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안내산악회 백두대간 종주 58기와 함께 '덕산재 → 833봉 → 서낭당재 → 부항령 → 백수리산 → 박석산 → 삼도봉 → 삼마골재 -(접속: 2.6km)→ 해인리마을회관'의 16.2km를 7시간 30분 동안 달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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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봉[三道峰]
높이: 1,178m
위치: 충북 영동군 상촌면
"삼도봉". 삼남지방 방언의 갈래길로 정상에 서면 삼도 말씨를 모두 만난다. 산 자체는 소박한 얼굴의 "무욕의 산" 산 아래엔 사시사철 맑고 찬물이 흐르는 "물한계곡"이 있다.
민족화합을 상징하는 삼도봉(1,177m), 민주지산(1,242m)의 한 봉우리로 충청, 전라, 경상도를 아우르는 분수령. 북에서 내려온 산줄기를 받아 한줄기는 대덕산으로 가르고 다른 한줄기는 덕유산으로 갈라 지리산과 맥을 이어준다. 이곳은 조선 태종 14년(1414)에 조선을 8도로 분할하면서 삼남의 분기점이 됐다.
삼국시대엔 신라 백제가 격전을 치르며 세력균형을 유지했다. 이후 역사가 흐르면서 삼도의 지리적 · 행정적 경계인 동시에 방언의 갈래길로 굳어졌다.
남한의 마지막 원시림 지대로 불리는 동 · 식물상의 보고. 신갈나무, 들메나무, 서어나무 군락과 하늘을 찌를 듯 자란 울창한 잣나무숲을 볼 수 있다. 또 고라니, 오소리, 고슴도치, 살쾡이 등과 붉은배새매, 청호반새 등 희귀동물이 살고 있다.
봄철엔 진달래 철쭉이 산을 덮는다. 옛날엔 호랑이가 누비고 다니던 백두대간 능선길. 민주지산 끝자락 각호봉에는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삼도봉은 소박한 얼굴을 지닌 "무욕의 산"이다. 기암절벽이나 폭포 따위를 매력이라 말하지 않는다. 여느 산처럼 빼어난 절경이나 화려한 불교유적도 없다. 바로 옆 석기봉에 머리 세 개를 가진 마애불(삼안마애불)이 있을 뿐이다.
삼도봉으로 향하는 입구엔 사시사철 차가운 물이 흘러내려 여름철마다 피서객이 몰리는 물한계곡이 있다. 계곡 초입에는 10여년 전에 세워진 작은 절 황룡사가 화려한 단청을 뽐내고 있다. 쭉 뻗은 잣나무 숲을 지나 산길을 오르면 여물통 같은 아담한 용소가 나온다. 푸른 잎을 자랑하는 조릿대가 눈속에서 삐쭉삐쭉 고개를 내밀고 있고 석간수가 오솔길로 흘러나와 눈을 녹인다.
산토끼 발자국이 선명한 눈밭 길. 사람들은 엉덩이 썰매를 타며 산에 오른다. 조금 더 가면 석기봉과 갈라지는 길. 이곳에서 4km쯤 더 올라가면 삼도봉 정상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각호봉, 민주지산, 석기봉, 삼도봉에 이르는 능선이 물한계곡을 활모양으로 감싸고 있다. 민주지산이나 석기봉에 오르면 삼도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이 마를 때마다 삼도 인근마을을 번갈아 가며 상이 생긴다는 약수터가 석기봉에 있다.
삼도봉에선 말씨가 다른 사람들을 쉽게 만난다. 산을 오르며 서로 눈인사를 건네다가 정상에 오르면 어느새 친구가 된다. 영동 무주 김천. 각기 다른 길로 올라와 정상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쉬운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정상에는 동서화합을 염원하는 "화합탑"이 있다.
삼도를 상징하는 거북과 용, 검은 여의주로 만들었다. 매년 10월 10일엔 삼도의 산악인과 주민들이 올라와 제를 지내며 화합을 기원하는 행사를 연다. - 한국의 산하
2022년 12월 2주 차 산행은 한 안내산악회의 백두대간 종주팀과 함께 토요일인 10일, 올해 3월에 시작한 22번째 백두대간 연결 산행인 덕산재에서 삼마골재까지 달릴 예정으로, 2022년 백두대간 연결 산행으로는 마지막이다. 물론 이 산행이 정상적으로 종료하면, 남는 3구간 산행은 2023년 계속된다. 이번 산행은 말 그대로 백두대간 연결 산행으로 덕산재에서 부항령까지는 2020년 12월 12일 천고지 산행[산행기]으로, 삼도봉에서 삼마골재까지는 2018년 2월 3일 세 친구가 민주지산 산행의 하산 코스[산행기]로 다녀와, 초행은 부항령에서 삼도봉에 이르는 7.4km(산악회 지도)에 불과하다. 사실 백두대간 연결이라는 목표가 아니라면, 악몽의 덕산재에서 부항령 구간은 다시 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덕산재에서 부항령까지의 구간이 악몽으로 남은 건, 2020년 12월 12일 무박으로 천고지인 삼봉산, 초점산, 대덕산에 오를 목적으로 백두대간 종주팀을 따라 빼재에서 부항령까지 달리는 산행에 참여하면 서다. 그리고 마지막 천고지인 대덕산에서 덕산재로 내려왔을 때 이미 체력은 바닥을 치고, 천고지에 오른다는 목표를 달성한 이상, 부항령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 당시에는 백두대간 종주나, 연결은 관심 사항이 전혀 아니었다. 고로 체력이 바닥인 상태에서, 달리지 않아도 좋은 구간을 달려야 한다는, 정확히는 달리고 싶지 않은 구간을 달려야 한다는, 최악의 기분으로 달린 덕산재, 부항령 코스라, 마감 시각보다 12분 늦게 날머리인 신 부항령에 도착한 낙오 산행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2022년 갈만한 산이 없어, 백두대간 연결이라는 걸 시작한 후 백두대간 종주팀의 산행 계획을 자세히 살펴보니, 빼재, 즉 신풍령에서 시작하는 백두대간 종주 구간의 종점이 부항령이 아니라, 덕산재고 무박이 아니라, 당일 산행이 대세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어서 이번에 가는 덕산재에서 삼마골재까지 달린다. 왜 그때 무박으로 부항령까지 달리는 산행이 눈에 띄었을까? 체력 좋고, 단기간에 종주를 마치고 싶은 대간꾼은 각 구간은 기나, 구간 수가 적은 무박 산행을, 체력 보통에 남는 건 돈과 시간이라는 등산객은 구간 수는 많으나, 구간이 짧은 당일 산행에 참여한다는 게 두 대간 종주 차이다. 물론 나는 후자다! 어쨌든 이후 중복 구간인 덕산재~부항령 구간을 빼고, 부항령에서 삼도봉으로 바로 올라갈 방법이 없을까 연구를 많이 했다. 지난주 다녀온 댓재~백복령 산행에서 중복되는 댓재~연칠성령을 빼고, 연칠성령에서 바로 백복령까지 달리는 방법이 없을까[산행기] 연구했던 것과 완전히 똑같다. 남은 3개 구간도 마찬가지지만!
