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대역전
군유명은 입술을 혓바닥으로 적시며 두 눈에 한 가닥 비웃음을 띠우고 눈앞에서 공포에 질려 있는 여러 사람들의 얼굴을 쓸어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들의 궁금증을 풀어 드리지. 내가 역전승을 거둔 비밀을 당신들은 알고 싶겠지? 당신들도 내 말을 듣고 많이 배우기 바라오. 물론 배워봤자 써먹을 기회가 없겠지만 말이야.』
그는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길게 숨을 내쉬더니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시선을 허공에 못박고 말을 이었다.
『이번에 당신들이 완패를 당하고 생애 최대의 좌절을 당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외다. 당신들의 심보가 악독하여 마땅히 천벌을 받은 면도 있고 그밖에도 당신들 모두 욕심에 눈이 멀고 양심이 무뎌져서 주제넘게 군유명이라는 태세(太歲)의 머리 위에 흙을 끼얹는 짓(목성(木星)이 이르는 흉살방의 흙을 일구면 재앙이 닥친다는 중국 관습)을 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실패한 것이오. 당신들이 그만한 인재가 된다고 생각하시오? 그만큼 대가리가 잘 돌아간다고 여기는 거요? 그리고 밑천을 건질 수 있을 줄 알았소? 당신들은 이런 문제를 한 번도 고려해 보지 않았을 테지? 물론 당신들 스스로는 이 일이 치밀하고 천의무봉(天衣無縫)하다고 믿었겠지만 당신들이 절대로 실패가 없으리라고 인정하고 일을 꾸몄을 테지만 나 군 아무개의 눈에는 어린애 장난에 불과했었지.』
그는 두어 번 기침을 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들은 승복하기 싫겠지? 당신들은 틀림없이 마음속으로 이 군유명이 다만 우세를 차지했으니까 이렇게 건방진 소리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거야. 그러나 내 말은 사실이오. 당신들이 지나치게 욕심을 내어 내가 지니고 있는 환희불을 탐하게 되었을 때 이미 당신들의 실패는 정해지고 만 것이오. 다시 말한다면 당신들이 가장 커다란 실책을 범했다는 말이오. 내가 할 일은 그저 당신들이 이미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는 사실을 모르도록 하는 것뿐이었소. 사실 중도에서 당신들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지만 욕심이 분별력을 지워 버렸던 것이오. 반면에 나는 그 약점을 이용해서 당신들을 유도했고 당신들을 미혹(迷惑) 속에 빠져들게 해서 당신들이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의 길로 들어서면서도 자각하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지…』
금미는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더니 원한에 찬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이제 와서 큰소리를 치지 말아요. 만약에 우리들이 남송성에서 당신을 처치해 버렸다면 당신에게 고명하다고 자랑할 일이 있었겠어요?』
군유명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이오. 만약 당신들이 애당초 나를 즉시 죽였다면 나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을 것이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당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소. 물론 그것은 결코 당신들이 결코 내 한 목숨을 살려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다만 나를 살려두어 나의 보물을 탈취하는 길안내자로 써먹으려고 했을 뿐이지…』
마백수의 목구멍에서 끄르륵 가래 끓는 소리가 나더니 한 쌍의 눈알이 시뻘개져서 욕을 했다.
『이 악당, 진작 한 칼에 너를 죽여 없애야 했다!』
군유명은 눈길을 자기의 피와 살이 모호해진 손목에 던지고 차분하고 조금도 흔들림 없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지당하신 말씀이오. 그러나 여러분들은 이미 가장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지. 사람이란 일생동안 많은 기회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 기회를 반드시 잘 포착해야지 조금이라도 소홀히 여기게 된다면 기회는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오. 이제 당신들의 좋은 기회는 이미 과거로 흘러가고 만 셈이지…』
그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당신들은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소. 그것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나에게 유익했지 해가 없다는 것이오. 다시 말해서 당신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백해무익하다는 것이지. 밤이 길면 꿈이 많아지는 법인데 이상하게스리 당신들은 감히 그와 같이 커다란 위험을 무릅썼으니…』
홍갈 금미는 이빨을 부드득 깨물며 한이 맺힌 어조로 외쳤다.
『군유명! 너는 잘도 속였고 유혹도 잘했다. 뿐만 아니라 청산유수와 같이 내쏘는 주둥이를 가지고 있구나…』
군유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에게 그런 누명을 씌우지 마시오. 내가 당신들에게 한 말 가운에 어느 한 마디도 거짓이 없소. 내가 스스로 한 일 가운데도 어느 하나 거짓이 없는 것이오. 다만 한 가지 비밀을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 비밀이 바로 모든 일의 관건이었지. 다시 말해서 내가 기사회생(起死回生)하여 여러분들의 마수에서 벗어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바로 이 관건에 달려 있었지…』
그는 손으로 뒷쪽을 가리키며 천천히 재차 말을 이어갔다.
