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 호흡을 길게 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그 뜨겁던 뙤약볕, 아니 올해는 특히 영화제목처럼 '불멸의 뙤약볕'이라고 해야 겠다. 하지만 말복이 지나고 입추가 지나고 처서(8월 23일)가 다가오니,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하기가 이를 데 없다. 한마디로 '이젠 살만하다'라는 것이 이런 것 같다.
주부들이야 주로 계절을 앞서가며 MD가 추천하는 여성의류, 전자제품등을 판매하는 홈쇼핑을 보면서 시간이 가고 오는 것을 느끼겠지만, 클래식음악라디오를 그래도 많이 듣는 편인 나는 다른 방법으로 계절의 변화를 알아 챈다. 즉, 청취자들의 신청곡으로 세월의 변화를 느낀다. 세상에나~ 대단하다고? 하지만 너무나 간단하다. 봄에는 비발디의 사계 중 봄, 그리고 여름에는 여름, 가을에는 가을, 겨울에는 겨울, 딱 그렇다. 조금 더 아는 사람은, 봄에는 봄의 왈츠, 여름에는 빗방울전주곡, 가을에는 솔베이그의 노래, 겨울에는 겨울나그네 중 보리수다. 나는 전자에서 후자로 넘어가는 수준이다.
그런데 어느덧 비발디의 사계 中 사연과 함께 가을을 신청곡으로 자주 전파를 타는 요즘이다. 아직 8월의 끝자락인데도 말이다. 이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욕심의 발로인가 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렇고. 그 욕심이란!
비발디의 사계는 누구나 다 들어본 유명한 음악인데, 그래서 다른 음악가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따라서 4계절을 소재로 한 작곡가는 여럿이 있다. 그 영향으로 아르헨티나의 아스트로 피아졸라도 남미풍의 사계를 작곡했는데, 그의 사계는 여름부터 시작한단다. 그런데 피아졸라의 사계 중 봄은 우리의 가을에 해당한단다. 그러니까 남반구라 우리가 가을을 맞이하면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봄을 노래하는 것이다. 남반구는 계절이 반대라는 사실은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어쨌든 그의 사계의 순서는 우리에게 조금 생소하다. 또한 그의 음악은 나같은 초보자한테는 조금 난해하다. 관심있는 사람은 한 번 찾아서 들어 볼 만하다. 반도네온이라는 이색적인 악기가 등장한다.
예전에는 가을하면 의례히 따라오는 단어가 '운동회'였는데, 아이들도 다 크고 학교운동장의 면적도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이젠 형식적인 학사일정이 된 것 같다. 국민학교때 운동회가 있는 날이면 짧디짧고 얇디얇은 반바지에 백물白物난닝구 그리고 전날에 정해진 청군백군에 따라서 동네에서 제일 큰 문방구에서 산 조잡하기 그지없는 모자를 챙긴다. 그 당시에 우리동네'학생사'라는 문구점은 꽤나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다. 그 모자는 정말로 거지같이 생겼고 거지같이 만들어 조악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세게 당겨쓰면 찢어진다. 완전 1日용품이었다. 하긴 운동회가 끝나면 다시 쓸 일도 없긴하다. 지금도 1회용품의 품질은 형편없는데, 수십년 전이야 말을 해서 무엇하랴!
집에서 학교운동장까지 가는 거리는 비록 짧았지만, 등교길에 다리로 그리고 팔로 느껴지는 그 서늘함은, 아니 약간은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나면 흙먼지속에서도 머리통과 뒷목덜미로 내리쬐는 햇살은 몸을 가누기 힘들게하고, 무슨 응원점수라나 뭐라나 목이터져라 청군이겨라, 백군이겨라를 끝없이 외쳐대야만 했다. 나는 운동회가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당연히 공부도 1등을 못했지만, 달리기도 1등을 차지한 기억이 없다. 차전놀이나 기마전을 해도 남의 엉덩이밑에서 남을 받치며 낑낑대곤 했었다. 기마병은 싸움에서 이기면 자신의 공功이오, 지면 말의 탓으로 돌린다. 진것도 힘이 빠지는데 힘이 더 빠진다.더 중요한 것은 이 운동회를 위하여, 곤봉체조며 기마전이며 차전놀이등은 며칠전부터 방과 후에 연습을 쭉ㅡ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운동회가 다 끝나면 나같은 빈손의 참가자들이 마음이 상하지않도록 선생님께서는 그들만을 찾아내어 상품으로 다 쓰고 남아돌던 줄쳐진 공책을 나누어 주셨다. 별로 반갑지도 않고, 그렇다고 싫지도 않았다. 누구는 몇권씩 흔들며 자랑질을 하는데..... 거기에도 賞자라는 파란색 잉크의 도장은 찍혀 있었다.
그랬었는데 약간의 선선함이 느껴지는 아침나절에 주머니속 휴대전화의 카톡소리가 요란하다. 이는 필시 불경한 징조임을 경험으로 안다. 국민학교 친구들 약 60명 정도가 소식을 전하는 카톡방이다. 친구의 모친상부고가 뜨자 고인의 명복을 비는 상투적인 문구가 계속하여 올라오는 소리였다.
그때 상고머리, 단발머리깎고 입주변에 흙먼지가 말라붙어 있던 친구들이 올리는 문구. ' 고인의명복....... '. 비록 정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간단한 메세지이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하여 올라오는 위로문자에서 따뜻한 情을 느낄 수 있다. 카톡 프로필사진에 본인사진은 온데간데 없고, 갓난아기사진들도 일부 보이는 것을 보니, 대한민국 어디에서 손주손녀를 돌보며 잘들 사는가 보다.
