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성의 성도인 타이위안(태원)을 떠나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무탑 잉셴목탑을 보고, 쉬안콩스로 향합니다. 타이항산맥과 헝산 사이, 옥수수밭이 펼쳐지는 넓은 평원을 지나갑니다. 벌판 너머로 이제 헝산과 이어지는 산맥들이 병풍처럼 등장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산 모습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지층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모습, 헝산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저 우뚝 솟은 바위산이 헝산 입구입니다. 이른바 중국의 5악으로 꼽히는 명산입니다. 그리고 헝산을 대표하는 명물이 바로 하늘에 떠있는 절, 쉬안콩스입니다.
드넓은 고원 평야 가운데 갑자기 솟아오른 산의 모습은 우리에겐 낯선 풍경입니다. 전형적인 산시성의 시골마을이 잠깐 나오고, 이제 바로 산으로 진입합니다.
헝산은 중국 5악 중에서 북악입니다. 5악은 오행사상을 땅에 적용한 것입니다. 동서남북과 중앙에 있는 가장 그럴듯한 산들을 꼽아 중국 고대 강역을 대표하는 산으로 정했습니다. 동쪽에 있는 동악이 그 유명한 태산(타이산), 서악은 화산, 남악은 형산(헝산)이며 북악이 바로 오늘 찾아가는 항산, 중국어로 헝산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중악이 소림사가 있는 숭산(쑹산)입니다. 일찌감치 신화와 신앙이 싹텄고, 수많은 종교 성지가 모여 지금도 중국의 정신문화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산들입니다.
북악 헝산은 아주 높은 산은 아닙니다. 해발 2000미터쯤이지만 저렇게 갑자기 깎아지른 듯 솟아나 계곡과 절벽이 아찔하고, 그 험난한 산 속 곳곳에 수많은 건축물이 지어져 감탄을 자아냅니다. 오늘 찾아가는 쉬안콩스는 기묘한 이런 절벽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극한의 건축을 보여주는 절입니다.
바위산 사잇길로 조금 들어가자마자 깊은 계곡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바로 쉬안콩스가 나타납니다. 바위 절벽 사이에서 너무나 갑자기 등장하는 그 모습은 과연 하늘에 떠있는 절이라 불릴 만합니다.
명불허전입니다. 중국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나라로 불리는 이유를 보여주는 듯한 건물입니다.
거의 수직인 거대한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저 절이 바로 쉬안콩스입니다.
이제 차에서 내려 입장권을 사고, 드디어 쉬안콩스로 올라갑니다. 절이 있는 산은 물론 맞은편 산 역시 거대한 바위산입니다. 지질학 교과서처럼 바위의 결과 맥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이 매력적입니다.
세상엔 정말 이상한 건물들이 많습니다. 이런 건물, 짓기는 어렵겠지만 있다면 어떨까? 싶은 것들은 누군가가 반드시 시도하는 법. 저 쉬안콩스가 바로 그렇습니다. 이렇게 아찔하고 황당한 건물은 처음이었습니다.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더 위험해보였고, 더 경이로웠습니다.
저 절벽 위 사찰 건물은 지상에서 30~50미터 정도 위에 있습니다. ‘하늘에 떠 있다’고 하기에는 조금 모자라 보이는 높이지만, 실은 예전에는 정말 하늘에 떠있었습니다. 지금은 저 협곡 바닥이 흙으로 메워져 올라온 것이고, 쉬안콩스를 처음 지을 때 절의 높이는 아래에서 지금의 두 배가 넘는 100미터 높이에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건축물이었던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저 절을 처음 지은 것이 무려 1600여년 전이란 점입니다. 중국 한나라 이후 조조 유비 손권의 삼국시대를 지나 남북조 시대, 대륙 북쪽을 지배했던 북위 시절에 저 절이 지어졌습니다.
북위는 한족이 아닌 선비족이 세운 북방 나라로, 불교를 국교로 삼아 크게 발전시킨 나라였습니다. 5세기에서 6세기경, 북위의 랴오란 스님이 저 절을 세웠고, 이후 역대 많은 왕조를 거치며 절은 증축되고 고쳐져 지금에 이릅니다.
