들 잊었을 것인가? (해추 흉모에 당한 수치심과 작자의 우국 단심)
(본사 6) 강개를 이기지 못하는 씩씩한 기운은 늙을수록 더욱 장하다마는, 보잘것없는 이 몸이 병중에 들었으니 분함을 씻고 원한을 풀어 버리기가 어려울 듯하건마는, 그러나 죽은 제갈공명이 살아 있는 사마의을 멀리 쫓았고, 발이 없는 손빈이 방연(손빈의 친구로 손빈의 재주를 시기하여 그의 다리를 잘랐다가 그에게 죽음을 당함)을 잡았는데 하물며 이 몸은 손과 발이 온전하고 목숨이 살아 있으니 쥐나 개와 같은 왜적을 조금이나마 두려워하겠는가? 나는 듯이 빠른 배에 달려들어 선봉에 휘몰아치면 구시월 서릿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왜적을 헤치리라. 칠종칠금을 우리라고 못 할 것인가? (살분신원을 다짐하는 무인의 기개)
(결사) 꾸물거리는 오랑캐들아, 빨리 할복하려무나. 항복한 자는 죽이지 않는 법이니 너희들을 구태여 모두 죽이겠느냐? 우리 임금님의 성스러운 덕이 너희와 더불어 살아 가고자 하시느니라. 태평스러운 천하에 요순시대와 같은 화평한 백성이 되어 해와 달 같은 임금님의 성덕이 매일 아침마다 밝게 비치니, 전쟁하는 배를 타던 우리들도 고기잡이배에서 저녁 무렵을 노래하고, 가을달 봄바람에 베개를 높이 베고 누워서 성군 치하의 태평성대를 다시 보려 하노라. (태평성대가 도래하기를 염원함)
▶ 작품 해설
‘선상탄’은 ‘태평사’와 함께 가사 문학사상 몇 안 되는 전쟁 가사 중의 하나이다. 이 작품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이지만, 전쟁의 아품과 왜적에 대한 적개심이 가라앉지 않은 때 지어졌다. 임진왜란 때 직접 전란에 참여한 작자가 왜적의 침입으로 인한 민족의 수난을 뼈져리게 겪으면서, 싸움배를 관장하는 임무를 맡아 부산에 부임하여 지은 것으로, 왜적에 대한 근심을 덜고 고향으로 돌아가 놀이배를 타고 즐겼으면 하는 뜻과 우국 충정의 의지를 함께 표현한 것이다. 조선 전기의 가사가 현실을 관념적으로 다룬 데 반해, 이 작품은 전쟁의 시련에 처한 민족 전체의 삶을 구체적으로 다루어, 가사가 개인적 서정이나 사상의 표출만이 아니라 집단적 의지의 표현에도 적합한 양식임을 실증하고 있다.
임진란이 발발한 해에서 1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경계심은 가시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풍신수길(豊臣秀吉)이 죽고 덕천가강(德川家康)이 뒤를 이어 화친(和親)을 맺고자 교섭이 잦았던 때이다. 노계 박인로가 이 때에 진동영을 부방(赴防)했으니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이 작품에 투영해 보면 어주(魚舟)에 창만(唱晩)하고 성대(聖代)를 누리고 싶다는 작자의 소회(所懷)에 십분 공감이 간다.
표현상 한문투의 수식이 많고 직서적인 표현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결점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전쟁 문학이 일반적으로 범하기 쉬운 속된 감정에 흐르지 않고 적을 위압할 만한 무사의 투지를 담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또한, 작가가 타고 있는 배를 중심 소재로 내세워 시상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도 눈여겨 볼 만하다.
▶ 심화 학습 자료
‘선상탄’의 구성
‘선상탄’은 내용을 기준으로 삼을 때, 크게 다섯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에서는 노계가 왕명으로 통주사가 되어 배 위에 올라 대마도를 굽어보는 모양이 펼쳐지고 있다. 특히 ‘勵氣瞋目야 본
다’는 데서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선상탄의 기본 정서임을 알 수 있다.
둘째 단락에서는 배를 맨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진 헌원씨와 왜국에 사람이 살게끔 함으로써 호전적인 족속을 만들어 놓은 진시황 및 그 사신이었던 서불(徐市)을 탓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침략의 주체, 도구의 근원에 대한 원망을 통하여 반일의 정서를 뚜렷이 한 단락이다.
셋째 단락에서는 배의 유용성에 대하여 언급하고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였던 과거와 그렇지 못한 현재의 상황을 대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넷째 단락에서는 비록 젊은 몸은 아니지만 우국충정으로 왜적의 무리가 무찌를 수 있다는 노계 자신의 기개와 기백을 토로하고 있다.
다섯째 단락에서는 왜인들이 항복하여 태평스러운 시대가 오면 고깃배를 타고 즐기는 생활을 영위하겠다는 기원을 노래하고 있다.
‘선상탄’의 창작 배경
‘선상탄’이 창작된 시기인 1605년은 우리 민족이 참혹한 피해를 입은 전란인 임진왜란이 종료된 지 7년밖에 지나지 않은 해로서, 악화된 대일 감정이 지속되고 있던 때이다.
따라서 반일과 극일은 당시 우리 민족의 일반적 정서였고, 또한 정세아(鄭世雅) 휘하의 의병으로 또 성윤문 막하의 수군으로 일본에 대항, 항전에 직접 참여했던 노계의 기본적인 정서이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시적 재능을 지닌 노계가 전란의 기억이 생생한 시절에 다시 통주사로 나라 수비의 임무를 맡게 됨에 따라 반일과 극일의 정서, 나아가 우리의 자신감과 우월감을 바탕으로 하는 평화 애호의 정서를 뚜렷이 의경화한 의론지향의 시가인 ‘선상탄’을 지은 것은 매우 시의(時宜) 적절한 시가 창작이었다고 평가된다. 이런 작품의 창작 배경은 조선 후기의 군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참상과 굴욕적 침략을 현실적으로 견딘 후에, 이를 이상적으로 초극하려는 의지와 민족의 염원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이런 문학 작품들이 많이 창작되었다.
< 배경 설화 >
너를 어찌 잊으랴 하시던 임금도 ~~ 아아 세상은 싫소
이 노래는 유사 권 5 신충괘관조에 실려 있다.
효성왕이 현사 신충과 더불어 궁정 잣나무 밑에서 바둑을 두더니, 일찌기 말하기를 후일에 만일 경을 잊으면 저 잣나무 같으리라하매 신충이 일어나 절하였다. 두어달 지난 뒤에 왕이 즉위하여 공신에게 상을 줄 새 신충을 잊어버리고 쓰지 아니하였더니, 신충이 원망하여 노래를 지어 잣나무에 붙이매, 나무가 홀연히 누렇게 말라 버렸다. 왕이 괴이히 여겨 살피게 하였더니, 노래를 바치매, 크게 놀라 말하기를 국사에 몰골하여 각궁을 잊을 뻔 하였다 하고, 불러들여 벼슬을 주니, 잣나무가 도로 살아났다. 이로 부터 양조에 걸쳐 두임금에게 총애를 얻어 등용되다가 경덕왕 22년 상대등으로 패관하였다.
< 현 대 역 >
質좋은 잣이
가을에 말라 떨어지지 아니하매,
너를 重히 여겨 가겠다 하신 것과는 달리
낯이 변해 버리신 겨울에여.
달이 그림자 내린 연못 갓
지나가는 물결에 모래로다.
모습이야 바라보지만
세상 모든 것 여희여 버린 處地여.
만언사답(萬言詞答)
안조원
이보소 손님네야 설운 말 그만하고 광부의 말이라도 성인이 가리시니 시골말이 무식하나 내 말삼 들어보소 천지인간 큰 기틀에 존비귀천 짜여 내어 하로 한 때 근심없어 다 졸길이 뉘 있을고 하늘에도 영휴있어 일월식을 하오시고 바다에도 진퇴있어 조석수가 있사오니 춘추하동 사시 때도 한서온량 돌아오니 부귀엔들 물칠하여 몸에 붙여 두었으며 공명인들 끈을 달아 옆에 채워 있을
손가 손님 팔자 좋다한들 고생인들 매양할가 요금정옥 경대부와 금지옥엽 귀공자도 절도고생 다지내고 손님뿐이 아니어늘 그대도록 설워하며 저대도록 애를 썩여 귀양살이 애쓰나니 쾌히 죽어 모르자니 망해투사 하랴는가 불식아사 하랴는가 자문이사 하랴는가 음독이사 하랴는가 설운 사람 다 죽으면 조선사람 반이 되고 귀양가서 다 죽으면 도중적객 뉘 있을고 녹음방초 욱어진 데 두견 슬피 우는 곳에 만고영웅 묻친 뫼이 몇몇인 줄 몰으오니 설워 죽은 시체 없고 애써 죽은 분묘없네 손님 얼굴 보아하니 피골상련 하였세라 조희 붙인 배롱인가 두 눈 박은 수숫댄가 십오리에 장승인가 열나흗날 제융인가 상성한 광인인가 실혼한 병인인가 검은 눈 희게 뜨고 북녘만 바라볼 제 밭 가온대 새 날리는 정의아비 모양이니 부러 죽지 아녀서도 병입골수 하였으니 이 병 저 병 천만병에 그린 상사일병인가 천리작향 혈혈하되 물 한 숭 뉘 떠주며 화타편작 다시와도 손님 병은 할 일 없네 호호탕탕 뜬 혼백이 망향대를 지나갈 제 죽은 이는 쾌타 하나 산 부모를 어이할고 상명지통 깊었으니 불효 아니 막대한가 동생 하나 어리다니 부모봉양 뉘가 할고 생전불효 뉘우치며 사후불효 마자할가 규리홍안 젊은 아내 그도 아니 가련한가 평생일신 조묘 굿기 손님네게 달렸다가 하도 아참 이별하고 적적공방 홀로 있어 지금까지 살았기는 형여 다시 만나볼가 아침까지 받겨 들고 저녁 등화 위로하여 어린 아들 쓰다듬어 눈물 흘러 하는 말이 너 아바님 언제 올고 오시거든 절하여라 맺힌 근심 살뜬 간장 촌촌히 썩이면서 의복 보선 지어 두고 의불의를 보랴하고 삼시출망 하는 눈이 뚫어지게 되었다가 명정삽선 앞세우고 검은 관이 올라가면 바라는 데 끊쳐지고 일신 아조 마치나니 오월비상 슬픈 눈물 구소운간 사무치리 유명 다른 혼백인들 쾌한 마음 있을손가 그 때에야 뉘오친들 죽은 사람 다시 살가 염라왕께 원정하고 인간환생 설사한들 부모 어찌 알아보며 홍안박명 할 일 없네 천사만사 헤아리고 사생지간 가리어서 죽은 후에 편타 말고 살아 고생 한 때 하소 인간오복 수위선은 손님네도 모르시나 그릇한 일 뉘우쳐서 애달프다 너무 마소 인개성인 아니어든 진선진미 쉬울손가 기왕은 불간하니 내자를 가취로다 내 인사를 닦은 후에 하늘 명을 기다리소 청과청비 하오시니 손님 고액 대 끝에서 삼년이니 잠간 조금 기다리오 어와 손님네야 다시 내 말 들어보소 그도 저도 다 바리고 망극천은 잊으실가 은린옥척 낚아다가 해소함도 천은이요 나무 베어 불 때어서 온숙함도 천은이요 북창청풍 누었을 제 한가함도 천은이요 만경창파 바람불 제 장관함도 천은이요 나아가도 천은이요 물러가도 천은이라 손님 몸 죽으시면 큰 죄가 둘이로세 부모를 잊으시니 불효도 되려니와 천은을 또 잊으니 불충이 아니런가 한 죄도 어렵거든 두 죄를 다 지오니 아모리 혼백인들 무엇이 되려시나 돌에가 의지하여 석귀가 되려시나 물에가 의지하여 수귀가 되려시나 흙에가 의지하여 토귀가 되려시나 여기 저기 의지 없어 뜬귀가 되려시나 이것 저것 일홈 없어 잡귀가 되려시나 이렁저렁 빌어 먹어 걸귀가 되려시나 아모 것도 못 먹어서 아귀가 되려시나 두억신이 되려시나 독갑이가 되려시나 적막공산 궂은 비에 우는 귀신 되려시나 어와 손님네야 마음을 고쳐 먹어 죽잔 말 다시 말고 살아 할 일 헤어 보소 손님 풀려 가오실 제 서울 구경 나도가세 강두에 배 닿일 제 무슨 배를 닿일는고 독대선에 황대선에 먼정이에 대중선에 어망선에 거북선에 장도리에 거루선에 동서남북 부는 바람 무슨 바람 부올는고 놉바람에 늦바람에 하니바람 마파람에 다른 바람 부지 말고 남병산 칠성단에 제갈공명 비던 바람 동남으로 일어나서 반공에 뜬 구름을 서북으로 이동할 제 지곡총 배 띄워라 어사와 돛 달아라 고예승류 한가로이 무삼 노래 부르실고 상사별곡 춘면곡은 이별조라 마오시고 어부사에 말을 섞어 손님 지어 부르시고 광관일성에 산수가 푸르렀다 배에 앉은 저 어옹이 한 어깨 높았세라 해불양파하니 성인의
시절이뇨 산하의 굳음이여 만만세지 무궁이라 금능에 배를 띄워 술집으로 향하는 듯 추칠월 기망야에 소동파의 놀음인 듯 동정호 칠백리에 악양루 어데매뇨 이수가 중분하니 백로주 여기로다 중류격즙 생각하니 옛 일도 역력하다 하우씨 치홍수는 공업도 크시었다 황룡이 부주하니 성인을 모르던가 소상강 큰 바람은 이비의 신령이라 진황의 사오나옴 자기산은 무삼 일고 범여의 오호주와 장한의 강동감은 명철보신 하였노라 착한 체 자랑마소 임군을 싫담이니 옳은 일 아니로세 후세에 유명하나 내 아니 부러하리 묻노라 동남동녀 불로초 캐었느냐 있는 데 나도 가서 한 포기 캐어다가 구중궁궐에 우리 임께 드리옵고 남은 것 가져다가 북당에 올리리라 범급전산 훌후산하니 수로천리 지척일다 배 부쳐라 돛 지어라 육지산천 둘러 보소 울 제 울고 보던 뫼를 오늘 웃고 보리로다 기쁜 흥 못 이기어 명산대찰 찾으실 제 배진의 달마산은 미황사가 대찰이요 영암의 월출산은 도갑사가 큰 절이라 주현군읍 지나가며 남방풍경 열람하니 건지산을 다시 보고 계룡산을 고쳐 지나 경기남산 반가와라 손님 보고 마조 웃네 동작강 배 저어라 십리사장 얼른지나 돌모로 지나치고 청파다리 너머 들어 숭례문 들어가니 오색구름 어린 곳에 기린봉황 넘노는 듯 단기도 반공하다 주야불망 바라면서 그리던 곳 아니런가 전세 불러 고두하고 만세무궁 축수하네 장안시장 즐비하고 대평기상 번화하다 방방곡곡 돌아 드니 손님집이 거기로세 부모처자 마조 나와 손을 잡고 반겨하니 울음 긑에 웃음 나고 지낸 고생 허사로다 갈충보국 힘을 쓰니 부모봉양 절로 나네 백부은정 잊지 말고 귀한 아들 성취하여 조강지처 한가지로 영화부귀 누리실 제 이때 고생 이 설움을 잊지말고 외왔다가 잡잡고 웃으면서 옛 말슴 하오실 제 그 때 내 말 생각하고 상풍 올라 하오시리 이 말 저 말 시골 말이 열되들이 정말이라
주제 : 서러운 감정을 느끼는 이에 대한 위로
‘만언사답’은 ‘만언사’(안조원)의 답가 형식을로 된 노래이다. 첫머리에 설운 말을 늘어놓은 ‘손님네’는 이른바 ‘만언사’의 화자인 셈이고, ‘광부’는 ‘만언사답’의 화자가 된다. ‘만언사’와 ‘만언사답’은 작자 자신이 지은 노래에 대해 자신이 답을 하는 형식이 특이하게 보인다. 이것은 유배 생활을 하고 있는 작자의 서럽고 힘든 사정을 알아주는 그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자 하는 심리로 보인다.
