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장미로 전하는 러브 레터
진 연 숙
“큰딸, 사랑해!”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나에게 뒤 좌석이 앉으며 어머니가 불쑥 무언가를 내민다. 붉은색 장미 한 송이를 야쿠르트 통에 물을 담아 신문지로 둘둘 말아 포장을 한 엄마표 꽃다발이었다. 갑자기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며 꽃을 내미시니 얼결에 받고 나서 웃음이 났다.
절에 함께 기도하러 가느라 집 앞에서 어머니를 태우고 가는 길이었다. 운전하는 내내 뒤에 앉아 계신 어머니를 힐끔 쳐다보며 감사하다고 내 마음을 전하려 한다. 내일이 어버이날이라 나도 집에 붉은 카네이션 화분을 준비해 놓았다. 갑작스러운 사랑 고백이 어머니 역시도 쑥스러우신지 피죽이 웃으며 “평생 못해본 말이라 해 봤다. 아파트 담 끝에 담쟁이로 핀 붉은 장미 꽃이 너무 이뻐서 선물하면 좋아할 것 같아서 꺾어 왔다.”라고 말한다. “감사해요. 너무 예쁘고 좋아요.”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처음 들어본 사랑한다는 어머니의 말과 내가 좋아한다고 선물한, 투박하며 촌스러운 포장지조차도 다 좋아 보인다. 얼마 전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칭찬을 받아 본 기억이 없네. 잘한 일이 없어서인지, 칭찬이 인색했던 건지” 하며 투정 반 서운한 반 섞어 웃으며 진심을 얘기했었다.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마음에 담아 두셨는지 참으로 하기 힘들고 쑥스러운 사랑한다는 말을 용기 있게 하신 것 같다. 온종일 미소가 지어지고 기분이 좋았다. ‘나도 어머니에게 사랑받았구나, 인정받은 딸이었구나.’
집에 돌아와 붉은 장미꽃을 식탁 위에 통째로 올려놓았다. 붉은색이 더 선명하고 광택이 나는 것 같다. 나에게 향한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담은 러브 레터이다.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상상이 된다. 큰딸에게 주기 위해 동네 저 끝 편에 넝쿨로 소담스럽게 피어있는 장미꽃들을 눈여겨보시며 지나다녔을 것이다. 그 꽃 중 제일 예쁘고 커다란 꽃을 꺾었을 것이다. 물이 있어야 싱싱하게 시들지 않게 잘 살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얼른 물에 꽂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오는 길에 재활용 박스 속에서 마땅한 작은 야쿠르트 통을 찾아 깨끗이 씻어 꽂아 놓았을 것이다. 철 지난 신문 한 장을 꺼내 둘둘 통을 말아 꽃 포장지로 만들었다. 큰딸에게 전해 줄 생각에 엄마도 뿌듯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투박한 손으로 만든 곱고 예쁜 장미 꽃다발. 세상 어느 꽃다발보다도 소중하고 귀한 엄마표 사랑 전달법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가슴에서 꺼내어 표현할 용기가 없는 나에게 팔순이 넘은 노모의 사랑 고백이 감사하면서도 미안했다.
아련하게 옛 기억이 떠오른다. 오십여 년 전 초등학교 4학년 즈음이다. 어버이날을 기념하여 운동장에 학부모들을 초대해 노래를 불러주며 은혜에 감사드리는 행사가 있었다. 전교생이 모여 있었고 자녀들 옆으로 부모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부모님들 가슴에 형형색색의 카네이션이 달려 있었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엄마가 서 있었다. 가슴을 보니 붉은 카네이션이 꽂혀 있었다. 천방지축 동네방네 친구들과 놀러만 다니던 철없는 딸이 카네이션을 준비하지도 꽂아 주지도 않고 학교를 온 것이다. 어머니가 스스로 꽃을 꽂고 오신 모습을 보니 아주 미안하고 속이 상했다. 무엇을 한 것인지 자책이 들었다. 어머니의 웃음 띤 환한 얼굴을 보니 더욱 미안하였다.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는 풍습은 1900년대에 미국의 한 여성이 자신의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흰 카네이션을 하나씩 준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살아계신 어머니에게는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다 한다. 붉은 카네이션의 꽃말은 건강을 비는 사랑과 존경이라 한다. 어버이날은 부모님의 노고와 사랑에 감사함을 되돌아보고 더 깊이 느끼며 감사를 표현하며 앞으로의 효도를 다시 다짐해 보는 날인데 그날은 더 불효한 것 같다. 제대로 효도를 못 해 너무 미안스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앞으로는 해마다 부모님 카네이션은 꼭 달아 드리겠다고 그때 다짐을 했다.
