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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후 레더 rip 현상시 가죽 레이스등으로 커스텀 수선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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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 제로니모가 느꼈을 그 원통함과 분노가 스토리를 읽는 것 만으로도 와 닿는군요...
미국 역사상 아메리칸 인디언 중에서 가장 극렬하고 호전적인 인디언 부족이 아파치 족이 되게 한 배경은 Geronimo라는 인디언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백인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는 잔인한 살인자이지만, 인디언의 눈으로 보면 그는 용감한 전사이며, 지혜와 식견을 갖춘 지도자였습니다. 묘하게도 오늘 날 미국 사람들은 아파치라는 말을 용맹과 승리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만든 군사용 헬리콥터에 아파치라는 이름에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말입니다. Geronimo 의 인생을 한 번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입니다.
Geronimo는
그는 1829년 오늘의 미국 New Mexico 주에 해당하고, 당시로서는 Mexico의 영토였던 곳에서 아파치 족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의 인디언 이름인 Goyathlay (인디언 말로 “하품하는 사람”이라는 뜻)과는 다르게 그가 Geronimo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Mexico 군인들이 붙여 주었다고 한다. 아파치 족의 지도자로서 그는 용맹스럽게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냈고, 각종 기습 공격에 능하였다. Geronimo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마지막까지 미국 정부에 극렬하게 대항하였던 아메리칸 인디언의 지도자로 기록되고 있다. 그 결과, Geronimo는 아파치 인디언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서부 시대에 미국 Arizona 와 New Mexico주에 거주했던 미국 개척인 들에게 Geronimo는 공포의 살인자로 부각되었고, 이런 이미지가 오늘까지도 남아있다. 그러나 아파치 족에게는 어려움에 처해서도 굴하지 않는 용기와 희망을 심어준 영웅이 되었다. 미국 인디언들은 대대로 농사와 사냥을 주로 하며 살았고, 그러다 식량이 떨어지면 이웃 마을을 습격하는 것이 하나의 관습이었다. 습격과 복수는 미국 인디언들에게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되어 왔다.
미국 서부 시대 초기 개척인들이 Arizona와 New Mexico주에 도착을 하고, 스페인 정복자들이 Geronimo가 살고 있는 지역을 침입해 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국 인디언을 그들의 노예로 만들거나 아니면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강요하였다. 순박한 Geronimo에게도 비극의 순간이 다가 오고 있었다 1858년 그가 Mexico에서 장사를 마치고 집에 와 보니, 그의 아내,어머니, 세 명의 자녀가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것을 보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는 백인을 보이는 대로 죽일 것을 맹세하게 된다. 그는 원래 아파치 인디언의 영적, 지적인 지도자 였고, 병을 치료하는 주술사 역할도 하였다. 그가 비록 아파치 인디언의 추장은 아니었지만, 아파치 추장들은 그의 지혜와 지략에 전적으로 의지하였다.
전투 태세의 Geronimo
1876년 아파치 인디언들이 강제로 동부 Arizona지역의 San Carols 보호 구역으로 내몰릴 때, Geronimo는 그의 추종 세력과 함께 Mexico로 도망을 하게 된다. 그 곳에서 그는 곧 붙잡혀 San Carols로 압송된다. 그로부터 1870년대 말까지 그는 그곳에서 조용한 생활을 보낸다. 그러나 1881년 한 아파치족 예언자가 무참히 살해되는 것을 보고서, 그는 Sierra Madre 산에 있는 인디언 비밀 캠프로부터 내려와 전면적인 보복을 하게 된다.
1875년 Rio Grande강 서쪽에 거주하는 모든 아파치 족은 San Carols 인디언 보호 구역으로 이동하여 살 것을 명령 받는다. Geronimo는 세 번이나 도망하였고, 설령 인디언들이 투항한다 하여도, 항상 그만은 체포되지 않고 도망을 하였다. 1876년 미 육군은 모든 아파치 인디언을 보호 구역으로 옮기려고 노력하였으나, Geronimo는 그들을 비웃으며 십년이나 넘게 신출귀몰하였다. 이 때 지방 신문들이 Geronimo의 활동을 과대해서 말하게 된 까닭에, 그는 가장 악명높고 공포스러운 인물이 되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잡히게 될 당시에는 5,000명의 미군 병력 (당시 미국 전체 병력의 1/4)과, 3,000명의 Mexico 병력이 동원될 정도였다.
1886년 3월25일 Geronimo는 미 육군 George Crook 장군에게 투항하였으나 다시 도망하였다가, 1886년 9월4일 Nelson Miles 장군에게 마지막으로 투항하였다.
전투중의 Geronimo와 그의 부하들
미국 정부는 약속을 어기고, Geronimo 와 450여명에 달하는 그의 부하, 식솔들을 멀리 떨어진 Florida의 Fort Marion과 Fort Pickens에 있는 수용 시설에 감금한다.
