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을 위한 선의 지혜] 7. 세계적인 명상 붐과 한국불교의 과제 5
간화선 대신 ‘화두명상’…쉽게 대중 속으로
도의국사가 돈오선 한반도 전래
禪으로 불교 정신문화 창달 견인
수행자 중심… 대중화 어려움 多
교재, 프로그램, 지도자가 부재해
관련 종책 개발 조속히 진행돼야
지금까지 서구 치유 명상의 장점과 한계를 살피며
불교의 깨달음 명상의 가치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하지만, 깨달음 명상 중에서도 정견 없는 참선 명상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역사적인 사례로 확인하였다.
이제 결론으로 서구 치유 명상의 대안으로 한국 간화선에 대하여 살펴보자.
한국불교의 선(禪)은 동아시아 선종의 종지(宗旨)인
직지(直指), 돈오(頓悟)의 전통을 가장 잘 전승하고 있다.
어째서 그런가? 선종이 탄생한 중국은 당송시대에 융성하여
신라와 고려, 일본, 베트남까지 지대한 영향을 주면서 선종의 황금시대를 구가하였지만,
근세에 와서 공산화, 문화혁명을 거치며
선맥(禪脈)이 단절되고 선종 종풍이 사라져 버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 중국불교에서 직지, 돈오의 종지를 전하는 이는 없는 걸로 보인다.
일본 또한 지난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조동종, 임제종, 황벽종 등 참선 전통이 있고 활동이 활발하지만,
정견 없는 참선으로 직지ㆍ돈오의 종지를 전하는 참선 지도자는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선의 가치
반면에 한국불교는 821년 조계종 종조로 추대된 도의(道義)국사가
돈오선(頓悟禪)을 최초로 이 땅에 전한 이후 구산선문(九山禪門)이 성립되어
본래성불의 선 정신으로 교학과 귀족에 편향된 불교를 일대 혁신하여
찬란한 불교 정신문화를 창달하며 지금의 대한불교조계종으로 이어졌다.
다만, 조선조에 이르러 억불숭유 정책을 만나 모진 법난을 당하였으나,
근세 개화기에 경허, 용성 선사와 같은 걸출한 선승이 출현하여 선풍을 재흥시켰다.
그 결과 일제강점기라는 악조건에서도 혜월, 만공, 한암, 만암, 효봉, 금오,
동산, 전강, 성철, 향곡, 서옹, 청담, 월산 등등 기라성 같은 선승들이 배출되어
광복 뒤 봉암사 결사와 승가 정화운동을 거쳐
한국 간화선풍을 크게 진작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선종이 크게 발흥한 동아시아의 한국, 중국, 일본 등에서
선이 중심이 된 나라는 지금 한국 밖에 없다.
한국선은 부처님 당시부터 시작된
출가 수행자의 승가 공동체와 안거 수행 전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지금 세계 불교문화권 어디에도 한국 조계종의 총림 선원과 같이
하안거, 동안거, 산철 안거와 같은 수행 전통을 이어가는 곳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선은 세계불교문화권에서
깨달음 명상 전통과 문화로는 최고라 자부할 수 있다.
한국선 명상 수행의 문제
한국선 전통과 문화가 이렇듯 훌륭하지만, 장점과 함께 단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한국선은 산중에서 출가자 중심으로 수행해 왔다.
까닭에 재가 생활인들에게는 접근이 쉽지 않고 또 알기도 어렵다.
더구나 문자를 세우지 않고 말길이 끊어진
‘불립문자(不立文字) 언어도단(言語道斷)’의 본래성불(本來成佛)을
종지로 하여 말과 문자로는 깨달음을 알 수도 전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라 너무나 어렵다.
이와 같이 언어 문자를 배제하고 말과 사유를 차단하는
화두에 집중하여 단박에 깨달음을 성취하는 화두 명상,
간화선은 정견과 신심, 발심이 확고하지 못하면 체험하기가 쉽지 않은 명상법임이 분명하다.
까닭에 처음 출가하여 도인이 되고자 바로 선방으로 가서
10년, 20년 화두 참선에 전념했던 출가 수행자들도
화두 삼매를 체험하거나 타파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총림과 선원에서 눈 밝은 선지식의 자상하고 친절한 공부 점검과
상담도 많지 않으니 간화선에 회의를 품고 남방 상좌부 승가의
위빠사나 명상을 배우러 가서 호흡 명상을 통해서 비교적 쉽게 삼매를 체험하기도 한다.
위빠사나 명상의 장점과 한계
부처님의 깨달음 명상의 전통 가운데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수행법이 위빠사나 명상이다.
위빠사나 명상은 남방 상좌부 승가의 대표적인 깨달음 수행법이다.
