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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고 싶지 않았다.
잠들지 못 하는 밤이 아닌 매일 밤마다 동요하게 될 까봐 그게 무서워 받기 싫었다.
“그게 누군데? 남자 친구?”
“정선에 있을 때 날라리 내 친구. 너도 알 텐데? 왜, 초등학교 땐 너도 같이 놀았잖아.”
“고등학교 가서 일진 된 그 김민성?”
“날라리나 일진이나.”
벨소리는 좀처럼 끊기 질 않았다.
난 때마침 울리는 밥솥의 신호에 밥그릇과 주걱을 들었다.
하지만 다진은 그 자리에 서서 폰과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전화번호 어떻게 알았어? 싸이월드나 그런 거 찾아다닌 거야?”
내가 눈 빠지게 찾아서 먼저 연락했다는 투의 무거운 목소리였다.
“버스에서 만났는데 김민성이 내 폰에 저장해 준거야, 그 이름도. 와아, 나 집에 가다가 아는 사람 만난 건 진짜 처음이야.”
“......폰 번호 잘 안 가르쳐 주잖아.”
“처음 본 사람이었다면 절대 안 가르쳐 줬어.”
“혹시나 해서 말해 두는 건데 이 형이랑 친하게 지내지 말아라. 아직도 소문 안 좋으니까.”
“......”
“나, 이런 말 별로 안 하는 거 알지? 진짜 새겨 둬.”
이런 저런 소문이 무성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같은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으니 그 쪽 방면에서의 소문을 쉽게 부정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3살 터울의 다진은 왜 그런 걸 알고 있는 걸까.
“그런데 김민성 의외로 착했어. 도서관에서 공부도 했고.”
“그걸 믿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지?”
식탁 위에 턱을 대고 젓가락 한 짝을 입에 걸친 다진은 어이없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학생 시절, 난 집 근처의 작은 초, 중학교를 나와 시내의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 곳에서는 그게 당연한 절차였다.
그래서인지 같은 중학교를 한 번 더 다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아는 사람이 많았다.
난 고등학교의 3번 있었던 반 배정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는 전부 반이 엇갈렸었다.
성격 탓에 친구를 사귀는 건 무리였다.
솔직히 시도도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난 친구가 없어도 점심 잘 먹고 수업도 잘 들었다.
소풍이나 체육대회 때 혼자 앉아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건 1년에 몇 번 안 되니까 참을 만 했다.
가끔 중학교 때 친구들이 찾아 와서 놀아주기도 했고.
입학 후 교정의 나무에 은행잎이 돋아나기 시작할 쯤 난 틈만 나면 학교 1층의 도서관에서 지냈다.
제1도서관은 책도 다양하고 시설도 좋았지만 난 사람을 피하는 게 목적이여서 제2도서관에 출입했다.
고대 문헌 같은 낡은 책이 가득한 그 곳은 학생을 위한 곳이라기보다 누군가의 개인 서재 같은 공간이었다.
있는 것이라곤 천장까지 닿는 책장과 사람이 여섯 정도 앉을 수 있는 나무 테이블 세트,
뜨거운 한낮에도 햇볕을 차단하는 두꺼운 겨울용 커튼.
그게 전부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공간은 나 혼자만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제1도서관에서 학생들 소리가 들릴 때면 긴장하기도 했지만 3학년 1학기가 시작하고 나선 그것도 좋은 음악소리로 들렸다.
그 정도로 편안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으며 점심시간의 낮잠을 즐길 때, 난 삐걱하고 열리는 제2도서관의 문소리에 눈을 떴다.
“여기에 오는 게 누군가 했더니 너였냐?”
입구에 등을 기댄 민성이 테이블에 엎드린 나를 보고 있었다.
머리에 손을 얹는 다던가 툭툭 치고 가기는 했지만 나한테 말을 건넨 건 중학교 이후로 처음이었다.
“네 아지트?”
아지트.
난 그제야 '아지트구나' 라고 자각하며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흐응. 내 꺼보다 더 멋진데? 학교 뒤에 다 쓰러져 가는 체육관 알지? 거기가 내꺼야.”
“응, 봤었어.”
“하굣길에 봤었지? 그것도 몇 번이나.”
“응.”
민성은 꽤 많은 친구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다.
가끔 다른 얼굴이 끼어 있을 때도 있었는데 불량스러워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야, 우리 아지트 바꿀래?”
민성이 의자를 끌어다 나와는 반대로 앉으며 말했다.
역시나 축구를 하고 왔는지 땀 냄새가 옅게 났다.
“바꾸는 게 싫으면 여기, 나랑 같이 쓰든가.”
“아니, 너 혼자 써. 체육관이랑 여기 둘 다. 어차피 난......”
“뭐? 왜 나 혼자 써? 툭하면 여기 오는 게 넌데. ......쳇. 애들 안 데려 올 테니까 같이 쓰자.”
그 말에 난 눈을 크게 떴다.
민성의 곁엔 소리를 지르거나 따라 다니는 여자애들이 있어서 이런 나조차 시시각각 그의 존재를 알 수 있었지만,
난 정반대라 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여기에 있는 걸 2년 넘게 들키지 않은 게 바로 그 증거다.
그런데 그 민성이 내 행동을 알고 있었다.
“......그럼 방학 전까지만.”
“졸업 할 때까지라 하면 될 걸 뭘 방학 전이라고 하냐?”
여름 방학 전이라고 한 건데 겨울 방학 전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난 자세히 말해 줄까하다가 그만 뒀다.
말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
“하하.”
순간 내 입에서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야, 왜 웃어?”
“정전기가.”
민성이 손바닥으로 머릴 문지르며 말한 탓에 정전기가 일어나 있었다.
중학교 때도 짝꿍을 하면 종종 볼 수 있었다.
머리칼이 너무 가늘어서 그렇다고.
어렴풋하지만 민성은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볼 때 마다 웃기냐?”
“아, ......응.”
희미하게 짓는 민성의 미소에 난 웃음을 멈췄다.
“웃겨 줬으니까 머리 좀 쓰다듬어 줘라. 좀 자다 가게.”
“자다 가게?”
“수학 그 선생은 못 자게 하니까 미리 자둬야 한단 거야. 넌 끝날 때 까지 서 있어 본 적 없지? 그거 꽤 고통이다.”
첫댓글 오오역시풋풋한글~~여기서제2도서관이 파생됬군요 재밌을듯~~
풋풋하다고 말씀해 주시니... -///- 재밌게 읽어주세요^^
넘 재밌어요~담편도 기대요!!!
기대하시는 만큼 재밌을 지 모르겠어요ㅜㅜ 댓글 감사합니다^^
너무 재미있어요 과거 회상인가보내요>?? 다음편도 기대해요
네, 과거 회상 맞습니다! 댓글 남겨 주신 거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