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퇴소는 우리에게 사형선고다”
정부는 중증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탈시설 정책’을 즉각 철회하여
주십시오
저는 중증 발달 장애를 가지고 있는 현재 나이 30세의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제 아들은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생활한 지 1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정부의 탈시설 정책으로 인하여 제 아들이 있는 곳도 정원이 축소되고 같이 생활하던 아이들이 퇴소하는 것을 보면서 더이상 간과할 수 없어 사지에 내몰려 있는 중증발달장애인 가족의 현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장애인복지의 주된 화두는 ‘탈시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시설에서 거주하고 있는 발달 장애인(지적, 자폐성 장애인)들은 탈시설의 당사자 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보지도 못한 채 그 변화를 직격탄으로 맞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에 저희 중증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심정으로 정부의 탈시설 정책을 규탄하며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합니다.
첫째, 중증발달장애인 가족의 죽음을 막아야만 합니다.
작년 6월에 광주광역시 외곽의 한적한 농로에 주차돼 있던 승용차에서 60대 어머니와 20대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아들은 심한 자폐성 장애가 있는 발달장애인이었습니다. 그보다 앞선 3월에도 제주 서귀포에서 한 40대 어머니가 10대 발달장애아들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정부는 탈시설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 이용자들의 신규 입소를 제한하고 정원을 축소하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법인을 해체하여 시설을 통째로 폐쇄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며, 어떤 시설에서는 정원을 줄인다는 빌미로 도전적 행동과 문제행동이 많은 장애인을 먼저 시설에서 퇴소하게 하여 중증 발달장애인을 더욱 곤란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현상이 생기고 있습니다. 거주시설의 입소 정원이 축소되는 와중에 보호가 필요한 장애인들이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중증발달 장애인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사람답게 살게 해주겠다는 탈시설 정책이 그 가족까지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탈시설 정책으로 인해 장애인 거주시설 정원이 줄어들면서 이용자가 미신고시설이나 개인시설로 몰리는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시설은 행정 기관의 감독의 범위 밖에 있기에 언제든 사고가 날 수 있는 환경이지만 상황이 막막하거나 가족과 함께할 수 없는 장애인의 경우 긴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보호를 요청하는데 이런 곳에서는 장애인을 학대하는 정황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작년 3월 평택의 미신고 개인시설에서는 지적장애인이 장애인 활동지원사에게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차례 폭행당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와 비슷한 사건은 지금도 그 어디에선가 발생하고 있을 것입니다.
정부는 탈시설을 말합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탈시설입니까? 무책임한 탈시설 정책이 지금도 어렵고 힘든 장애인 가족을 위기가정으로 만들고 그 부모를 예비살인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탈시설을 부르짖는 이들에게 먼저, “중증 발달장애인과 하루만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들도 장애인거주시설의 필요성과 그곳에 자녀를 맡길 수밖에 없는 부모의 절박한 심정과 안타까운 마음을 이해할 것입니다.
둘째, 탈시설 정책의 문제점을 고발합니다.
지금이라도 내 자녀가 현재의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질 좋은 서비스를 받고 살아갈 수 있다면 찬성하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재 정부가 이야기하는 탈시설 정책은 다양한 장애 유형을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탈시설만 하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습니다.
먼저,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중증 발달장애인과 부모의 입장은 반영하지 않은 채, 반쪽짜리 정책을 내놓고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시설거주 발달장애인들의 부모들은 거의 대부분 시설이 존치되기를 원하며, 시설의 장점은 유지하고 단점은 보완하여 더 나은 주거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거주시설을 잠정적인 학대의 공간으로 보는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어주십시오. 대부분의 장애인거주시설은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과 공간을 확보하여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중증장애인 시설의 집단 감염 사태는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만큼 철저하게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시설에서 생활하기를 원한다고 하면 어떤 이들은 정부에서 더 좋은 주거환경을 약속하고 지역사회와 통합하여 살라고 하는데 왜 반대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면 저희도 반문합니다. 아무 준비 없이 지역사회 통합이라니요? 장애아이와 같이 살면서 받았던 수많은 눈총과 ‘이런 애를 왜 데리고 다니냐?’고 서슴없이 말하는 경멸의 말들이 떠오릅니다. 지역사회는 장애인이 들어와서 사는 것을 환영하는데 우리가 바보같이 망설이며 거부하는 것으로 보이십니까?