야청도의성(夜聽擣衣聲)
양태사(楊泰師)
서리 하늘 달 밝은데 은하수 빛나 霜天月照夜河明
이국 땅 머무는 나그네 귀향 생각 깊도다. 客子思歸別有情
긴긴 밤 홀로 앉아 시름 이기지 못하는데 厭坐長霄愁欲死
홀연 들리나니 이웃 아낙 다듬이 소리. 忽聞隣女擣衣聲
바람결 따라서 끊일 듯 이어지며 聲來斷續因風至
별들이 기울도록 잠시도 멎지 않네. 夜久星低無暫止
고국을 떠난 후로 저 소리 못 듣더니 自從別國不相聞
먼 이역 땅에서 그 소리 다시 듣네. 今在他鄕聽相似
그대 든 방망이는 무거운가 가벼운가 不知綵杵重將輕
푸른 다듬잇돌 고르고 거친가. 不悉靑砧平不平
약한 체질 온통 구슬땀에 젖으리. 遙憐體弱多香汙
옥 같은 두 팔도 힘이 부쳐 지쳤으리. 預識更深勞玉腕
홑옷으로 떠난 나그네 구하자 함인가. 爲當欲救客衣單
규방에 외로이 있는 시름 잊자 함인가. 爲復先愁閨閣寒
그대 모습 그려 보나 물어 볼 도리 없고 忘容儀難可問
부질없는 먼 원망만 끝없이 깊어 가네. 不知遙意怨無端
먼 이국 땅 낯선 고장에서 寄異土分無新識
그대 생각하노라 긴 탄식만 하네. 想同心兮長嘆息
이런 때 들려오는 규방의 다듬이 소리 此時獨自閨中聞
그 누가 알랴, 시름 깊은 저 설움을. 此夜誰知明眸縮
그리운 생각에 마음 높이 달렸건만 憶憶兮心已懸
듣고 또 들어도 뚫어 알 길이 없네. 重聞兮不可穿
꿈 속에라도 저 소리 찾아보려 하지만 卽將因夢尋聲去
나그네 수심 많아 잠도 이루지 못한다네. 只爲愁多不得眼
[핵심 정리]
지은이 : 양태사(楊泰師) - 발해 제3대 문왕 때(737-793)의 귀덕 장군. 무인이면서도 시를 잘 지었다고 함
갈래 : 칠언배율(七言排律)
연대 : 발해국 문왕 23년(759)
성격 : 서정적
구성 : 24행
표현 : 직서법
주제 : 향수(가을 달밤, 타국에서 고국을 그리워함)
의의 : 발해의 시인이 남긴 작품 중에서 가장 길고 정감이 풍부하며, 발해 시대의 문학 이해의 자료가 된다. 또한 당시 시대 상황(외교 활동의 빈번함)을 추리하는 데 근거가 된다.
출전 : <경국집>
▶ 작품 해설
양태사(楊泰師)가 발해국의 부사로 일본에 건너갔다가 임무를 마치고 귀국할 즈음에 다듬이 소리를 듣고 고국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 두 편 중의 하나이다.
양태사의 이 작품은 스물넉 줄로 된 칠언고시(七言古詩)인데, 의례적인 수사법을 버리고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여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이 시는 특히 청각적 심상이 주제로 승화되는 고도의 표현 기법을 구사했다.
서리 내리고 은하수도 밝은, 가을이 깊은 이국(異國)의 밤에 홀연 어디선가 다듬이 소리가 들린다. 다듬이질은 일본에는 없는 풍속으로, 이는 분명히 고국의 여인이 향수를 달래려고 내는 애련한 소리일 것이다. 그 소리는 끊어질 듯 새벽까지 이어져 여인의 모습까지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이 시에서의 다듬이 소리는 아름다운 선율의 소리로서 여인과 청자의 거리를 좁혀 주고 작자의 격렬한 시름과 탄식을 교차하게 한다. 동시에, 그만큼 조국 발해에 대한 그리움의 정도 깊어진다.
견회요(遣懷謠)
윤선도(尹善道)
슬프나 즐거오나 옳다 하나 외다 하나
내 몸의 해올 일만 닦고 닦을 뿐이언정
그 밧긔 여남은 일이야 분별(分別)할 줄 이시랴
내 일 망녕된 줄 내라 하여 모랄 손가
이 마음 어리기도 님 위한 탓이로세
아뫼 아무리 일러도 임이 혜여 보소서
추성(秋城) 진호루(鎭胡樓) 밧긔 울어 예는 저 시내야
무음 호리라 주야(晝夜)에 흐르는다
님 향한 내 뜻을 조차 그칠 뉘를 모르나다
뫼흔 길고 길고 물은 멀고 멀고
어버이 그린 뜻은 많고 많고 하고 하고
어디서 외기러기는 울고 울고 가느니
어버이 그릴 줄을 처엄부터 알아마는
님군 향한 뜻도 하날이 삼겨시니
진실로 님군을 잊으면 긔 불효(不孝)인가 여기노라.
<고산 유고(孤山遺稿)에서>
▶ 작품 해설
고산(孤山)은 치열한 당쟁으로 평생을 거의 유배지에서 보냈다. 그의 시조 작품은 정철의 가사와 함께 조선 시가 문학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문집으로 ‘고산 유고(孤山遺稿)‘가 있다.
만흥(漫興) 1
산수간 바위 아래 띠집을 짓노라 하니
그 모른 남들은 웃는다 한다마는
어리고 향암(響巖)의 뜻에는 내 분(分)인가 하노라
보리밥 풋나물을 알마초 먹은 후에
바위 끝 물가에 슬카지 노니노라
그나믄 녀나믄 일이야 부럴 줄이 이시랴
잔 들고 혼자 앉아 먼 뫼를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움이 이러하랴
말씀도 웃음도 아녀도 못내 좋아 하노라
누고셔 삼공(三公)도곤 낫다하더니 만승(萬乘)이 이만하랴
이제로 헤어든 소부허유 약돗더라
아마도 임천한흥(林泉閑興)을 비길 곳이 업세라
내 성이 게으르더니 하늘이 아라실샤
인간만사를 한 일도 아니 맛뎌
다만당 다툴 이 업슨 강산을 직히라 하시도다
강산이 됴타한들 내 분(分)으로 누엇느냐
님군의 은혜를 이제 더욱 아노이다
아무리 갚고쟈 하여도 해올 일이 업세라
* 산수간 : 자연 속, 정계(政界)와 결연된 곳
* 띠집 : 띠로 지붕을 이은 집 (초가집)
* 그 모른 : 그 마음을 모르는
* 어리고 : 어리석고
* 향암 : 시골의 어리석은 사람
* 뜻에는 : 생각으로는
* 보리밥 풋나물 : 거친 음식
* 알마초 : 알맞게
* 슬카지 : 실컷
* 노니노라 : (계속해서) 놀고 있노라
* 그나믄 : 그 밖의
* 녀나믄 : 나머지 다른(벼슬살이)
* 부럴 : 부러울
* 오다 : 온다고
* 아녀도 : 않아도, 아니 하여도
* 누고셔 : 누가
* 삼공 : 삼 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 도곤 : 보다
* 만승 : 임금자리
* 이제로 : 이제 와서
* 헤어든 : 헤아려 보니, 생각해 보니
* 약돗더라 : 약았더라, 영리하더라
* 임천한흥 : 자연을 즐기는 한가로운 즐거움
* 성이 : 성질, 성품
* 아라실샤 : 아시는구나
* 맛뎌 : 맡겨
* 다만당 : 다만
* 다툴 이 : (서로 가지려고) 다툴 사람
* 됴타 : 좋다
* 분 : 분수
* 해올 : 시킬, 임금이 시킨
요점 정리
지은이 : 윤선도
연대 : 조선인조 때
갈래 : 연시조
성격 : 한정가
제재 : 자연을 벗하는 생활, 산수 자연속의 생활
주제 : 자연에 묻혀 사는 은사의 한정, 산수의 한가함을 누리는 즐거움, 자연 속에서 자연과 친화하며 사는 삶의 즐거움 노래
특징 : 작가의 안분지족하는 삶의 자세가 드러났고, 물아일체의 자연 친화정신이 잘 나타나 있음. 설의법 사용
각 연의 주제
1연안분지족의 삶2연안빈 낙도의 삶3연강산과의 혼연 일체4연강호 한정의 삶5연자연 귀의의 삶6연임금의 은혜 찬양
출전 : 고산유고 중 '산중신곡'
내용 연구
산수간(정계와 떨어진 곳, 속세와 떨어진 곳) 바위 아래에 띠풀로 이은 집을 짓고 살려고 하니(송순의 '십 년을 경영하여'와 비슷하다. 자연 귀의(自然歸依),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사상이 담겨 있다.)
나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속세의 사람들, 그 뜻을 모르는 사람들)은 비웃고들 있지만(비웃는다고 한다마는),
나같이 어리석은 시골뜨기(햐암은 향암, 시골에서 자라 온갖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사람. 여기서는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의 마음에는 이것이 분수에 맞는 것이라 생각하노라.
자연 속에서 세속적 명리를 잊고 안분지족하려는 작자의 초탈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초장의 '띠집'은 안분지족의 심정을 드러내기 위한 소재이며, 종장의 '햐암'은 자신의 겸손을 드러낸 표현이다. 어지러운 현실을 벗어나 이제 막 자연으로 돌아온 화자의 모습을 통해 작자에게 있어서 영혼의 고향으로서의 자연의 위상
을 엿볼 수 있다.
보리밥과 풋나물을 알마초(알맞게) 먹은 뒤에,
바위 끝이나 물가(자연의 대유적 표현)에서 슬카지( 실컷, 마음껏) 노니노라. - 자연 친화 사상
그 밖에 다른 일(세속 현실의 벼슬살이를 말함)이야 부러워할 것이 있으랴.(안분지족의 자세)
비록 보리밥과 풋나물로 연명하는 가난한 생활이지만, 자연을 벗하는 작자의 유유자적하는 마음은 세속의 온갖 부귀영화가 전혀 부럽지 않다는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초장의 '보리밥 풋나물'과 같은 소재들은 사실의 진술이 아니라, 작자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한 암유로 이해해야 한다. 중장에서는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한가롭게 지내는 생활의 흥취를 잘 드러내고 있으며, 종장의 '녀나믄 일'은 세속적 명리, 곧 부귀영화를 의미한다. 사물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세속과 탈속의 이분법적 사고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술잔을 들고 혼자 앉아서 산을 바라보니
그리워하던 임이 찾아(오다 : 온다고 한들)온다고 한들 반가움이 이보다 더하겠는가
산이 말씀하거나 웃지 아니하여도(주체는 산으로 이심전심의 자세) 나는 그를 한없이 좋아하노라.(몯내 됴하 하노라 : 못내 좋아하노라. 자연에 묻혀 사는 은사의 한정)
자연에 몰입되어 무아경에 빠진 작자의 의연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는 연이다. 자연은 말도 없고 웃지도 않건만 이심전심의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너무 반갑다는 작자의 말은 한 잔 술이 있어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산중에 혼자 앉아 술잔을 들고 멀리 바라다 보이는 산의 아름다움을 안주삼아 자연에 도취되어 감으로써, 자연과 일체가 되는 그윽한 감흥을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말이 없는 자연이 그리운 임보다 더 정겹다는 작자의 인식을 통해 이미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버린 작자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누군가가 삼공(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말하는 삼정승)보다 낫다고 하지마는 만승천자(만 개의 수레로 황제의 지위를 가리키는 말)라고 한들 이만큼 좋겠는가(비교법 사용)
이제 생각해보니 소부와 허유(중국의 대표적인 은자,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인물들(?~?). 허유는 자는 무중(武仲). 요임금이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으나 받지 않고 도리어 자신의 귀가 더러워졌다고 하여 영수(潁水) 강 물에 귀를 씻고 기산(箕山) 산에 들어가서 숨었다고 하고, 소부는 그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한 전설상의 인물들)가 영악했도다(냑돗더라는 약았다는 의미로 소부와 허유에 대한 관심보다는 작가가 느끼는 흥겨움을 강조하기 위해 약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세상을 등진 소부 허유가 사실은 약았다는 뜻으로 곧 세속 현실의 삶보다는 산수 자연의 삶이 겪어 보니 더 낫다는 의미).
아마도 (임천한흥은 수풀과 샘물을 이르는 말로 자연의 대유적 표현으로 자연 속에 살아가는 즐거움을 말함) 자연속에서 노니는 즐거움은 비길 데가 없어라.
자연 속에서 누리는 한가로운 마음의 평화가 만승천자보다 낫다는 작자의 말을 통해 자연에 흠뻑 빠져든 그의 정신 세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초장의 '삼공'과 '만승'은 세속적 명리에 대한 대유이며, 중장의 '소부허유'는 자연에 묻혀 사는 은자의 대유이다. 즉, 이 부분은 세속과 탈속의 대립항을 설정하여 탈속적 초월을 지향하는 작가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종장의 '임천한흥'에 작자의 내면을 집약시킴으로써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도 작자에게는 더 이상 추구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니며, 오직 자연만이 의식을 지향점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속세에 대한 부정적 입장
이라고 볼 수 있다.
내 성(천성)이 게으른 것을 하늘이 아시고서( 아르실샤 : 아셔서),
인간 만사(세상의 모든 일)를 하나도(한일도 : 한 가지 일도) 맡기지 않으시고, 다만 한 가지 다툴 것이 없는 강산(江山)을 지키라 하시도다.
실질적으로 이 작품 전체의 결구에 해당하는 연으로, 오랜 동안의 벼슬길에서 대부분의 세월을 유배 생활로 보낸 작자가, 지친 몸과 영혼을 이끌고 마지막 도달한 자연귀의의 심정을 읊고 있다. 초, 중장에서 환해풍파의 아픔을 자신의 게으른 천성 탓으로 돌리면서, 종장에서는 자연에 귀의하여 사는 것이 하늘이 자신에게 맡긴 분수임을 밝히는 작자의 체관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또한, 자연과 하늘에 대한 작자의 겸허한 태도와 인간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및 관점을 엿볼 수 있다.