바로 아래로 다가가 올려다봅니다. 그야말로 깎아지른 절벽에 간신히 매달려 있습니다. 절이 자리 잡은 바위벽은 저 절벽에서도 중간에 약간 들어간 곳. 그래서 낙석이나 떨어지는 눈에도 안전합니다.
특히 가장 모서리부분은 실로 아찔합니다. 가느다란 기둥들이 가까스로 건물을 지탱하고 모습은 보기만 해도 입이 벌어집니다.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극한의 건축으로 이 절이 꼽히는 이유일 겁니다.
전설같은 이야기에 따르면 이 절을 지은 것은 ‘꿈’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북위를 대표하는 황제는 북위를 크게 발전시킨 효문제입니다. 이 효문제가 어느 날 꿈을 꿉니다. 서기 494년, 북위가 수도를 다통(대동)으로 천도한 그 해의 일이라고 전해지는 전설같은 이야기입니다. 효문제의 꿈에 금빛 부처가 나타나 미소를 짓습니다. 효문제는 그 미소의 뜻이 궁금했지만 부처님은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황제가 꿈 이야기를 하자 신하들은 그 미소의 뜻을 자신들도 알 수가 없으나 상서로운 일이므로 일단 부처님을 모시는 절을 지어 모셔놓고 나중에 그 뜻을 알 수 있게 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합니다. 부처는 하늘과 땅 사이에 계시는 존재이고, 그리니 새로 지을 절은 하늘과 땅 사이, 바로 저 높은 절벽에 짓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랴오란이란 스님이 저 절을 지었고, 이름도 하늘에 떠있는 절이 됩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지을 수 있었을까요?
바로 중국의 오랜 건축기법인 ‘잔도’라는 방식의 덕분입니다. 잔도는 절벽에 사다리 모양으로 만드는 길입니다. 절벽에 구멍을 내고 그 속에 나무를 집어넣어 그 위에 길을 만듭니다. 또는 절벽 바위를 파내고 아슬아슬한 계단 길을 냅니다. 중국의 험한 산들은 이 잔도로 길이 나있고, 지금도 잔도를 만드는 공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들어가 훗날을 도모했던 심산유곡 촉나라 지역이 바로 이 잔도로만 갈 수 있는 험한 땅이었습니다. 촉나라보다 강했던 위나라는 이 험한 잔도 때문에 유비를 공격하기가 어려웠고, 험한 산세의 도움을 받아 촉나라는 소수의 병사만으로도 이 잔도를 지키며 시간을 벌고 힘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저 쉬안콩스를 지은 것은 이렇게 바위에 구멍을 내고 거기에 나무를 박아 외팔보(캔틸레버) 역할을 하게 하고, 그 위에 집을 지은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실제 집이 저 수직절벽에 버티고 서있을 수 있는 것은 바위에 집어넣은 나무 보의 덕분입니다. 보의 길이는 7~8미터 가량인데, 구멍 속에 3분의 2 정도가 박혀있고 튀어나온 3분의 1 정도가 집을 지탱합니다. 그러니까 튀어나온 부분은 겨우 3미터 안팎. 무척 좁은 집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진에서 보이는 저 가느다란 기둥들, 집 아래와 바위 사이를 이어주는 수직 기둥들은 실제로는 구조적으로 집을 버티게 하는 역할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아무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러 가느다란 것으로 세워 건물을 더 아슬아슬하게 보이게 하는 시각적 장치에 가까운 것입니다.
많은 건물을 본 것은 아니지만, 이 건물처럼 절로 카메라 셔터를 쉬지 않고 누르게 하는 건물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사진으로는 저 경사의 느낌이 드러나지 않아도 실제로 보면 그 절벽은 실로 압도적이고 위협적입니다. 저 바위에 새긴 `장관’이란 말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없이 쉬안콩스의 느낌을 단 두자로 종결했습니다. 장관, 정말 장관이란 말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장관’ 글씨입니다. 호방한 필체가 그 느낌을 잘 살려줍니다. 그런데 ‘장’자가 좀 독특합니다. 장할 장(壯) 자에는 원래 점이 없는데 이 글씨에는 점을 찍었습니다. 누구의 글씨일까, 서명이 있습니다. 태백, 바로 중국의 시선으로 불리는 이태백입니다. 이태백이 이 놀라운 장면을 보고 쓴 글씨인데 원본은 사라졌고, 그 필체를 돌에 새겼습니다.