산행 생활을 시작하며, 백두대간 종주를 먼저 하지 않는 이상, 중복이야 어쩔 수 없는 거고, 이번 22번째 대간 연결 산행이 정상적으로 끝난다면, 남원의 주촌마을부터 오대산국립공원 두로봉까지 백두대간이 연결된다. 이후 백두대간에서 끊어진 구간은, 남으로는 지리산 서북 능선의 고리봉에서 주촌마을까지의 3.2km, 북으로는 오대산국립공원의 두로봉에서 구룡령까지와 설악산국립공원의 미시령에서 대간령까지, 3개 구간이다. 그중 남쪽의 고리봉~주촌마을 구간을 제외한 북쪽의 나머지 두 구간에는 천고지인 응봉산과 신선봉이 있어, 대간 연결과 무관하게 달려야 할 구간이다. 고로 북쪽의 두 구간은 백두대간 연결을 위한 게, 천고지에 오르는 목표를 달성하는 일거양득의 산행이다.
기상청 산악날씨에 의하면, 훈련 중이던 특전사 부대원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걸로 악명 높은, 민주지산의 당일 기온은 0도와 영하 2도 사이를 오르내리고, 바람은 2~3m/s, 구름이 많이 낀 흐린 날씨를 예보하고 있다. 비록 눈 소식은 없으나, 특전사마저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 갑자기 벌어지는 게 흐린 날씨의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라 만반의 준비를 한다. 그렇다고 먹거리가 다르지는 않고, 다만, 눈과 얼음에 대비해 지난 댓재 산행 때 버스에 두고 갔다가 미끄러운 빙판에 낭패를 겪었던, 아이젠은 보조 파우치가 아닌 배낭에 넣었다.
이번 백두대간 덕산재~삼마골재 구간 안내산악회 코스 소개를 보면, 삼마골재에서 해인리 마을회관까지 2.6km의 접속 구간 포함 16.2km 거리에 소요 시간은 7시간 30분을 책정했다. 그리고 마을회관 500m 위에 하산주를 마실 수 있을 거로 보이는 식당을 겸한 해인산장이 있다. 해서 하산주 시간 1시간 반 확보를 위해, 6시간 이내에 해인산장에 도착하는 게 목표다! 그럼 2.7km/h의 속도를 유지해야 하는 산행이라, 쉽지 않다. 그렇다고 목표 달성을 위해 무리하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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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름없이 5시에 기상해 하루를 시작하는 과업을 마치고, 끓인 누룽지로 아침을 먹은 후, 전날 미리 준비해둔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선 시각이 5시 45분경이다. 마을버스를 타고, 불광역으로 향해, 역에서 5시 57분 오금행 열차를 타고 양재역에 도착한 시각이 6시 38분으로 너무 일찍 왔다. 해서 승차장 의자에 앉아, 책을 보다가, 불광역 출발 6시 12분 열차가 도착하는 걸 보고, 개찰구로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등산객이 각자 이용하는 산악회 버스를 타기 위해 좌우로 갈라지고 있다. 다만, 청과물 가게의 틈새 상품인 김밥을 사는 등산객은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김밥을 취급하지 않는 거 같더니, 오늘은 있다. 그런데, 산에 가져가면 얼음과자가 되는 김밥이라, 경험이 있는 등산객이라면 절대 겨울에는 가져가지 않는다는 걸 주인장이 모르나?
산악회 버스가 기점인 사당에서 출발한 걸 확인하고 12번 출구로 나가며 코로나 이전 안내산악회의 대기업이었던, 안내산악회 버스가 정차하는 마을버스 정류장을 보니, 승객이 별로 없다. 그리고 막 버스가 2대의 버스가 도착했는데, 둘 다 둘레길이다. 그런데 몇몇 승객은 왜, 야영 배낭을 메고 있는 걸까? 산악회 무상을 느끼며, 국립외교원 앞으로 가는데, 좀 전의 마을버스와는 달리, 멀리서 봐도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으로 인산인해다. 그리고 6시 56분에 첫 버스가 도착했는데, 멀리서 잘 보이지 않으나, '대간58-??'로 보인다. 오늘 이 산악회에서 출발하는 백두대간 버스는 덕산재, 피앗재, 지기재의 3대로 웬만한 안내산악회 총 출발 대수와 맞먹는다. 오늘 목적지인 덕산재를 제외한 다른 두 곳은 이미 달린 구간이라 버스를 착각하면 낭패다. 해서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앞창 LED에 '대간58-18'이 아니라 '대간58-덕산재'로 표기하고 있다. 산악회 차원에서 표기 방법을 통일한 거로 알았는데, 아니었다.