강산이 좋다고 한들 내 분수로 이렇게 편안히 누워 있겠는가
이 모두가 임금님의 은혜인 것을 이제야 더욱 알겠노라( 아노이다 : 알겠도다.).
하지만 아무리 갚고자 하여도 내가 해드릴 일(해올 일이 : 할 수 있는 일이)이 없구나.
마지막 시조는 그 당시의 선비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으로 모든 것을 임금의 은혜로 돌리고 있다. 사실 그 당시는 임금의 권한은 하늘과 같았고, 그 임금에 대한 충성이야 말로 가장 큰 보신이었다. 그는 임금에 대한 진실의 가부를 떠나서 임금의 치세에 대한 태평성대를 말한 것은 그 시대의 보편적인 선비들이 가졌던 세계관이었고, 한계였던 것이다.
이해와 감상
1642년(인조 20) 윤선도(尹善道)가 지은 시조. 작자가 금쇄동(金鎖洞)에서 산중의 생활을 읊은 〈산중신곡 山中新曲〉 9편 가운데 첫번째 편으로, 모두 6수로 되어 있다. 1798년(정조 22) 전라감사 서정수(徐鼎修)가 재판(再版)한 작자의 문집 ≪고산유고 孤山遺稿≫ 제6권 하편 별집에 수록되어 있다.
‘만흥’은 산중생활에서 문득 느껴지는 ‘부질없는 흥(만흥)’을 소박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첫째 수는 “산슈간(山水間) 바회 아래 뛰집을 짓노라 하니, 그 몰론 남들은 웃는다 한다마는, 어리고 햐암의 뜻대는 내분(分)인가 하노라.” 하여 자연에 묻혀사는 소박한 생활이 작자에게 알맞는 분수임을 노래하였다.
둘째 수에서는 “보리밥 풋나물을 알마초 머근 후(後)에, 바횟긋 물가의 슬크지 노니노라, 그 나믄 녀나믄 일이야 부랄 줄이 이시랴.” 하고 가난에 평안하는 안분(安分), 안빈(安貧)의 경지를 그렸다.
셋째 수는 “잔들고 혼자 안자 먼 뫼흘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옴이 이러하랴, 말씀도 우음도 아녀도 몯내 됴하 하노라.” 하여 담담한 표현 속에 느긋한 정취를 은은히 풍기고 있다. 산수시의 미, 느긋한 즐거움〔閑寂〕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넷째수는 “누고셔 삼공(三公)도곤 낫다 하더니 만승(萬乘)이 이만하랴, 이제로 헤어든 소부(巢父)·허유(許由) ㅣ 냑돗더라, 아마도 님쳔한흥(林泉閑興)을 비길 곳이 업세라.” 하여 한흥, 곧 이 시의 주제인 만흥을 노래하였다. 〈만흥〉은 전원시이면서 산수시다.
(출처 : ≪참고문헌≫ 尹孤山硏究(李在秀, 學友社, 1955), 江湖歌道硏究(崔珍源, 國文學과 自然, 成均館大學校出版部, 198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해와 감상1
1연은 혼란한 정계에서 벗어나 인간을 멀리하여 심산유곡에 들어가 자연과 생활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나의 고매한 진의를 모르는 세인은 이러니 저러니 비웃고 떠들지만, 내 우직한 성격으로 판단하면 이것이 나다운 생활의 본령이라는 것이다. 곧 이 시조의
이면에는, 사회의 현실상과 자기의 이상이 도저히 융화되지 못함을 알 때에는 고인의 도를 밟아 깨끗이 명리를 버리고 거짓과 속임이 없는 자연을 찾아서 정신적으로 평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는 도피 사상과 결백성이 깃들여 있다.
2연은 유인이 되어 검소하고 담박한 의식에 만족하며, 자연을 마음껏 완상하는 생활의 진취를 갖게 되었다. 그러니 부귀와 공명 따위는 부러워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극히 평범한 사상을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보리밥, 풋나물'은 한시나 다른 시조에서 보기 드문 말로서, 향토적인 미각을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고산이 아니면 가능성이 없는 순한국적 감촉을 가진 말이다. 한학자인 고산이 이런 말을 그의 시조 창작상에서 구사하여 그 효과를 십이분 나타내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시조에 능수 능란하였던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3연은 작자가 울적한 마음을 풀고자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가 우연히 먼 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았을 때 경(景)과 의(意)가 융합되는 순간 즉흥적으로 나타난 시상을 노래한 것이다. 대자연에 도취되어 손에 잡고 있던 술잔마저 잊어 버리고 있던 작자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여기에서는 자신이 자연 속에 녹아드는 순간 무념 무상의 경지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먼 산과 같이 태연부동하여 만사에 초연 자약할 수 있는 자신을 얻은 심경이라고 보고 싶다. 현세로부터 도피하여 인간과의 교섭을 끊고자 한 고산이었지만,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에 뜻밖에 사모하던 임이 찾아온다면 반가움이 말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고산은 말과 웃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인간중에서 가장 사랑하며 그리던 임보다도 말도 웃음도 없는 자연이 좋다고 구가한 것이다. 고산 자신의 말과 같이 그가 자연을 유달리 사랑하는 버릇과 염세기인의 사상이 깃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연은 자기의 성품이 나태하다고 말하고 인간 만사 중에 무엇이나 이루지 못했다고 자기의 무능 무위를 솔직히 말한 곳에 겸양의 미덕이 숨어 있고, 또 조화의 명수를 좇으면서 조금도 세정을 원망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숙명론자인 약점은 다소 있으나, 확고한 신념 아래 사는 사람의 체관적 태도가 엿보인다. 조화의 명수를 좇아 아무도 다툴이 가 없는 자연을 마음껏 완상하고 자연을 지키고 있으리라는 천명의 당위성을 자각하고 있는 모습은 고산같은 인격에게나 있을 법한 뜻깊은 말이라 할 것이다. (출처 : 이재수의 윤고산 연구에서)
만흥(漫興)은 작자가 병자호란 때(1642년, 56세) , 왕을 호종(扈從:임금이 탄 수레를 호위하여 따르던 일. 또는 그런 사람)하지 않았다 하여 영덕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해남 금쇄동에 은거하고 있을 때 지은 것인데, 산중 신곡(山中新曲) 속에 있는 전 6수로 된 연시조로서,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산중생활을 흐뭇하게 즐기는 심정을 읊으면서도 임금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지극한 충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고, 그것을 모두 성은으로 돌리고 있음은 조선 시대 선비들의 공통된 의식 구조라 할 수 있겠다.
이해와 감상2
작가가 유배에서 풀려나 자연에 은거하면서 지은 작품으로 한문투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우리말의 묘미를 잘 살리고 있다. 윤선도는 시어의 아름다움과 형상적인 구조로 시조 문학의 절정을 이룬 작가로 평가받는다. '만흥'은 세속과 떨어져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흥취를 그리고 있다. 자연을 단순한 음풍농월의 대상으로 그리지 않고 현실과 대비되는 이상적인 공간으로 설정하고 작가와 혼연일체를 이루는 경지를 설정한 점에서 자연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 속에서 자연과 친화하며 사는 삶은 조선 시대 선비의 이상인 안빈낙도의 정신과 관련 있다.
환목어(還目魚)
이식
有魚名曰目 유어명왈목 목어라 부르는 물고기가 있었는데
海族題品卑 해족제품비 해산물 가운데서 품질이 낮은 거지.
膏유不自潤 고유부자윤 번지르르 기름진 고기도 아닌데다
形質本非奇 형질본비기 그 모양새도 볼 만한 게 없었다네.
終然風味淡 종연풍미담 그래도 씹어보면 그 맛이 담박하여
亦足佐冬시 역족좌동시 겨울철 술안주론 그런대로 괜찮았지.
유(月+臾), 시(酉+麗)
國君昔播越 국군석파월 전에 임금님이 난리 피해 오시어서
艱荒此海수 간황차해수 이 해변에서 고초를 겪으실 때
目也適登盤 목야적등반 목어가 마침 수랏상에 올라서
頓頓療晩飢 돈돈료만기 허기진 배를 든든하게 해 드렸지.
勅賜銀魚號 칙사은어호 그러자 은어라 이름을 하사하고
永充壤奠儀 영충양전의 길이 특산물로 바치게 하셨다네.
수(좌부방+垂)
金輿旣旋反 금여기선반 난리 끝나 임금님이 서울로 돌아온 뒤
玉饌競珍脂 옥찬경진지 수랏상에 진수성찬 서로들 뽐낼 적에
嗟汝厠其間 차여측기간 불쌍한 이 고기도 그 사이에 끼었는데
거敢當一匙 거감당일시 맛보시는 은총을 한 번도 못 받았지.
削號還爲目 삭호환위목 이름이 삭탈되어 도로 목어로 떨어져서
斯須忽如遺 사수홀여유 순식간에 버린 물건 푸대접을 당했다네.
거(言+巨)
賢愚不在己 현우부재기 잘나고 못난 것이 자기와는 상관없고
貴賤各乘時 귀천각승시 귀하고 천한 것은 때에 따라 달라지지.
名稱是外飾 명칭시외식 이름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한 것
委棄非汝疵 위기비여자 버림을 받은 것이 그대 탓은 아니라네.
洋洋碧海底 양양벽해저 넓고 넓은 저 푸른 바다 깊은 곳에
自適乃其宜 자적내기의 유유자적하는 것이 그대 모습 아니겠나.
*이 식(李植) : 호는 택당(澤堂). 1610년(광해군 2) 문과에 급제, 7년 뒤 선전관이 되었으나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 1623년 인조반정 후 이조좌랑을 거쳐 대사
헌 ·형조판서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장유(張維)와 더불어 당대의 이름난 학자로서 한문 4대
가(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저서에 《택당집(澤堂集)》이 있다.
* 환목어(還目魚) : 동해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이른바 '도루묵'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지금도 한문으로는 목어(木魚) 혹은 환맥어(還麥魚)라고 하는데, 택당 이식(李植)이 여기에서
목어(目魚)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과 함께 도루묵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밝히고 있어 주목된다.
* 이 시는 택당이 낙향해 있을 때, 자신의 처지를 목어에 비유해 읊은 세태 풍자시로 보인다
▶주제 : 현실에서 벗어나 유유자적하며 살아가고 싶은 욕망
'환목어'는 동해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도루묵'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이 물고기의 이름이 '환목어'가 된 유래를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마지막 수에서 작가는 시절의 변화에 따라 귀함과 천함이 뒤바뀐 이 물고기의 운명에 빗대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또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풀이]
요사이 안부를 묻노니 어떠하시나요?
달 비친 사창(紗窓)에 저의 한이 많습니다.
꿈 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걸.
[정리]
작자-이옥봉(李玉峰), 숙원 이씨
형식-7언 절구의 한시
표현-과장법
주제-연모의 정, 임을 기다리는 여심(女心), 이별한 임에 대한 그리움
출전-옥봉집(玉峰集)
[짜임]
1행-임의 안부를 물음
2행-달 비친 사창에 서린 나의 한
3행-꿈속에 만난 임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함.(가정법을 사용한 내용의 전환)
4행-문 앞의 돌길이 닳아서 모래가 됨.(화자의 그리움을 과장하여 표현)
[낱말]
달 비친 사창에∼많습니다. : 임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빛에 이입하여 표현한 구절이다.
紗窓(사창) : 얇은 비단으로 만든 창. 여자가 기거하는 방을 이르기도 함
문 앞의 돌길이∼되었을 걸 :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으리라 하여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임을 그리워하여 얼마나 자주 나갔으면 돌길이 발에 밟혀 모래가 되었겠는가. 이것은 학수고대보다도 더한 그리움이다.
[감상]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하는 연모의 정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원초적인 감성인 것이다. 이 시는 이러한 사무치는 연모의 정을 그려내고 있다. 승구(承句)에서는 그리움을 달빛에 비추어 하소연하였고, 결구(結句)에서는 꿈 속의 발자취가 현실로 옮겨진다면 돌길이 반쯤 모래가 되었으리라 하여 임을 만나고 싶은 애타는 심정을 하소연하였다. 전구(轉句)에서의 시상 변환이 특히 뛰
어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은근한 물음을 통하여 자신의 그리움을 드러낸 표현이 돋보인다.
속행로난
이인로
산에 올라 노한 범의 수염을 역으려 들지 말고
바다에 들어서는 잠자는 용의 구슬을 잡지 말게나
인간세상 한 걸음은 천리처럼 험한데
태행산과 맹문이 실로 탄탄대로가 될 수 있는 법
좁은 세상에 이익을 다투는 싸움이 무르익으니
갈래 길 많은 곳에서 양주도 울 지경이라
그대 보지 못했나 엄릉이 광무제를 업신여기며
칠리탄에서 한 칸 대나무로 낚시를 즐겼음을
[주제] 세상살이의 어려움과 지혜로운 처세
[해제] ‘행로난’은 세상사의 어려움이나 이별의 비애를 노래하는 작품을 이르는 세부 장르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행로난’을 잇는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작자는 세상사의 어려움은 귀한 것을 추구하려다 위험에 빠지게 된 데에서 온 것임을 말하고, ‘엄릉’의 고사를 인용하여 현명한 세상살이의 전범을 보이고 있다.
[구성] 1-2 : 세상사의 어려움의 원인
3-4 : 인생의 진리
5-6 : 이익을 다투는 싸움으로 얼룩진 세상
7-8 : 현명한 인생살이(엄릉과 같이 부귀영화를 멀리함)
국화야, 너난 어이
이정보
국화야, 너난 어이 삼월 춘풍 다 지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나니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오상고절 : 서리에 굴하지 않고 고고히 절개를 지킴.
--------------------
(풀이) 국화야, 너는 어이하여 삼월 봄 바람 다 지내고
낙엽 떨어지는 차가운 하늘에 네 홀로 피었는가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해석
국화야 너는 어찌 온갖 꽃이 만발하는 봄도 다 지나간 뒤,
나뭇잎 모두 떨어지고 추워진 계절에 너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찬서리에도 꿋꿋한 절개를 보이는 것은 너뿐인가 하노라.
핵심 정리
종류 : 평시조
성격 : 절의가
제재 : 국화
주제 : 高節(고절)
출전 : <병와가곡집>
해설
내노라 하고 뭇꽃들이 경염(競艶)을 하는 봄이 지나고, 찬 서리가 내릴 때 홀로 피어 그 향기를 흩부리는 국화는, 마치 역경 속에서 꿋꿋이 자신의 지조를 지켜 나가는 군자(君子)의 품이 있기 때문에, 옛부터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 온 꽃이었다. 이 시조에서는 그런 국화를 의인화해서 그 절개를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지조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그렇기에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강도(强度)를 살피려 한다. 이런 지조는 선비의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지조와 정조는 다같이 절개에 속한다. 지조는 정신적인 것이요, 정조는 육체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지조의 변절도 육체 생활의 이욕(利慾)에 매수된 것이요, 정조의 부정도 정신의 쾌락에 대한 방종에서 비롯된다.
