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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이야기-임정섭, 영광의 주역
땅!
그 한 방의 총성과 함께 흙먼지가 튀었다.
그 튄 흙먼지를 뒤로하고 건각들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네 건각이었다.
400m계주의 그 첫 시작이었다.
반세기도 더 전으로 거슬러, 내 점촌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로, 군내 초등학교 대항의 육상경기 대회가 군내 최고의 명문인 문경중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 대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하이라이트 경기가 바로 그 400m계주 경기였다.
그 경기에 나선 초등학교는 모두 네 학교였는데, 그 중에서도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호서남초등학교와 그 학교에서 분교가 된 신흥의 점촌초등학교가 쌍벽이었다.
이날의 대회로 읍내는 이른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다.
학생과 교직원뿐만이 아니라, 읍민들도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개교 이래로 단 한 번도 호서남초등학교를 이겨본 적이 없는 점촌초등학교의 분발이 이날 경기에서 최대의 관심거리였다.
100m 달리기와 멀리뛰기 높이뛰기 등에서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마지막 경기인 400m계주에서 이기는 학교가 종합우승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 판이었으니 모두의 시선이 400m계주의 그 출발선으로 몰려가 있었던 것이다.
와!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우리 점촌초등학교 관중석에서 터진 함성이었다.
첫 번째 주자로 나선 김동우 선수가 날렵하게 앞서 달려 나갔기 때문이다.
간발의 차로 뒤따르는 호서남초등학교 선수를 끝내 뿌리치고, 김동우 선수가 두 번째 주자인 박락현 선수에게 바통을 넘겼고, 그 바통은 세 번째 주자인 조주태 선수에게까지 그 순위 그대로 넘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칫 호서남초등학교 선수에게 따라잡힐 수도 있는 거리를 앞서고 있었다.
참 불안 했다.
호서남초등학교 응원석에서도 끊임없이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리 점촌초등학교 응원석의 기쁨의 함성과는 달리, 뒤처진 자기네 선수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는 부추김의 함성이었다.
마지막 네 번째 주자로 나선 선수가 우리 점촌초등학교에서는 임정섭 선수였고, 호서남초등학교에서는 이병일 선수였다.
이병일 선수라고 하면 달리기에 있어서는 이미 군내에 그 이름이 잘 알려져 있는 선수였다.
임정섭 선수가 세 번째 주자인 조주태 선수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을 때만 해도 점촌초등학교 응원석에서는 불안의 기미가 없지를 않았다.
호서남초등학교의 이병일 선수의 폭발력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바통을 이어받은 임정섭 선수가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우린 이미 400m계주 우승에 종합우승이라는 그 결과를 알아차렸다.
마치 기관차를 기적을 울리면서 달리듯, 임정섭 선수의 내달림에 힘이 넘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땅을 박차는 그 발자국 소리와 헉 헉 거친 숨소리가 응원의 함성 속에서도 또렷이 내 귀에 잡혀들고 있었다.
기적의 순간이었다.
임정섭 선수를 비롯해서 김동우 박낙현 조주태 그렇게 네 선수, 그 기적의 순간을 일구어 낸 영광의 주역들이었다.
우리 점촌초등학교 학생과 교직원 모두의 가슴에 깊고 큰 감동이 담기던 그 날, 그 영광의 추억을 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날 그 영광의 주역 중 하나인 임정섭 친구가 아들 장가를 보냈다.
바로 엊그제인 2015년 2월 28일 토요일 오후 3시 30분, 서울 양재동 엘타워 그랜드홀에서의 일이었다.
하객들이 인산인해처럼 몰려들었다.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었다.
따뜻한 정감도 이곳저곳에서 가득 흐르고 있었다.
두루 인연을 맺은 삶의 흔적이었다.
그 삶, 또 하나의 영광의 주역이었다.
첫댓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계주
업치락 뒤치락
늘 마지막을 장식하던
그 경기
최후 주자로
그렇게 마무리 하셨으니
그 영광의 훈장이
세월이 마니 흐른 지금에도
반짝반짝 빛을 발하네요
쥔장어르신의 기억력
단연 짱!!!
점촌서 서울서 생전 안나오던 동문들까지 그렇게 많이 참석해주시고 부인이 안계신데도
동문 부인들까지 많이 참석해서 축하해주었다니 평소 혼주의 인품을 알수 있는 자리였네요.
많이 베푸시고 밥도 많이 사고 그러셔서 그랬겠지요. 참석은 못했지만 축하드립니다.
그날호서남을 땅을치고 통곡했네...병일이가 힘이빠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