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화상(阿度和尙)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고구려의 승려.
아두(阿頭)라고도 한다. 각훈(覺訓)이 펴낸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 따르면 본래 천축인(天竺人)이라고도 하고, 또 오(吳)나라 사람이라고도 하며, 위(魏)나라 굴마(堀摩)와 고구려 여인 고도령(高道寧)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에서는 아도를 전설적 인물인 묵호자(墨胡子)와 동일 인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묵호자는 신라 눌지왕(訥祗王) 때에 고구려로부터 신라 변방인 일선군(一善郡:지금의 善山郡)으로 들어와 모례(毛禮)라는 사람의 집에 숨어 지내다가, 성국공주(成國公主)의 병을 고쳐주고, 그 공로로 불교를 전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되어 있다.
또 그 자태가 묵호자와 같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묵호자가 바로 아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도는 그 풍모와 생김새가 특이하고, 신통력이 있어서 강(講)을 하면 그 때마다 하늘에서 묘화(妙花)가 비오듯 하였다고 전한다.
아버지는 위(魏)나라 사람 아굴마(阿굴摩)이고 어머니는 고도령(高道寧)이다.그래서 아도라고 이름한 것이며 서쪽의 엣서울 평양 사람이다.굴마가 사신으로 왔을때 도령과 상통(相通)한 일이 있는데도령이 그로 인해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장성하여 아버지를 찾자 어머니는 "위나라의 사신 굴마가 아버지"라고 일러 주었다.아도가 위나라에 들어가 아버지를 만나니 아버지는 위나라 임금께 데리고 갔다.임금이 승려 신분증<度牒>을 주어 승려가 되게 하고 아도(阿度)라는 이름을 내렸다.
현장(玄帳)화상 문하에 들어가 그의 법통(法統 ·衣鉢)을 전수 받으며 아도(我度)라는 이름을 얻었다.고국에 돌아온 그는 어머니의 뜻에따라 신라로와 임금의 딸인 공주의 병을 기도와 정진으로 병을 낫게해주고 스님의소원에 따라 천경림(天敬林·지금의 興輪寺)를하사받고 이곳에 암자를 지었다.이후 여덟곳의 큰 절과 5백여곳의 선찰을 차례로건립되고 불법이 크게 융통된것은 梁나라 무제 보통 8년(527)정미(丁未)로서 신라 법흥왕(法興王)13년(14년이 옳으며 異次頓이 순교한 서기 527년에 해당)부터 이다.도리사 뒤에 금수굴(金水窟)이 있는데 아도는 여기에 들어가 입적(入寂)했다.이곳이 곧 신라 최초의 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