『내가 당신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올 적에 택한 길은 모두 사실이며 내가 당신들에게 말한, 보물을 숨겨 놓은 동굴 역시 털끝만치도 거짓이 없는 장소였지. 심지어 보물이 소장되어 있는 동굴 안의 기관매복 역시 순순히 여러분들에게 고백을 했지.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이미 친히 목격했으니 거짓이 없었다는 것을 믿을 것이오. 내가 알고 있는 바를 모조리 이야기했지만 단 한 가지, 내가 말하지 않은 관건은 바로 내가 여러분에게 나에게 한 분 사숙이 남아 있으며 이곳에서 사신다는 점이었소. 그 어르신께서는 바로 이곳에서 살고 계시며 어언 육 년이란 세월을 보내고 계시오.』
군유명은 입술을 핥고 계속해서 말했다.
『나에게 있어서 나의 이 사숙께서는 가장 온화하고 정다운 분이며 가장 자상하면서도 인정이 많은 분이라고 나는 인정하고 있소. 그 분은 맹수처럼 흉악하지도 않으시고 기관매복처럼 음독하지도 않으며 한 인간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과 똑같은 사람일 뿐이었소. 그래서 나는 그만 여러분들에게 한 번 깨우쳐주는 것도 잊고 만 것이지…』
군유명은 그들이 통한스럽게 여기며 공포에 몸을 떨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나직이 물었다.
『어쩌면 여러분들은 우리 사숙에 대한 느낌이 아마도 나와는 약간 다른 모양이구려, 그렇소?』
이어 그는 옆에 있는 사숙 대천비 곽청을 한 번 바라보았는데 대천비 곽청 역시도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군유명은 눈을 한 번 찡긋하고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 사숙께서는 이 비밀동굴 안에 은거하고 계시는데 그 주요 목적은 이 속세를 떠나서 마음을 갈고 닦는 한편 이왕 이곳에 살고 계시니 나를 도와 이 동굴 안의 기진이보를 지켜주는 것이었소. 나는 매년 어르신을 두 번씩 찾아뵙는데 이 두 번의 날짜는 정해져 있소. 첫 번째는 정월 초아흐레이고 두 번째는 유월 열이레라오. 그러나 내가 매번 이곳에 올 적에는 결코 조금 전에 두 분이 사용했던 방법으로 동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다른 한 가닥, 여러분께 밝힐 수 없는 비밀 지하도를 통해 들어가지. 그렇게 된다면 절대로 기관을 움직일 필요가 없고 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오. 아까 두 분이 기관을 폭발시키게 되었을 적에 당연히 사숙 어르신을 놀라게 했을 것이오. 더군다나 오늘은 사숙과 내가 만나자고 약속한 날이 아닌데다가 더욱이 당신들이 나를 사로잡아 위협을 하는 꼴을 보셨으니 사숙부처럼 총명하고 영리한 분께서는 자연히 당신들의 목적과 신분을 헤아려 볼 수 있었을 거요. 나의 적이 틀림없으리라고 확신을 하셨을 것이며, 내가 당신들에게 인질로 사로잡혀 당신들의 핍박을 받아 이곳에 와 보물을 넘겨주려 한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외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대천비 곽청을 향해 물었다.
『사숙, 이 조카의 말이 옳은가요?』
대천비 곽청은 끄덕이며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맞다.』
군유명은 빙긋이 웃었다.
『이후의 결과는 당신들이 모두가 본 바로서 모든 변화는 당신들의 의표를 찌른 것이었지만 바로 나의 예측대로 맞아 든 것이었으며 그야말로 조금도 오차가 없었지. 그리하여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 일을 어떻게 평가해야 좋겠소? 나의 목숨이 다하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당신들의 죄악에 보응이 내린 것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나의 심계가 깊다고 할까, 그것도 아니면 당신들이 꼼꼼하게 계획을 세웠지만 한 군데 빠진 점이 있다고 해야 할까? 솔직히 말해서 나 역시 여러분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소.』
금미는 잿빛이 된 얼굴 근육을 푸르르 경련하면서 비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옹기그릇은 우물가에서 깨뜨려진다고 했다. 군가야, 이 길을 오래 걷다 보면 언젠가는 한 번쯤은 깨지기 마련이다. 별로 할 말도 없고 우리가 이왕 이렇게 당했으니 너는… 손을 쓰도록 해라…』
군유명은 껄껄 웃었다.
『하하하, 별말씀을 다하시는군. 물론, 당연히 복수를 해야 되지. 그리고 나는 여러분들을 살려주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내가 손을 쓰기 전에 여러분들도 좀 솔직해지면 안 될까?』
홍갈 금미는 의혹에 찬 얼굴로 물었다.
『무슨… 말을… 하라는 거냐?』
군유명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당신들이 나에게 두 번이나 패왕도라는 독약을 먹였기 때문에 지금 나는 제대로 설 수조차 없으니 당신들이 선심을 발휘해서 다시 그 패왕도의 해약을 좀 주어 내가 일어설 수 있도록 하면 안 될까?』
마백수는 목쉰 소리로 부르짖었다.