어쨌든 이 안내산악회를 이용한 이후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선두로 들어온 건 처음이라, 기념해야 할 날이다. 먼저 짐칸에 배낭을 넣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등산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후 가장 편한 자세로 잠을 청했는데, 잠이 안 온다! 지난밤 꿀잠을 잔 덕분이다. 자기 위해 발버둥 쳐봐야 소용이 없어 자는 걸 포기하고, 재미도 없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책에 몰두해, 정신을 차려보니, 버스의 실내등이 들어오고, 인솔 대장이 20분간 휴식한다고 공지한다. 해서 신선한 공기가 필요해 버스에서 내렸는데, 신선한 공기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차가운 공기가 밀려온다. 어쨌든 내렸으니, 짙은 안개 속에서 여기가 어딘지 확인했다. 금산 인삼 휴게소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번 이상 와본 휴게소라, 서둘러 볼일을 보고 나와 추위를 피해 버스에 탔다.
20분간의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지도를 나눠준다. 오랜만의 지도라 한 장 받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인솔 대장이 하는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다른 산행이라면 모르지만, 이번 산행 중 덕산재에서 부항령까지는 지난 2020년 12월 빼재~부항령 구간을 달릴 때 지옥의 코스로 기억에 남아 있어, 다른 인솔 대장은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당시 부항령에서, 앞을 가로막고 있던 봉우리에 질렸는데, 남은 코스의 난이도가 궁금했다. 일단 덕산재에서 부항령은 기복이 많지만, 고도가 높지 않고, 계속되는 계단이라고 설명한다. 난이도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니, 말하는 분위기로 봐서 '하'다. 문제는 부항령에서 앞을 가로막고 있던 백수리산으로 올라가는 게 쉽지 않고, 백수리산에서 박석산 코스는 기복의 높낮이가 심해 힘드니, 초반에 체력 안배를 잘하란다.
끝으로 애초 이 구간 날머리가 해인리 마을회관이나, 버스는 400m가량 위인 해인산장 아래에서 기다린다고. 이번 기수 총무가 밴드에 가입된 인원수에 맞춰 해인산장에 김치찌개를 예약했으니, 그 외 승객이 식사하려면 전화해서 예약하라고. 그 말을 듣고 무언가 꺼림칙했으나, 일단, 하산 직전에 산장으로 전화해 예약하기로 했다. 그리고 해인리로 하산하는 들머리는 세 곳으로, 삼도봉으로 향하는 길목에 두 곳, 삼도봉을 지나, 삼마골재에서 물한리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고 했다. 지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미 알고 있던 등산로다. 이 구간에는 까만 소 백두대간 인증처가 부항령, 삼도봉 두 곳인데, 삼도봉 인증이 필요 없는 등산객은 그 전에 해인리로 내려가도 되나, 첫 번째 만나는 이정표가 아니라, 두 번째 만나는 이정표에서 내려가라고 신신당부했다.
인솔 대장의 설명이 끝나자, 버스의 실내등이 꺼지고, 다시 취침 상태로 들어섰다. 그리고 버스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접어들었을 때, 책 보는 걸 중지하고 창밖의 경치를 구경했다. 그러다 지도 앱으로 덕산재가 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한 9시 50분경 등산화로 갈아신고, 끈을 조인 후 이물질 침입을 막는 미니 스패츠를 착용하는 거로 등산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조금 있자, 실내등이 들어오고, 인솔 대장이 10시 10분경 들머리인 덕산재에 도착할 예정이니, 마감은 5시 50분으로 한다고 공지한다. 5시 40분이 아닌 50분인 이유는 이 기수는 인솔 대장의 재량으로 비록 10분이나, 소요 시간을 조금 더 주고 있었다. 정확히 10시 7분에 버스가 덕산재에 도착해 모든 승객이 내려, 이미 버스에서 준비가 끝난 대간꾼은 산행을 시작했고, 나와 같이 배낭이 버스 짐칸에 있는 산꾼은 배낭을 꺼내 준비했다. 물론 나야 배낭만 둘러메면 바로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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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둘러메고, 백두대간 '덕산재' 표지석 앞으로 가, 2020년 12월 12일 이후 두 번째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보니, 거의 비슷한 시기에 덕산재에서 부항령까지 달렸다! 표지석의 고도 표기에 의하면 덕산재는 해발 644m다. 이번 구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1,176m의 삼도봉이니, 표고차가 532m에 불과해, 해발 1,000m가 넘는 산에 오르는 것 치고는 올려야 할 고도가 그렇게 높지 않다. 물론 덕산재에서 삼도봉으로 바로 올라갈 때 얘기로, 덕산재에서 삼도봉까지 12.6km고, 그 중간에 이름을 가진 1,000m 이상의 봉우리가 백수리산, 박석산 둘, 무명의 봉우리는 몇이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당연히, 700m 이상의 봉우리야 셀 수도 없어, 쉬운 산행은 아니다. 물론 이 모든 게 중간에 덕산재보다 낮은 고개가 없을 때 얘기로, 다행히 부항령은 해발 680m다.
정확히 10시 10분에 덕산재를 떠나 부항령으로 향하는데, 한국 산이 다 그렇듯이 처음부터 깔딱이다. 그리고 연속되는 계단. 덕산재에서 부항령까지 가장 높은 봉우리가 이름을 갖지 못한 833봉으로, 덕산재와 표고차는 크지 않으나, 낮은 봉우리의 연속으로 산행이 쉽지는 않다. 더욱이 대간꾼이 아니면 거의 찾지 않는 코스라, 등산로에는 낙엽이 쌓여, 앞으로 나가는 게 쉽지 않다. 거기다 봉우리를 오르내릴 때는 미끄러워 위험하기까지 했다. 그 등산로, 즉 백두대간을 따라 부항령으로 향해 10시 32분에 이정표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했다. 백두대간은 여기서 좌회전, 부항령까지 남은 거리는 4.2km! 고로 덕산재에서 1km 거리다. 거리나 높이나, 833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등산 앱으로 고도를 확인해 보니, 841m다. GPS 오차를 고려하면 여기가 ‘833봉’이 맞다.
