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버트 프로스트는 1874년부터 1963년까지 살았던 미국의 국민시인이다.
우등생이었던 그는 자신과 같이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고별시를 낭독했던 동기인 엘리너 와이프와 결혼한다.
그는 다트머스와 하버드에 입학했다. 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뉴 햄프셔의 데리 주에서 농장을 경영하기 위해 20년 동안 여러가지 일자리를 찾아다닌다. 그의 여섯 식구는 가난에 눌려 살았던 시기이다.
1912년, 그는 영국으로 이주해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다. 그리고 많은 신인 시인들을 격려하고 지원하던 에즈라 파운드의 지원을 받아 영국에서 <Boy's Will>이라는 시집을 낸다. 그러나 많은 인지도를 얻지는 못한다.
노후를 주로 강연, 강의, 시민 강좌로 보내다가 시를 낭송하는 녹음 영상도 남겼다.
A lesson for today: 나는 세상과 사랑싸움을 했다 등.
2.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신적 고향으로 뉴 잉글랜드를 꼽는다. 그 이유는, 뉴 잉글랜드는 '셈에 밝은 사람들' yankee들의 도시라는 약칭적인 도시이기도 했지만, 미국의 역사에서 가장 먼저 이주민들이 들어온 도시이며 상업, 정치, 문화적인 중심지가 되는 미국인들의 정신적인 고향과 정체성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비리그 역시 뉴잉글랜드 지방을 비롯하여 생겨났다. 그는 자신의 대부분의 시에서 뉴 잉글랜드 지역의 자연환경을 등장시켰다. 자연이 지니는 의미란, 뒤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시의 전경은 항상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 눈내리는 저녁 숲길에서 담장 고치기, 미국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시인이다. 우리나라의 윤동주, 서정주, 김소월, 백석 중 견줄 만한 시인은 누구일까? 이렇게 대중적인 위치에서 정체성의 뿌리를 공유하는 정서를 다루는 시인은 윤동주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가 다루는 개인적으로 참회하는 감정과는 달리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상은 주로 일반적이면서도 서정적인 풍경을 그려낸 서정주와 비슷하다. 그러나 서정주는 친일이력이 있어서 마음편히 회자되지는 못한다. 개인적으로는 김소월, 백석과 연관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Mending Wall 돌담 손질
BY ROBERT FROST
Something there is that doesn't love a wall, 벽을 싫어하는 존재가 있다.
That sends the frozen-ground-swell under it, 벽 아래로 질펀한 흙을 흘려보내고
And spills the upper boulders in the sun; 해 아래 위쪽 돌들을 쏟아내리는
And makes gaps even two can pass abreast. 그리고 두 명이 다닐 만큼의 틈을 만드는
The work of hunters is another thing: 그것은 사냥꾼이 한 것과는 다른 일이다
I have come after them and made repair 나는 그들의 뒤를 밟아 수리했었다.
Where they have left not one stone on a stone,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았지만
But they would have the rabbit out of hiding, 숨으면서 토끼를 잡았을 것이다
To please the yelping dogs. The gaps I mean, 개들을 위해서, 내가 본 이 틈은
No one has seen them made or heard them made, 아무도 만들어지는걸 보거나 듣지 못했으며
But at spring mending-time we find them there. 땅이 녹는 봄에만 우리는 찾아볼 수가 있다.
I let my neighbor know beyond the hill; 나는 내 이웃형제에게 언덕 너머로 알렸다
And on a day we meet to walk the line 그리고 그 날 우리는 선을 따라 걸으며
And set the wall between us once again. 우리 사이에 놓인 벽을 다시한 번 세웠다
We keep the wall between us as we go. 이 벽을 유지해야 우리가 잘 지낼 수 있다.
To each the boulders that have fallen to each. 각자쪽으로 떨어진 돌들
And some are loaves and some so nearly balls 몇몇 개는 덩어리이고 몇 개는 공과 같다
We have to use a spell to make them balance: 우리는 그것들이 유지되도록 주문을 사용해야만 한다
‘Stay where you are until our backs are turned!’ 머물러라 우리가 등을 돌릴 때까지!
We wear our fingers rough with handling them. 우리는 벽돌들을 다루며 손이 거칠어졌다
Oh, just another kind of out-door game, 오, 새로운 종류의 야외 게임 같은 거구나.
One on a side. It comes to little more: 한 쪽에, 그것은 더 적다.
There where it is we do not need the wall: 사실 여기에 벽이 있을 필요가 없다.