『너는… 너는 잠꼬대를 하고 있구나!』
대천비 곽청은 싸늘하게 웃었다.
『그런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너는 내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한단 말이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볼까?』
마백수는 그만 참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불안한 나머지 반박할 용기조차 잃어버린 채 누워 있었다.
대천비 곽청의 태도와 표정이 너무나 냉혹하고 잔인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홍갈 금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좋아, 당신에게 주지!』
마백수는 한 쌍의 눈동자를 퉁방울처럼 크게 부릅뜨고 분노에 찬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그에게 해약을 준다고? 당신은… 당신은 미쳤소?』
홍갈 금미는 냉랭하게 코웃음 치더니 미약하게 하면서도 고집이 센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는 미치지 않았어요, 미친 것은 당신이에요.』
마백수는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 당신… 당신이… 그토록 약하고 겁이 많다니… 그야말로 비열하게 적에게 무릎을 꿇는데… 수치를 모르고… 당신네 금씨 집안의 얼굴에 똥칠을 하는 짓이야…』
홍갈 금미의 안색이 새파래졌으며 아담하게 생긴 콧등을 찡그렸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간신히 마음속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냉랭히 입을 열었다.
『마 노인, 패왕도의 약효는 한 시간만 유지돼요. 그 시간을 지나면 해약이 없어도 저절로 회복될 수 있어요. 더군다나 우리들이 해약을 내 놓지 않는다면 군가와 이 사숙이라는 분이 모든 방법을 가해서 우리들을 고문해서 내 놓게 할 것인데 그들의 방법은 우리들이 사용하는 방법보다 효과적일 거예요. 그 때 당신이 견디어 낼 수 있겠어요, 아니면 내가 견디어 낼 수 있겠어요? 견디어 내지 못하게 되어 해약을 꺼내느니 차라리 지금 꺼내주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죽기 전에 부질없이 한 차례 고통을 당해야 하나요? 마 노인, 그와 같은 바보짓은 오직 당신과 같은 미치광이들이나 할 수 있어요.』
마백수는 다시 아무소리도 하지 못했다.
그는 힘주어 머리를 떨구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전신을 와들와들 떨었다.
그러나 홍갈 금미의 말은 사실이었다.
군유명은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세를 아는 사람이 인걸이라 했소. 금 소저, 당신은 인걸이라 할 수 있겠군. 그리고 당신은 내가 고통을 적게 받도록 배려해 주었는데 그 은혜는 내가 잊지 않을 것이오. 나중에 나 역시 똑같이 당신에게 갚아드리지.』
한 옆에 있던 대천비 곽청은 입을 열었다.
『해약은 어디 있느냐?』
홍갈 금미는 조금도 고려해 보지 않고 옆에 앉아 있는 마백수를 입으로 가리켜 보이고 목쉰 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 노인의 품속에 하얀 비단으로 만들어진 금낭(錦囊)이 있는데 그 안에 주홍빛 옥(玉)으로 만들어진 조그만 병이 있어요. 그 병속에 담겨져 있는 청자색의 향기가 감도는 분말이 해약이에요.』
대천비 곽청은 마백수가 어떤 대항을 하기 전에(실제에 있어서 그가 대항할 여유도 없어지만) 대뜸 마백수를 눌러 쓰러뜨리고 두 번 세 번 옷깃을 잡아당겨 그의 품속에 있는 하얀 비단으로 만들어진 금낭을 찾아냈다.
금낭을 찾아내자 대천비 곽청은 손을 뻗쳐 금낭을 뒤져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투명한 주홍빛 옥으로 만들어진 병이 있었다.
이 조그마한 옥병은 상당히 정교하고 아담했으며 호로(葫蘆)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대천비 곽청이 손바닥에 놓자 부드럽고도 화려한 광채를 반짝이는 것이 보기에 여간 정교하지 않았다.
곽청은 가볍게 병마개를 뽑고 그 병을 코앞으로 가져가 냄새를 맡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어. 머리를 맑게 하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향기가 풍기는군.』
그는 약가루를 손가락 끝으로 찍어서 아무 말도 없이 마백수를 붙잡아 일으켜 상대방의 뒷덜미를 다섯 손가락으로 움켜잡고 맹렬히 누르자 마백수는 고통에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그 바람에 그의 입이 벌어지고 그 찰나 대천비 곽청은 손가락을 뻗쳐서 그 청자색 빛을 띠고 있는 약가루를 마백수의 목구멍 안으로 퉁겨 넣었다.
그와 같은 퉁김은 정확했다.
마백수는 미처 방비할 사이도 없이 그만 약가루를 들이마시고 하마터면 사래가 걸려 숨이 막힐 뻔했다.
얼굴이 온통 붉어지면서 눈물을 사정없이 흘리며 기침을 하느라고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했다.
