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리릭. 동그라미가 구르듯 호루라기가 울었다.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메마른 군상들을 둘러보았다. 간이의자에 나란히 앉았던 노파들은 미동도 없다. 입가에 가만히 미소를 흘릴 뿐이다. 무슨 일인지 다 알고 있다는 뜻일 게다. 뻥 한다구. 네? 뻥 한다니까. 엉거주춤 섰던 나는 순간, ‘아, 뻥이요’ 따라 말하며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도 모자라 머리가 멍해지도록 집게손가락을 귀에 밀어 넣었다. 순간, 하얀 연기와 더불어 뻥 터지는 소리가 났다. 몸속 심장까지 울렸다. 자루 속에서 쌀알이, 말린 가래떡이 뭉게구름처럼 혼비백산 흩어졌다. 낱알이 쏟아졌다.
순간, 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쭈르르 낮 볕 쬐는 닭처럼 졸던 노인들의 허리도 놀라 뒤로 젖혀졌다. 환한 수다가 뻥튀기 트럭 주변을 자글거렸다. 노파들은 그것 보라는 둥. 초보자인 나를 쳐다보며 잘난 체, 또 한 번 순박한 얼굴로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얼마 만인가? 주름살 속의 맑은 눈을 언제 보았던가? 아, 어릴 때 나를 업어주시던 외할머니의 인자한 눈빛이었다. 가끔 딸네 집을 방문했던 외할머니는 외손녀를 안고, 그 살인 미소를 던졌었다. 그때마다, 그녀의 속 주머니에서는 달콤한 알사탕도 함께 등장하곤 했다.
어린 시절, 뻥튀기는 풍요의 상징이었다. 한 보시기를 한 자루로 만들어주는 마술 할아버지였다. 간식거리를 챙겨야 했던 어머니와 며느리에게는 가성비 좋은 간식이었다. 뻥튀기 할아버지가 마을에 오는 날이면 우리 집 옆 공터로 오라고 서로 잡아끌었다. 시끄러워서 미안하다고 주는 뻥튀기는 그날 밤 맛좋은 수다였다. 동네 아이들은 열 일 제치고 뻥튀기 주변을 맴돌았다. 뻥이요. 소리치면 집 뒤로 숨었다. 터지고 나면 뛰어나와 흩어지는 왕건이를 주워 먹으려고 각축전을 폈다. 뺏고 뺏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덩어리로 재탄생된 뻥튀기로 종일 행복했다.
이제 새댁 거여. 멍하니 옛 기억에 사로 잡혀있다가, 여주인의 생색에 정신이 들었다. 새댁 것 할 차례라니까. 금방 혀. 그녀는 뻥튀기를 봉지에 쏟아 쥐여주며, 품삯을 받았다. 사이사이 고객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벌써 그녀의 돈주머니에는 꼬깃꼬깃한 삼짓돈이 수북이 쌓였다. 색색의 돈들은 거스름돈을 위해 주머니를 열 때마다 숨쉬기 힘들다는 듯 서로 얼굴을 내밀었다. 아, 네네. 감사합니다. 맛있게 잘 튀겨주세요. 걱정 마슈. 여기서 장사 30년이 다 돼 가. 다른 데는 파리 날려도 여긴 줄 섰자녀. 다들 이리로 오지 다른 데로 안 가. 마자요 마자. 때는 이때다며 다들 훈수를 두기에 나섰다. 한 시간 너메 기다려도 여기로 와. 시간을 채울 말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볶은 가지도 좋아. 가지로 뭐해요? 반찬 해도 되고 물도 끓여 먹고. 누룽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색색의 바구니에는 채소 말린 것이나 약재용 뿌리, 또는 둥굴레나 보리 등 차를 끓이기 위한 것들도 있었다. 쌀이나 보리, 떡이나 옥수수 등 곡식들의 전시장이기도 했다. 그때 또 호루라기가 울었다. 벌써? 계면쩍게 주변을 둘러보다, 나는 또 귀를 막았다. 두 번째 기계가 행복한 반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양말가게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빨리 귀를 막으라는 듯이 눈짓을 했다. 아, 나? 괜찮여. 하두 많이 들어서 이제 뻥 소리가 안 나면 이상허지 뭐. 동그라미 파스를 파는 트럭 주인도 나를 보더니, 웃음을 흘린다. 동그라미 파스를 이마에 철커덕 붙이고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이다. 나는 무슨 파스를 이마에 붙여요? 손가락으로 귀를 막으며 빈정거렸다. 머리 아플 때 좋아유. 한번 붙여 볼 텨유?
