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수도권 업체에 적을 두고 있는 모 업체 실장입니다.
자격 취득한지는 꽤 됐고요.
제가 여기에 이런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자격을 취득하지 않은 분들은 속기사에 대한 환상을, 현업(사무소)에 종사하는 분들은 본인의 직업에 대한 자괴감을 토로할 정도로 자부심을 갖지 못함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지금 속기를 시작하는 분들께 먼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흔히 말하듯 속기는 말을 빨리 받아적는 기술 그 이상의 것을 요하는 직업입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심도있는 전문지식은 아닐지라도 세상의 모든 사안(각 사건)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해박하고 광범위한 지식을 요하는 직업이며, 인터넷에 떠도는 광고처럼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그런 직업은 더더욱 아닙니다.
특히 속기사가 되고자 하는 분이라면 우리말을 구사하고 문서화하는데 매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오로지 취업만을 위해, 광고에 현혹되어 속기 쪽에 발을 딛게 된다면 자격증을 취득하더라도 제가 알고 있는 적지 않은 분들처럼 도태되거나 장롱 속의 자격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살펴보니 지난 1년간 약 40여통의 이력서를 받았습니다, 그중에는 월급없이 일 좀 하자는 분도 다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생산한 4~5분 내외의 시험용 문서가 대부분 소설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어문규정은 낼름 잡아잡수셨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내용은 그냥 소설이 아니라 거의 판타지 소설에 버금갈 그런 내용이라면 문서를 생산하는 분이나 그 문서를 읽어줘야 하는 사람이나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발 부탁드립니다.
속기사의 길을 걷고자 하시는 분이라면 본인이 최소한 의뢰인보다는 우리말을 문서화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였는지를 먼저 숙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현업에 종사하는 분들(사무소 운영자)께 감히 말씀드립니다.
현재 속기사가 연간 100여명 내외로 배출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반면에 변호사는 2천여명이 배출되는 현실이고요.
사무실 수를 봐도 변호사사무소가 속기사무소 수보다 월등히 많습니다.
잘 알다시피 변호사 없이 소송(민사)을 할 수는 있지만, 속기사없이 녹취문서를 생산할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변호사들도 속기사의 도장 하나 받기 위해 속기사무소 문을 두드리는 것이고요.
물론 사회적 평가를 따진다면 속기사는 변호사와 비교가 안 되겠지만, 모두들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은 매일반입니다.
때문에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갖자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간혹 "모 사무소는 얼마인데..." 하며 터무니없는 비용을 제시하는 의뢰인들을 접하기 때문입니다.
속기사의 가치는 속기사 스스로 만들어 가며 그 가치의 객관적 지표는 공정요금입니다.
아무리 경쟁이 심화된다고 하더라도 명색이 속기사(저는 고급인력이라고 표현합니다만)라면, 문서를 생산하고 날인, 공증을 하여 그 문서에 생명을 불어넣는 직업을 가졌다면 생산되는 문서의 품질로 승부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제발 덤핑된 금액을 제시함으로써 전문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대부분 속기사들의 얼굴에 먹칠하는 행위는 자제하십시다.
그것은 경쟁이 아니라 파멸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간혹 다른 업체에서 문서를 생산하고 그 문서를 재생산하고자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지금 파악해 보니 지난 1년간 여덟 건의 재생산 의뢰가 들어왔고 그 중에 세 건이 서초동 M업체에서 생산된 문서입니다.
현재도 M업체에서 생산된 문서를 재생산하고 있는데, 솔직히 저는 그 문서를 보고 질겁을 하였습니다.
음질이 워낙 좋지 못하니 엉성하게 작성된 문서 내용이야 그렇다 쳐도, 전체적으로 엉망인 그런 조잡한 문서를 보면서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수치스러움과 함께 이건 정말 범죄행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8분 음원에 70만원이면 속기협회 공정요금의 두 배 정도를 청구한 금액이고, 그런 음원이라면 저 또한 그런 청구를 합니다.
하지만 그 만큼의 비용을 더 받았다면, 아니 그러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유료로 생산한 문서인 만큼 최소한 존재하는 내용은 문서화하고 어문규정은 준수하면서 문서를 생산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1주일 동안 만들었다는 그 문서를 보면서 진짜 속기사라는 게 그렇게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습니다.
알바를 하고 싶다는 문의가 가끔 옵니다.
오래전 시간이 급해서 딱 두 번 알바 의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알바하시는 분들께 문서생산을 의뢰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첫 번째는 그들이 생산한 문서를 폐기하고 날밤 새워가며 모두 새로 작성한 때문이었습니다, 일종의 사기 당한 기분이랄까...
두 번째 이유는 고객과의 약속 때문입니다, 좋건 싫건 비밀을 원칙으로 한다 해놓고 그 정보를 나 스스로 밖으로 유출한다는 것이 매우 잘못 됐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유야 어쨌건 녹취 알바를 하고자 하는 분께서는 초안문서의 중요성을 인식하셔서 품질확보에 만전을 기해주시고 의뢰를 하시는 분들께서는 외부인에게 문서생산을 맡기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한번쯤 판단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현업에 종사하는 분이라면 모두들 느끼는 생각이겠지만 속기계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단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요즘들어 많이 듭니다.
대한속기협회는 국회 안에 머물러만 있는 관계로 속기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속기사무소 종사자 쪽에는 별 관심이 없고 각 업체는 학원과 기종에 따라 공정요금마저 큰 차이를 보이는 혼란한 현실이니 고객들 입장에서 업체끼리 경쟁을 붙여 어떻게라도 가격을 낮춰보려고 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참고로 저는 "어디는 얼만데..." 하는 고객이 있다면 그 업체 가서 하시라고 합니다.
어쨌든 이러한 공정요금의 혼란은 아직 사회경험이 부족한 분들을 대상으로 터무니없는 과대광고도 마다하지 않으며 수강생 모집에 열을 올리는 각 학원 협회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어보이며, 이러한 공정요금의 혼란이 정리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속기 업계는 자칫 공멸의 길로 가지 않을지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휴일이라 시간이 남아 두서없이 몇 자 적어봤습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내용이 너무 딱딱하고 버릇없이 보였다면 양해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저로서 공감이 되는 글입니다.
다만, 다들 한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현실이 아닌 이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다소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요율에 대한 부분도 서로 협의점을 찾는다는 것도 역시나 마찬가지이지요.
저 역시 처음에 이상에 대한 열정이 많았지만 요즘은 현실을 알게 되면서 다소 힘이 빠진 건 사실입니다.
어쩌면 누군가 한 명이 나서서 주도를 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 같이 미천한 속기사가 나서려면 적어도 이 바닥에 10년 이상은 있어야 목소리를 낼 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협회나 사무소연합에서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 믿어 봅니다.
굉장히 잘 쓰셨네요..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
속기사를 꿈꾸는 한 사람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왜 속기사가 되려고 하는지 어떤 속기사가 되고 싶은지를요.
감사합니다.
기종문제 및 불미스럽다 생각되는 내용은 운영진과 상의하여 관련괸 글은 모두 삭제했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이 글을 통해서 처음 속기에 발을 내딛는 속기사님들께서 충고로써 받아들이되, 직업 선택에 큰 방황으로까지는 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작정 공무원만 보고 속기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글이군요..잘 봤습니다
공감가는 글입니다.
아직 일은 하지않지만 굉장히 공감가는 말이네요, 자부심 갖고 열심히 1급 준비하겠습니다.
속기사무소의 중심이 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 간절합니다.
공감가는 부분이 많네요. 그래서 한숨만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