대천비 곽청은 손을 툭툭 털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 계집애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군. 좀 있으면 우리들은 그 병 안의 물건이 해약인지 아니면 독약인지 알게 될 거다!』
군유명은 입맛을 다시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숙, 아마 그녀는 감히 우리들을 기만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천비 곽청은 싸늘히 코웃음 쳤다.
『흥, 아무쪼록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마백수는 두 손으로 목을 얼싸안고 땅바닥에 앉아서 연신 켁켁거렸다.
한참 후에야 가까스로 평정을 되찾았으나 여전히 한사코 거칠은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기에 바빴다.
홍갈 금미는 창백한 얼굴에 한 가닥 두려운 빛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맞아요. 나는 결코 스스로 고통을 불러들일만큼 우둔하지 않아요.』
군유명은 담담히 웃었다.
『당신과 내가 적대적인 관계이니 우리들은 당신의 말을 모조리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오. 사람을 해칠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나 의심하는 마음은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
대천비 곽청은 마른 얼굴 거죽에 한 가닥의 냉랭한 웃음을 떠올렸다.
『이 녀석아, 네 녀석의 말이 옳다.』
군유명은 눈길을 들어 똑바로 마백수의 얼굴을 노려보며 나직하고도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마가가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 같구려. 사숙, 그 주홍빛의 병에 담겨져 있는 것이 해약인 듯합니다.』
대천비 곽청은 말했다.
『좀 더 기다려보자.』
이윽고 모든 사람들이 조용히 침묵을 지키게 되었고 그 어느 누구도 신음소리 한 번 내뱉지 않았다.
분위기는 무겁고도 딱딱하여 질식할 것처럼 느껴졌다. 어둠 속에 피비린내가 뭉실뭉실 피어올라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는 눈동자에서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 누구도 생사의 심판이 곧 도래하리라는 것과 그 심판에 있어서 요행을 바랄 수도 없도 기적도 없으며 심판의 결과는 죽음 이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산바람이 소리를 내며 산꼭대기를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어둠의 공포가 네 명의 포로들의 마음을 휘저었다.
죽음이란 사람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대천비 곽청은 기이한 안광이 번뜩이는 두 눈동자를 살며시 떠보며 말했다.
『이제 됐다.』
그는 홍갈 금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 해약을 얼만큼 복용하여야 하느냐?』
홍갈 금미는 침을 삼킨 후에 쌀쌀하게 대답했다.
『병에 든 약가루를 절반만 복용하면 즉시 해독될 것이에요. 그러나 만약 모두 복용을 하면 효과가 더욱 빠르게 되며 결코 부작용이 없습니다.』
대천비 곽청은 입을 크게 벌리고 웃더니 물었다.
『틀림 없느냐?』
홍갈 금미는 처량하고 슬픈 미소를 띠었다.
『만약 당신이 믿을 수 없다면 스스로 알아서 약을 쓰세요!』
대천비 곽청은 안색을 굳히며 벼락같이 노송을 질렀다.
『주둥이를 조심해라!』
군유명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랑곳하지 마십시오. 사숙, 이 아씨가 입으로라도 잘난 체를 하지 않으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아랑곳하지 마십시오. 이 조카가 이제 해독약을 먹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천비 곽청은 홍갈 금미를 한 번 노려보더니 몸을 웅크리고 군유명의 어깻죽지를 한 번 툭툭 치고는 주홍색의 옥으로 만들어진 병속에 든 청자색의 약가루를 모조리 군유명의 입속에 털어 넣었다.
군유명은 가루로 된 약이 입 안 가득 차자 침을 섞어서 꿀꺽 삼켰다.
숨을 들이마시고 혓바닥을 내밀어 입술을 한 바퀴 핥은 후 입을 열었다.
『이 해약은… 정말로… 쓰군요…』
대천비 곽청은 픽 웃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지 않느냐?』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군유명은 다시 갑자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뱃속에서 한 차례 부륵부륵하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그는 몸을 비틀더니 왁, 하니 온 땅바닥에다가 구역질을 했다.
땅바닥에 싯누렇고 갈색을 띠운 희끄무레한 액체들이 질펀하게 쏟아졌다. 비릿한 냄새와 매캐한 냄새가 즉시 사방으로 퍼졌으며 도저히 그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다.
대천비 곽청은 얼굴에 기쁜 빛을 띄우고 손을 뻗쳐 힘주어 군유명의 뒷등을 어루만지며 안마를 해주었다.
군유명은 왁왁, 하는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토해 내었다.
한참 후에 군유명은 피곤하고 힘없는 손짓으로 손을 내저으며 모기 같은 소리로 말했다.
