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 함민복, 「부부」 전문
◇ 긴 상을 함께 들 땐 보폭까지 맞춰야
2011년 봄에 늦장가를 간 ‘강화도 시인’ 함민복. ‘부부’는 그가 마흔 즈음 노총각 시절에 쓴 시다. 후배의 부탁을 받고 총각 주제에 겁 없이 ‘밥상을 들 때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두 사람에게’로 시작하는 결혼식 주례를 했는데, 그걸 다듬은 것이다.
총각이 이런 이치를 어떻게 다 알았을까.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하고, 서로의 높낮이뿐만 아니라 걸음의 속도까지 맞춰야 하는 인생의 ‘긴 상(床)’.
신랑 신부의 성을 따면 ‘함박’인 그의 결혼식은 성대했다. 문단 안팎의 선후배 동료들이 대거 참석했다.
서른 중반부터 강화도 동막해변의 월세 10만 원짜리 방에서 바다와 갯벌의 생명력으로 자신을 단련하고, 생활비가 떨어지면 방 가운데 빨랫줄에 걸린 시 한 편을 떼어 출판사로 보내던 그가 ‘꽃보다 아름다운’ 신부를 만나 ‘세상에서 보기 드문 착한 부부’로 거듭나던 날.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라던 그에게 어머니 품처럼 둥글고 아름다운 밥상이 새로 생겼다.
그는 쉰이 돼서야 단짝을 만났다. 반세기를 돌고 만난 인연이라 더욱 애틋했다. 시를 배우고 싶어 왔다는 ‘문학소녀’와 함께 있으면 그럴 수 없이 편안했다. 마음이 맞고, 고향도 같고, 성장 과정도 비슷했다.
“신랑 신부 나이 합쳐 100살”이라며 짓궂게 놀린 사람은 주례를 맡은 소설가 김훈이었다. 가수 안치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의 가사를 바꿔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민복이는 알게 되지~’라는 축가로 좌중을 웃겼다.
그렇게 외로움에 쩔쩔매던 사람이 결혼했으니 이젠 형편이 좀 나아졌을까. 그는 “자다가 가위에 눌려도 깨워줄 아내가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하다. 남편과 아내라는 두 개의 심장으로 살아가는 느낌이 좋다”고 말한다.
“아직 부부에 관한 시는 많이 못 썼어요. 두 편 정도 썼는데 결혼이 익숙해지고 이야기가 쌓이면 더 많이 쓰게 되겠죠. 요즘은 인삼 장사하느라 시 쓸 시간이 많지 않아요.”
그는 결혼 후 강화도 공동상가에 인삼가게를 열었다. 그도 사람인지라 다른 가게가 잘되는 걸보면 묘한 질투심이 생길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생각한다. ‘우리가 원했던 만큼만 팔면 되는 거’라고.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고. 이런 과정을 통해 “자족의 테두리를 정하는 법과 삶의 가치관을 새롭게 하는 법을 배웠다”고 그는 덧붙인다.
사람이나 자연에 대해서도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살자고,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들어야 균형이 잡히는 상(床)의 자세로 살자고 다짐한다. 그의 시가 투명한 것도 이런 심성 덕분일 것이다. < ‘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고두현, 쌤앤파커스, 2018)’에서 옮겨 적음. (2022. 1.24.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