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현충사
조 흥 제
1987년 1.19일. 겨울 휴가를 이용하여 집사람과 함께 충남 예산과 서산군 사이에 있는 가야산과 덕산온천을 1박2일간 다녀오기로 계획을 세우고 가야산 5만분의 1 지도를 중앙지도사로부터 구입. 용산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예산 가는 차표를 예매했다. 19일 아침 7시25분 차를 타기 위하여 6시50분 서둘러 집을 나서 제 시간에 용산 터미널로 가서 차를 탔다. 붉은 여명이 비치는 한강 상류를 따라 북상하다 제3한강교를 건널 때는 날이 완전히 밝았다. 마을에는 굴뚝에서 연기가 나온다. 연탄을 많이 때는 요즈음은 굴뚝으로 연기가 나가는 것도 보기 드문 향수이리라. 9시40분 경 예산터미널에 도착하여 덕산행 버스로 갈아타다. 10시15분 덕산에 도착, 너른 예산 평야는 끝 간데를 모르겠고 멀리 소가 누운 것 같은 능성이 보이는데 그게 가야산이란다. 식당에 들어가 설렁탕을 든든하게 먹고 산행 시발지인 상가리를 가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 하니 예상보다 비싸 걷기로 했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길을 걸으니 집 사람은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넓은 저수지가 있는데 태공들은 안 보인다. 상가리 등고마을에서 좌측길을 택하다. 조금 오르니 목장이 있다. 계속 오르니 눈 쌓인 길이 나오고 경사가 심하다. 바위 계곡이 나오는데 계곡물이 얼어붙어 미끄럽다. 바위 끝을 보니 외나무다리가 걸려 있어 조심조심 올라가다. 예상보다는 험하여 조금 겁이 났으나 강행. 50도는 됨직한 사면길을 찬찬히 가다. 길은 희미하여 자국만 나 있을 뿐 사람이 다닌 흔적은 없다. 능선상에 오른 것이 2시. 예정보다 1시간이 늦다. 지도를 보니 위쪽으로 난 Y자 봉우리 가운데가 석문봉, 석문봉에 오르니 나무로 지은 조그만 구조물이 있다. 사방이 탁 트이는 조망이 좋은 곳이다. 남쪽으로는 긴 능선 끝에 정상이 보이는데 그 길은 차단당하였다. 군부대가 있기 때문이다.가야산의 정상이다. 가야산의 진수는 종주에 있을듯 싶은데 정상을 차단당하여 아쉽다. Y자 계곡의 좌측능선을 타다. 건너 편 높이 보이는 봉이 일낙봉이고 그 너머 개심사가 있다고 표시돼 있다. 그 곳이 이번 산행의 목적지인데 시간이 없고 북쪽 음지라 미끄러울 것 같아 좌측으로 난 길을 찾으니 없다. 지도에는 있는데 없어 왔다갔다 하다가 산 속에서 어두워질것 같아 일락봉 가는 코스를 타고 내려오니 능선 안부에 좌측으로 난 길이 있다. 그 길로 내려오니 양지쪽이라 눈이 적다. 비록 예정된 일락봉-개심사 코스를 못 밟았으나 630 고지인 석문봉에 올랐다는 것에 자위 삼으며 반대쪽으로 내려가니 초가지붕이 있는 초가가 있어 한 커트 찰칵. 초가집은 수년전만 해도 많았는데 지금은 눈에 안 뜨인다. 포장이 안 된 길은 눈이 녹아 푹푹 빠진다. 안 빠지는 데를 조심조심 밟으면서 오랜 시간을 걸려 나와 6시 경 해미읍성에 와서 원형대로 남아 있는 성문과 성곽을 보다. 해미읍성은 태종 11년에 쌓은 성으로 군사 조련장으로 쓰였고 이순신장군이 여기서 머문 적도 있으며 대원군 때 천주교인 천여 명이 순교한 장소이기도 하다. 차 타고 덕산으로 와서 온천에 들러 여관에 들랴고 하니 없단다. 차 타고 나와 온양으로 오다. 온양은 온천으로 유명하여 온천이 있는 여관에 여장을 풀다. 30여 년 만에 온천욕을 하다. 20일 아침에 현충사(顯忠祠) 가는 택시를 타다. “2천원입니다.”하는 택시 기사의 말에 “알겠습니다.” 대답하고 시원한 길을 한참 달리니 여기가 민속박물관이란다. 현충사에 내리니 기사가 차에서 내려 와 문을 열어 주며 잘 가라고 인사까지 한다.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친절함이다. 현충사에 들르니 우선 경내가 넓고 나무나 뜰이 깨끗하고 잘 정동된데 놀랐다. 본전 앞 안내판에 임진왜란 때 구국의 명장인 성웅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출생지이며 선향(先鄕)인 이곳을 성역화시킨 내력이 적혀 있다. 순조 때 이곳에 사당을 세우고 일제 때 동아일보사가 주동이 되어 지금의 터전을 마련하고 박정희대통령이 이곳을 대대적으로 확장하여 오늘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본전에 들러 경건한 마음으로 이순신영정에 참배하고 좌측으로 나오니 이순신장군이 먹던 우물이 있어 그곳에 가서 한 바가지 먹으니 감개가 무량하다. 그 옆에 생가, 활터, 자손의 무덤을 돌아 보고 유물관에 들르다. 중앙에 거북선의 모형이 놓여 있고 주위에 임진왜란 때 쓰던 무기들이 진열돼 있고, 특히 장군이 쓰시던 장검(長劍 ‧ 193㎝, 5.4㎏) 앞에선 놀랐다. 이러한 큰 칼을 자유자재로 쓰셨던 장군의 힘 앞에. 귀로에 민속박물관에 들르다. 희문출판사에서 세운 3층으로 규모가 크다. 세시풍습의 민간의 생활상과 물건들, 복장 등 국영박물관에서는 볼 수 없는 민간 생활에 쓰인 세세한 부문까지 자세히 관찰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일상생활, 농경생활, 어민생활 등이 진열되어 있다. 3시에 온양에 나와 7시30분경에 서울에 닿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