가끔 시야가 트이는 지점을 지날 때는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고, 사진으로도 남기며 가자, 데크 계단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땅에 나무를 박은 계단이었는데, 데크 계단은 처음이다. 문제는 관리하지 않아, 중간중간 계단이 썩거나, 부러져 위험하다는 거. 데크 계단을 올라, 몇 개의 봉우리를 넘고, 높지는 않으나, 11시 10분에 급경사의 봉우리 정상에 도착하자, 쉼터와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에 의하면 부항령까지 거리는 2.4km! 그런데, 추운 게 아니라 땀이 나는 상황이라, 배낭을 벗어 쉼터 의자에 두고, 바람막이 안에 입고 있던 패딩 조끼를 벗어 거기에 넣었다. 그리고 등산이 끝날 때까지 다시 입지 않았으니, 좀 쌀쌀하기는 했으나, 생각보다 춥지는 않은 날씨였다.
다시 미끄러지지 않도록 땅에 나무를 박아 만든 계단으로 오르는 몇 개의 봉우리를 넘은 후 꽤 높게 생각되는 정상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니, 오른쪽으로 산에서 튀어나온 도로가 보인다. 볼 것도 없이 터널과 연결된 도로다. 이 구간에서 터널은 부항령 아래에 있는 '삼도봉 터널’이 유일하니, 부항령이 멀지 않았다. 해서 급경사를 따라 부항령이라 생각되는 곳으로 내려가는데, 작은 봉우리가 또 앞을 가로막고 있다. 한국 산은 한 번에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 없다. 그 봉우리 위에 올라서자,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와 언뜻언뜻 그 모습도 보인다. 부항령이다.
11시 49분에 부항령에 도착해 보니, 세 명의 대간꾼이, 부항령 표지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기고 있다. 백두대간 덕산재~삼마골재 구간 까만 소 인증처 두 곳 중 하나가 부항령 표지석이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방문이라, 별 관심은 없었으나, 그래도 기념으로 부항령 소개 글과 표지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데, 대간꾼이 속속 도착한다. 해서 그들이 인증 남기는 걸 방해하지 않도록 재빨리 사진 찍고, 바로 다음 목표인 백수리산으로 향했다. 이정표에 의하면 부항령에서 백수리산까지는 2.2km다. 지난 2020년 12월 부항령에 도착했을 때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장벽에 질려, '백두대간 연결이 쉽지 않겠구나!'하며, 그 장벽을 백수리산으로 생각했는데, 2.2km 거리라기에는 너무 가까워 보인다. 그럼 그 뒤에 더 높은 봉우리가 있다는 건데?!
부항령을 떠나 백수리산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초행 등산의 시작이다. 백두대간 부항령부터 삼도봉까지 7.4km를 연결하는 게 이번 산행의 목적이니, 가장 중요하다. 초행이라, 당연히 등산로의 상태나 기복 정도를 모른다. 다만, 지도를 통해 대략적인 것만 파악하고 있을 뿐. 다시 봉우리를 향해 올라가며 뒤돌아서, 다시 올 일이 없을 거로 생각되는 부항령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대간을 따라 북진해, 12시 3분에 부항령으로부터 800m 거리에 있는 이정표를 만났다. 삼도봉까지 남은 거리는 6.6km! 이정표를 지나 계속 전진해, 12시 11분에 이정표 따위는 없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좌는 봉우리로 향하는, 경사가 급해 미끄러지지 않도록 나무를 박은 계단이고, 우는 완만한 흙길이다. 양쪽 다 산악회의 리본이 달려 있으나, 오른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상황상, 좌는 능선을 따라 정상에 오른 후 우회전하는 길로, 진정한 백두대간이고, 우는 약간 벗어난 봉우리를 우회하는 길이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평소 흠모해 마지않던, 산악회의 리본이 우를 가리키고 있어 망설임 없이 오른쪽, 즉 우회로를 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른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백수리산이 맞는데, 거리상으로는 아닌 거 같고, 긴가민가하며, 우회로를 따라가는데, 슬슬 배가 고파온다. 부항령에서 점심을 먹었어야 했는데, 인증을 남기는 등산객이 붐비는 속에서 뭘 먹는 게 내키지 않아, 그냥 떠났다. 하지만, 어디선가 해결해야 할 거 같아, 좌우를 둘러보며 갔다. 그런데, 급경사의 산허리를 깎아 만든 등산로라, 좌우 어디로도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그저 앞만 보고 계속 가다가, 좌 즉, 위로 능선이 보이기 시작하며 중간중간 앉을 수 있는 바위도 보인다. 저 능선이 바로 앞의 갈림길에서 계단으로 정상에 오른 후 백수리산으로 향하는 백두대간이다. 물론 지금 가고 있는 등산로와 멀지 않아 만난다. 백두대간을 택한 등산객이 없어, 비록 길목이지만, 방해받지 않고, 점심을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길을 만들며 능선으로 올라가 12시 27분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백두대간이나, 등산로의 상태로 봐서는 대간꾼이 다닌 지 꽤 오래된 거 같다.
마치 한 사람을 위해 만든 자리처럼 보이는 곳에 앉아, 배낭에서 먹거리가 든 디팩과 보온병을 꺼내, 컵라면과 김치로 점심을 먹었다. 물론, 늘 그래왔듯이 뜨거운 물이 남은 보온병에는 마른 우엉을 넣어 차를 만들고. 그 우엉차로 입가심하고, 인간이 있었다는 모든 흔적을 깨끗이 지우고, 12시 42분에 그 자리를 떠나, 백수리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따라오다 점심 때문에 떠난, 백두대간 우회로가 만나는 지점에 도착한 시각이 12시 45분이니, 식당이 갈림길에서 대간을 따라 150여 미터 거리에 있다는 얘기다. 그 갈림길에는 이정표가 있는데, 대간 방향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우회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백수리산까지 남은 거리는 0.56km! 부항령에서 보고, 등산로를 따라오며 왼쪽으로 보였던 높은 봉우리가 백수리산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맞았다. 그럼 2.2km의 거리가 내게는 대단히 짧게 보였다는 거다. 노안으로 먼 곳이 가깝게 보이나?
