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가들은 대부분 색을 밝혀왔다. 때로는 진정으로 사랑을 나누기도 했지만 욕망에 휘둘린 것이 대부분이다. 선천적으로 DNA에 호색의 유전자가 들어있어야만 예술가의 재능이 발현되는 그런 메카니즘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선지 그들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여성들과 이리저리 얽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작품들에서 보이는 화려하고 우아한 모습과는 달리 보통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매우 방탕하고 비도덕적이기까지하다.예술가들은 많은 경우 여성에게서 모티브와 영감을 얻는다고들 하지만 선천적으로 절제되지 않는 어떤 끼가 작용하는 것 같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르네상스 시대를 견인한 3대 예술 거장 중 한 명인 라파엘로(1483~ 1520)도 예외는 아니었다.그는 예술적 재능만큼이나 여성편력에도 뛰어난 인물이었다. 온화하고 청순한 용모와 부드러운 눈길은 그의 세련되고 우아한 화술과 인문학적 소양이 뒷받침되면서 여자들의 모성애를 자극하고 마음을 흔들었다고 한다. 그가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도 문란한 사생활때문이었다는 것이 거의 정설화 되고 있다.
37세로 죽을때 까지 그는 독신이었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의 원인은 여자들과의 문란한 관계로 인해 매독에 걸렸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왔다. 미술사에 담긴 그의 죽음과 관련된 기록들은 모두 그의 방탕한 사생활을 사인으로 거론했다.
특히 당대 건축가,화가이며 라파엘로의 동료인 조르조 바사리는 그의 저서 '미술가 열전'에서 "라파엘로는 미혼이었지만 1514년 추기경 메디치 비비에나(Medici Bibbiena)의 조카 마리아 비비에나(Maria Bibbiena)와 약혼했었다"며 "적지 않은 연애를 하면서도 로마의 한 제빵사의 딸 마르게리타 루티와 사랑에 빠졌던 것 같다”고 썼다.
그는 또 "라파엘로는 로지아(Loggia)에서 작업을 한 뒤에는 매일 여성들과 시간을 보냈다"며 "그러다가 고열이 나면서 병들어 15일 동안 몸져누웠고, 죽음을 직감하면서 고해성사를 한 뒤 유서를 작성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나친 성생활로 죽었다.체액(humours)의 균형을 잃으면서 건강을 해치기 시작했다.결국 열이 치솟는데도 의사들은 아무 말 없는 그에게 잘못된 치료를 하여 죽게 만들었다”라고 썼다. 바사리는 라파엘로가 1520년 성금요일 세상을 떠났으며 판테온(Pantheon)에 안장되었고 당시 그의 장례 소식은 파리에까지 소문이 날 정도로 대단했다고 적었다.
라파엘로가 르네상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보니 그의 사인에 대한 관심은 수백년간 끊이지 않았다. 2020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비코카대학 연구팀은 당시 사료와 상황들을 종합판단한 결과 라파엘로의 사인은 매독이 아닌 폐렴이라는 새로운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연구팀은 라파엘로가 연인을 만나기 위해 초봄인 3월의 밤에 자주 외출했는데 갑자기 고열이 발생했다는 것은 찬 기온에 노출돼 폐렴에 걸렸기때문인 것으로 진단했다. 특히 동료 건축가 바사리의 기록을 보면 라파엘로는 의사에게 그 사실을 제대로 털어놓지 못했다고 한다. 연구팀은 라파엘로가 고열로 고생했지만 생명이 위독한 정도는 아니었는데 의사가 폐질환에 치명적인 방혈 요법을 사용해 죽음에 이르게 됐다고 주장했다.
라파엘로는 1483년 이탈리아 중부 도시 우르비노에서 궁정화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우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페이트로 페루지노의 그림 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았다.르네상스의 3대 천재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나이 차이는 있었지만 동시대의 인물이다.
라파엘로는 젊어서부터 대가들의 수법을 자기것으로 만들며 두각을 나타냈다. 피렌체에 4년간 머물면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는 선의 움직임까지 모방하며 배웠다.레오나르도로부터는 명암법과 피라미드형 구도를 차용해 자기것으로 만들었다. 그의 천재성은 이미 16세에 그를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1508년에 교황 율리우스2세의 부름을 받아 로마로 간 그는 서명의 방 프레스코 연작을 제작하면서 대표작중 하나인 '아테네 학당'을 그렸다.