사실 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어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의 세력 앞에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인욕(因辱)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일찌기 어떤 선비도 변절하여 권력에 영합해서 들어갔다가 더러운 물을 뒤집어쓰지 않고 깨끗이 물러나온 예를 역사상에서 보지 못했다. 이렇듯 변절의 생리는 최후가 비참하고 처량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조지훈 , 지조론(志操論)>
절조보다는 사리(私利)에 눈이 어두워 선비 정신을 헐값에 팔아버린 못난 위정자들을 볼 적마다 작자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그는 이 작품에서 재차 지조 있는 선비로서 소신대로, 바르게 살고 싶은 자신의 신념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조에서의 '오상 고절(傲霜孤節)'은 바로 작자 자신의 모습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버슨 兒孩(아해)ㅣ들리
이정신(李廷藎)
가버슨 兒孩(아해)ㅣ들리 거믜쥴 테를 들고 川(천)으로 往來(왕래)며,
가숭아 가숭아, 져리 가면 쥭니라. 이리 오면 니라. 부로나니 가숭이 로다.
아마도 世上(세상) 일이 다 이러가 노라.
<청구영언(靑丘永言)>
▶ 작품 해설
‘가숭이(벌거숭이 아이들)’ 가 ‘가숭이(고추잠자리)’를 잡는다. 서로 믿을 수 없는, 약육 강식(弱肉强食)의 각박한 세태를 해학적으로 풍자하였다.
잊음 많아 이 책 저 책 뽑아 놓고서
흩어진 걸 도로 다 정리하자니,
해가 문득 서으로 기울어지고,
가람엔 숲 그림자 흔들리누나.
막대 짚고 뜨락으로 내려를 가서
고개 들고 구름재를 바라다보니,
아득아득 밥 짓는 연기가 일고,
으스스 산과 벌은 싸늘하구나.
농삿집 가을걷이 가까워지니,
방앗간 우물터에 기쁜 빛 돌아.
갈가마귀 날아드니 절기 익었고,
해오라비 우뚝 서니 모습 훤칠해.
내 인생은 홀로 무얼 하는 건지 원.
숙원이 오래도록 풀리질 않네.
이 회포를 뉘에게 얘기할거나.
거문고만 둥둥 탄다, 고요한 밤에.
* 만보 : 늦을 녘에 거닐면서
* 잊음 많아 이 책 저 책 뽑아 놓고서 : 진리 또는 학문에 대한 끝없는 탐구
* 숙원이 오래도록 풀리질 않네 : 학문적 성취의 미진함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
▶지은이 : 이 황(李滉)/신호열(辛鎬烈) 옮김
▶성격 : 사색적, 성찰적
▶주제 : 성취하지 못한 학문에 대한 소망, 가을날 저녁의 자아 성찰
▶특징 : 수확의 계절인 가을날의 해질녘에 수확의 기쁨에 들떠 있는 사람들과 풍요로운 자연의 모습을 보며 학문적으로 숙원을 이루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 작품으로 퇴계와 같은 대학자가 이룬 것이 없다는 말은 실제로 이룬 것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이 그만큼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절적으로는 결실을 거두는 가을, 시간적으로는 하루가 저문 저녁 무렵을 묘사하고 있다. 이렇난 계절과 저녁이 가진 상징성을 통해 나이가 들도록 오랜 숙원을 이루지 못한 자신의 회포를 대조적으로 제시하여 깊은 울림을 자아내고 있다.
-'해오라비'와 '갈가마귀'는 계절감과 함께 숙원을 이루지 못한 자신과 대조되는 모습을 나타낸다.
이 시에서는 배경이 중요하다. 해는 지고 멀리 저녁이 오고 있으며, 하루의 끝을 알리는 시간이고, 그리고 눈을 멀리 들어 들로 던지니 가을걷이가 가까워져 무르익은 들녘이 보이는 한 해의 끝을 알리는 시간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또, 방앗간이며 우물터에서는 사람들이 수확의 기쁨에 들떠 있고 모든 것이 성취의 기쁨을 맛보는 시간이다. 밥 짓는 연기며 방앗간 우물터의 기쁜 빛이 그런 뜻을 함축한다. 그래서 날아드는 갈가마귀며 우뚝 선 해오라비까지도 다 기쁨과 자랑에 차 있는데, 이런 가운데 나만 오로지 이룬 것이 없다. 책을 뽑아 놓고 흩어진 걸 정리하면서 그 공허함이 새삼 뼈에 사무친다. 숙원을 가진 지 오래지만, 하루 일이나 농사일 같은 소득이 없다. 그 말을 누구에게 할 수 있으랴, 거문고만 탈 뿐이다. 이처럼 바라보는 사물과 대비되는 나를 발견하면서 학문적 성취에 대한 미진함을 생각하면서 삶에 대한 깊은 내면의 성찰을 하고 있는 작품이다.
개야미 불개야미
작자 미상
개야미 불개야미 등 부러진 불개야미, 압발에 정종나고 뒷발에 죵귀 난 불개야미,
廣陵(광릉) 재 너머 드러 가람의 허리를 가로 물어 추혀 들고 北海(북해)를 건너닷 말이 이셔이다.
님아 님아. 온 놈이 온 말을 여도 님이 짐작쇼셔.
<청구영언>
▶ 작품 해설
사람들의 모함이 얼마나 터무니 없고 허황된 것인지, 도저히 불가능하고 말도 안 되는 구체적 일례를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근거 없음을 회화적(戲畵的)으로 비유한 노래이다. 초장(初章)과 중장(中章)에서는 종장(終章)에 백 사람이 백 가지 이야기를 하여도 님께서 짐작하여 헤아리시라고 자기의 결백을 주장한 것이다.
관등가(觀燈歌)
정월 상원일에 달과 노는 소년들은
답교하고 노니는데 우리 님은 어디가고
답교할 줄 모르는고
이월 청명일에 나무마다 춘기들고
잔디 잔디 속잎나니 만물이 희락한데
우리 님은 어디가고 춘기든 줄 모르는고
삼월 삼일날에 강남서온 제비
왔노라 헌신하고 소상강 기러기는
가노라 하직한다 이화도화 만발하고
행화방초 흩날린다 우리 님은 어디가고
화류할 줄 모르는고
사월 초파일에 관등하러 임고대하니
원근고저의 석양은 빗겼는데
어룡등 봉학등과 두루미 남성이며
종경등 선등 북등이며 수박등 마늘등과
연꽃 속에 선동이며 난봉 위에 천녀도다
배등 집등 산대등과 영등 알등 병등 벽장등
가마등 난간등과 사자 탄 체괄이며
호랑이 탄 오랑캐라 바로 차 구을등에
일월등 밝아있고 칠성등 벌렸는데
동령에 월상하고 곳곳에 불을 켠다
우리 님은 어디가고 관등할 줄 모르는고
오월이라 단오일에 남의 집 소년들은
높고높게 그네 매고 한번 굴러 앞이 높고
두번 굴러 뒤가 높아 추천하며 노니난데
유월이라 유두일에 산악에 불이 나고
암석이 끄러날 제 괴수하에 피서하랴 누웠으니
우리 님은 노정 송풍만 아시는고
칠월이라 백중날에 대웅신에 공양 예불할 제
우리 님은 어디 가셨노 팔월이라 추석날에
신곡주 가지고 성묘하러 아니 가시는고
구월 구일 망향대하냐 우리 님 계신 데가
어디쯤 되는고 시월이라 상달에
고사 성조 지낼 적에 누구를 축원할고
동짓달은 일양이 생이라 소춘이 된 줄 모르시노
섯달이라 제석날 밤은 무장 공자라도
참기 어려우니 몽중에서나 볼까
오친사고 어찌 할고
요점 정리
연대 : 미상(수록 문집인 '청구영언'의 편찬 연대로 보아, 1728년(영조4)이전의 것으로 추정)
작자 : 미상
갈래 : 규방 가사
주제 : 행락을 부러워하며, 돌아간 임을 그리는 청상과부의 외로움
내용 연구
형식은 자수율과 구수율은 모두 정형이 없이 월령체 형식이며, 각 월령 끝에 "우리 님은 어듸가고 ……는 줄 모르난고"를 공통으로 한다.
이해와 감상
작자. 연대 미상의 규방가사이다. 제작 연대는 수록문집인 <청구영언>의 편찬 연대로 보아, 1728년(영조4) 이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월령상사가(月令相思歌)>라고도 하며 <청구영언> 대학본 끝에 수록되어 전한다. 형식은 자수율과 구수율(句數律)은 모두 정형이 없이 월령체형식이며, 각 월령 끝에 "우리 임은 어듸가고.....는 줄 모르난고"를 공통으로 한다. <청구영언>의 <관등가>는 정월령부터 오월령까지 뿐인데, 사본 <월령상사가>는 <관등가>에 유월령 이하를 보충하여 십이월령체 가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청구영언>의 <관등가>에 후인이 지어 보탠 것으로 여겨진다. 작품의 내용은 정월부터 오월까지의 세시 풍속과 그것을 즐기는 소년들의 행락을 부러워하며, 돌아간 임을 그리면서 눈물지으며 외롭게 술회하는 청상과부의 순정이 넘치는 노래이다. 고려의 <동동>과 <농가월령가>와 더불어 일년 열두 달에 따라 노래하는 월령체 노래의 하나이다. 형식은 자수율과 구수율(句數律)은 모두 정형이 없이 월령체형식이며, 각 월령 끝에 우리 임은 어듸 가고 ……는 줄 모르난고.를 공통으로 한다. 내용은 정월부터 오월까지의 세시풍속과 그 풍속을 즐기는 소년들의 행락을 부러워하며, 돌아간 임을 그리면서 눈물지으며 외롭게 술회하는 청상과부의 순정이 넘치는 노래이다.
바쳐 놓고 새암을 찾아가서 점심(點心) 도슭 부시고 곰방대를 톡톡 떨어 닢담배 퓌여 물고 코노래 조오다가
석양이 재 넘어갈 제 어깨를 추이르며 긴 소래 저른 소래 하며 어이 갈고 하더라.
<‘청구영언’에서>
▶ 작품 해설
우리의 선인들은 시조의 정형성 속에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려 보였다. 조선 후기를 지나 그 의미는 많이 달라졌지만, 단형의 틀 속에 작자의 다양한 문학 체험을 드러내 보이는 본래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장구한 생명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시조가 현실에 대해 탄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시대와 삶의 형태가 변하면서, 시조 자체의 질적 양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시조의 포용성 때문에 다양한 작가군(作家群)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十二月(십이월)ㅅ 분디남로 갓곤 아으 나 盤(반)잇 져 다호라.
니믜 알 드러 얼이노니 소니 가재다 므노이다.
아으 動動다리.
<악학궤범(樂學軌範)>
▶ 작품 해설
‘동동’은 다른 고려 속요와는 달리 월령체(月令體), 곧 달거리 형식의 노래로서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이런 형식의 노래로는 ‘동동’ 외에 ‘관등가(觀燈歌)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가 있고, 민요에 ‘청상요(靑孀謠)’가 있다. 또, 조선 성종 때의 문인 성현(成俔)이 지은 ‘전가사십이수(田家詞十二首)’와 같은 한시도 있다. 달거리의 특징은 농경 생활이 반영되어 있으며, 세시기(歲時記)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전 13연으로 이별한 임을 그리워하는 내용인데, 제1연만은 임을 송도(頌禱)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노래는 달이 바뀜에 따라 연으로 구분되고, 한 연이 끝날 때마다 여음이 나타난다. 서정적 자아는 여성이며, 임은 남성이다.
계절적 특성에 따라 임을 그리워하는 방식이 달라짐을 감상해 보자.
용부가(庸婦歌)
작자 미상
흉보기가 싫다마는 저 부인(婦人)의 거동(擧動) 보소
시집간 지 석 달만에 시집살이 심하다고
친정에 편지하여 시집 흉을 잡아내네
계염할사 시아버니 암상할사 시어미라
고자질에 시누의와 엄숙하기 맏동서여
요악(妖惡)한 아우 동서 여우 같은 시앗년에
드세도다 남녀 노복(男女奴僕) 들며나며 흠구덕에
남편(男便)이나 믿었더니 십벌지목(十伐之木) 되었에라
여기저기 사설이요 구석구석 모양이라
시집살이 못 하겠네 간숫병을 기우리며
치마 쓰고 내닫기와 보찜 싸고 도망질에
오락가락 못 견디어 승(僧)들이나 따라갈가
긴 장죽(長竹)이 벗이 되고 들구경 하여 볼가
문복(問卜)하기 소일(消日)이라 겉으로는 시름이요
속으로는 딴 생각에 반분대(半粉黛)로 일을 삼고
털 뽑기가 세월이라 시부모가 경계(驚戒)하면
말 한마디 지지 않고 남편이 걱정하면
뒤받아 맞넉수요 들고 나니 초롱군에
팔짜나 고쳐 볼까 양반 자랑 모두 하여
색주가(色酒家)나 하여 볼가 남문 밖 뺑덕어미
천생(天生)이 저러한가 배워서 그러한가
본 데 없이 자라나서 여기저기 무릎맞침
싸홈질로 세월이며 남의 말 말전주와
들며는 음식(飮食) 공논 조상(祖上)은 부지(不知)하고
불공(佛供)하기 위업(爲業)할 제 무당 소경 푸닥거리
의복(衣服) 가지 다 내주고
남편 모양 볼작시면 삽살개 뒷다리요
자식 거동 볼작시면 털 벗은 솔개미라
엿장사야 떡장사야 아이 핑계 다 부르고
물레 앞에 선하품과 씨아 앞에 기지개라
이 집 저 집 이간질과 음담패설(淫談悖說) 일삼는다
모함(謀陷) 잡고 똥 먹이기
세간은 줄어 가고 걱정은 늘어 간다
치마는 절러 가고 허리통이 길어 간다. <후략>
▶ 핵심 정리
지은이 : 미상
갈래 : 가사
연대 : 조선 후기
성격 : 풍자적. 경세가(警世歌)
표현 : 열거법. 과장법
주제 : 여성들의 비행(非行) 비판
출전 : <경세설(警世說)>
▶ 시어 풀이
계엄할사 : 마음이 컴컴하고 욕심이 많기도
암상할사 : 샘하는 마음이 많다.
요악(妖惡)한 : 요사하고 간악한
흠구덕 : 남의 허물을 험상궂게 말함
십벌지목(十伐之木) :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말로, 여럿의 등쌀에 기어코 마음이 그렇게 쏠렸다는 뜻
반분대(半粉黛) : 옅은 화장
맞넉수 : 맞적수. 마주 대꾸하기
초롱군 : 초립동(草笠童). 초립을 쓴 아이
말전주 : 말을 여기저기 옮기는 것
위업(爲業)할 제 : 일삼을 때
선하품 : 흥미 없는 일을 할 때 나오는 하품
씨아 : 목화씨를 빼는 기구
절러 : 짧아
▶ 시구 연구
드세도다 남녀 노복(男女奴僕) 들며나며 흠구덕에 : 드센 종들이 집 안팎에서 흉을 보아 작품의 주인공인 용렬한 부인을 흠(결점) 투성이 여인으로 소문 낸다는 뜻이다.