이태백이 이 건물을 보았을 당나라 때에는 지금처럼 바닥이 높아지기 전이었고, 바로 옆에 댐을 만들기 전이어서 지금처럼 졸졸 흐르는 물길이 아니라 높은 절벽 아래 강물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수면에서 100미터 위에 있었던 저 건물을 보고 아래 계곡에서 뱃놀이를 즐기던 이태백은 ‘장관’이란 글씨를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점을 찍었을까요?
두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글씨가 좀 왼쪽으로 치우쳐 균형이 맞아 보이지 않자 오른쪽에 점을 찍어 균형을 맞췄다는 설입니다.
두번째는 글씨를 쓰고 쉬안콩스를 떠나 돌아가던 중 이태백이 다시 되돌아오더니 “쉬안콩스의 위용에 견줘 내 글씨가 부족했다”며 그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점을 더해 글씨를 완성했다는 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두번째 설이 맞으리라 여깁니다. 천하 최고의 상상력을 지녔던 이태백 역시 놀랐을 만큼 쉬안콩스의 모습은 장관이니까요.
자, 어찌됐든 저 절을 지은 꿈이나 점을 하나 더 찍었다는 이태백의 이야기나 모두 전설같은 이야기일 테고 중요한 것은 저 건물의 내부겠지요. 이제 옆으로 난 지그재그 계단을 올라 드디어 쉬안콩스로 올라갑니다.
조금만 올라와도 그 위용이 느껴집니다. 사진 아래 관광객의 모습으로 느낌을 가늠하시길. 눈높이가 달라지니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이제 입구입니다. 명소답게 수학여행 온 중학생 녀석들이 바글바글합니다.
문 안으로 들어가면 절벽이 실감납니다. 좁은 길, 그리 높지 않은 난간 때문에 겁이 날 정도입니다.
건물 폭이 너무 좁은 관계로 관람객들은 한 방향으로만 갈 수 있습니다. 중간에 되돌아가면 안 된다는 거죠. 아래층으로 끝까지 갔다가 위층으로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입구 부분입니다. 뒤쪽 풍경도 보시겠습니다.
댐이 있는 협곡이 보입니다. 조금 더 올라가면 높이가 확실하게 실감납니다.
얼마 올라온 것 같지도 않은데 금세 절벽입니다.
실제 건물은 너무 좁고 아슬아슬해 사람이 상주하지는 않습니다. 건물 안에는 그래도 제법 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제 사진이 흔들린 관계로 자료 사진으로 소개합니다.
불상이야 친숙하지만 어째 느낌이 좀 묘하지요?
이 절은 아주 독특하게 불교만이 아니라 유교와 도교도 함께 모시는 절입니다. 유불선이 혼합된 종교의 백화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당시 불교는 중국에 선보인 지 그래도 오래되지 않은 신생 종교였습니다. 빠르게 성장했지만 여전히 민간에선 유교와 도교의 위세가 강했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전략을 씁니다. 너희가 숭배하는 유교와 도교의 공자와 노자가 실은 모두 석가모니의 제자인 아난과 가섭의 화신들이었다, 이런 거죠. 그래서 석가가 양옆에 유교와 도교의 아이콘들을 모시는 형태의 절들이 생겨납니다. 이 쉬안콩스도 그런 식으로 불교를 중심으로 다른 종교들을 습합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여기에는 또한 정치적 이유도 있었습니다. 이민족 나라 북위는 한족들을 지배하기 위해 불교를 활용합니다. 기존 한족의 종교 대신 새로운 종교 불교를 새로운 나라의 지배이념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리고 북위의 황제들이 곧 부처라는 논리로 백성들을 감화, 지배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자, 재미없는 종교 이야기는 멈추고 절 구경을 계속 하겠습니다.