남방 상좌부 승가에서는 팔리어로 된 초기 경전인
니까야[한문역으로는 아함부 경전에 해당]와
주석서이자 수행지침서인 〈청정도론〉에 근거한 교육과 수행 체계로
정교한 위빠사나 명상법을 정립하였다.
위빠사나란 부처님이 깨친 중도의 다른 말인
지관(止觀)의 관(觀, 비춤, 지혜 작용)을 말한다.
지관의 지(止)는 멈춤, 집중인데 번뇌망상을 멈춘다는 뜻으로 사마타라 한다.
즉 위빠사나 사마타라는 말은 지관이란 말로, 부처님이 깨친 중도를 말한다.
남방 상좌부 승가에서는 부처님이 깨친 중도를
위빠사나(관)와 사마타(지)로 나누어 위빠사나를 먼저 닦아서 사마타로 완성하거나
사마타를 먼저 닦아서 위빠사로 완성하는 수행 방법을 단계별로 세분화하였다.
이렇게 함은 간화선처럼 지관을 하나로 해서 수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렇게 깨달음 명상을 세분화하고 단계적으로 접근하게 하는 것은
대중의 호응도 좋고 쉽게 점진적으로 닦아가니 효과도 좋은 것이 사실이다.
위빠사나 명상이 대중에게 호응이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괴로움을 해결하는 깨달음 수행에 대하여
정교하고 치밀한 이론과 방법론을 점진적이면서 단계별로 제시하고 있다.
불교의 깨달음에 대한 세밀하고 정교한 교학과 수행 이론과 체계가
위빠사나 명상의 장점이고 이것이 서양인들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교육 방법과도
상통하여 쉽게 접근하고 체험할 수가 있다.
이런 이유로 서양의 치유 명상법인 마인드풀니스(마음챙김) 명상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따르듯이 남방 상좌부 승가의
위빠사나 명상은 정교하고도 점진적인 이론과 수행 체계의 장점이
지식정보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와 같은 지식정보시대에는 지식정보의 과잉으로
현대인은 그 자체가 스테레스이고 번뇌망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직장과 가정 생활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지식 정보와 인간 관계의 과잉으로
스트레스와 번아웃에 시달리는데, 심신을 쉬고 치유하려는 명상에서도
복잡하고 정교한 명상 이론과 수행을 말하니 현대 사회의 흐름에서는 맞지 않는 면도 있다.
즉, 남방 상좌부 승가의 위빠사나 명상은 명상이 대중화되는 초기에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으로 치밀한 이론과 수행 체계가 장점이 되었으나
이제 명상이 대세가 되고 누구나 명상을 하고 싶어 하는 시대가 되니,
이 복잡하고 치밀한 이론과 수행 체계가 너무 번잡하다는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부각되는 간화선의 장점과 매력
현대인은 지식정보시대에 살면서
전세계의 실시간 정보를 인터넷으로 연결된 스마트폰과 개별 컴퓨터로 접한다.
지식정보의 과잉으로 스트레스와 번아웃 현상이 급증하면서
심신을 치유하는 명상에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남방 위빠사나 명상은 복잡하고 다양한 이론 체계에 기반한 명상이니
이 또한 쉬운 것이 아니다. 쉬고 내려놓으려 왔는데
더 복잡하고 단계적인 방법으로 안내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반면에 간화선은 언어 문자를 비우고 오직 화두 하나에만 집중하라 하니
이것이야말로 현대인들에게 복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현대인이 과도하게 접하는 지식정보는 모두 언어 문자로 되어 있다.
화두 명상인 간화선은 불립문자 언어도단이니
일체의 지식정보를 화두 하나로 차단하여 본래 마음을 치유하는 명상이다.
오히려 현대인에게는 화두 명상이 더 쉽고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다.
한국선 대중화의 3대 과제는?
이런 면에서 간화선은 현대사회에서 좋은 시절 인연을 만났다.
다만, 간화선이 무엇인지? 화두가 무엇인지?
화두명상하는 법을 모르는 이들에게
자상하고도 쉽게 안내할 수 있는 지도자와 교재,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부처님의 깨달음과 간화선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나
이것이 현대인의 언어 감각과 정서에 맞는 방편이 있어야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간화선을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방편이 마련되어야 한다.
가령 간화선이란 용어부터 ‘화두선’, ‘화두명상’ 등으로 바꿔 부르는 것도 좋겠다.
간화선이란 말 자체가 일반 대중이 알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화두라는 말은 이제 거의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 간화선이란 말을 화두선, 화두명상이라 하면 좋겠다.
화두선, 화두명상에 대한 쉬운 입문 교과서가 필요하다.