남편(男便)이나 믿었더니 십벌지목(十伐之木) 되었에라 : 남편을
믿었는데 그조차 주위 사람들의 말에 넘어가 아내를 흠 많은 여자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간숫병을 기우리며 : 간수를 먹으려 하며. 자살하려고 한 것이다.
긴 장죽(長竹)이 벗이 되고 들구경 하여 볼가 : 분노와 따돌림 받는 데서 생긴 외로움을 달래려고 담배를 친구 삼게 되었고, 집안에 정을 못 붙여 들구경이 가고 싶다는 뜻이다.
문복(問卜)하기 소일(消日)이라 : 점치는 일로 시간을 보냄
반분대(半粉黛)로 일을 삼고 : 한나절을 얼굴에 분바르기와 눈썹 그리는 것으로 보내고
남편 모양 볼작시면 삽살개 뒷다리요 : 남편의 사람 됨됨이가 방탕함을 드러내는 묘사로, 집안 일에 관심이 없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물레 앞에 선하품과 씨아 앞에 기지개라 :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뜻
▶ 시상 전개
(1) 흉보기가 싫다마는 - 십벌지목(十伐之木) 되었에라 <용렬한 부인의 시집 식구 흉보기>
* 시부모의 흉
* 시누이와 맏동서, 아우 동서의 흉
* 남편의 첩, 남녀 노복의 흉
* 남편의 흉
(2) 여기저기 사설이요 - 허리통이 길어 간다. <부인의 거동>
* 간숫병 기울이기
* 내닫기와 도망질
* 담배피기
* 점보기
* 화장하기, 털뽑기
* 말대답하기
* 무릎 맞침
* 싸움질하기
* 이간질하기
* 불공으로 일삼기
▶ 작품 해설
이 작품에 표현된 여인의 모습이 당대 여인들의 일반적 생활은 아니다. 이 시대 여인들의 생활과 감정을 과장하여 현실적 비난을 피하려는 의미도 이 속에는 숨어 있다. 감정의 직설적 표현을 통하여 현실의 모순과 갈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순연한 토속미와 삶의 고달픔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읽어 보자. 내용이 다소 과장되고 표현이 속된 것도 있지만 사실적인 묘사로 토속미가 풍긴다. 풍자와 유머가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시집간 지 석 달 만에 시집의 흉을 잡아낸다는 서두와 점치기와 치장으로 소일하고 불공과 무당 소경 푸닥거리로 위업을 한다는 것은 실감나는 표현이며, 끝에 가서 저 거동이 그른 것은 알면 고치려고 힘쓰라는 것은 이 작품이 경세(經世)와 훈민(訓民)을 염두에 둔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조선 후기의 가사문학은 서민들의 수중으로 넘어오면서 풍자성을 띄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그 당시 여성들의 비행을 열거하고 있어 서민층의 비판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는 이 시대 여인들의 생활과 감정을 과장하여 현실적 비난을 피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 용렬한 여자의 갖가지 부정적인 모습을 비판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여성의 바람직한 행실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깨우치고자 한 가사이다. 전체적으로 과장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지만, 그러면서도 생생한 실감을 만들어내는 사실적 묘사가 두드러진다. 그 같은 사실적 산문 정신이 가사의 산문화를 이끈 기본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 이 작품을 지배하는 미의식은 희극미(골계미)라 할 수 있는데, 그 이전 가사(주로 양반 가사)의 미의식과는 전혀 다른 서민적 미의식의 창출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대단히 크다.
▶ 심화 학습 자료
용부가 유형의 조선 후기 가사
우부가(愚夫歌) : 어리석은 한량(閑良)이 부모 덕에 호의호식(好衣好食)하고 방탕하여 절제 없는 생활을 하다가 패가망신(敗家亡身)하다는 내용으로 세 명의 우부(개똥이, 꼼생원, 꾕생원)를 등장시켜 서술하고 있다.
덴동 어미 화전가(花煎歌) : 덴동 어미기 네 번째 남편인 엿장수 조 첨지를 만나 만년에 아들까지 얻어 행복하게 살던 중 별신굿에 쓸 엿을 고다 불이 나서 남편을 잃고 아들은 화상을 입어 병신이 되는, 기막힌 사연을 서사적으로 읊은 가사이다.
조선 후기 가사의 성격
자아 각성에 의한 서민 의식과 산문 정신의 영향으로 종래의 관념적, 서정적 내용이 서사적, 구체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음풍농월(吟風弄月)이나 연군(戀君)에서 벗어나, 널리 인간의 생활상을 그렸다. 특히, 인간의 성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함으로써 산문화가 이루어졌는데, ‘용부가’는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이런 조선 후기 가사는 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의 확대, ② 여성 및 평민 작자층의 성장, ③ 주제와 표현 양식의 다변화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①에 해당하는 작품으로는 기행 가사와 유배 가사 등을 들 수 있고, ②는 주로 사대부층 부녀자들에 의해서 창작, 향유된 규방 가사와 평민층의 가사를 들 수 있다.
▶ 작품 해설
작자․연대 미상의 고려 속요이다. 노래의 이름인 ‘정석(鄭石)’은 이 노래 첫머리에 나오는 ‘딩아 돌하’의 ‘딩[鄭]’과 ‘돌[石]’을 차자(借字)한 것으로서 타악기를 의인화한 것으로 보인다.
‘악장가사’에 전 편이, ‘시용향악보’에 첫 연이 실려 전하며, 끝 연(제6연)은 ‘서경별곡(西京別曲)’의 제2연과 같은 가사로 되어 있다. 조선조에 와서는 궁중 악장으로 사용되었다.
둘째 연부터 마지막 연까지 똑같은 표현 수법으로서 불가능한 일을 제시하여 이별의 불가능, 즉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였다. 특히 이 노래는 과장법에 해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 민족의 은근과 끈기의 성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 작품 해설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순박한 마음이 달에 의탁되어 나타난 이 노래는 그 아내의 지순한 사랑을 함께 엿볼 수 있다.
안녕의 수호자격인 ‘달’은 우리의 소원 성취를 기원하던 전통적인 달이기도 하지만, 이 노래에서는 아내의 간절한 애정이 서려 있어 더욱 짙은 함축성이 내포된 달이다. 이러한 달이기에, 그것은 남편의 귀가 길과 아내의 마중길, 나아가 그들의 인생 행로의
어둠을 물리치는 광명(光明)의 상징일 수도 있다.
행상(行商) 나간 남편의 야행 침해(夜行侵害 : 밤길에 해를 입음.)에 대한 염려를 ‘즌 드욜셰라.’ 하여 ‘이수지오(泥水之汚 : 진흙물에 더러워짐.)’에 비유, 우의적으로 노래한 것은 달에 의탁된 아내의 심정을 함축한 절묘한 표현이다. 따라서, 달의 광명은 남편이 무사하기만을 비는 간곡한 여인의 심정을 순박하게 형상화한 것이라 하겠다.
제1연에서의 걱정은 제2연의 ‘즌 드욜셰라.’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되었고, 제3연에서는 ‘지고 가는 행랑을 어디에든지 놓고 그 위험을 피하십시오. 내 임이 가는 곳에 날이 저물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여 서정적 자아의 간절한 기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러한 서정적 자아의 목소리는 평민적 삶에서 벌어지는 소박한 감정(感情)과 애환(哀歡)을 잘 대변(代辯)해 주고 있다.
窓(창) 내고쟈 窓(창)을 내고쟈
작자미상
窓(창) 내고쟈 窓(창)을 내고쟈 이 내 가슴에 窓(창) 내고쟈
고모장지 셰살장지 들장지 열장지 암돌져귀 수돌져귀 목걸새 크나큰 쟝도리로 둑닥 바가 이 내 가슴에 窓(창) 내고쟈.
잇다감 하 답답 제면 여다져 볼가 노라.
<청구영언>
▶ 작품 해설
이 작품은 평민층 작가에 의한 사설로 추정되는데, 마음 속에 쌓인 답답함을 가슴에 창문이라도 내서 시원스럽게 펴고 싶다는 재미있는 착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체적인 생활 언어와 친근한 일상적 사물을 다소 수다스럽게 열거함으로써 괴로움을 강조하는 수법은 다분히 해학적(諧謔的)이기도 한데, 비애와 고통을 어둡게만 그리지 않고 이처럼 웃음을 통해 극복하려는 우리 나라 평민 문학의 한 특징이 엿보인다.
▶ 작품 해설
헌강왕이 개운포를 지나는데, 깜깜해지는 변괴가 일자 그 자리에 절을 지어 주기로 하니 어둠이 가셨다. 이 자리에 절을 지으니 망해사이다. 동해 용왕이 이에 감사하고 자신의 아들인 처용을 헌강왕에게 바쳐 서라벌에서 살게 되었다. 처용이 벼슬을 하고 있을 때 역신이 그의 아내를 범하여 이 노래를 부르니 역신이 감읍하여 처용의 상이 있으면 범접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것은 벽사(僻邪)에 해당하는 것으로, 문이나 지붕에 처용상을 붙이게 된 기원, 즉 문신의 좌정 과정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배경 설화와
관련지어 작품을 읽어 보자.
눈 멀고 다리 져는
지은이 미상
눈 멀고 다리 져는 두터비 셔리 마즈 리 물고 두엄 우희 치다라 안자,
건넌산 라보니 白松骨(백송골)리 잇거 가에 금죽여 플 다가 그 아 도로 잣바지거고나.
쳐로 날 젤싀만졍 혀 鈍者(둔자)ㅣ런둘 어혈질 번괘라.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 작품 해설
이 작품은 힘 있는 자에게 굽히고 힘 없는 자 위에 군림하면서 잇속을 채우는데 혈안이 된 수령이나 아전을 비꼬고 있다.
한숨은 바람이 되고
작자 미상
한숨은 바람이 되고 눈물은 세우되어
님 자는 창 밖에 불면서 뿌리고저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볼까 하노라
▶ 작품 해설
이 작품은 고려 의종(毅宗) 때의 문인 정서(鄭敍)가 귀양지인 동래(東萊)에서 임금에게 자신의 죄 없음을 밝히고 선처(善處)를 청하기 위해 지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향찰로 표기되어 전해지는 ‘향가’는 아니지만 형식면에서 볼 때, 10구체 향가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3단 구성이나 ‘아소 님하’와 같은 여음구는 모두 향가의 영향을 입은 것이다. 또한, 내용면에서는 신충(信忠)의 ‘원가(怨歌)’와 그 성격이 서로 통한다. 그렇지만 형식에서 감탄사의 위치가 바뀌고, 내용상 다소 격조가 떨어지는 등 향가의 형식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형식의 흔들림이나 격조 낮은 표현은 시각에 따라 형식의 자유로움과 표현의 진솔함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왜냐 하면, 그 자유로움과 진솔함은 곧 고려 속요의 특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이 향가에서 고려속요로 넘어가는 중간 지점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마꾼[肩輿歎]
정약용(丁若鏞)
人知坐輿樂 사람들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아도
不識肩輿苦 가마 메는 괴로움은 모르고 있네.
肩輿山峻阪 가마 메고 험한 산길 오를 때면,
捷若蹄山麌 빠르기가 산 타는 노루와 같고
肩輿不懸崿 가마 메고 비탈길 내려올 때면,
沛如歸笠羖 우리로 돌아가는 염소처럼 재빠르네.
肩輿超谽谺 가마 메고 깊은 골짜기 건너갈 때면,
松鼠行且舞 다람쥐도 덩달아 같이 춤추네.
側石微低肩 바위 옆을 지날 때에는 어깨 낮추고,
窄徑敏交服 오솔길 지날 때에는 종종걸음 걸어가네.
絶壁頫黝潭 검푸른 저수지 절벽에서 내려다볼 때는,
駭魄散不聚 놀라서 혼이 나가 아찔하기만 하네.
快走同履坦 평지를 밟듯이 날쌔게 달려
耳竅生風雨 귀에서 바람 소리 쌩쌩 난다네.
所以游此山 이 산에 유람하는 까닭인즉슨
此樂必先數 이 즐거움 맨 먼저 손꼽기 때문
紆回得官岾 근근히 관첩(官帖)을 얻어만 와도
役屬遵遺矩 역속(役屬)들은 법대로 모셔야 하는데
矧爾乘傳赴 하물며 말타고 행차하는 한림(翰林)에게
翰林疇敢侮 누가 감히 못 하겠다 거절하리오.
領吏操鞭扑 고을 아전은 채찍 들고 감독을 맡고,
首僧整編部 수승(首僧)은 격식 차려 맞을 준비하네.
迎候不差限 높은 분 영접에 기한을 어길쏘냐,
肅恭行接武 엄숙한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네.
喘息雜湍瀑 가마꾼 숨소리 폭포 소리에 뒤섞이고
汙漿徹襤褸 해진 옷에 땀이 베어 속속들이 젖어 가네
度虧旁者落 외진 모퉁이 지날 때 옆엣놈 뒤처지고,
陟險前者傴 험한 곳 오를 때엔 앞엣놈 허리 숙여야 하네.
壓繩肩有瘢 밧줄에 눌리어 어깨에 자국 나고,
觸石趼未瘉 돌에 채여 부르튼 발 미쳐 낫지 못하네.
自痔以寧人 자기는 병들면서 남을 편케 해 주니,
職與驢馬伍 하는 일 당나귀와 다를 바 하나 없네.
爾我本同胞 너나 나나 본래는 똑같은 동포이고,
洪勻受乾父 한 하늘 부모삼아 다 같이 생겼는데,
汝愚甘此卑 너희들 어리석어 이런 천대 감수하니,
吾寧不愧憮 내 어찌 부끄럽고 안타깝지 않을쏘냐.
吾無德及汝 나의 덕이 너에게 미친 것 없었는데,
爾惠胡獨取 내 어찌 너의 은혜 혼자 받으리.
兄長不憐弟 형이 아우를 사랑치 않으니,
慈衰無乃怒 자애로운 어버이 노하지 않겠는가.
僧輩楢哿矣 중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요.
哀彼嶺不戶 영하호(嶺下戶) 백성들은 가련하고나.
巨槓雙馬轎 큰 깃대 앞세우고 쌍마(雙馬) 수레 타고 오니,
服驂傾村塢 촌마을 사람들 모조리 동원하네.
被驅如太鷄 닭처럼 개처럼 내몰고 부리면서,
聲吼甚豺虎 소리치고 꾸중하기 범보다 더 심하네.
乘人古有戒 예로부터 가마 타는 자 지킬 계율 있었는데,
此道棄如土 지금은 이 계율 흙같이 버려졌네.
耘者棄其鋤 밭 갈다가 징발되면 호미 내던지고
飯者哺以吐 밥 먹다가 징발되면 먹던 음식 뱉어야 해.
無辜遭嗔暍 죄 없이 욕 먹고 꾸중 들으며,
萬死唯首俯 일만 번 죽어도 머리는 조아려야.