아직도 낮에 매미는 목숨을 다해 울며 짝을 찾고 있지만, 나는 가을을 느낀다. 하늘을 날라다니는 잠자리며,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원주천둔치에 늦게 파종하여 나처럼 키는 작지만 그래도 가을이라고 흔들거리며 꽃을 피우는 코스모스를 보면서ㅡ.
첫댓글 24節氣를 만든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한다.
특히 해마다 한여름만 되면 피부로 느낀다.
8월1일~3일,여름휴가가 피크일 때 평창 갔는데 시원하더라.
원주도 아침 저녁으로는 시원하겠다.
상수의 박학다식함에 또 놀란다.
그런 인사이트는 어떻게 얻어지는걸까?
나도 라디오 열심히 들으면
좋아질까? 헤헤 😅😅
아참,
어려서는 운동을 싫어했거나 못했나보다.
의외다.
지금 철인이 된건 완전
후천적인 노력인거네.^^
난 잘하지 못하고 조금씩 하고, 조금씩 알고 그래. 나의 좌우명은 '무엇에 중독되지 말자' 임.
그러나 싫증내지 않고 오래 즐기는 것.
그래서 운동도 꾸준히 적당히, 술도 조금, 담배도 가리지 않고 상황이 되면 한 모금하고, 공부도 적당히. 졸리면 얼른 자기.
그러나 손에서 놓지 않기.
그렇게 살기ㅡ.
칭찬에 감사해!
벌써 가을 향 이 나는 글을보면서
아 벌써 8 월 중순이구나~~
기억저편에 아주 가물거리는 기억들인데
너무 소상히 기억 하고 있어 아마도
상수는 천재 끼가 있지 싶다.
나도 운동은 젬병이라
김밥 싸들고 소풍갔던 기억은 아련하게 남아있다
상수 글을 보면서
오늘은 시간 될때 비발디의 사계를 한번씩 꼭 들어야지 싶다^^
그러게,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흘러가는 것은 세월인가보다! 다만 그 시간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하겠지! 그곳 USA 동네 소식도 가끔 사진과 함께 알려줘! 자~알 그리고 건강하게 지내고.
현실은 아직 찜통인데..글을 읽다보니 가을에 빠져버렸다. ㅎ
기분좋은 착각이다.
언젠가부터 살아감에 있어,상수를 기준으로 생각하곤 한다.
왠지 비슷하게 시늉이라도 하면 하루 잘 보낸 느낌..마저 든다.
찔러 피 한방울 아니, 이게 아니다. 법없이도 산다는 품행방정, 심신건강..반듯함의 대명사로
인식된게지.
이번에 알게된 것..상수도 '적당히' 주의 구나. 근데 꾸준히가 붙네. 음..난 못 꾸준임. 반쪽이라도에 만족?!
내 삶의 숙제 '중독'..몰입이라고 바꿔본다. 아직까지 무언가에 몰입해본 적이, 읍따.
상황발생시 자동으로 헷지 기능이 작동되어 몰입을 간섭한다고 해야 하나. ㅠ
더 늙기전에 한번이라도 몰입할 거리를 찾고..그기 안되면 꾸준히 즐길 거리라도..찾아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집 짓기전..30년이상된 나무들이 많던 마당과 뒷뜰에..여름만 되면 매미들, 엄청 시끄럽게 울어대길래,
더운데 미친넘들이라고 생각했다.. 알고보니 그것이 '목숨을 다해 울며 짝을 찾는 것' 이었구나.
작대기로 쫓아내기도 했는데.. 디게 미안하네.
울 집 책꽂이에 5단으로 눌리켜있는 클래식 LP음반 세트와 플레이어..먼지라도 떨어줘야것다.
정남,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그 LP판을 플레이어에 올려 놓고 와인, 위스키, 또는 커피등을 한 잔씩 마시게.
그것도 마음의 근력을 단단하게 만들고, 뇌를 쉬게 할걸세. 딱ㅡ 한 잔이 중요하지!
푹 쉬는 것도, 열심히 일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니까! 그리고 '기준'은 다른 곳에서 알아보시고....
난 아니고....하하핫.
절기에 맞는 소재를 활용해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쳐 보는데 부담없을 글을 꾸준히 써온 상수.
그의 글에선 쓰고자하는 의욕이 넘쳐 보이는데,그런 느낌을 갖게된 미남의 미스오버(miss over)는 정녕 아닐진데.
지금의 상수의 글에선 다음 쓸 구상까지 하는 듯한데~~~
혹,다음에 올릴 글은 가을을 소재로한 일상을 그리진 않을런지~~~
다룰 일상엔 과거의 이루지 못한 멜로성 사연도 살짝 다루면 좋겠느데~~~^^
글을 쓴다는게 보기보단 엄청난 두뇌 에너지와 육체적 피로를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끊김없이 글을 쓴다는 건 본인의 글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넘친다는 걸 의미하겠다.
상수야,그렇게 의욕이 끓을 때는, 그 의욕이 식을 때까지 계속 구상하고 그리고 글로 계속 표출해라.
쉼없는 저술에도 구상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고, 구상을 표현하는데 육체적 곤함은 느끼지 못 할 것이니,
그대는 느낄 영감과 구상따라 글로 표현하면 되겠다.
미남,
여기서 멜로가 들어가면 소설이 됩니다. 그리고 난 멜로를 잘 모르고 소설도 또한 문외한인 사람이라....
언젠가 그대의 취미ㅡ 위스키ㅡ에 대한 글을 기대해 봄세.
참고로 나는 수년전부터 서민들의 동반자인 소주를 모아왔는데, 요즘은 주류회사들이 신제품을 출시하지 않아 수집이 뜸하다네.
하여, 우리집의 책꽂이에는 책은 (전혀)없고 소주는 많은데 언제 소개하리다.
나의 소소한 영양가없는 취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