평소에는 산행 중 점심으로, 걸으며 먹을 수 있는 김밥을 선호하나, 그게 얼음과자가 되는 겨울에는 따뜻하면서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컵라면으로 해결한다. 다만, 김밥이나, 컵라면이나 한 끼를 때우는 거지, 식사라 생각하지 않아, 하산주가 중요하다. 어쨌든 컵라면을 먹느라, 15분가량을 쉬어, 긴장 상태였던 심신이 평소의 푹 퍼진 상태라, 다시 휴식 전의 상태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경사가 급한 것도 아닌데, 헉헉대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백수리봉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낙엽 헤치는 소리가 들리다. 소리의 방향과 크기로 봤을 때, 우회로가 아니라 백두대간 방향이다. 가쁜 숨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리고 예측한 방향이 맞는지, 그게 누군지 궁금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 등산로를 주시했다. 예상대로다. 부항령에서 인증을 찍어주던 두 대간꾼이 말 그대로 대간으로 오고 있다. 우회로를 버리고, 대간으로 오는 산꾼이 있을까 궁금했는데, 있다! 그들을 확인하고, 다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벌써 두 대간꾼이 뒤에 바짝 붙어, 그들을 먼저 보내고, 페이스를 찾기 위해 노력하며 깔딱으로 올라가는데, 등산로에서 벗어난 바위 전망대가 보인다. 당연히 그 바위로 올라가 주변 절경을 감상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전망대에서 먼저 앞으로 가야 할 능선을, 다음으로 2020년 12월에 올랐던 대덕산과 덕유산으로 생각되는 산세와 봉우리를 사진으로 남긴 후 길을 재촉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깔딱을 올라가는데,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백수리산이다. 심신을 등산에 맞는 상태로 끌어올리느라 힘든 가운데도, 정상이 멀지 않았다는 것에 기쁜 마음으로 위를 보며 올라가자, 저 위로 꿋꿋이 서 있는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보이지는 않으나, 최소 10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의 소리가 들린다. 정확히 1시 1분에 정상에 도착해 보니, 꽤 널찍한 헬기장으로 10여 명의 대간꾼이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고 있거나, 북쪽 끝에 있는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고 있다. 식사 중인 등산객 중에는 우회로가 아닌 대간을 따라온 두 산꾼도 있다. 부항령을 떠날 때 점심을 먹고 가겠다는 둘의 대화를 들었는데, 백수리산 정상에서 먹는 건 약간 의외다. 어쨌든 오랜만의 탁 트인 조망이라, 먼저 주변의 절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후 정상석이 있는 곳으로 가 인증을 찍는 대상이 교체되는 사이, 그걸 기록으로 남긴 후 주변을 둘러보고, 눈 앞에 펼쳐진, 당장 가야 할 백두대간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파도처럼 밖으로 퍼져나가는 산세의 모습도 찍은 후 정상석이 빈틈을 이용해 대간꾼에게 부탁해 인증을 남겼다. 그리고 백수리산을 떠나 저 앞으로 보이는 능선 위의 박석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를 향해 고개로 내려갔다. 들머리인 덕산재로 향하는 산악회 버스에서 인솔 대장으로부터 백수리산에서 박석산에 이르는 구간은 기복이 심해 쉽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으나, 많이 내려가지 않기를 빌며 갔다. 박석산으로 향하는 대간은 낙엽이 져 앙상하나, 울창한 가지에 가려 보이는 게 한정적이라 그저 앞만 보고 가야 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가끔 좌우 또는 뒤로 돌아보고, 무언가 보이는 게 있으면, 사진을 찍었으나, 예상대로 원하는 결과물이 아니다.
고도가 높은 박석산이 가까워질수록 경사가 급해는 거야 당연하나, 조망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왼쪽으로 마치 지리산 천왕봉에서 칠선계곡 방향으로 산사태가 난 흔적처럼, 봉우리 정상에서 좌우로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가만히 서서 그걸 주시하면. 이 동네 산을 더듬다가 덕유산이 떠올랐다. 산사태의 흔적이 아니라, 덕유산 설천봉에서 시작하는 스키장 슬로프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기시감이 들어, 언제 봤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민주지산 또는 대덕산행 때인데, 기록이 없어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봉우리 정상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니, 뒤로 그동안 보이지 않던 백수리산에서 여기까지의 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옆으로는 운해에 싸인 대덕산과 삼봉산이, 그리고 가야 할 방향으로는 박석산이라 생각되는 봉우리가 보인다. 당연히 그 모두를 사진으로 남기고 전면의 박석산을 향해 갔다.
박석산을 향해 가며, 간간이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연봉이 민주지산과 석기봉으로 보이는데, 확실하지 않아 긴가민가하며 기록으로 남겼다. 민주지산으로 보이는 봉우리의 모습은 뾰족봉이라 불러도 좋은 정도다. 그래서 더, 민주지산이라 확신하지 못했다. 물론 석기봉 옆의 가까운 봉우리가 박석산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정상으로 올라가는 게 쉽지 않다. 숨을 헐떡이며, 박석산으로 향하는데, 2시 10분경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 아니 부근이라고 알려준다. 당연히 박석산이다. 그리고도 2분을 더 올라가서야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상에는 너덧 명의 대간꾼이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고 있거나, 이미 찍고, 삼도봉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그중 한 명에게 부탁해 인증을 남긴 후, 정상석의 독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고, 기록으로도 남겼다. 사실 주변의 경치라는 게 이미 백수리봉에서 다 감상한 것들이라 새로울 건 없다.
2시 14분에 박석산을 떠나, 삼도봉으로 향하기 위해 급경사의 관목이 우거진 등산로를 따라 고개로 내려가는데, 아래에 데크 계단인지, 다리인지 정체가 불분명한 인공물이 보인다. 궁금증을 안고 도착해 보니, 다리다. 험난한 길도 아니고, 계곡도 아닌 곳에 다리라면, 보호 대상인 늪지일 확률이 높아, 안내문이 있나 주위를 둘러봤으나, 없다. 해서 다리를 건너며 난간 너머로 뭐가 있나, 살펴보니, 늪이 맞아 보인다. 현재는 바짝 말랐다는 게 문제지만. 분위기로 봐서, 보호 대상이 아니라, 다만 대간꾼이 쉽게 지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은 거 같았다. 그 다리를 건너가자 거의 임도 수준의 등산로가 나타났다. 그리고 아래로는 벌목하고 남은 가지들이 질서 정연하게 쌓여 있다. 그 너머로 운해에 싸인 산세가 좋아 감상 후 사진으로 남기며 삼도봉으로 향했다.