顦顇旣踰艱 병들고 지쳐서 험한 고비 넘기면,
噫吁始贖擄 그 때야 비로소 포로 신세 면하지만,
浩然揚傘去 사또는 일산(日傘)쓰고 호연(浩然)히 가 버릴 뿐,
片言無慰撫 한 마디 위로의 말 남기지 않네.
力盡近其畝 기진 맥진하여 논밭으로 돌아오면
呻唫命如縷 지친 몸 신음 소리 실낱 같은 목숨이네.
欲作肩與圖 이 가마 메는 그림 그려
歸而獻明主 임금님께 돌아가서 바치고 싶네.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 작품 해설
정약용이 귀양에서 풀려나 향리로 돌아와 있을 때(1832년)지은 작품으로, 백성들의 삶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함께 풍자성이 강하게 나타나 모순된 시대 현실에 대한 정약용의 비판적 태도를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다.
작자는 먼저 관리의 가마를 메고 산으로 올라가는 영하호(嶺下戶) 주민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한 후,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아도 가마 메는 괴로움은 모르는 관리들의 도덕적 무감각을 강하게 질타한다. 이런 비판 속에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부당한 행위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작자의 진보적인 의식이 숨어 있다. 작자는 이러한 논리를 임금에게까지 적용시킨다. 어떤 면에서 보면 임금이야말로 백성들에게 가마 메는 괴로움을 강요하는 가장 핵심적인 주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리 타작[打麥行]
정약용(丁若鏞)
새로 거른 막걸리 젖빛처럼 뿌옇고 新蒭獨酒如湩白
큰 사발에 보리밥, 높기가 한 자로세. 大碗麥飯高一尺
밥 먹자 도리깨 잡고 마당에 나서니 飯罷取耞登場立
검게 탄 두 어깨 햇볕 받아 번쩍이네. 雙肩漆澤翻日赤
응헤야 소리 내며 발 맞추어 두드리니 呼邢作聲擧趾齊
삽시간에 보리 낟알 온 마당에 가득하네. 須叟麥穗都狼藉
주고받는 노랫가락 점점 높아지는데 雜歌互答聲轉高
보이느니 지붕 위에 보리티끌뿐이로다. 但見屋角紛飛麥
그 기색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어 觀其氣色樂莫樂
마음이 몸의 노예 되지 않았네. 了不以心爲形役
낙원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닌데 樂園樂郊不遠有
무엇하러 벼슬길에 헤매고 있으리요. 何苦去作風麈客
[시어, 시구 풀이]
한 자 : 일 척(一尺). 약 30센티미터 가량. 보리밥 높이가 한 자인 것은 과장법이 사용됨
도리깨 : 곡식의 알을 떠는 농구의 하나
검게 탄 : 햇빛 아래에서 노동을 한 어깨의 빛깔
응헤야 : 민요의 후창 부분의 감탄사
보이느니 : 보이는 것이
기색 : 희로애락의 감정의 작용으로 얼굴에 나타나는 기분과 얼굴색
새로 거른 - 햇볕 받아 번쩍이네. : 좋은 술과 기름진 음식은 아닐지라도 노동의 건강성과 좋은 조화를 이루는 막걸리와 보리밥이 요기로서는 부족함이 없음과 햇빛에 그을은 두 어깨로 대변되는 농민의 노동하는 건강한 삶에 화자가 감탄하고 있다. 화자는 직접 노동에 참여하지는 않는 사람으로 시적 대상이 노동하려는 모습을 관찰하고 이에 감동을 받고 있다.
응헤야 소리 내며 - 보리티끌뿐이로다. : 노동요를 부르면서 흥
겹게 도리깨질을 하는 농민이 보리 낟알이 온 마당에 날릴 정도로 적극적으로 일을 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고, 그 노동의 강도는 시간이 점점 지나갈수록 더욱더 강해진다. 노랫가락 소리도 높아지고 동시에 마당뿐만 아니라 온 집안에 보리 낟알이 날리고 있다. 화자는 건강한 농민의 노동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 기색 - 되지 않았네. : 농민의 즐거운 노동 행위에서 건강하고 생동하는 삶을 발견하고 그로 말미암아 육신과 정신이 조화로운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인식까지 드는 것이다. 화자는 시적 대상인 농민의 건강한 노동 행위를 관찰한 끝에 삶의 본질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낙원이 먼 곳에 - 헤매고 있으리요. : 대상의 행위에서 깨달은 삶의 본질은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화자의 내면에 변화를 가져 오고 있다. 즉 화자가 벼슬길에 나서 정치적 억압을 받고 힘든 삶을 살아 온 과정이 모두 부질없는 행위였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화자는 대상을 보기 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의 진리를 깨달았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핵심 정리]
지은이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경기도 광주 출생.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호는 다산(茶山). 또는 여유당(與猶堂). 정조 13년에 남인(南人)의 불리한 처지를 극복하고 대과에 급제하여 정조의 총애를 받기도 한 실학자이다. 저서에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아주 많다.
갈래 : 행(行 - 한시의 일종). 서정시. 리얼리즘 시
연대 : 1801년
구성 : 기,승,전,결의 4단 구성.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시상 전개
기(1-4행) - 노동하는 농민의 건강한 삶의 모습
승(5-8행) - 보리 타작하는 마당의 정경
전(9-10행) - 정신과 육체가 합일된 노동의 기쁨
결(11-12행) - 관직에 몸담은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
성격 : 사실적. 반성적
배경 사상 : 실사구시의 실학사상
주제 : 농민의 보리타작 노동과 거기에서 얻는 삶의 즐거운 모습
의의 : 사실성과 현장성이 평민적인 시어의 구사와 함께 잘 어울리는 조선 후기 한시의 전형이다. 다산(茶山)의 중농(重農) 사상과 현실주의 시 정신을 잘 나타내는 작품이다.
출전 : <여유당 전서(與猶堂全書)>
▶ 작품 해설
다산(茶山)의 한시 작품은 실학 사상을 배경으로 사회 제도의 모순, 관리나 토호들의 횡포, 백성들의 고뇌, 농어촌의 가난 등이 그 주제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대부분이 현실적인 면을 사실적으로 그렸으며, 시어(詩語)도 평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보리 타작’도 가난을 딛고 건실하게 일하는 농민의 건설적인 모습을 보이는 바, 악부(樂府)시체에서 전화한 한시의 한 체인 ‘행(行)’을 그 형식으로 하고 있다.
이 시에서 서정적 자아는 결구에서 보듯이 관직에 있었던 경험을 지닌 사대부이다. 곧 작자인 정약용 자신이라 해도 무방하다. 실학자인 작자는 현명한 목민관은 권농(勸農)을 으뜸 가는 임무로 삼아야 함을 주장하고, 전정(田政)과 군정(軍政)에 치중하여 병농일치(兵農一致)를 근간으로 하는 중농 정책을 주장하였다. 이처럼 농사 짓기를 중시하는 작자의 눈에 비친 당대 농민의 삶은 건강한 것이고 가치 있는 것이었다. 특히 이 작품은 농민의 건강한 노동의 모습을 잘 보여 주는 보리 타작하는 모습을 소재로 이러한 작자의 생각을 잘 나타내고 있다.
1-4행에서는 막걸리와 보리밥 한 사발을 너끈히 먹자마자 웃통
을 벗고 마당에 가서 보리 타작하는 농민의 모습을 통해 건강한 삶의 표상을 제시한다. 그리고 5-8행에서는 공동 작업으로 진행되는 보리 타작이라는 노동에 농민들이 몰두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노동하는 삶이야말로 기쁜 삶이라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9-10행에서는 육체와 정신이 통일되어 있는 농민의 모습에서 마음이 몸의 노예가 되지 않은 주체적 인간상을 느끼고, 11-12행에서는 농민의 삶을 보고는 벼슬길을 헤매며 보잘것없는 물욕(物慾)에 시달리는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기도 한다.
이 시에서 우리는 성장하는 조선 후기 민중들의 모습을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며, 새롭고 가치 있는 삶을 민중들의 일상 생활에서 찾고자 하는 당대 진보적 지식인의 세계관을 알 수 있다.
送人(송인)
정지상
庭前一葉落 (정전일엽락)
床下百蟲悲 (상하백충비)
忽忽不可止 (홀홀불가지)
悠悠何所之 (유유하소지)
片心山盡處 (편심산진처)
孤夢月明時 (고명월명시)
南浦春波綠 (남포춘파록)
君休負後期 (군휴부후기)
뜰 앞 나뭇잎 떨어지고, 마루 밑 온갖 벌레 슬프구나.
홀홀히 떠남 말릴 수 없네만, 유유히 어디로 향하는가.
한 조각 마음은 산 끝난 곳으로, 외로운 꿈은 달 밝을 때에나.
남포에 봄 물결 푸르를 때면, 그대 뒷기약 잊지 말게나.
요점 정리
지은이 : 정지상
형식 : 7언절구의 한시
주제 : 이별의 슬픔
이해와 감상
작자의 다른 작품인 '송인'과 유사한 정서인 이별의 아픔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떠나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의 유대감이 '남포'라는 향토적 배경을 통하여 잘 드러나고 있다.
심화 자료
정지상(鄭知常) (?~1135)
본관 서경(西京). 호 남호(南湖). 초명 지원(之元). 서경 출생. 1114년(예종 9) 문과에 급제, 1127년(인종 5) 좌정언(左正言)으로서 척준경(拓俊京)을 탄핵하여 유배되게 하고, 1129년 좌사간(左司諫)으로서 시정(時政)에 관한 소를 올렸다. 음양비술(陰陽??術)을 믿어 묘청(妙淸) ·백수한(白壽翰) 등과 삼성(三聖)이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서울을 서경으로 옮길 것과 금(金)나라를 정벌하고 고려의 왕도 황제로 칭할 것을 주장하였다. 1130년 지제고(知制誥)로서 《산재기(山齋記)》를 지었으며, 뒤에 기거랑(起居郞)이 되었다. 1135년(인종 13) 묘청의 난 때 이에 관련된 혐의로 김안(金安) ·백수한과 함께 김부식(金富軾)에게 참살되었다. 시(詩)에 뛰어나 고려 12시인의 한 사람으로 꼽혔으며 역학(易學) ·불전(佛典) ·노장철학(老莊哲學)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림 ·글씨에도 능했으며 저서로는 《정사간집(鄭司諫集)》이 있다.
훈민가(訓民歌)
정 철
<원문>
아바님 날 나시고 어마님 날 기시니
두 분 곳 아니시면 이 몸이 사라실가
하 업 은덕을 어ㅣ 다혀 갑오리.
<해석>
아버님께서 날 낳으시고 어머님께서 날 기르시니
두 분이 아니었다면 이 몸이 태어나 살 수 있었을까
하늘 같이 끝없는 은혜를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
➡ 부모님에 대한 효도의 권장
<원문>
형아 아야 네 만져 보아.
뉘손 타 나관 양조차 다.
졋 먹고 길너나 이셔 닷 을 먹디 마라.
<해석>
형아, 아우야, 네 살을만져보아라.
누구에게서 태어났길래 모습조차 같은 것인가?
같은 젓을 먹고 자라났으니 딴마음을 먹지 마라.
➡ 형제 간의 우애
<원문>
어버이 사라신 제 셤길 일란 다여라.
디나간 휘면 애다 엇디리.
平生(평생)애 곳텨 못 일이 잇인가 노라.
<해석>
어버이께서 살아 계실 때 섬기는 일을 다하여라.
돌아가신 뒤에 아무리 애통하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평생에 다시할 수 없는 일이 이것뿐인가 하노라.
➡ 풍수지탄(風樹之嘆)의 경계
<원문>
간나 가 길흘 나 에도시
나 네 길흘 계집이 츼도시
제 남진 제 계집 아니어든 일흠 뭇디 마오려.
<해석>
여자가 가는 길을 남자가 멀찌감치 돌아가듯이,
남자가 가는 길을 여자가 피해서 돌아가듯이,
자기의 남편이나 아내가 아니라면 이름을 묻지 마시오.
➡ 남녀 간의 예의 범절
<원문>
어와 뎌 족해야 밥 업시 엇디
어와 뎌 아자바 옷 업시 엇디
머흔 일 다 닐러라 돌보고져 노라.
<해석>
어와 저 조카야, 먹을 것이 없으면 어찌하겠는가.
어와 저 아저씨야, 입을 것이 없으면 어찌하겠는가.
어려운 일 다 말하려무나, 도와 주고자 하노라.
➡ 어려울 때의 상부상조
<원문>
오도 다 새거다 호믜 메고 가쟈라.
내 논 다 여든 네 논 졈 여 주마.
올 길헤 다가 누에 머겨 보쟈라.
<해석>
오늘도 날이 밝았다. 호미 메고 가자꾸나.
내 논 다 매거든 네 논도 좀 매어 주마.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뽕을 따다가 누에 길러 보자꾸나.
➡ 근면한 농사일과 상부 상조
<원문>
이고 진 뎌 늘그니 짐 프러 나 주오.
나 졈엇니 돌히라 므거울가.
늘거도 설웨라커든 지물 조차 지실가.
<해석>
짐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진 저 노인장이여, 그 짐을 풀어서 내게 주시오.
나는 젊었으니 돌인들 무거울까.
