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 정토회관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북한 전문가들과 조찬 모임을 하는 날입니다. 평화재단 실무자들이 정성껏 준비한 밥상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세미나실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북한 주민의 생활 상황을 살피고 환율과 식량 가격의 변화를 점검했습니다. 현재의 안보 위기 상황을 깊이 우려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도 남북한이 평화를 유지하고 통일의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을지 북한 전문가들과 두 시간 동안 토론을 한 후 모임을 마쳤습니다.
조찬 모임이 끝나고 오전 9시 30분부터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과 미팅을 했습니다. 한반도 위기 상황을 타개할 의견을 경청하고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미팅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2시부터는 정토사회문화회관 6층 스튜디오에서 ‘Two Korea, 기로에 선 통일 패러다임’을 주제로 진행된 평화재단 정기 심포지엄에 참석했습니다.
평화재단은 2004년에 창립된 이후 올해로 20년째 한반도 평화와 국가 발전의 비전을 연구하고, 교육하고, 실천해 왔습니다. 오늘도 여러 전문가들을 모시고 근본적 변화의 입구에 선 통일 패러다임을 진단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집단 지성을 모으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2시 정각이 되자 스튜디오에 설치된 표시등에 ‘ON AIR’라고 빨간 불이 들어오고, 곧바로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통일과 민족을 지우겠다고 선언한 북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형기 평화재단 고문이 인사말을 통해 북한이 통일과 민족이라는 말을 지우겠다고 선언한 현시점에서 통일의 의미와 방향성을 재고해야 한다며 심포지엄의 취지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북한은 작년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 2국가관계로 규정하고 통일과 민족이라는 말을 지우겠다고 나섰습니다. 그 말대로라면 앞으로 남과 북은 통일을 해야 할 근거도 이유도 없어지며 단지 국제법의 적용만 받는 국가 관계가 됩니다.
우리는 현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이 시점에서 통일의 의미와 과정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그리고 연관해서 두 개 국가로 가겠다는 북한을 어떻게 불러 세울 것이며 대화조차 끊어진 남북 관계를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도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통일은 우리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이지만 우리의 평화와 안전, 번영을 보장하는 마스터키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만이 유일하게 이 키를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그 뜻을 새기고 희망을 나누는 값진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어서 고경빈 평화재단 연구위원장이 오늘 토론 주제를 소개했습니다.
“오늘 심포지엄은 ‘투 코리아 (Two Korea) 기로에 선 통일 패러다임’이라는 주제로 진행을 합니다. ‘통일이 묻고 평화가 답하다’, ‘북한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평화가 온다’는 다소 울컥한 주제로 발표를 듣고 이 분야의 전문가 네 분과 종합 토론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평화재단 창립 2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평화재단이 걸어온 길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주제 발표를 맡은 김진무 전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는 현재의 국제적 환경이 통일에 우호적이지 않음을 지적하며 한반도 경영 전략을 제안했습니다. 김 교수님은 북한을 별개의 국가로 인정하고, 평화적 분단 관리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불확실한 통일을 계속 기다리고만 있을 건가요?
“지난 70여 년 동안 ‘통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언제 어떻게 오는지도 모른 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들처럼 기다리는 행위가 습관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현재 통일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남과 북을 지금의 특수 관계가 아닌 ‘대한민국’과 ‘조선’이라는 일반 국가 관계로 설정할 때, 예측이 가능한 평화적 공존 관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북 간의 적대와 불신은 ‘민족’과 ‘통일’ 개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평화를 위해서 민족과 통일을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한반도 경영 전략의 관점에서 2국가론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론에 나선 전문가들은 2국가론에 대한 찬성과 반대 입장을 다양하게 펼쳤습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반사실적 추론이라는 방법을 소개하며 ‘민족’과 ‘통일’의 개념은 북한의 남한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는 여러 가지 요인 중에 하나일 뿐이지 전부가 될 수는 없다고 지적하면서 통일은 오랜 시간 준비할 때 비로소 어떤 기회를 만나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통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국민과 국제사회를 설득하기보다는 통일을 차분히 준비한 독일의 사례와 국가 재건의 열망으로 1200년 동안 잃어버렸던 국가를 되찾은 폴란드의 사례를 강조하며 2국가론의 문제점을 비판했습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2국가론은 이미 현실이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국외에서 두 개의 한국은 보편적인 시각이며 ‘헤어질 결심’이 아닌 ‘이미 헤어진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서구 유럽이 지배하는 세계 질서가 종식을 맞이한 다극화된 세계 질서 속에서 한국-조선 조약 체제를 점진적으로 추진함으로써 평화적인 일반 국가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과 교수는 이에 대한 반론으로 2국가 상태에서 과연 평화로운 남북 분단 관리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한반도 분단의 근본 원인은 국제적 변수이고, 북한은 핵무기를 통해 미중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어 생존 공간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냉전기의 한반도 상황이 ‘주어진 분단’이었다면 냉전 종식 이후의 분단은 핵을 생존 정책으로 채택한 북한에 의한 ‘선택적 분단’입니다. 특히 북한은 제재를 가하는 방식이든 지원을 해주는 방식이든 양쪽 방식 모두 변화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핵을 통해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안보에 지속적으로 관여하는 핵 문제의 복합성을 생각할 때 2국가론에 기반한 평화로운 남북 분단 관리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차태서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탈냉전 30년 동안 대북 정책의 반복적인 추진이 한계에 다다랐다”며 기능주의 대북 정책의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특히 북한, 러시아, 중국의 삼각 협력을 통해 더 이상 북한이 미국과의 대결에 연연할 필요성이 없어진 국제 질서를 언급하며 두 주권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고 불만족스러운 타협을 모색하면서 신냉전기라고 하는 긴 겨울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세 시간 동안의 토론과 발표가 끝난 후 심포지엄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주제 발표와 토론자님들의 얘기 잘 들었습니다. 지금 한반도의 정세가 이렇게 급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방식 말고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하는 문제 제기가 있었고, 이에 대한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에 대한 많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붕괴도 안 되고 개방도 안 되는 북한