He is all pine and I am apple orchard. 그는 모두 소나무고 나는 사과나무 정원이다.
My apple trees will never get across 내 사과 나무들이 벽을 넘어서
And eat the cones under his pines, I tell him. 당신의 솔방울들을 먹어치울 일은 없잖아요, 내가 말했다.
He only says, ‘Good fences make good neighbors.’ 좋은 울타리가 좋은 이웃관계를 만들죠. 그는 말할 뿐이었다.
Spring is the mischief in me, and I wonder 봄은 내게 미신이고, 나는 궁금했다.
If I could put a notion in his head: 만약 그의 머리에 생각을 집어넣을 수 있다면?
‘Why do they make good neighbors? Isn't it 왜 그들은 좋은 이웃을 만들려고 할까?
Where there are cows? But here there are no cows. 소가 있으면 모를까, 소도 없는데?
Before I built a wall I'd ask to know 벽을 다 짓기 전에 나는 물어봐야만 했다.
What I was walling in or walling out, 나를 품어 가두려고 하거나 혹은 내가 외부로 가두려고 하는 것을
And to whom I was like to give offense. 방어하고 싶었던 사람에게.
Something there is that doesn't love a wall, 벽을 싫어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That wants it down.’ I could say ‘Elves’ to him, 그것은 벽을 무너뜨리고 싶어한다. 나는 요정들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
But it's not elves exactly, and I'd rather 그러나 정확히는 요정들이 아니며, 나는 오히려
He said it for himself. I see him there 그가 자신 스스로 떠올리는 것을 보고 싶었다. 나는 그가 그곳에서
Bringing a stone grasped firmly by the top 두 손에 가득 움켜쥔 돌을 위로 가져와
In each hand, like an old-stone savage armed. 구석기로 무장한 야만인처럼
He moves in darkness as it seems to me, 내가 보이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이동했고
Not of woods only and the shade of trees. 숲이 아니라 나무들의 그늘만 보일 뿐이었다
He will not go behind his father's saying, 그는 그의 아버지가 남긴 말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And he likes having thought of it so well 그리고 그는 그 생각을 지키기를 좋아할 것이다.
He says again, ‘Good fences make good neighbors.’ 그는 다시 말했다. 좋은
주제: 고독, 소통없는 이웃과의 소통없는 세태 비판.
왜 좋은 울타리가 좋은 이웃관계를 만들까? - 인간관계에서 적절한 벽과 선을 지키라는 것.
울타리가 왜 좋은 이웃관계를 만들까?
감상 및 분석: 화자는 사회적 혹은 일대일 본능적 에너지가 큰 사람, 그리고 화자 이웃은 자기보존본능이 큰 사람. 어찌보면 이웃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이치에 맞는 사람이지만 그 자신과의 경계를 지키는 합리적인 태도 때문에 외로울 가능성이 크다. 화자는 그 외로움을 알고 있기에 다가가지만, 꼭 그래서 문을 열어야만 하는 합리적 이유같은 건 없다. 그 사람에게 적당한 오지랖이 허용되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 위치에 있는 인물일 뿐이다. 과연 화자의 시각이 맞는지 아니면 화자 이웃의 시점이 맞는지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이 큰 사람이어서 그런지, 화자 쪽의 시선, 그 새로운 가능성, 친구가 될, 울타리를 허물어버릴 그 사건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시를 읽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타인에게 허용해달라는, 당신 마음의 벽과 선을 허물어 있는 그대로의 내가 들어가고 싶다는, 그 위험천만한 동기를 과연 이 시대의 어떤 이웃이 이해해줄까. 무의식에 잠겨버린 그 이웃의 외로움을, 외로울 것이라고 단정지어도 괜찮은 것일까? 내 생각은 다만 화자가 새로운 이웃을 만나기를 기대해야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혹은 이웃과는 관련 없이, 이 시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는 우리 사회가 마음을 터놓고 열어줄 만한 신뢰감을 갖기 위해서 무엇을 노력해야만 하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문제일까?
+ 사람 사이의 벽과 선을 구체화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과연 인간관계 사이의 벽과 선이란, 낯섦에 대한 경계는 어느것까지가 적당한 것일까? 그 선이 과연 무엇일까. 위계질서, 예의? 겸양, 높임의 문법일까? 귀찮게 하지 않는것? 그렇다고 무관심은 아닐 텐데...
무관심 < 그 사이 무언가 < 오지랖
[출처] 미국시 16 - Robert Frost : Mending Wall|작성자 꿈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