늙는 것도 서럽다 하는데 짐까지 지시겠는가
➡ 경로 사상의 강조
만분가
조 위
천상 백옥경 / 십이루 어디멘고 / 오색운 깊은 곳에 / 자청전이 가렸으니 / 구만 리 먼 하늘을/ 꿈이라도 갈동말동 / 차라리 죽어져서 / 억만 번 변화하여 / 남산 늦은 봄에/ 두견의 넋이 되어 / 화 가지 위에 밤낮으로 못 울거든 / 삼청 동리에/ 저문 하늘 구름 되어 / 바람에 흘리 날아/ 자미궁에 날아올라 / 옥황 향안 전에/ 지척에 나가 앉아 / 흥중에 쌓인 말씀/ 실컷 사뢰리라 / 아아 이내 몸이/ 천지간에 늦게 나니 / 황하수 맑다마는/ 초객의 후신인가 / 상심도 가이없고/ 가태부의 넋이런가 / 한숨은 무슨 일인고/ 형강은 고향이라 / 십 년을 유락하니/ 백구와 벗이 되어 / 함께 놀자 하였더니/ 어르는 듯 괴는 듯 / 남 없는 님을 만나/ 금화성 백옥당의 꿈조차 향기롭다 / 옥색실 이음 짧아/ 님의 옷을 못하 여도 / 바다 같은 님의 은혜/ 추호나 갚으리라 / 백옥 같은
이내 마음/ 님 위하여 지키고 있었더니 / 장안 어젯밤에 무서리 섞어 치니 / 일모수죽에/ 취수도 냉박하구나 / 유란을 꺾어 쥐고/ 님 계신 데 바라보니 / 약수 가로놓인 데/ 구름길이 험하구나 / 다 썩은 닭의 얼굴/ 첫맛도 채 몰라서 / 초췌한 이 얼굴이/ 님 그려 이리 되었구나 / 천층랑(험한 물결) 한가운데/ 백 척간에 올랐더니 / 무단한 회오리 바람이/ 환해 중에 내리나니 / 억만 장(丈) 못에 빠져/ 하늘 땅을 모르겠도다 / 노나라 흐린 술에/ 한단이 무슨 죄며 / 진인이 취한 잔에/ 월인이 웃은 탓인가 / 성문 모진 불에/ 옥석이 함께 타니 / 뜰 앞에 심은 난(蘭)이/ 반이나 시들었네 / 오동 저문 날 비에/ 외기러기 울며 갈 때 / 관산 만릿길이/ 눈에 암암 밟히는 듯 / 청련시 고쳐 읊고/ 팔도한을 스쳐 보니 / 화산에 우는 새야/ 이별도 괴로워라 / 망부(望夫) 산전(山前)에/ 석양이 거의 로다 / 기다리고 바라다가/ 안력(眼力)이 다했던가 / 낙화 말이 없고/ 벽창(碧窓)이 어두우니 / 입 노란 새끼새들/ 어미도 그리는구나 / 팔월 추풍(秋風)이/ 띠집을 거두니 / 빈 깃에 싸인 알이/ 수화를 못 면하도다 / 생리사별(生離死別)을/ 한 몸에 흔자 맡아 / 삼천 장(丈) 백발이/ 일야(一夜)에 길기도 길구나 / 풍파에 헌 배 타고/ 함께 놀던 저 무리들아 / 강천 지는 해에/ 주즙이나 무양한가 / 밀거니 당기거니/ 염예퇴를 겨우 지나 / 만 리 붕정(鵬程)을/ 머얼리 견주더니 / 바람에 다 부치어/ 흑룡 강에 떨어진 듯 / 천지 가이없고/ 어안(魚雁)이 무정하니 / 옥 같은 면목을/ 그리다가 말려는지고 / 매화나 보내고자/ 역로(驛路)를 바라보니 / 옥량(옥대들보)명월을/ 옛 보던 낯빛인 듯 / 양춘을 언제 볼까 / 눈비를 혼자 맞아 / 벽해 넓은 가에/ 넋조차 흩어지니 / 나의 긴 소매를/ 누굴 위하여 적 시는고 / 태상 칠위 분이/ 옥진군자 명이시니 / 천상 남루에/ 생적을 울리시며 / 지하 북풍의 / 사명을 벗기실까 / 죽기도 명이요/ 살기도 하나리니 / 진채지액을/ 성인도 못 면하며 / 누설비죄를/ 군자인들 어이하리 / 오월 비상이/ 눈물로 어리는 듯 / 삼 년 대한도/ 원기로 되었도다 / 초수남관이 / 고금에 한둘이며 / 백발황상에/ 서러운 일도 하고 많다 / 건곤이 병이 들어/ 흔돈이 죽은 후에 / 하늘이 침음할 듯/ 관색성이 비취는 듯 / 고정의국에/ 원분만 쌓였으니 / 차라리 할마같이/ 눈 감고 지내고저 / 창창막막하야/ 못 믿을쏜 조화로다 / 이러나저러나/ 하늘을 원망할까 / 도척도 성히 놀고/ 백이도 아사하니 / 동릉이 높은 걸까/ 수양산이 낮은 걸까 / 남화 삼십 편에/ 의론도 많기도 많구나 / 남가의 지난 꿈을/ 생각거든 싫고 미워라 / 고국 송추를/ 꿈에 가 만져 보고 / 선인 구묘를/ 깬 후에 생각하니 / 구회간장이 / 굽이굽이 끊어졌구나 / 장해음운에/ 백주에 흩어지니 / 호남 어느 곳이/ 귀역의 연수런지 / 이매망량이/ 실컷 젖은 가에 / 백옥은 무슨 일로/ 청승의 깃이 되고 / 북풍에 혼자 서서/ 가없이 우는 뜻을 / 하늘 같은 우리 님이/ 전혀 아니 살피시니 / 목란추국에 / 향기로운 탓이런가 / 첩여 소군이/ 박명한 몸이런가 / 군은이 물이 되어/ 흘러가도 자취 없고 / 옥안이 꽃이로되/ 눈물 가려 못 보겠구나 / 이 몸이 녹아져도/ 옥황상제 처분이요 / 이 몸이 죽어져도/ 옥황상제 처분이라 / 녹아지고 죽어지어/ 혼백조차 흩어지고 / 공산 촉루같이/ 임자 없이 굴러 다니다가 / 곤륜산 제일봉에/ 만장송이 되어 있어 / 바람 비 뿌린 소리/ 님의 귀에 들리기나 / 윤회 만겁하여/ 금강산 학이 되어 / 일만 이천 봉에/ 마음껏 솟아올라 / 가을 달 밝은 밤에/ 두어 소리 슬피 울어 / 님의 귀에 들리기도/ 옥황상제 처분이겠구나 / 한이 뿌리 되고/ 눈물로 가지삼아 / 님의 집 창 밖에/ 외나무 매화 되어 / 설중에 흔자 피어/ 참변에 이우는 듯 / 윌중소영이/ 님의 옷에 비취거든 / 어여쁜 이 얼굴을/ 너로구나 반기실까 / 동풍이 유정하여/ 암향을 불어 올려 / 고결한 이내 생계/ 죽림에나 부치고저 / 빈 낚싯대 비껴 들고/ 빈 배를 흔자 띄워 / 백구 건너 저어/ 건덕궁에 가고 지고 / 그래도 한 마음은/ 위궐에 달려 있어 /
내 묻은 누역 속에/ 님 향한 꿈을 깨어 / 일편장안을/ 일하에 바라보고 / 외로 머뭇거리며 옳이 머뭇거리며/ 이 몸의 탓이런가 / 이 몸이 전혀 몰라 / 천도막막하니/ 물을 길이 전혀 없다 / 복희씨 육십사괘/ 천지 만물 섬긴 뜻올 / 주공을 꿈에 뵈어/ 자세히 여쭙고저 / 하늘이 높고 높아/ 말없이 높은 뜻을 / 구름 위에 나는 새야/ 네 아니 알겠더냐 / 아아 이내 가슴/ 산이 되고 돌이 되어 / 어디어디 쌓였으며/ 비가 되고 물이 되어 / 어디어디 울며 갈까 / 아무나 이내 뜻/ 알 이 곧 있으면 / 백세교유 만세상감하리라.
'만분가'는 유배 가사의 효시로 알려진 작품이다. 작자인 조위(曺偉)가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인하여 귀양간 유배지인 순천에서 지은 것이다. 작품의 내용을 보면 작자가 사화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귀양살이를 비분 강개한 심정을 임금인 성종에게 토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의 초(楚)나라 굴원(屈原)이 죄없이 쫒겨나서 '이소(離騷)'를 지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듯이 자신도 죄없이 귀양와 있다는 것이다. '만분가'는 조선 전기 당쟁의 회오리 속에서 희생된 문신(文臣)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한 유배가사의 효시 작품이라는 점에서 우선 문학사적 가치가 매우 큰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후대에 지어지는 유배가사의 일종인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 등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에서 임금이 계신 곳을 도가의 천상 세계로 설정한 것이라든가, 유배되어 귀양가 있는 작자는 천상에서 옥황상제를 모시던 인물로 설정된 점 등이 모두 '만분가'의 설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조선조 유배가사의 중심적인 흐름을 이루면서 이어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만분가'의 유배가사의 전개에 끼친 영향과 문학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蜀葵花(촉규화-접시꽃)
최치원
寂寞荒田側 (적막황전측) 거친 밭 언덕 쓸쓸한 곳에
繁花壓柔枝 (번화압유지) 탐스런 꽃송이 가지 눌렀네.
香輕梅雨歇 (향경매우헐) 매화 비 그쳐 향기 날리고
影帶麥風歌 (영대맥풍가) 보리 바람에 그림자 흔들리네.
車馬誰見賞 (거마수견상) 수레 탄 사람 누가 보아주리
蜂蝶徒相窺 (봉접도상규) 벌 나비만 부질없이 찾아드네.
自慙生地賤 (자참생지천) 천한 땅에 태어난 것 스스로 부끄러워
堪恨人棄遺 (감한인기유) 사람들에게 버림받아도 참고 견디네
이 시도 접시꽃에 자신의 처지를 비유한 시다.
아무도 찾지도 않고, 개간하려고도 않는 척박한 곳에 쓸쓸히 피어 있는 흔하디 흔한 접시꽃. 그러므로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다.
수레 탄 사람은 임금을 위시한 고관대작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의 학문은 '탐스런 꽃송이', '매화향기'처럼 완숙한 경지에 이르렀건만,
이를 알아 보지 못하는 척박한 신라의 퉁토가 한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어쩌랴! 최치원 자신은 신라의 사람인 것을.
빈녀음(貧女吟)
허난설헌(許蘭雪軒)/김억(金億) 옮김
手把金剪刀 가위로 싹둑싹둑 옷 마르느라면
夜寒十指直 추운 밤에 손끝이 호호 불리네
爲人作嫁衣 시집살이 길옷은 밤낮이건만
年年還獨宿 이 내 몸은 해마다 새우잠인가
▶ 작품 해설
‘빈녀음’은 4수로 이루어진 연작시다. 이 시는 그 중 두 번째 작품으로, 남을 위해 옷을 짓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표현하고 있다. 1행과 2행에서는 겨울 밤 바느질의 괴로움을 노래하고 있고, 3행과 4행에서는 남을 위해 밤을 새워 하는 바느질과 자신의 불우한 삶을 대비시켜 표현하고 있다.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불우한 여인의 고달픈 삶을 애상적(哀想的) 시풍으로 그린 작품이다. 작자 자신의 불우한 삶과도 통하는 시이다.
사시사(四時訶)
허난설헌
춘사(春詞)
뜨락이 고요한데 봄비에 살구꽃은 지고
목련꽃 핀 언덕에선 꾀꼬리가 우짖는다.
수실 늘인 장막에 찬 기운 스며들고
박산(博山)향로에선 한 가닥 향 연기 오르누나.
잠에선 깨어난 미인은 다시 화장을 하고
향그런 허리띠엔 원앙이 수 놓였다.
겹발을 걷고 비취 이불을 갠 뒤
시름 없이 은쟁(銀箏)안고 봉황곡울 탄다.
금굴레 안장 탄 임은 어디 가셨나요
정다운 앵무새는 창가에서 속삭인다.
풀섶에서 날던 나비는 뜨락으로 사라지더니
난간 밖 아지랑이 낀 꽃밭에서 춤을 춘다.
뉴규 집 연못가에서 피리소리 구성진가
밝은 달은 아름다운 금술잔에 떠 있는데.
시름 많은 사람만 홀로 잠 못 이루어
새벽에 일어나면 눈물 자욱만 가득하리라.
하사(夏詞)
느티나무 그늘은 뜰에 깔리고 꽃 그늘은 어두운데
댓자리와 평상에 구슬 같은 집이 탁 틔었다.
새하얀 모시적삼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부채를 부치니 비단 장막이 흔들린다.
계단의 석류꽃 피었다가 모두 다 지고
햇발이 추녀에 옮겨져 발 그림자 비꼈네.
대들보의 제비는 한낮이라 새끼끌고
약초밭 울타리엔 인적 없어 벌이 모였네.
수 놓다가 지쳐 낮잠이 거듭 밀려와
꽃방석에 쓰러져 봉황비녀 떨구었다.
이마 위의 땀방울은 잠을 잔 흔적
꾀꼬리 소리는 강남(江南)꿈을 깨워 일으키네.
남쪽 연못의 벗들은 목란배 타고서
한아름 연꽃 꺽어 나룻가로 돌아온다.
천천히 노를 저어 채련곡(埰漣曲)부르니
물결 사이로 쌍쌍이 흰 갈매기는 놀라 날으네.
추사(秋詞)
비단 장막으로 찬 기운이 스며들고 새벽은 멀었지만
텅 빈 뜨락에 이슬 내려 구슬 병풍은 더욱 차갑다.
못 위의 연꽃은 시들어도 밤까지 향기 여전하고
우물가의 오동잎은 떨어져 그림자 없는 가을.
물시계 소리만 똑딱똑딱 서풍타고 울리는데
발 밖에는 서리 내려 밤벌레만 시끄럽구나.
배틀에 감긴 옷감 가위로 잘라낸 뒤
임 그리는 꿈을 깨니 비단 장막은 허전하다.
먼길 나그네에게 부치려고 임의 옷을 재단하니
쓸쓸한 등불이 어두운 벽을 밝할 뿐.
울음을 삼키며 편지 한 장 써놓았는데
내일 아침 남쪽 동네로 전해준다네.
옷과 편지 봉하고 뜨락에 나서니
반짝이는 은하수에 새벽별만 밝네.
차디찬 금침에서 뒤척이며 잠 못 이룰 때
지는 달이 정답게 내 방을 엿보네.
동사(冬詞)
구리병 물소리 소리에 찬밤은 기나길고
휘장에 달 비치나 원앙 금침이 싸늘하다.
궁궐 까마귀는 두레박 소리에 놀라 흩어지고
동이 터오자 다락 창에 그림자 어리네.
발 앞에 시비(恃婢)가 길어온 금병에 물 쏟으니
대야의 찬물 껄끄러워도 분내는 향기롭다.
손들어 호호 불며 봄산을 그리는데
새장 앵무새만은 새벽 서리를 싫어하네.
남쪽 내 벗들이 웃으며 서로 말하길
고운 얼굴이 임 생각에 반쯤 여위었을 걸.
숯불 지핀 화로가 생황을 덮일 때
장막 밑에 둔 고아주를 봄술로 바치련다.
난간에 기대어 문득 병방의 임 그리니
말 타고 창 들며 청해(靑海)물가를 달리겠지.
몰아치는 모래와 눈보라에 가죽옷 닳아졌을 테고
아마도 향그런 안방 생각하는 눈물에 수건 적시리라.
작품 해설
'춘사'에서는 잠을 못 이루는 봄밤의 외로움을 하소연하고 있다. 앵무새가 정답게 속삭이고 나비가 꽃 속에서 춤을 추는 광경이며 구성진 피리소리는 임을 기다리는 쓸쓸한 심정을 나타낸다 원앙새와 앵무새는 외로운 나와 대비되며 나비가 날아오르고 피리소리가 흩어지는 것은 흘리는 눈물과 대비된다. 서로 상치되는 심상은 작가의 외로운 심정을 드러낸다.
'하사'에서는 한여름의 정경 속에서 임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사물을 세세하고 정겹게 묘사하는 시인의 관찰력이 돋보인다. 쓸쓸함, 외로움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도 임에 대한 그리움을 꾀꼬리를 통해 작가의 처지를 대비시키며 나타내었다.
'추사'에서는 다양한 심상을 드러내어 가을의 쓸쓸한 풍경을 그리면서 임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었다. 임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옷을 지어 부치려는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는데 이러한 마음을 위로하는 것으로 달이라는 소재가 쓰여졌다.
'동사'의 전반부에서는 궁중궁녀의 외로운 마음을 그렸으며 후반부에서는 규방여인의 고독을 그려냈다. 외로운 궁녀의 심사와 앵
무새를 대비시키고 있다. 변방의 수자리 떠난 임을 그리는 규수의 고독도 그려진다.