장애인 단기보호센터가 아파트에 설치되자 집값이 떨어진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고 단체로 다니지 말라는 주민의 요구가 있어서 몇 명씩 눈치를 보며 다닌다고 합니다.
장애인의 지역사회통합을 논하기 이전에 이 사회가 장애인에게 얼마나 야만적인 사회인가를 직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탈시설 정책’을 실행하시려면 먼저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 사업이 실시되어야 합니다. 특수학교 하나 만드는 것도 무릎을 꿇고 애원해야 하는 사회에서 지역사회로의 통합은 악몽과도 같은 것입니다.
셋째, 중증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로 가야합니다.
발달장애인들의 문제행동(도전행동)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며 도로로 뛰어들어 사고가 나기도 하고 감정조절이 어려워 타인을 구타하기도 하고 자해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증장애인 요양 시설에서도 제일 돌보기 힘든 대상입니다.
탈시설을 논하기 전에 이런 중증발달장애인에 대한 대책이 선결되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자립지원주택에 입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고, 만약 입주하더라도 주변에서 제기하는 민원으로 계속 살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시설을 다 없앤 후에 자립지원주택에서 살 수 없는 중증의 장애인은 또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지속적으로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를 부르짖어 왔습니다. 중증발달장애인에 대한 국가책임제가 선결되지 않는 한 그 부모와 형제까지도 무한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소원은 ‘자식보다 하루 더 살다 죽는 것’입니다. 발달장애인이 부모의 사후에도 인간적 존엄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는 헌법정신에 부합되는 정당한 요구입니다.
넷째, 중증발달장애인에게 더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현재 노인요양원은 전국적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어서 이용자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큽니다. 그러나 장애인 거주시설은 점점 줄이고 폐쇄하는 쪽으로 진행하여 각 시설마다 대기자가 백명 안팎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만큼 시설거주에 대한 수요가 있는데 공급이 전무한 실정이니 중증발달장애인을 돌보는 보호자들은 몇 년째 과부하가 걸려 있는 실정입니다. 정부에 묻고 싶습니다. 어린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돌보고 치매어르신들도 요양원에서 돌보는데 왜 힘센 치매환자라고 불리는 중증발달장애인은 부모와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올해 4월 통계청 기준, 우리나라 장애인구는 약263만3천명입니다. 이중, 거주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의 수는 약 29,700명(1.1%)입니다. 그리고 거주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 29,700명 중에 23,700명이 지적·자폐성 장애인입니다. 다시 말해 거주시설 이용의 79%가 중증발달장애인(지적·자폐성)입니다. 반대로, 탈시설 운동을 펼치고 있는 단체 사람들은 대부분 신체장애인입니다. 전체 등록장애인의 76%에 달하는 분들입니다. 그들은 사실 탈시설을 외쳐야 할 당사자가 아닙니다. 시설이 필요하지 않고 지역에서 얼마든지 살아가실 수 있는 분들이니까요. 시설의 도움 없이 살아가는 것이 힘든 중증발달장애인에게 무조건적인 탈시설 요구는 명백한 폭력이며 인권침해입니다. 자립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에게 막무가내로 “너도 자립하라” 말하는 것이 정당한 요구일까요?
다섯째, 야만적인 탈시설 정책 즉각 중지해야 합니다.
현재 시설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중증 발달장애인에 대해서는 일률적인 탈시설 정책이 아닌 자연감소 정책을 시행하고, 가정에서 돌보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광주시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24시간 발달장애인 돌봄 서비스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합니다.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의 정원을 줄이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만이 장애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장애의 종류가 다양하고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당사자가 있는 한 그 장애인들을 지원하는 여러 안전망이 존재해야 할 것입니다. 중증 발달장애인도 가족 가까이에 있는 시설에서 살 수 있어야 하고 여러 가지 사회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 제 아들이 입소해 있는 시설에서 받고 있는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저와 제 아들이 받고 있는 이런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사회 곳곳에 만들어져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할 수도 있고 시설과 가정과 지역사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장애인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고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시설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것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장애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탈시설 정책은 중증발달장애인 가족에게 죽음을 의미합니다.
정부는 야만적인 탈시설 정책을 즉각 중지하고 중증발달장애인이 시설에서 거주할 권리를 보장할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