Florida 수용소 시절의 Geronimo
1894년 그는 다시 Oklahoma 주의 Fort Sill로 옮겨진다. 이곳에서 그는 농부가 된다. 그리고는 1904년 Saint Louise에 열린 박람회에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여기서 그는 굴욕적으로 Geronimo 기념품을 팔았다. 그 이듬해인 1905년 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의 취임식 퍼레이드에도 몸을 실었다.
캐딜락을 타고 Roosevelt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Geronimo
Geronimo가 마지막으로 미국 정부에 투항함으로써, 미국 정부와 아메리칸 인디언의 전쟁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그는 미국 정부와 마지막으로 싸운 인디언 지도자였다. 그가 체포될 때, 그의 부하들과 식솔들은 Florida로 이주하면서, 결핵과 다른 질병으로 1/4이 죽어갔다. Geronimo는 결국 많은 한을 간직하며 고향 땅을 다시는 밟아 보지 못하고 1909년 2월 17일 전쟁 포로의 몸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는 현재 Oklahoma 주 Fort Sill (437 Quanah Road, Fort Sill, OK 73503, USA)에 있는 아파치 묘지에 잠들어 있다.
말년의 Geronimo
Geronimo의 아내 Taz-ayz-slath와 아들
Geronimo가 남긴 말들
“다른 인디언 아기들과 마찬가지로 태양이 나를 따뜻이 대해 주었고, 바람이 나를 달래 주었으며, 나무가 내게 휴식을 주었다. 남들이 나를 헐뜯을 때에도 나는 흔들리지 않고 평화롭게 살았다. 이제 나는 편안히 먹고 잠들 수가 있다. 그리고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또 어디든 편안한 마음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기병대는 그들의 잘못은 위에 보고하지 않고, 인디언의 과오 만을 보고한다. 우리 인디언들은 서로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속이지 않기를 이미 맹세하였다.”
“우리 인디언들이 쓸모없는 존재라거나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의 하나님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그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저 밝은 해와 어두움, 그리고 바람은 우리가 하고 싶은 말들을 빼놓지 않고 듣고 있다.”
“어릴 적에 우리 어머니는 ‘Usen’ 에게 강인함과 건강,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어떤 때 우리는 마음 속으로 기도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 우리는 소리 내어 기도한다. 어떤 때 늙은이는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하고… 그리고 ‘Usen’에게도.”
“바람이 거칠 것 없이 부는 자유로운 곳, 초원에서 나는 태어났다. 거기는 태양 빛을 가리는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다. 어느 무엇도, 어느 누구도 나를 가둘 수 없는 그 곳에서 나는 태어났다.”
- P&L Report
"아파치의 주"(Apache State)라고 부르는 것처럼 아파치를 위시한 인디언의 영토였던 아리조나에는 현재에도 가장 많은 인디언이 보호구역이 있다. 그 중에서 유명한 부족은 나바호, 호피, 아파치, 그리고 피마족이다. 가장 큰 곳은 나바호 인디언 거주 지역으로 이 곳은 아리조나 주 북동쪽 끝에 위치해 있다.
백인에 의해 점령당한 아리조나 주는 인디언 보호구역을 설정하여 132개 인디언 부족을 보호구역 안에 몰아 넣었는데 그 중에서 아파치 부족의 족장인 제로니모가 1881년 인디언의 독립운동을 일으켰다.
인디언 말로 "하품하는 사람"(Goyathlay)라는 이름을 가진 제로니모는 전쟁터에 나가기 전 자신의 처자식을 죽인 후(우리나라의 계백 장군과 똑같다) 1500여명의 인디언을 이끌고 게릴라 전술을 사용하여 미기병대를 괴롭혔다.
이 전쟁은 5년을 끌다가 1,000여명의 인디언이 식량과 무기부족으로 사망하고 400여명이 포로로 잡혔다. 이들을 남부의 마이애미까지 후송하는 3달동안 200여명이 사망하고 218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인디언의 마지막 폭동"(독립전쟁)으로 미국 역사에 기록된 이 재판에서 족장과 그 아들들은 사형에 처해졌고 나머지 인디언들은 80년의 징역이 선고되어 실질적으로 아파치의 씨를 말리는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제로니모의 용맹성과 지략을 기리며 현재도 미공수부대가 지상에 낙하할 때 외치는 구호가 "제로니모"이다.
자연스러운 씨말림과 차후에 일어날 수도 있는 미국 독립운동에 대한 가능성의 차단으로 지금도 아메리칸 인디언들에게 술, 담배, 합법적 마약등은 무료로 지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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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것이 웨스턴 그 자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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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크~ 헬라이드 어렵게 구해서 본 영화였는데 ... 맨위 조끼 탐납니다 ^^
관심 감사합니다~! ^^ 좋은 주말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