『됐습니다. 사숙…』
대천비 곽청은 손을 거두고 몸을 일으키더니 자세히 군유명이 땅바닥에 토해 낸 악취가 나는 점액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엄숙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네 녀석의 뱃속에 든 독이 모조리 토해졌다. 그러나 네가 토해낸 독액 속에 음식물 찌꺼기가 하나도 들어 있지 않구나?』
군유명은 푹 꺼진 두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쌀 한 톨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뱃속에서 어떻게 음식찌꺼기를 토해 낼 수 있겠습니까?』
대천비 곽청은 갑자기 입술의 언저리를 한 차례 부르르 떨더니 날카롭고도 매섭게 입을 열었다.
『사흘 밤 사흘 낮 동안 쌀 한 톨도 먹지 않았다구? 이 녀석아, 그러니까 이 길을 오는 동안 줄곧 그들이 너에게 아무것도 먹이지 않았다는 것이냐?』
군유명은 쓰디쓰게 웃었다.
『그 이유 이외에 나는 또 다른 어떤 원인이 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대천비 곽청은 이빨을 으드득, 소리가 나도록 갈더니 극도의 분노에 찬 어조로 입을 열었다.
『좋다. 정말 훌륭한 수단이다. 이 녀석아, 이 사숙이 어떻게 그들이 너에게 베푼 은혜에 보답하는지 두고 보아라!』
군유명은 손등으로 입가의 물방울을 훔치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사숙… 우리들은 천천히 다루기로 하죠.』
대천비 곽청은 휙 몸을 돌리더니 얼굴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흉측하고 무서운 빛을 띠우고 외쳤다.
『누구냐? 너희들 중에 어떤 녀석이 그와 같이 악독한 생각을 짜내어서 나의 사질이 백방으로 모욕을 당하고 학대를 받는 것도 모자라서 사흘 밤 사흘 낮 동안을 굶도록 했느냐?』
네 사람은 감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나같이 가슴이 무섭게 뛰놀았으며 숨이 막혔다.
그들 가운데서도 홍갈 금미만 약간 침착한 태도를 유지할 뿐이고 마백수는 놀라 온몸이 마비될 지경에 놓여 있었다.
대천비 곽청은 이빨을 깨물며 매섭고 악독하게 말했다.
『군유명이 너희들의 간계에 말려들어 너희들의 수중으로 떨어지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가 너희들의 적이니 너희들이 그를 꼼짝 못하게 하고 가혹한 학대를 하고 심지어 고문을 가해 그를 괴롭혔다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를 괴롭히고 그에게 먹을 것도 주지 않고 꼬박 사흘 밤낮을 굶기다니. 너희들이 그토록 심보가 악독하니 어떻게 강호에서 빌어먹고 무림도상에서 내노라고 활약을 할 수 있었느냐? 인두껍을 썼다고 모두 사람이냐? 너희들 한 떼의 개, 돼지만도 못한 새끼들이요, 잡것들이며 하류배들이다!』
네 사람 가운데 홍갈 금미의 안색이 즉시 크게 변해서는 뾰족한 소리로 부르짖었다.
『닥치세요! 늙인이, 당신이 우리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좋아요. 하지만 이 아가씨에게 모욕을 주지 마세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뜸 대천비 곽청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고 그와 동시에 철썩, 하는 맑고 카랑카랑하는 음향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홍갈 금미는 곽청의 한 대의 따귀를 얻어맞고 세 걸음이나 저쪽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삽시간에 입술에서 피를 흘렸다.
그녀는 머리가 산산히 흐트러진 상태인데도 두 눈을 동그랗게 부릅뜨고 신음소리 한 마디 내지를 않았다.
군유명은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잘 하셨습니다.』
그는 홍갈 금미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금씨 양반, 당신의 용기는 훌륭하지만 만용을 부린 것 같군!』
대천비 곽청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동자로 매섭게 금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음산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기집애야, 내 앞에서 강한 척하지 말아라. 그러기에는 아직 멀었다!』
홍갈 금미는 날카롭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맹렬히 머리를 떨쳐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하며 외쳤다.
『호호호, 죽음보다 더 큰 것은 없다. 늙은이, 당신은 기껏해야 내 이 한 목숨을 빼앗아갈 수밖에 없을 거다!』
대천비 곽청은 앙상한 얼굴을 대뜸 팽팽하게 긴장시키며 냉혹하게 입을 열었다.
『너는 내가 너를 살려주리라고 생각하느냐?』
금미의 밝고 교태롭던 한 쌍의 커다란 눈동자에 핏발이 잔뜩 서 있어 더없이 처량하고 비분해 보였다.
그 처량함과 비분함 속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쓰라림과 수치, 그리고 굽히지 않겠다는 오기가 깃들어 있었다.
홍갈 금미는 그와같은 눈동자를 떠서 대천비 곽청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나는 당신이 나를 살려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나 역시 그와같이 치사스런 요구를 하지 않아요. 늙은이, 손을 쓰시지! 대녕하 금씨 집안의 자손이 못났는지 두고 보시라구!』
대천비 곽청은 벼락같이 웃음을 터뜨리며 기염을 토하듯 입을 열었다.