곡자(哭子)
허난설헌
지난 해 사랑하는 딸을 잃었고 去年喪愛女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今年喪愛子
슬프고 슬픈 광릉 땅이여. 哀哀廣陵土
두 무덤이 마주 보고 있구나. 雙墳相對起
백양나무에는 으스스 바람이 일어나고 蕭蕭白楊風
도깨비불은 숲속에서 번쩍인다. 鬼火明松楸
지전으로 너의 혼을 부르고, 紙錢招汝魂
너희 무덤에 술잔을 따르네. 玄酒存汝丘
아아, 너희들 남매의 혼은 應知第兄魂
밤마다 정겹게 어울려 놀으리 夜夜相追遊
비롯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縱有服中孩
어찌 그것이 자라기를 바라리오. 安可糞長成
황대노래를 부질없이 부르며 浪吟黃坮詞
피눈물로 울다가 목이 메이도다. 血泣悲呑聲
▶주제 : 자식을 잃은 슬픔
어린 아들을 잃어버린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드러낸 한시이다. 자식을 생각하는 모정의 피눈물은 듣고 보는 이의 슬픈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특별한 비유나 수식 없이 감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었다.
雇工歌(고공가)
허전(許㙉)
집의 옷 밥을 언고 들 먹 져 雇工(고공)아, 우리 집 긔별을 아다 모로다. 비오 일 업 면서 니리라. 처음의 한어버이 사롬리려 , 仁心(인심)을 만히 쓰니 사이 절로 모다, 풀 고 터을 닷가 큰 집을 지어 내고, 셔리 보십 장기 쇼로 田畓(전답)을 긔경(起耕)니, 오려논 터밧치 여드레리로다. 子孫(자손)에 傳繼(전계)야 代代(대대)로 나려오니, 논밧도 죠커니와 雇工(고공)도 근검(勤儉)터라.
저희마다 여름 지어 가여리 사던 것슬, 요이 雇工(고공)들은 혬이 어이 아조 업서, 밥 사발 큰나 쟈그나 동옷시 죠코 즈나, 을 호 호슈을 오 듯, 무 일 걈드러 흘긧할긧 다. 너희 일 아니코 時節(시절) 좃 오나와, 의 셰간이 플러지게 되야, 엇그 火强盜(화강도)에 家産(가산)이 蕩盡(탕진)니, 집 나 불타 붓고 먹을 시 전혀 업다. 큰나큰 셰(歲事)을 엇지여 니로려료 金哥(김가) 李哥(이가) 雇工(고공)들아 먹어슬라.
너희 졀머다 혬 혈나 아니다. 소 밥 먹으며 매양의 恢恢(회회)랴. 으로 티름을 지어스라. 집이 가열면 옷 밥을 分別(분별)랴. 누고 장기 잡고 누고 쇼을
몰니, 밧 갈고 논 살마 벼 셰워 더져 두고, 됴흔 호로 기음을 야스라. 山田(산전)도 것츠럿고 무논도 기워 간다. 사립피 목 나셔 볏 겨 셰올셰라. 七夕(칠석)의 호 씻고 기음을 다 후의, 기 뉘 잘 며 셤으란 뉘 엿그랴. 너희 조 셰아려 자라자라 맛스라. 을 거둔 후면 成造(성조)를 아니랴. 집으란 내 지으게 움으란 네 무더라. 너희 조을 내 斟酌(짐작)엿노라. 너희도 머글 일을 分別(분별)을 려므나. 멍셕의 벼 넌들 됴흔 구름 여, 볏뉘을 언 보랴. 방하을 못 거든 거츠나 거츤 오려, 옥 白米(백미) 될 쥴 뉘 아라 오리스니.
너희 리고 새 리 사쟈 니, 엇저 왓던 도적 아니 멀리 갓다 , 너희 귀눈 업서 져런 줄 모르관, 화살을 젼혀 언고 옷 밥만 닷토다. 너희 다리고 팁가 주리가. 粥早飯(죽조반) 아 져녁 더하다 먹엿거든, 은혜란 각 아녀 제 일만 려 니, 혬 혜 새 들이리 어 제 어더 이셔, 집 일을 맛치고 시름을 니즈려뇨. 너희 일 라 며셔 리 다 괘라.
▶ 핵심 정리
지은이 : 허전(許㙉 ? - ? ) 진사(進士)를 했고, 무과(武科) 출신이었다는 기록이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전한다. 혹은 함종현감(咸從縣監)을 지냈다고 한다. 서울 천호동에 그의 묘가 있다.
갈래 : 가사(歌辭)
연대 : 선조 때(임진왜란 직후)
율격 : 3.4조 4음보
문체 : 운문체. 가사체
성격 : 교훈적(敎訓的). 경세가(警世歌)
구성 : 기-승-전-결의 4단 구성. 전 52구(句)
내용 : 농사로 나랏일을 비기어 백관들의 탐욕과 무능함을 개탄하면서, 파당을 버리고 협심하여 근검할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요지 : 조부모 어진 마음으로 머슴들도 근검하더니, 요사이 머슴들이 반목만 일삼다 도적의 침해를 받았다. 머슴들에게 근검할 것을 바라며, 새 살림할 머슴의 출현을 고대한다.
주제 : 임진왜란 직후 백관들의 탐욕과 정치적 무능 비판
기타 : ① 지은이를 이원익(李元翼), 또는 선조(宣祖)로 보는 견해도 있다. ② 이 노래에 대한 답으로 이원익(李元翼)의 ‘고동답주인가(雇工答主人歌)’가 있다.
▶ 시어 풀이
雇工(고공) : 머슴
언고 : 제쳐 놓고. 얹어 놓고
들 먹 : 들락날락하며 먹는. 이 집 저 집 빌어먹는. 못생기고 올바르지 못한
아다 모로다 : 아느냐 모르느냐
: 새끼[索(색)]
한어버이 : 조부모(祖父母)
사롬리하려 : 살림살이하려 할 때
인심(仁心) : 어진 마음
모다 : 모이어
고 : 깎고. 베고. 기본형은 ‘다’
셔리 : 써레
보십 : 보습. 쟁기나 극젱이의 술바닥에 맞추는 삽 모양의 쇳조각
쇼 : 소[牛(우)]
긔경(起耕)니 : 갈아 일으키니. 땅을 갈아 논밭을 만드니
여드레리 : 여드레 동안 가는 것. 곧 매우 큰 논
근검(勤儉)터라 : 부지런하고 검소하더라
여름 지어 : 농사 지어
가여리 : 부유하게
혬이 : 사려 분별(思慮分別)이
동옷시 : 동옷[胴衣(동의)]이. ‘동옷’은 남자가 입는 입는 저고리
호슈을 : 호수(戶數)를. ‘호수(戶數)’는 ‘5호(五戶)’의 우두머리
오 듯 : 새우는 듯. 시기하는 듯
걈드러 : 속임을 들어서
흘긧할긧 다 : 반목(反目)을 하느냐
아니코 : 아니 하고
오나와 : 사나와
의 : 가뜩이나
셰간이 : 살림살이가
火强盜(화강도) : 불도적[明火賊(명화적)]
나 : 오직
니로려료 : 일으키려는가?
먹어슬라 : 먹으려무나
졀머다 : 젊었다 하여
혬 혈나 : 셈 세려고. 계산하려고
아니다 : 아니 하느냐
소 : 솥에
매양의 : 언제나. 항상
恢恢(회회)랴 : 관대하고 여유 있게 하랴?
티름을 : 치르는 것을
지어스라 : 생각하자꾸나
가열면 : 부자가 되면
分別(분별)하랴 : 걱정하랴. 인색스럽게 생각하랴
누고 : 누구는
장기 : 쟁기
벼 셰워 : 벼 심어
: 날
야스라 : 매려무나
기워 간다 : 무성하여 간다
사립피 : 도롱이와 삿갓이
목 나셔 : 말뚝을 놓아서
셤으란 : 섬(멱서리)은
자라자라 : 서로서로
맛스라 : 맞서라
成造(성조) : 집을 짓는 것
명셕 : 짚으로 새끼 날을 싸서 엮은 큰 자리. 멍석
볏뉘 : 볕의 그림자. 햇볕
오려 : 올벼
오리스니 : 어리었으리요
새 리 : 새 살림
샤쟈 : 살고자. 살려
갓다 : 갔다 하되
모르관 : 모르기에
닷토다 : 다투느냐
팁가 : 추운가
주리가 : 굶는가
粥早飯(죽조반) : 조반(朝飯) 전에 먹는 죽
더다 : 더해다가
아녀 : 아니 하고
새 들이리 : 새 머슴
라 며셔 : 애달파 하면서
리 : 새끼 한 사리
괘라 : 꼬도다
▶ 비유어의 원관념
雇工(고공) : 벼슬아치
우리 집 : 나라[國家(국가)]
사롬리려 : 나라를 처음 세우려 할 때
큰 집 : 나라[國家(국가)]
큰 집을 지어 내고 : 나라를 세우고
여드레리 : 조선 팔도
밥 사발 : 벼슬자리
時節(시절) 좃 오나와 : 흉년이 들어서
火强盜(화강도) : 왜적
▶ 시구 연구
소 밥 먹으며 매양의 恢恢(회회)랴. : 한 솥의 밥 먹으며 항상 관대하고 여유 있게 하랴. 즉, 한 조정에서 벼슬살이를 하니 항상 남에게 서로서로 관대하라.
누고 장기 잡고 누고 쇼을 몰니, : 어떤 이는 쟁기 잡고 어떤 이는 소를 모니. 즉 서로 협동하니. 대구법
사립피 목 나셔 볏 겨 셰올셰라. : 말뚝에 도롱이와 삿갓을 씌워서 벼 곁에 세울지니. 즉, 새와 짐승을 쫓기 위해 허수아비를 세울 것이니
화살을 전혀 언고 옷 밥만 닷토다. : 왜적의 침범에 대비해서 무력 증강을 해야 할 터인데, 그 일은 제쳐 놓고 탐욕에 사로잡혀 다투기만 하느냐.
▶ 전문 풀이
(기) 집의 옷과 밥을 제쳐 놓고 이 집 저 집 빌어먹는 저 머슴아, 우리 집 소식[내력]을 아느냐 모르느냐? 비 오는 날 일 없을 때 새끼 꼬면서 이르리라. 조부모(祖父母) 살림살이 하려 할 때 어진 마음을 많이 쓰니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 풀을 베고 터를 닦아 큰 집을 지어 내고, 써레, 보습, 쟁기, 소로 논밭을 갈아 일으키니, 오려논 텃밭이 여드레 동안 갈이로다. 자손에게 이어 전하여 대대로 내려오니 논밭도 좋거니와 머슴들도 부지런하고 검소하더라. (우리 집의 내력)
(승) 저희마다 농사 지어 부유하게 살던 것을, 요사이 머슴들은 사려분별도 어찌 전혀 없어 밥그릇이 크나 작나, 동옷이 좋고 궂나, 마음을 다투는 듯 호수(戶首)를 시기하는 듯 무슨 일에 감겨들어서 반목만을 일삼느냐? 너희들 일 아니 하고 시절조차 사나워 가뜩이나 내 살림이 줄어지게 되었는데, 엊그제 왜적들에게 약탈되어 가산이 탕진되니 집은 오직 붙타 버리고 먹을 것이 전혀 없네. 크나큰 세간을 어찌하여 일으키려뇨? 김가 이가 머슴들아, 새 마음을 먹으려무나. (머슴들의 반목)
(전) 너희들 젊었다 하여 셈하려고 아니 하느냐? 한 솥에 밥 먹으며 항상 관대하고 여유 있게 하랴? 한 마음 한 뜻으로 어려움을 치르는 것을 생각하자꾸나. 한 집이 부자가 되면 옷과 밥을 인색스럽게 생각하랴. 어떤 이는 쟁기 잡고 어떤 이는 소를 모니, 밭 갈고 논 갈아 벼 심어 던져 두고, 날이 좋은 호미로 김을 매자꾸나. 산에 있는 밭도 잡초가 무성했고 무논도 김이 무성하여 간다. 말뚝에 도롱이와 삿갓을 씌워서 벼 곁에 세울지니, 칠석(七夕)에 호미 씻고 김을 다 맨 후에 새끼 꼬기는 누가 잘 하며 섬은 누가 엮으랴? 너희 재주를 헤아려 서로서로 맞서라. 추수를 한 후면 집을 짓지 아니하랴? 집은 내가 지을 것이니 움은 네가 묻어라. 너희 재주를 내가 짐작하였노라. 너희도 먹고 살 일을 분별을 하려무나. 멍석에 벼를 말린들 좋은 해가 구름이 끼어 햇볕을 언제 보랴? 방아를 못 찧거든 거치나 거친 올벼 옥 같은 백미(白米)가 될 줄을 누가 알아 어리었으리요. (머슴들의 근검 기원)
(결) 너희네 데리고 새 살림 살고자 하니, 엊그제 왔던 도적 멀리 아니 갔다 하되, 너희들 귀와 눈이 없어 저런 줄을 모르기에, 화살을 전혀 제쳐 놓고 옷과 밥만 다투느냐. 너희들 데리고 행여 추운가 굶는가. 죽조반(粥早飯) 아침 저녁 더해다가 먹였거든 은혜는 생각하지 아니하고 제 일만 하려 하니, 셈하는 새 머슴이 어느 때 어디 있어 집안 일을 마치고 근심을 잊으려뇨? 너희 일 애달파 하면서 새끼 한 사리 다 꼬도다. (새 머슴 출현 기원)
▶ 작품 해설
이 작품은 일종의 경세가(警世歌)이다. 농부의 어려움을 국사(國事)에 비유하여 농가(農家)의 한 어른이 바르지 못한 머슴들의 행동을 나무라는 표현 형식을 취해, 정사(政事)에 게을리 하는 조정 백관의 무능함을 꼬집은 글이다.
우리 집의 지나온 내력 소개와 머슴들의 반목 끝에 도적의 침해를 입게 되었음을 나타내면서, 머슴들의 근검 정신을 일깨우고, 새 살림을 할 수 있는 청빈(淸貧)한 머슴(벼슬아치)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조부모께서 살림을 시작하였을 때, 여드레 갈이나 되는 텃밭을 가지고도 모든 머슴들이 부지런하고 검소하더니, 요새 머슴들은 사려 분별(思慮分別) 없이 밥그릇 크고 작음이나, 동옷의 좋고 나쁨만을 다투어 화강도(火强盜)에게 가산을 탕진하였다는 것으로, 이 태조 건국 이후 당파 싸움에만 열을 올리다 왜적의 침입을 받게 되었음을 은유한 것이다.
왜적의 침입을 받고도 뉘우칠 줄 모르고, 사리 사욕(私利私慾)과 당파 싸움에만 정신을 팔고 있는 벼슬아치들에게 협동과 근검 정신을 일깨우며, 참신하고 청빈한 벼슬아치의 출현을 희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 대하여 화답의 형식으로 ‘고공답주인가(雇工答主人歌)’가 있다. 이 역시 영의적의 처지에 있던 작자가 정사보다는 당파 싸움에 정신을 쏟는 신하들을 나무라고 나라 임금을 경계하려는 의도에서 씌어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