제가 생각할 때, 과거는 놔두고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남한 정부는 북한 정부를 소련의 위성국가인 동유럽 국가처럼 생각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유럽 국가들처럼 북한도 조금만 압박을 가하면 곧 붕괴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강경 정책을 취해 왔습니다. 하지만 중국이나 베트남, 라오스 같은 아시아의 공산 국가들은 소련의 해체와 상관없이 그대로 국가가 유지되고 발전해 온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소위 개혁과 개방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한편으로는 온건 정책이었던 햇볕 정책을 펼치면서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국이나 베트남의 개혁 개방도 안보 위험이 없어진 후에야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안보 위협을 수시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아시아적인 요소에 의해 국가 체제는 유지되었지만 결국 북한은 개혁과 개방을 못 했기 때문에 주민들의 생활이 매우 곤궁해졌습니다. 북한은 아시아적 요소, 즉 민족주의적 요소에 의해 국가 체제가 유지되고 있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소련 붕괴 이후 개혁 개방을 못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거의 붕괴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한은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서 개혁 개방을 시키든, 붕괴를 시키든, 두 가지 정책만 써왔는데, 북한은 붕괴도 안 되고 개혁 개방도 안 되는 독특한 형태로 유지되어 온 것입니다.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당근과 채찍 정책
그런데 2022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북한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30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제재를 받고 고립되어 있었는데, 국제 질서에 균열이 생기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분열되면서 북한 입장에서는 외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입니다. 또한 북한은 러시아와 군사 협력을 함으로써 경제 발전까지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식량이나 연료 등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북한을 상대할 때 기존에 해오던 '당근과 채찍' 정책을 사용해서는 아무 소득이 없을 것입니다.
과거의 전략은 북한의 위상이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상태에서 쓸 수 있는 전략이었다면, 이제는 북한의 위상이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는 바뀐 현실을 인정하고 그에 맞게 대응을 해야 됩니다. 그 방법이 두 개의 국가론이 될지, 다른 방식이 될지 아직 모르지만, 북한은 더 이상 6자 회담을 할 때의 위상이 아니기 때문에 변화한 국제 정세에 맞는 새로운 대응책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올 초부터 이슈가 되고 있는 ‘두 개의 국가론’을 새로운 방법으로 채택하려면 우선 헌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에는 국가의 목표가 민주 개혁과 평화적 통일이라고 나와 있고, 헌법 제3조 영토 조항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두 개의 국가론이 정말 우리에게 이익이 될까요?
무엇보다 두 개의 국가론을 채택하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지가 의문입니다. 과거 신라와 발해가 '두 개의 국가'를 채택해서 갔기 때문에 발해가 멸망할 때 신라는 이에 무관심했고 그로 인해 우리 민족사에 큰 손실을 남겼습니다. 마찬가지로 남한과 북한이 완전히 두 개의 국가로 나아가게 된다면, 우리는 중국의 해군 기지가 북한에 들어온다든지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남한에서는 북한의 국가 정책에 대해 반대할 명분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노골적으로 두 개의 국가론으로 가기에는 미래에 굉장히 큰 위험이 있고, 그렇다고 지금처럼 계속 통일을 주장하면 전쟁으로 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현재와 미래에 이익이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현재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되 미래의 이익을 위해서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연구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념적 통일이 아닌 국가 경영 전략 차원에서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그런 통일을 그려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발표해 주시고 토론해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개인 생활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의 미래가 걸려 있는 국가의 안보 전략과 통일 전략에 국민 여러분이 더 큰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부탁 말씀을 드립니다.”
발표자와 토론자 모두 큰 박수로 스님의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오후 5시에 생방송을 마치고 스님과 발표자, 토론자 모두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발표자와 토론자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악수를 건넸습니다.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외부로 이동하고, 스님은 양해를 구하고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식사 하시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세요. 함께 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해외 일정을 떠나기 위해 짐을 싸고 정비를 했습니다. 내일부터 한 달 동안 아시아 지역 곳곳을 둘러보고 답사하는 일정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아침 8시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중국 심양(瀋陽, 선양)에 도착한 후 요녕성 박물관을 둘러보고, 백암산성을 답사한 후 단둥에서 하룻밤을 머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