『핫하하하… 좋다, 나는 너희 금씨 집안의 명예를 생각해서 너를 깨끗이 죽여주마.』
군유명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사숙, 잠깜만!』
대천비 곽청은 노해 물었다.
『뭐가 아쉬워서 그러느냐? 이 녀석아!』
군유명은 한 가닥의 쓴웃음을 지었다.
『사숙께서는 잘못 생각하셨군요. 이 후레자식들을 위해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간단히 말해서 아직은 이 자들의 목숨을 빼앗을 때가 아닙니다. 당장 죽이면 너무 아깝지요.』
그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사숙께서는 이 자들의 개같은 목숨을 살려둘 필요를 느끼지 않지만 저는 사숙님에게 간절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아직은 그들을 극락으로 보내서 즐겁게 해줄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물어봐야 할 일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대천비 곽청은 코웃음쳤다.
『흥, 네 녀석은 어릴 적부터 곧잘 괴상한 짓거리를 했었지.』
군유명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웃었다.
『제가 그랬습니까? 저를 위해서 아무쪼록 어르신께서는 너그럽게 양해를 해주십시오.』
군유명은 곁눈질로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위축되어 벌벌 떨고 있으며 머리마저도 가누지 못하는 양릉과 강칠 두 사람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이번에 저는 적지 않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사숙. 육체적인 고통은 제가 당해 낼 수 있었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고통은 저로 하여금 좀처럼 안정을 기할 수 없도록 하고 잊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있어서 가장 훌륭한 약이 무엇인지 사숙께서는 아무쪼록 저에게 말씀해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대천비 곽청은 그 뜻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겁고도 냉랭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복수, 피를 부르는 복수뿐이다.』
군유명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께서는 정말 총명하시군요.』
대천비 곽청은 나직하고도 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는 거냐?』
군유명은 느릿느릿 말했다.
『제 생각에는 이 네 분 멀리서 오신 귀하신 손님들을 동굴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그들이 몽매에도 그리던 보물들을 구경시켜 드리고 싶군요. 물론 이분들에게 손에 넣으려고 안달했던 비취로 만들어진 환희불도 자세히 한 차례 감상시켜 드려야겠지요. 그들이 보물이 있는 산으로 들어섰다가 맨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억울할 테니 죽기 전에 눈요기라도 시켜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천비 곽청은 물었다.
『그리고는?』
군유명은 빙긋이 웃었다.
『그 다음에는, 사숙, 사숙님에게 말씀드리지 않아도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대충 짐작하시겠지요?』
대천비 곽청은 눈동자에서 파란빛을 폭사했다.
『잘 알고 있다.』
군유명은 이빨을 깨물더니 휙 하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몸은 매우 허약한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막 일어서게 되었을 적에 크게 몇 번이나 휘청거렸으며 안색마저도 창백하고 싯누런 빛으로 변하게 되었다.
대천비 곽청은 반 걸음을 다가가서 정히 손을 내밀어 그를 부축하려고 했다. 그러나 군유명은 이미 몸을 휘청 기울이면서 씁쓸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그래도 간신히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사숙께서는 신경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네 분의 귀한 손님들을 어르신께서 아무쪼록 잘 보살펴 주실 것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천비 곽청은 관심어린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 녀석아, 네 몸의 외상은 아직도 씻어내지도 못하고 약을 바르지도 못했으니 응어리지고 부운 자리가 썩어 문드러져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라. 이 네 명의 돼지같은 녀석들은 잠시 한켠에 내버려 두었다가 다시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군유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아직은 괜찮으니 이 사람들을 안치한 후에 다시 약을 바르고 상처를 치료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사숙부님, 제가 먼저 앞장을 서서 길을 안내하지요.』
대천비 곽청은 감격 어린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너의 사부와 내가 너를 너무나 총애해서 너를 망쳤구나… 무엇이든 말을 하면 그대로 할 뿐 듣지를 않으니…』
군유명은 똑똑히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일부러 듣지 못한 척하고 몸을 돌렸다.
몸을 돌린 그의 얼굴에는 한 가닥의 만족스런 웃음빛이 서려 있었다. 그 얼굴은 마치 어리광을 부리는 어린애의 그것처럼 친밀하면서도 만족스러운 웃음이었다.
그는 무겁고 힘겹게 동굴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겨 놓았다.
대천비 곽청은 훅, 하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허리를 구부리더니 좌우 옆구리에 한 사람씩 끼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한 사람씩 움켜쥐고는 가뿐하게 군유명의 뒤를 따라서 쫓아 들어갔다.
이윽고 여섯 명의 사람들은 각기 다른 심정으로 이 비밀동굴의 입구로 들어서게 되었다.
대천비 곽청 역시 그 한 조각의 드리워진 석판을 따라 동굴 입구로 들어섰다.
군유명은 몸을 한옆으로 비키면서 손을 들어 동굴 천정의 한 조각 불쑥 불거져 있는 바위를 한 번 짚었다.