<라파엘로의 전 작품중 가장 유명한 아테네학당. 진리는 인문 과학을 기반으로 한다는 르네상스의 사상을 그림을 통해 표현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학당에 모여 학문과 진리에관해 토론하는 상상화다. 가운데 걸어나오는 두사람중 붉은옷 입은 왼쪽이 플라톤이고 오른쪽이 아리스토텔레스다.>
라파엘로는 성모 마리아를 뛰어나게 잘 그려낸 화가다. 그가 표현한 마리아에선 모두 순결하고 청순한 인상에,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과 그리운 연인의 모습을 동시에 담고 있다. 그가 사랑했던 연인 마르게리타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제빵사의 딸 마르게리타 루티(Margherita Luti)는 라파엘로가 가장 사랑했던 마지막 연인이었다. 성모마리아를 완벽하게 완성하기위해 모델을 찾던중 그녀를 발견하고 모델로 고용했다.
그녀는 큰 눈에 흰 피부, 풍만한 몸매의 아름다운 여인으로 둘은 곧 연인사이로 발전했다. 당시 라파엘로는 추기경의 조카딸과 약혼한 상태로 마르게리타와의 관계를 숨길 수 밖에 없었다.
이 둘의 관계는 소문으로만 무성했다. 라파엘로의 제자 로마노는 남겨진 그림들 속의 상징들을 통해 마르게리타와의 관계를 알아차렸다.
라파엘로는 마르게리타를 모델로 한 그림속 인물이 팔에 두른 밴드에 라파엘로의 여자라는 뜻이 담긴 메시지를 적어넣었다. 왼손 약지에 결혼반지를 그려 넣어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로마노는 스승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그림 위에 덧칠을 해 둘의 관계를 숨겨주었다. 하지만 2001년 특수촬영 기술의 발달로 원래 그림의 모습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둘의 관계가 밝혀지게 됐다.
<네이버지식백과,나무위키,벽운의 '라파엘로의 작품세계',새본의 '르네상스예찬',그리다의 '라파엘로 작품 라 포르나리나',아트스탯의 '천재화가 라파엘로의 그림속 비밀연애’등 참조>
Love Is Magic(사랑은 마법) / Newton Family(뉴튼 패밀리)
Newton Family는 헝가리의 팝 그룹이다. Love Is Magic은 1985년 데뷔 앨범 'A Love That I Need'의 타이틀 곡으로
헝가리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86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서울국제가요제애 참가해 우수가창상을 받은 곡
이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Newton Family의 히트곡으론 Smile Again이 있다.
첫댓글 그림도 잘 그리고 여자 관계도 복잡하고
성모 마리아 정말 멋진 그림이지요
나도 부럽습니다.
천재의 특권이려니 생각합니다.
부럽다고 하기엔 너무 방탕스럽고
좌우지간 뭇 남성들의 질투를 많이
받았을 것 같네요...
그렇습니다.
여성을 좋아하는 것은
천재 예술가들의 특성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합니다.
자상하고
따뜻하고
유머도 있었다하니
바람끼가 그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항변해봅니다 ㅎ
카사노바가 그랬던 것처럼 ^^
여인들이 걍 내버려두지를 않았어요 ~
그러니
과유불급
항상 명심하고 살아야지요
"넘침은 부족함만 못 하느니라"
가온누리님이 라파엘로 팬이신것 같습니다.
그의 바람끼를 변호해 주시니...
맞는 말씀입니다. 라파엘로가 말을 걸어도 여인들이
받아주지않았으면 불가능했겠죠...
말씀대로 넙죽넙죽 받아먹은게 문제같습니다.
^^;
남다른 예술적 감각으로 천재성을 가진
비운의 예술가.
그들은 늘 고독했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술로 달래는 사람,
여자로 달래는 사람,
그래서
원만한 가정을 꾸리지 못하는
예술가들의 삶.
그냥 적당히 살면
천재적 예술이 나올 수 없는가 봄돠.
천재들이라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꽃비님 고견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