삼도봉으로 향하며, 날머리이자, 하산주가 기다리는 식당인 해인산장으로 전화했다. 그리고 상황을 얘기하고, 이미 예약한 15인분 외에 추가 예약이 가능한지 묻자, 몇 명인지 묻는다. 한 명이라고 하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나, 넉넉히 준비했으니 오면 된다는 말로 통화를 끝냈다. 상황으로 보아하니, 준비한 15인분에서 조금 덜어서 줄 모양이다. 나 하나라면 크게 문제될 건 없어 보이는데, 몇 사람 추가되면?! 해서 버스에서 인솔 대장이 15인분을 주문했고, 식사할 승객은 전화해서 각자 주문하라고 했을 때 꺼림칙했던 거다. 해서 하산주는 포기할 생각도 했는데, 박석산을 넘자, 슬슬 배가 고파,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는 에너지 바를 꺼내 먹으며, 전화하기로 한 거다. 일단 예약은 했고, 그 전후 사정까지 고려하면 골치 아프니, 잊어버리기로 하고, 운해에 싸인 주변 산을 감상하며 전진했다. 와중에 앙상하나, 사진 찍는 데는 결정적인 장애물인 나뭇가지 사이로 민주지산을 찾았다. 처음 민주지산을 봤을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삼도봉이 가까워질수록 확신을 넘어, 그냥 민주지산이다. 왼쪽 뾰족봉이 민주지산 오른쪽으로 가며, 석기봉, 삼도봉이다.
민주지산과 석기봉의 모습을 제대로 찍기 위해, 장애물이 없는 장소를 찾으며 전진하다가, 3시 3분에 인솔 대장이 언급했던 첫 번째 이정표가 있는, 해인마을로 하산하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해인마을을 가리키는 방향 표지에는 노란색으로 "위험 구간"이라 쓰여있고, 그 밑에는 '주의 요망(초보자 산행 금지)'이라고 적혀있다. 해서 인솔 대장이 두 번째 갈림길에서 내려가고 한 거다. 그걸 보자 갑자기 이 등산로의 상태가 궁금해, 내려가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나, 백두대간 연결이 우선이라, 호기심을 억눌렀다. 그리고 그 갈림길은 약간의 장애물은 있으나, 지금까지 코스 중 민주지산을 조망하기에는 제일 좋은 위치라, 몇 장의 사진을 찍은 후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3시 12분에 두 번째 갈림길에 도착했다. 물론 이정표의 어디에도 '경고문' 따위는 없고, 삼도봉까지 남은 거리는 0.5km로 다 왔다.
등산로의 남은 500m 대부분은 데크 계단이라, 발을 내딛는 건 편하나, 그렇다고 봉우리를 오르는 깔딱이 없어지는 건 아니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는데, 삼도봉에서 100m 거리의 이정표를 통과하자, 다시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한다. 첫 눈발은 박석산에서 내려와 첫 번째 해인마을 갈림길로 가는 깔딱 길목에서 만났으나, 바로 그쳤다. 그리고 지금 다시 흩날리기 시작하는 게, 정말, 민주지산은 무서운 산이다. 일기예보 어디에는 비나 눈에 관한 얘기가 없는데, 눈발이라니. 그나마 폭설이 아닌 걸 다행이라 해야 하나, 혹시나 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폭설이 아닌 걸 아쉬워해야 하나? 급경사의 깔딱을 올라서니, 가리는 게 아무것도 없는 전망대라, 뒤로 돌아 남에서 올라오는 백두대간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다시 급경사를 올라가는데,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삼도봉에 다 왔다는 신호다.
등산 앱으로부터 삼도봉이 멀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받고도, 3분을 더 올라가서야, 인증을 찍고 있는 등산객으로 붐비는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가 아니라, 경사가 급하고, 중간에 주변 경치를 감상하느라 지체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백두대간은 남원의 주촌마을에부터 오대산국립공원의 두로봉까지 연결했다. 정상에 도착해 먼저, 인증 대상이 바뀌는 틈을 이용해 정상석을 기록으로 남기고, 정상석이 한가할 때 거의 같이 도착한 산꾼에게 부탁해 인증을 남겼다. 삼도봉은 두 번째 방문이나, 제대로 된 인증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후 주변의 조망을 빙 둘러 기폭으로 남겼다. 그리고 뜨거운 우엉차 한잔하며 한숨 돌리고 있는데, 분명 일행이라 생각했던 인증꾼 몇 명이 삼마골재가 아닌 지나온 박석산 방향으로 내려간다. 그걸 보고 삼마골재나 민주지산에서 올라온 등산객을 착각했다고 생각했다.
삼도봉에 다시 오는 일은 없을 거 같아, 마지막으로 정상의 모든 걸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삼도 화합 조형물의 뒷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봐야 삼면이 똑같지만. 그리고 이미 한번 밟았던 코스인 삼도봉을 떠나 삼마골재로 향하려는 순간,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산꾼의 말소리가 들린다. 여성 대간꾼이 박석산 방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왜, 올라오면서 만난, 갈림길에서 해인리로 내려가려고 하냐?'며, 말리는 소리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까 그 방향으로 갔던 등산객도 일행이라는 걸 확인했다. 착각한 게 아니다. 박석산 방향으로 다시 돌아간 이유는, 볼 것도 없이, 해인리로 내려가는 세 등산로 중 가운데에 있는 등산로가 가장 상태가 좋고 편하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록 삼도봉에서 까만 소 백두대간을 인증했을지라도, 900m 아래의 삼마골재까지 가지 않았는데, 백두대간을 완주했다고 할 수 있을까? 까만 소 백두대간 인증 따위는 관심 없는 나도, 삼도봉은 과거에 찍었으니, 바로 내려갈까 하다가, 갈림길에서부터 삼도봉까지의 500m가 빠지는 대간 연결은 의미가 없어 올라왔다. 이왕 올라왔으니, 삼마골재까지 가는 건 당연하고.