그러자 바깥쪽으로 벌리듯 드리워진 석판이 놀랍게도 다시 한 차례 끼륵끼륵, 쇠사슬이 돌아가는 소리를 내는 가운데 천천히 위로 쳐들리더니 끝내 쿵, 하는 가벼운 음향과 함께 완전히 동굴 입구를 꼭 막아 버렸고 전혀 털끝만치도 빈틈을 드러내지 않았다.
군유명은 담담하게 약간 조롱섞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 한 조각의 석판이 바로 동굴 문에 해당하는데 이 동굴 문은 다시 닫혀져서 원래의 현상으로 돌아갔소. 밖에서 볼 적에는 그 어떤 실날같은 흔적도 찾지 못할 것이오. 이것은 당신들이 먼젓번에 아무 단서도 찾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이지. 그 누구도 이 가파르고 높다랗게 솟아 있는 절벽 안쪽에 이토록 멋진 동천복지(洞天福地)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하지. 만약 그 누가 이곳을 본다면 그저 혼연일체의 한 덩어리 절벽인 줄 알 것이고 천하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절벽이나 가파른 언덕이라고 생각할 것이오…
그러면서 군유명은 그의 귀한 손님들이 똑똑히 듣던 못 듣던 상관하지 않고 또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무시한 채 다시 걸음을 옮겨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때 그들이 위치한 곳은 하나의 협소한 지하도였다.
폭은 겨우 네 치 정도였는데 빛조차 들지 않고 불도 켜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통로의 바닥은 상당히 평탄하고 깨끗하며 미끄럽기조차 했다.
이 지하도는 지극히 짧아 대략 열댓 걸음 정도의 길이밖에 되지 않아서 그들은 곧 끝에 이를 수 있었다.
그 통로의 끝에는 한 조각의 천 근의 무게가 나갈 듯한 잿빛에 흰빛을 띠운 석갑(石閘)이 앞길을 막고 있었다.
군유명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이것은 바로 보물을 숨겨둔 석실로 향하는 두 번째의 문인데 이 석갑을 여는 데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지. 그 하나는 아래로 드리워진 석갑 옆의 쇠고리를 잡아당기는 것이지…』
그와같이 말을 하면서 군유명은 가볍게 손으로 그 주먹만한 크기의, 아래로 드리워져 있는 석갑 옆의 쇠고리를 한 번 건드렸다.
그리고 나서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 쇠고리를 끌어당기기만 한다면 석갑이 물론 열리겠지만 석갑이 결코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꺼지지 않고 지극히 맹렬한 힘으로 앞쪽으로 쓰러지게 되어 있지. 그리고 쓰러지는 위치는 공표롭게도 그 고리를 잡아당긴 사람의 몸을 내려 깔도록 되어 있지. 이 석갑이 바깥쪽으로 무너지듯 쓰러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는 다시 동굴 천정의 한 구멍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동굴 천정 위에도 다섯 자 둘레의 한 조각 바위가 아래로 굴러 떨어지게 되어 있소. 동굴 천정은 땅바닥과 겨우 일 장 남짓하니 바위가 떨어지기만 한다면 저 바위 구멍 뒷쪽에 비밀리에 감추어 둔 육백 근이나 되는 석회가루가 즉시 뿌려지게 되어 있지. 사람은 전적으로 피와 살로 만들어져 있는데 나로서는 그 어떤 사람이 그와 같은 타격에 맞설 수 있는지 궁금하다오.』
말을 하면서 그는 곽청의 오른손에 들린 홍갈 금미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런데 홍갈 금미 역시도 야릇한 표정을 짓고서 군유명을 말끄러미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군유명은 흰 이빨을 드러내고 웃으면서 계속해서 설명을 했다.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이 있는데 이 방법은 절대 안전하고 걱정할 것이 없지. 당신이 힘을 주어 석갑의 왼쪽 아랫쪽을 일곱 번 발로 걷어차게 된다면 이 석갑은 즉시 조용히 그리고 부드럽고도 열린다오. 바로 이렇게 해야 하는 거지.』
군유명은 발목의 고통을 참고 불룩 솟아 있는 석갑의 왼쪽 아래편을 일곱 번이나 걷어찼다.
아, 놀랍게도 그토록 무거운 석갑이 아니나 다를까 그가 말한 대로 아무런 기척도 없이 천천히 안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석갑의 뒷쪽에는 또다시 하나의 아담하고 석종유(石鐘乳)가 가득 드리워져 있는 동굴이었다.
이 동굴 안에는 한 가닥 담담하고도 그윽한 자단목(紫檀木)의 향내가 풍겼는데 이 향내는 바로 하나의 거대한 청옥(靑玉)으로 만들어진 오래된 향로 안으로부터 풍겨오고 있었다.
이 하나의 청옥으로 만들어진 고정(古鼎)은 크기가 어린애의 몸뚱아리만 했고 두 귀가 있으며 세 발을 달고 있었다.