뻥이요. 마술맘은 펑 터진 뻥튀기를 툴툴 턴 후 한 곳으로 모았다. 그리고 얇은 비닐 주머니를 탁탁 뿌려서 펼쳐 자루 속 먹거리를 봉지에 부었다. 그리곤 흩어지지 않도록 끝을 돌돌 두 바퀴 돌려 철사 끈으로 묶었다. 검은 비닐에 한 번 더 넣고 고객에게 들려주면 마술맘의 역할은 완료된다. 푸짐한 기쁨이다. 맛있는 장날이다. 손바닥만 한 바구니 하나를 맡겼는데, 돌아온 것은 대형 비닐 주머니이다. 가슴에 안으니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품삯이 아깝지 않다. 여주인은 다 끝낸 손님에게 맛깔스러운 한낮을 한 아름 딸려 보내고, 다음 바구니를 기계만 돌리는 말 없는 남자에게 넘겨준다. 갑자기, 강적이 나타났다. 내 차례여. 내건 언제 할테여? 이 새댁 차례여. 다 혀줄 테니 걱정 말어. 금방이야. 기계가 두 개여서 호루라기가 10분마다 불었을 뿐이지, 사실 20분쯤 걸렸다. 항의하려던 아줌마 목소리가 쏘옥 들어갔다. 그리고서는 마술맘은 나에게 또 시선을 돌렸다. 이제 들어가. 쌀 섞인 내 누룽지가 까만 쇳덩어리 안에 부어졌다. 한 시간 전, 나는 일찍 오려고 기를 썼건만 농촌 아낙들의 하루 시작이 새벽이라는 사실을 잘 몰랐다. 이미 인산인해였다. 튀길 것을 맡겨두고, 애꿎은 시장을 뱅글뱅글 두 바퀴 돌았다. 채 삼십 분이 지나지 않았다. 눈도장을 찍고 다시 한 바퀴 더 돌고 오는 길이었다. 이번에는 시장의 끝과 끝을 연결하는 노선을 택했다.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순서를 양보하고 싶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튀겨져도 빈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이곳 간이의자가 훨씬 더 안락한 것 같았다. 굳게 닫혔던 입이 말을 하고, 천장만 보던 눈이 호강한다. 손발이 움직이고, 귀도 깜짝 놀라 귀지가 묵은 떨어져 나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간이 알차게 간다는 표정들이었다. 눈가를 젖은 수건으로 찍어내던 그들의 눈빛에서 외로움이 묻어났다. 우리네 삶도 뻥 튀겨서 살 수만 있다 얼마나 좋을까. 제일 아끼는 옷도 뻥 튀겨서 헤어질 때까지 오래 입을 수도 있지 않을까? 오만 원을 벌어도 오백만 원이 되고, 일 년에 한 번 밖에 오지 않지만, 때때로 네다섯 번 온다고 아들 자랑 할 수 있을 것이다. 초라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줄 것이다. 버림받지 않았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어제는 딸 사위가 손자들과 왔다가 자고 갔다며 혼자 먹던 밥상을 뒤로 감출수도 있을 것이다.
장날, 빈터의 기다림은 삶의 미학이다. 우리네 인생이란 그리 각박하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이다. 간이의자에 앉은 시간은 힘든 여정처럼 고달픈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부끄러움이 없다. 서두름도 없다. 우리네 삶처럼 천천히 한 발씩 충만해질 뿐이다.
다음 장날에는 무엇을 튀길까? 궁리하느라 잠시 정적이 흘렀다. 기다리며 드시라고 뻥튀기 한 바구니 내어놓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첫댓글 뻐이요! 하면 귀를막고 뒷걸음치던 사람들,그런사람들 다라졌으니ㅡ시대의 보물이요ㅡ
간직해야 하는 기억이지요???
마술 같은 뻥튀기입니다. 외할머니 눈빛을 닮은 노파들의 표정 변화 속에 많은 추억을 쏟아 놓습니다.
뻥튀기의 의미가 이렇게 심오할 줄은 몰랐습니다. 소재 하나를 뻥튀기한 결과입니다.
추억 속의 옛 기억에 써 보았습니다. 그런데 시골 장날엔 아직도 뻥이요가 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