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밭에서는 모두가 황홀하다 (외 2편)
허형만
햇살도 바람도 노랗게 물든 유채꽃밭 한 마지기가 제주에서 도착했다. 유채꽃밭을 시나브로 거니노라면 제주 앞바다 너울성 파도 소리도 노랗게 물들어 있고 그 위를 나는 갈매기 깃털도 노랗게 젖어 있다. 유채꽃밭에 놀러 온 구름 꽃과 꽃 사이 그늘도 노랗다. 유채꽃밭에서는 모두가 황홀하다.
시간의 무늬
참꼬막 껍질에 새겨진 파도의 무늬 그 사이사이 숨겨진 푸른 별 자국 개펄처럼 부드러운 물결 피부 서서히 스며든 투명한 시간
모든 역사는 시간의 무늬다.
한겻의 숲
아침나절, 이 숲 의 나뭇잎들이 온통 별빛이에요. 사람들은 한겻이라 햇발에 반짝인다 생각 할 것이나 아니에요, 그것은 편견 때문이에요. 하늘이 가까울수록 더 빛나는 저 이파리 를 보세요. 거문고자리의 직녀성과 독수리자리의 견우성 이에요. 주변의 별들이 은하수처럼 출렁이는 숲 은 지금 조용한 축제를 벌이고 있어요. 여기서는 밤과 낮의 구별이 없어요. 사람들만이 한사코 낮과 밤, 너와 나, 좌우 로 나눠요. 그것은 편 가르기를 좋아하는 욕망 때문이에요. 보세요. 불꽃처럼 터져 오르는 공기 를. 저 별들의 숨소리와 함께 은은하게 번지는 파동 을. 나는 지금 우주의 중심에 둥둥 떠 있어요.
—시집 『만났다』 2022.11 --------------------- 허형만 / 1945년 전남 순천 출생. 1973년 《월간문학》에 시, 1978년 《아동문예》에 동시로 등단. 목포대학교 명예교수. 시집 『청명』 『풀잎이 하나님에게』 『만났다』 등 20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