그들을 뒤로하고, 삼마골재로 향하는데, 등산객이라기보다는 야영꾼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쉬고 있는 곳에 서 있는 이정표가 눈에 띄었다. 당연히 해인리 갈림길이라 생각했다. 삼마골재는 더 내려가야 하는데, 벌써 갈림길이라? 그럼, 내려가는 길이 3개가 아니라 4개? 이런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해인리 갈림길이 아니라, ‘웰빙 숲길’ 가는 길이다. 그 이정표를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데, 위에서 내려오는 산꾼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중에는 박석산 방향으로 가고자 했던 여성의 목소리도 있다. 바른 선택인지는 두 등산로 다 가보지 않아 뭐라고 할 수 없어, 그러려니 하고 길을 재촉하는데, 다시 눈발이 흩날린다. 이번에는 앞의 두 번보다 더 굵고 많다. 그걸 동영상으로 찍으며, 내려가 3시 44분에 삼마골재에 도착했다. 해인리까지의 거리는 2.3km, 산장에서 해인리까지 대략 500m, 고로 삼마골재에서 산장까지는 1.8km다. 목표한 4시 10분까지 남은 시간은 26분! 등산로의 상태는 알 수 없으나, 일반적인 하산이라면, 아슬아슬하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하산이 내 전문이기도 하고.
삼마골재에서 해인리로 향하는 길목 관목 숲에는 동네 뒷산 체력단련장에 흔히 있는 운동기구가 여기저기 버려져 있다. 비록 운동기구는 부서졌으나, 체력 단련장이 있을 정도면, 주변 마을 사람들이 여기까지 올라온다는 얘기라, 가볍게 하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과 너무 다른 하산길이다. 급경사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의 너덜을 우거진 조리대와 관목이 길을 찾기 힘들게 만든다. 대략 50여 미터를 내려오고 나서야, 왜 부서진 운동기구를 물한리 방향이 아니라, 해인리 쪽의 울창한 관목숲에 버렸는지 알 수 있었다. 와중에 다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뒤에서는 산꾼의 목소리가 들린다. 당연히 그 여성의 목소리도! 순간, 박석산 방향으로 돌아간 등산객 중에는 분명, 이 길을 경험한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지리산 기슭의 너덜에서 뛰어놀던 인간이라 빠른 속도로 너덜을 내려가자, 거의 임도에 가까운 등산로로 나타난다. 그런데, 남은 거리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시각 4시 7분으로, 4시 10분까지 산장에 도착하는 건 틀렸다. 여기까지 오는 급경사 너덜에서 많이 지체했다는 얘기다. 빠르다는 느낌과 실제의 차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내려가야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등산 앱으로 임도를 만난 위치의 고도를 확인했는데, 706m다. 해인리 산장이 들머리인 덕산재와 비슷한 고도라면 최소 수직으로 60m가량을 내려가야 한다. 계곡을 따라 난 임도로 산장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있는데, 계곡 쪽에서 무언가 후다닥 뛰어가는, 아니 도망가는 소리가 들려, 찍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위치를 잡는 순간 벌써 숲으로 뛰어들어 안 보인다. 고라니다! 사진을 찍지 못한 걸 아쉬워하며 내려가는데, 저 아래로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보인다. 다 왔다. 현재 시각 4시 22분. 목표보다 12분이 늦었다. 인솔 대장이 추가한 10분 빼면 2분이나, 산장은 얼마나 더 가야 하나 모른다. 분위기로 봐서는 멀지는 않은 거 같지만. 도로에 도착해서 보니, 위에서 본대로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있는 곳이 갈림길로 다리를 건너는 길이 삼도봉에서 해인리로 내려오는 길 중 가장 상태가 좋고 편하다는 그 길이다.
갈림길에는 당연히 이정표가 있는데, 그걸 보니 삼마골재에서 했던 거리 계산에 많은 오류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해인리라고 하면 해인리 마을회관까지의 거리라 생각했는데,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까지의 거리다. 고로 산장까지 1.8km가 아니라, 삼마골재에서 갈림길까지 2.3km에 산장까지 알 수 없는 거리를 더해야 한다. 계산 착오로 목표 달성은 실패했으나, 빨리 산장에 도착하는 게 중요해 길을 재촉해 내려가자, 갈림길에서 20여 미터 거리의 빨간 지붕 건물 앞에 '해인산장'이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도착했다. 현재 시각 4시 24분으로 목표보다 14분이 늦었으나, 산행 끝났다. 이제는 1시간 20분가량 주린 배를 채우고, 하산주를 마시면 된다.
3
입간판이 서 있는 곳은 산장의 뒤고, 빨간 산악회 버스도 안 보여, 도로를 따라, 버스와 산장의 입구를 찾아 20여 미터를 내려가자, 산장 정문이 있다. 그리고 박석산 방향으로 갔던, 등산객이 버스에서 짐을 가지고 올라온다. 그가 먼저 들어가고 그 뒤를 따라 산장으로 가자, 주인장으로 보이는 사람과 그 등산객이 무슨 말인가 나누더니, 등산객은 한 건물로 들어간다. 그 후 주인장에게 산에서 전화했던 사람이라고 얘기하고, 어디로 들어갈까 물었다. 그러자 그 등산객이 들어간 곳으로 들어가라고 해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숯이 타고 있는 불판을 가운데 두고 사각으로 배치한 테이블 3개가 있는 방이 딸린 식당이다. 앞선 등산객은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생소한 분위기라 어떡할지 모르고 있는데, 주인장이 밑반찬이 놓인 안쪽의 식탁에 앉으라고 한다. 해서 일단 자리를 잡은 후 배낭을 벗어 한쪽에 두고 수도가에서 씻고 오니, 다른 등산객이 도착해 주인장과 얘기를 나고 있다.