배가 둥그렇고 불룩한 것이 공 모양을 하고 있는데 옥의 빛갈이 섬세하면서도 매끄러워 전혀 흠이 없었고 파란 윤이 나고 있었다. 또 기이하게 생긴 오래된 암문(暗紋)이 번쩍이고 있었다.
이 청옥으로 만들어진 고정 하나만 해도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문 기진 이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고정 옆으로 한 장의 두꺼운, 곰의 가죽을 깔아 놓은 조그만 나무침대가 있었고 하나의 조각이 정묘하고 귀싼 향설목(香舌木)으로 만들어진 탁자가 놓여 있었는데 탁자 위에는 문방사보인 누죽호필(淚竹豪筆), 흑옥연대(黑玉硯台), 홍산호필가(紅珊瑚筆架), 옥선지(玉宣紙), 그리고 대내(大內:황궁)에서 사용하는 금룡취봉묵(金龍翠鳳墨)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와 같은 것들을 제외하고도 전체 동굴 안은 놀랍게도 대낮처럼 밝았는데 동굴 안은 기름등불이나 촛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빛의 근원은 모두 동굴 천정 안쪽에 박아 놓은 열두 알의 야명주였다.
열두 알의 야명주는 하나같이 크기가 거위알만 했으며 반투명하게 윤기 나는 남색이었은데 열두 알의 구슬이 모두 다 요란하게 빛을 반짝이고 있어 전체의 동굴 안이 털끝 하나라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환하고 또렷하였다.
동굴 안에서 흐르고 있는 광채는 그토록 부드럽고 온화하며 또한 그토록 눈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그토록 시워하게 하는 것이 마치 한 조각 투명한 벽파(碧波)에 파묻힌 듯했다.
아래위에 심장 안까지 쾌적하게 하는 담담한 남색의 차분한 광채가 번뜩이고 있어 사람의 솜털구멍은 말할 것도 없고 폐나 장기마저도 상쾌해질 지경이었다.
군유명은 빙그레 웃고 설명을 계속했다.
『세 번째 관문은 바로 이곳에 있다고 할 수 있소. 이곳은 바로 나의 사숙 어르신께서 오랫동안 머물러 오시며 보물을 지켜주시는 곳이오. 여기서 바깥의 기척을 듣고 어떤 변고가 없나 살핀다오. 그런가 하면 내가 매번 밖에서 다른 하나의 비밀통로를 통해서 들어오고 있는데 그 통로는 직접 이곳으로 통하게 되어 있소. 그 입구 역시 이곳에 만들어져 있는데 다만 내가 지적을 하지 않는 한 당신들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고 또한 나로서는 여러분들에게 알려주기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군.』
그는 앞으로 몇 걸음 옮겨 놓더니 입으로 석동(石洞) 오른쪽에 있는 한 철문을 가리켜 보이며 싱글벙글 웃었다.
『저 한 짝의 조그마한 철문 뒤에 나의 모든 기진이보가 소장되어 있소. 그러나 당신들은 절대로 저 한 짝의 조그마한 철문을 과소평가하지 마시오. 그야말로 저 관문을 통과하게 된다면 석실에 가득 찬 주옥(珠玉)들은 당신들의 것이 되오. 그렇지 않고 조금만 소홀히 했다가는 문을 열려고 하는 사람은 박살이 나서 뼈를 묻힐 곳도 없게 될 것이오…』
이어 그는 눈동자에 이상야릇하고도 야유하는 듯한 빛을 띠우고는 조그만 철문을 가리키며 제차 말을 이어갔다.
『당신들도 보시오. 저 철문에는 하나의 손잡이가 달려 있소. 일반적인 도리로 이야기할 적에, 손잡이를 돌리기만 하면 문이 열리게 마련이지. 그러나 당신들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크게 틀렸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틀려지게 되는 것이오. 만약에 손잡이를 돌렸다하면 손잡이 뒷쪽에 매달려 있는 한 조각의 화석(火石)이 즉시 떨어지게 되는데 떨어지게 되는 위치에 공교롭게도 또 다른 화석이 있어 서로 부딪치게 되는 것이오. 그리하여 그 불꽃이 사방으로 튀는데 한 조각 화석의 옆에는 한 무더기의 유황과 초석, 그리고 화약이 쌓여 있소. 불꽃이 튀어가기만 하면 즉시 폭발하게 되고, 폭발의 위력은 충분히 이 전체 동굴을 무너뜨려 모조리 압사시키고 말 것이오.』
잔인하게 씩, 웃은 군유명은 냉혹하게 네 명의 안색이 변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안전하게 들어갈 수가 있을까? 이것은 우리 사숙께서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러 계시면서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던 비밀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외다. 나는 당신들에게 알려주겠소.』
이 때 대천비 곽청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이 녀석아,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느냐?』
군유명은 웃으면서 나직이 속삭이듯 말했다.
『사숙 어르신께서는 그들에게 그와 같은 사실을 누설할 기회가 도래하리라고 믿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