한 층 더 올라가니 뒤쪽 모습이 더 아찔해졌습니다. 앞은 더합니다.
올라왔던 아래 난간이 저렇게 아슬아슬했나, 내려다보니 오싹하군요.
도대체 이걸 만드는 사람들은 어떠했을까, 얼마나 죽었을까, 특히 지붕 얹는 사람들은 더 어려웠을 텐데…. 온갖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아래서 올려다보는 것도 장관이었지만, 올라가 내려보는 것도 분명 장관입니다. 이제 거의 다 보았습니다.
이 절이 무려 1600여년 전에 지어졌다는 사실은 실로 놀랍습니다. 목조건축물은 나무라는 재료의 특성상 부재를 일정 주기마다 갈아줘야 합니다. 그 오랜 세월 서까래 하나, 기둥 하나, 보 하나…. 계속 손보며 보수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그러나 그런 특성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독특한 지형과 기후의 덕분이 컸을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이 절이 매달린 절벽 부분은 위로 벽이 조금 더 튀어나온 부분이어서 안으로 들어가 낙석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것은 이 산시성이 건조한 지역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산시성의 강우량은 연간 400밀리미터 정도. 비가 적어 나무가 물기를 맞을 일이 적고, 그러니 당연히 잘 썩지 않아서 이 건물은 오랫동안 이 아슬아슬한 공간에 서서 버텨올 수 있었습니다.
저 쉬안콩스를 보면 누구나 절로 의문이 듭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놀라운 동시에 짜증이 날 정도인 건물을 지었던 것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북위를 세운 선비족에게 산악문화가 있었던 점도 하나로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사소한 것일 뿐. 인간을 극한의 경지로 올려세우는 것은 역시 종교의 힘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해내기 불가능해 보이는 수많은 건축물을 만들게 했던 것은 바로 종교의 힘이었습니다. 극한의 건축, 상상을 뛰어넘는 건축을 시도한 것은 세계적으로 융성했던 큰 종교들의 공통점이었습니다. 황제가 곧 신이었던 이집트의 피라미드, 상상을 초월하는 높이의 고딕성당, 남미의 거대 석조건축물들과 신비로운 앙코르와트 같은 것들이지요.
물론 이 쉬안콩스는 이런 거대 건물들과 다른 극한의 입지에 시도한 불가능의 건축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서양의 또 다른 `하늘에 떠있는 수도원’인 이곳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스의 명물, 메테오라 수도원입니다. 도무지 올라갈 길이 없어 보이는 바위 봉우리의 위에 세운 집입니다. 메테오라 수도원은 그리스 테살리아 지역 수직 바위 위에 세운 수도원들을 말합니다. ‘메테오라’란 말 자체가 ‘공중’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이 수도원들은 절대적으로 고립된 공간 속에 있기로 유명합니다. 저렇게 바위 위에 집을 지은 다음에는 통로도 없앴습니다. 위에서 도르래로 오르내려 주는 줄바구니로만 올라갈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신을 향한 마음이 아니었다면 지을 이유도, 지을 의지도, 저 위에서 저렇게 살 필요도 없겠지요. 종교란 어차피 기적을 추구하는 것이니까요.
이 황당할 정도로 놀라운 메테오라의 참모습은 직접 가보면 좋겠지만 영화를 통해서 느껴보실 수 있습니다. 특이한 장소 골라서 찍는 게 장기인 007시리즈 중 <유어 아이즈 온리>의 마지막 결투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지금 봐도 신나는 영화이니 아직 안 보신 분들은 한번 보시면서 메테오라도 간접 체험해보시길 바랍니다.
쉬안콩스는 메테오라와 함께 우리나라에 있는 특별한 절, 그리고 비슷한 절 건물도 하나 떠올리게 합니다. 메테오라와 이곳 모두 못 가봐서 아쉬운 곳, 언젠가 저도 가보기를 바라는 곳입니다. 명산 중의 명산, 금강산에 있는 보덕굴입니다.