나는 비록 산에서 전화로 예약하기는 했으나, 먼저 도착한 우리 셋은 이번 백두대간 기수의 정식 인원이 아니라, 15인의 예약자에 속하지는 않는다. 해서 계산이 밝은 나중에 도착한 산꾼이, 김치찌개가 유일한 메뉴라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가격을 물었다. 김치찌개 만원, 공깃밥 천원, 막걸리 5,000원, 소주 4,000원이다. 그 등산객은 찌개와 밥, 막걸리 해서 16,000원, 나는 소주라 15,000원,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 사람도 막걸리를 원했으나, 양이 많아, 둘이 같이 마시기로 해 11,000원! 나중에 계산하라는 주인장의 말을 무시하고, 각자 그 자리에서 계산하고 자리를 잡고 앉자, 큰 냄비에 김치찌개를 가져와 불판에 올려놓고, 공깃밥을 준다. 찌개를 작은 냄비나, 뚝배기에 따로 주는 게 아니라, 각자 알아서 퍼먹는 시스템이다. 회장과 총무가 있는 단체 회식에는 어울리나, 안내 산악회에는 전혀 맞지 않는 시스템이다. 예약한 15인을 위한 시스템에 우리가 낀 형국이다.
시스템을 이해한 순간, 먼저 결제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인장에게 식당 앞에서 들어오는 등산객에게 입장료를 받으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기분 내키면 한 사람이 계산하니 그럴 필요가 없단다. 그리고 숯불을 피우고 불판을 설치한 건 김치찌개를 끓이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한잔하다가 동하면 고기 굽는 게 일상이라, 미리 준비한 거다. 안내산악회 시스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주인장이다.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 먼저 온 셋이 각자 막걸리나 소주를 마시며 이번 산행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등산객이 속속 도착해 자리를 잡고 앉자, 주인장이 부족한 김치찌개를 보충해 주며, 얼마든지 채워주니 걱정하지 말고 먹으란다. 물론 정기 회원이 아니다.
예약자인 정기 회원을 포함해 대부분이 도착해 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먹고 마신다. 15인분의 김치찌개를 준비했으나, 25명 정도가 들어왔으니, 10명 초과라, 얼마든지 채워준다던 찌개는 바닥이 났다. 그리고 뒤에 들어온 사람은 보충되거나, 따로 주는 찌개가 없으니, 누군가 주문한 찌개를 같이 먹는 거라, 돈을 지불할 생각이 전혀 없다. 물론 술값은 빼고. 그렇다고, 어차피 15인분을 나누어 먹었으니, 산장 주인장이 손해 본 건 없다. 예약한 정기 회원이 산 거다. 와중에 먼저 도착해 식당에 자리잡고 앉아, 미리 밥값을 지불한 몇 명과 함께! 주변의 등산객과 술잔을 기울이며, 얘기해보니, 산에서 예약 전화를 한 사람은 제일 먼저 도착해 씻고 옷을 갈아입은 73살의 노인장과 내가 유일했다. 그렇다고 김치찌개가 따로 준비된 건 아니지만.
고기를 주문할 낌새도 보이지 않고, 반찬만 계속 채워달라고 하자, 주인장이 우리 식탁으로 와 빈 그릇과 반찬을 치우기 시작한다.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 두 번째 병을 가져와 마시는 중에 주인장의 행태에 화가 나, 한바탕하려는데, 민박하러 온 손님이 기다려서 그러니 이해해 달란다. 해서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건너편에 앉아서 소주를 마시고 있던 여성 산꾼이, 조금 남은 두 번째 병을 보더니 달란다. 삼도봉에서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너덜을 택한 산꾼이다. 남은 소주를 그 술꾼에게 주고, 주인장에게 추가 소줏값 4,000원을 지불하고 나와, 버스를 찾아, 마을회관 방향으로 내려갔다. 5시 23분에 버스에 도착해 타서 보니, 하산주에 관심 없는 서너 명이 자거나 핸드폰을 보고 있어, 조용히 내 자리에 앉아, 잠을 청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식당에 있던 모든 등산객이 내려와 버스에 탄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다들 쫓겨났다. 그리고 정기 회원 외에도 밥값을 지불한 사람이 꽤 있는 거 같다. 그럼 주인장이 폭리를 취한 거다?!
어쨌든 백두대간 덕산재에서 삼마골재까지 잘 달리고, 마감 시각인 5시 50분보다 일찍 도착해 하산주도 마셨으니, 다들 대단히 만족한 산행이다. 하산주를 마시는 과정에서 주인장과 야간의 충돌이 있기는 했으나, 안내산악회의 속성을 몰라서 벌어진 일이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어쨌든 공식 마감인 5시 50분보다, 10분 빠른 5시 40분에 버스는 해인리를 떠나 양재로 향해, 하산주 덕분에 볼일이 급한 승객을 위해 6시 44분에 추풍령 휴게소에서 10분 후식 후 다시 달렸다. 그리고 8시 59분에 아침에 출발했던 양재 국립외교원 앞에 도착하는 거로 백두대간 덕산재, 삼마골재 산행을 종료했다.
안내산악회 백두대간 종주 58기와 같이 '덕산재 → 833봉 → 서낭당재 → 부항령 → 백수리산 → 박석산 → 삼도봉 → 삼마골재 -(접속: 2.6km)→ 해인산장’의 17.01km(트랭글)를 6시간 19분 동안 달렸다. 이동 6시간 4분, 휴식 15분!
멀쩡하던 날씨가 민주지산이 가까워지자, 눈발이 날리는 게, 해발 1,000m가 넘는 산에서는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몰라,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한 산행이다.
삼도봉을 제외하면 딱히 내세울 건 없는 구간이나, 덕유산, 대덕산, 민주지산을 조망일 수 있어, 좋았다.
역시 지난 백두대간 빼재~부항령 산행에서 덕산재~부항령 코스가 힘들었던 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무박 산행 덕분이라는 걸 알았다. 대부분 무박 산행에서 마지막 5km는 지옥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