그다음 해부터는 잊지 않고 붉은색 색종이로 겹겹이 오려 만든 카네이션을 드렸다. 웃으며 받아주시는 모습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해마다 만들어 감사 카드에 비뚤비뚤한 글씨지만 정성껏 써서 함께 전했다. 지금까지도 해마다 어버이날이 되면 꼭 붉은 카네이션꽃을 선물한다. 가끔은 어버이날 카네이션꽃을 볼 때면 어린 시절 철없어 미리 챙겨드리지 못했던 그때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어머니는 꽃을 좋아하신다. 특히 다음 해에 다시 피우기 힘든 카네이션도 물을 주고 사랑을 주어서인지 다시 싱그러운 꽃이 핀다. 남들은 다 죽이는 일년생이나 다름없는데 꽃나무를 잘 키우시니 능력이고 재주이다. 자식들이 사랑을 담아 드린 꽃이라서 더 정성껏 키워내신 건 아닐까. 우리를 그렇게 키워내셨듯이.
시장 구경을 하다가도 꽃집 바닥에 쌓여있는 오천 원짜리 작은 꽃나무 한 개만 사드려도 어머니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신다. 작은 베란다 밖 화분대에 나란히 줄을 세워 놓고 물을 주며 “이쁘다 이쁘다” 하면서 주문 외우듯이 이야기를 건네며 아이처럼 즐거워한다. 사랑 고백을 하듯이 마음을 전한다. 그 사랑을 받아서인지 꽃들은 해마다 봄이면 꽃을 피운다. 빨간 꽃, 파란 꽃, 노란 꽃, 분홍꽃등 등. 유난히 꽃들이 어머니의 집에서는 잘 피어 자란다. 주인의 사랑이 거름이 된 것인지. “꽃도 자식 돌보듯이 관심을 갖고 적절할 때 물을 줘야 해, 온도도 맞춰 주고 바람도 가끔은 쐬어주고 시든 잎은 얼른 떼어 줘야 해.” 사랑을 전하는 법을 알려주는 어머니의 설명하는 목소리가 따스하다.
엊그제 어릴 적 초등학교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고향에 사는 구순 맞은 친정어머니가 두어 달 전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여 동네 병원을 모시고 다녔단다. 소화제만 처방받아 드시다가 며칠 전 너무 심하게 아파 구급차를 타고 대전 큰 병원으로 와 진료를 받았다. 정밀검사 결과 대장암으로 근처 장기까지 많이 전이되어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한다. 자식들이 너무 놀라 경황이 없는데 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려 드려야 할지를 고민한다. 알려 드리면 충격에 더 악화할 것 같아 걱정된다며 울먹인다. 얼마 전까지도 친구와 안면도 꽃들 앞에서 만세를 부르며 웃던 친구와 그의 친정어머니가 함께 서있는 카톡 사진을 보며 가슴이 먹먹했다. 빨리 안정을 되찾고 건강이 회복 회기를 바라다가 팔순이 넘은 우리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 더 이상 나도 늦지 않게 이젠 용기가 있게 말로 전해야겠다.
“엄마, 나도 사랑해요. 엄마가 좋아하는 꽃구경 함께 가요.”라고
첫댓글 진연숙 수필 <붉은 장미로 전하는 러브 레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