보덕굴은 경치 좋기로 천하제일이라는 금강산에서도 경치가 빼어나다는 만폭동에 있습니다.
이 만폭동 경치가 얼마나 좋았는지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중국 명나라에서 정동이라는 사신이 왔는데, 금강산을 유람오더니 만폭동의 경치에 취해 거의 넋이 나갈 지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보덕굴에 다다른 뒤, “여기가 진짜 불국토의 경지이니 여기서 죽어 조선사람이 되어 오래오래 부처님 세상에서 살고파”라고 말하고 스스로 깊은 연못으로 자기 몸을 던졌답니다. 믿어야 할지 모르겠으나 그만큼 절경이란 것이지요.
이름에서 드러나듯 보덕굴은 굴 앞에 집을 지었습니다. 그 스케일이 쉬안콩스보다 작고, 지지방식도 다릅니다. 현공사는 절벽에 기둥을 박아 지탱하지만 저 보덕굴은 수직기둥으로 버팁니다. 그 기둥이 하나뿐이어서 더욱 놀라워 보입니다.
» 법기봉 절벽에 보덕굴이 있는데, 굴 입구를 막아 보덕암을 지었다. 고구려 때 창건해 1675년에 다시 세웠다. 보덕암 뒤로 대·소 향로봉이 보인다. 겸재는 <보덕굴도>를 그려, 법기봉과 보덕암은 오른쪽에 대·소 향로봉은 왼쪽에 배치했다.
건축적으로 이 건물에서 주목받는 부분은 지붕입니다. 지붕이 여러 단이어서 3층집처럼 보이지만 1층 집입니다. 경사진 절벽에 집을 짓다 보니 그 경사에 맞춰 지붕을 계단식으로 얹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붕 모양이 다 다릅니다. 맨 아래 집 바닥부분 가장자리에 댄 지붕은 눈썹지붕, 그 위에 진짜 지붕은 팔작지붕, 그 위의 지붕은 맞배지붕, 그리고 맨 위에는 우진각 지붕.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 쓰는 지붕 4가지가 모두 이 작디 작은 건물에 들어가 있습니다.
보덕굴이든, 메테오라든, 현공사든 이런 놀라운 건물들을 ‘왜 쓸데없이 위험하게 저 짓이야’라고 생각한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신을 향해, 진리를 향해 일생을 거는 종교인들에게 이런 기적같은 건물들은 그 자체로 삶의 의미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건물들을 건축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부질없을 겁니다. 현공사, 쉬안콩스는 건축의 양식이나 미학의 관점으로 보면 빼어난 건물은 분명 아닙니다. 오히려 조잡한 건물일 것이겠지만, 종교의 힘으로 지은 저 놀라운 건물은 조잡함을 생각할 여지도 없는 놀라움으로 우리를 압도합니다. 상업성과 비용을 따지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런 건물들을 짓는 것은 이젠 힘들 것이고, 그래서 저 쉬안콩스는 경이롭고 불가능한 건축으로 계속 남아있을 것입니다.
참, 날카로운 수직 절벽 위에 올라탄 경이로운 건축물을 만나보고 싶다면 중국이나 그리스, 금강산까지 가지 않아도 됩니다. 서울 시민들의 영원한 친구, 관악산 연주대로 가시면 됩니다^^. 쉬안콩스도 멋지지만, 우리 곁에 늘 반겨주는 연주대도 늘 멋진 곳이 아니겠습니까.
돌아오는 길, 다시 돌아서서 한참을 다시 쉬안콩스를 바라봤습니다. 인간이란 같은 인간을 때로 질릴 정도로 놀라게 합니다. 종교와 건축은 그래서 우리를 매혹합니다. 마지막으로 ‘현공사’라는 이름의 느낌을 잘 보여주는 자료 사진입니다.
사진으로 볼 때와 실물의 느낌은 정말 달랐습니다. 현공사, 분명 하늘에 떠있는 절입니다. 그리고 중국, 분명 이상한 나라 맞습니다. 산시성과 쉬안콩스는 가장 중국스러운 중국을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