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3.수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사 66:1~4
*제목;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1) 우리 하나님은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이 돌보시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2절’을 봅시다.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사 66:2)
여기에 앉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돌보시는 복된 자녀입니다. 이를 믿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사 66:1)
그 분은 ‘하늘을 보좌 삼고, 땅을 발판 삼으시는’ 창조주시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신다고 하시니,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이 그랬습니다.
그는 형들에게 미움 받아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돌보사 ‘보디발의 총애’를 받게 하셨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지하감옥에 갇혀서도 그를 하나님이 돌보사, 그곳에서 그를 총리대신으로 만들어 줄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나게 됩니다.
이후 그는 하나님의 돌보심의 이유요 목적이었던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이스라엘을 기근에서 살리는 구원자의 역할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의 성공비결은 딱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시는 사람이었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돌보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돌보십니까? 다시 ‘2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사 66:2)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를 돌보십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겸손하여져서,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니 당연히 하나님께 그를 돌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셔서 그에게 지혜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화까지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하나님 앞에 “어리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가난한 자였던 것입니다. ‘왕상 3:7’입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왕상 3:7)
사울도 처음 왕으로 기름부음 받을 때 같은 고백을 합니다. ‘삼상 10:22’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 하셨더라” (삼상 10:22)
하나님께서 그의 겸손 즉, 마음이 가난한 것을 높이 사셨던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낮추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교만한 사람입니까?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끄시고 완성해 가시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만큼 교만한 태도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기도는 겸손의 최고점이요, 가난한 마음의 가장 절실한 표현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조차도 시간 날 때마다, 아니 시간을 내어서 정해진 시간 새벽 미명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을 이끌고 회복시키실 분이라는 분명한 고백을 하셨던 것입니다.
왜 기도하지 않는 자가 교만한 자인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십시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그것이 가난한 마음입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의 비결입니다.
둘째로 “심령에 통회하는 자”를 돌보신다고 합니다.
즉, 회개하는 자를 돌보시는 것입니다.하나님 앞에 완벽한 자는 설 수 없습니다. 그런 자는 없을뿐더러 그런 자가 있다면 교만하여 져서 결단코 하나님 앞에 서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돌보심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는 자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고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누리듯이, 통회하는 자 가슴 깊숙이 아파하면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자가 하나님 앞에 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회개란 후회가 아니라, 우리 삶을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서는 자를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고 돌보아주십니다. 아멘.
‘밧세바와 범죄한 다윗’은 통회하며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그 은혜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도 새벽닭 소리를 듣고 주님과 눈이 마주치면서 밖에 나가 펑펑 울게 됩니다. 이런 그를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가셔서 회복시키시고 사도의 큰 사명과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말씀 앞에 떠는 자”를 하나님이 돌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여기고,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를 돌보시는 것입니다.
주일성수, 십일조, 십계명, 사랑하라! 전도하라! 등등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무엇보다 강력한 우리 삶의 기준이고 목표여야 합니다.
이를 지키는 자를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것입니다. “말씀 제일주의!” 성도들의 참된 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은 사람은 세상에서 승리합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사람이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돌보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을 돌보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이 최고의 기준이 사람을 돌보아 주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하나님을 향한 고백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자녀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비록 현실이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반드시 회복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마음이 가난한 자(겸손한 자), 회개하는 자(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오는 자), 말씀 앞에 떠는 자를 더 돌보아 주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