중학생 정도 학력이면 누구나 읽어볼 수 있는 화두선 교과서가 있어야 한다.
지난 2005년 전국선원수좌회와 조계종 교육원이 공동으로 편찬한
〈조계종 수행의 길-간화선〉은 종단 차원에서 한글로 만든
최초의 간화선 수행지침서로 각광 받았다.
하지만, 〈간화선〉은 수행 지침서라 수준이 높다.
불교를 전혀 모르는 일반 대중도 쉽게 볼 수 있는 화두선 입문서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이 화두선 입문서에 근거한 ‘화두선 입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2006년 조계종 포교원에서 최초로 개발한 ‘간화선 입문프로그램’ 10주 코스가 있지만,
현장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았다.
포교원 소임자의 잦은 교체로 종책의 일관성이 없어
간화선 입문프로그램 지도인력 양성과정 운영이 중단되고 말았다.
그 이후 포교원에서 다시 명상지도사 양성을 추진했는데,
뚜렷한 방향성 없이 진행하다 보니 화두선과 연계성이 떨어져 버렸다.
마침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의욕적으로 선(禪)명상 포교를 제창하시니 시절인연이다.
화두선, 화두명상의 대중화를 위한 종책이 체계적으로 추진된다면 빛나는 성과가 있을 것이다.
▶한줄요약
한국 간화선을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방편이 마련되어야 한다.
가령 간화선이란 용어부터 ‘화두선’, ‘화두 명상’ 등으로 바꿔 부르는 것도 좋겠다.
간화선이란 말 자체가 일반 대중이 알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간화선이란 말을 화두선, 화두명상이라 하면 좋겠다.
2023. 03. 31
박희승 교수
현대불교신문
첫댓글
원적 도의국사(元寂 道義, ?-825)
한국 선불교(禪佛敎)의 대표종단인 조계종 종조(宗祖)로 추앙받고 있는 도의국사(道義國師)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중국의 남종선(南宗禪)을 전한 신라의 고승으로
성은 왕(王), 법호는 명적(明寂), 시호는 원적(元寂)이며 도의(道義)는 법명이다.
도의국사는 북한군(北漢郡)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가 임신한 지 39개월 만에 낳았다고 한다.
784년(선덕왕 5)에 배를 타고 당나라 오대산으로 가서
공중으로부터 종소리를 듣는 등 문수보살(文殊菩薩)의 감응을 얻었다.
그 뒤 광부(廣府) 보단사(寶壇寺)에서 비구계를 받고
조계(曹溪)로 가서 혜능(慧能)을 모신 조사당(祖師堂)을 참배하였는데,
이때 조사당의 문이 저절로 열렸다고 한다.
다시 상서의 개원사(開元寺)로 가서 지장(地藏)에게 법을 물어서 의혹을 풀고
서당 지장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그 뒤 백장산(百丈山)의 회해(懷海)를 찾아가서 법요(法要)를 강의 받았는데,
회해는 강서의 선맥(禪脈)이 모두 동국승(東國僧)에게 속하게 되었구나. 하고 칭찬하였다.
37년 동안 당나라에 머물다가 821년(헌덕왕 13)에 귀국하여
선법(禪法)을 펴고자 하였으나 당시 교학(敎學)만을 숭상(崇尙)하고 무위법(無爲法)을 믿지 않는
서라벌 중심의 왕권불교와 대립하며 진보적인 禪사상을 전파했던 도의국사는
말년에 설악산 진전사(陳田寺)로 들어가 40년 동안 수도하다가
제자 염거(廉居)에게 남종선을 전하고 죽었다.
이후 도의국사의 심인(心印)은 염거화상(廉居和尙)-보조 체징(普照, 體澄)에게 전해졌으며,
체징스님은 헌안왕 3년(859년) 전남 장흥의 가지산에 보림사(寶林寺)를 창건,
도의국사가 전한 선풍을 진작(振作)하고, 청도 운문사(雲門寺), 군위 인각사(麟角寺) 등을 아우르며
선문(禪門)의 큰 파도를 일으킨 가지산문(迦智山門)을 형성해
한국불교 선종사(禪宗史)의 서막을 열었는데 이때 도의를 제1세, 염거를 제2세, 자신을 제3세라고 하여
도의를 가지산파의 개산조로 삼았다.
고려 말에 천책이 지은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에는
도의가 지원승통(智遠僧統)에게 한 법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 법문에는 그가 법계설(法界說)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또한 심인법(心印法)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다.
이처럼 한국불교사의 한 획을 그은 도의국사의 진영(眞影)은 조계종 특별종립선원인 석남사(울주군)에 봉안돼 있고
부도는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억성사지(億聖寺址)에 있다.
[출처] 원적 도의국사|작성자 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