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양반길과 산막이 옛길
(2017. 5. 3)
瓦也 정유순
언제부터인가 분명 봄은 오는데, 봄을 느낄 만하면 휙∼ 지나가버리고 준비해 두었던 봄옷을 입어볼 겨를도 없이 여름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온 산야가 신록(新綠)이 짙어 갈 때 하늘이 숨겨 놓은 마지막 산책로인 충북 괴산의 “양반길과 산막이 옛길”을 찾아 가기 위해 새벽길을 나설 때는 좀 싸늘한 기운도 있었지만 낯 시간으로 갈수록 역시 날씨는 무더워 진다.
<충청도 양반길((B C D)과 산막이 옛길(A)>
충북 괴산(槐山)은 백두대간이 태백산에서 꺾이어 지리산을 향해 서남방향으로 뻗어갈 때 풀어놓은 심산유곡(深山幽谷)이 일품이다. 전국의 40여개 구곡(九曲) 가운데 화양구곡, 선유구곡 등 7구곡이 괴산에 있을 정도로 예로부터 괴산의 산과 계곡은 신선들의 정원이라 할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중 양반길과 산막이 옛길을 찾아 나선다.
<아가봉>
괴산이란 이름은 신라 진평왕 28년(606년) 장수 찬덕(讚德)이 가잠성(椵岑城)에서 백제군에게 100일 동안 공격을 받아 성이 완전히 고립되었으나 끝내 항복하지 않고 성안의 느티나무에 머리를 들이 받고 자결 하였던 것을 후에 태종무열왕이 찬덕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해 가잠성을 [괴산]으로 부르게 하였다고 한다.
<모란>
충북 괴산군 청천면 용세골에 도착하여 용추폭포로 발길을 옮기는데, 어느 집 담벼락에 있는 모란은 벌써 활짝 피어 반긴다. 모란은 목단(牧丹)이라고도 하는데 꽃 색이 붉어 란[단(丹)]이라 하였고, 굵은 뿌리 위에서 새싹이 돋아나므로 수컷의 형상이라 모[목(牧)]자를 붙였다고 한다. 철쭉꽃 무리 속에 외롭게 핀 금랑화도 하트모양의 꽃잎이 땅을 바라보는 수줍은 모습은 꽃말대로 “당신을 따르겠다”는 맹세를 하는 것 같다.
<금낭화와 철쭉>
새롭게 단장하는 마을을 가로질러 울창한 숲속으로 약700m 들어가면 사랑산(647m)자락에 있는 용추폭포가 힘차게 물을 떨어뜨린다. 10여m 높이의 너른 암반을 통해 쏟아지는 물이 장관이며, 풍부한 수량은 가뭄에도 끄떡없을 것 같다. 전국에 같은 이름의 용추폭포가 여러 개 있지만, 괴산의 용추폭포는 초록 숲과 유리알 같은 맑은 물줄기가 깊은 숲속에 메아리를 만들어 청량함을 더 해준다.
<용추폭포>
용추폭포를 뒤로하여 사기막마을을 지나 곰넘이재 가는 길로 접어들자 5월이면 우리나라 어느 곳이든 잘 자라는 병꽃나무가 꽃을 피워 향기를 진동한다. 사기막마을은 사기그릇을 굽는 가마터가 있어서 사기막이란 마을이름이 유래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을길에도 옹기그릇으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았는지도 모르겠다.
<병꽃>
<옹기허수아비>
<사기막리 마을회관>
아가봉(雅佳峰, 538m) 어깨 위로 길이 난 곰넘이재를 넘는다. 옛날 곰들이 넘나들었던 고개였는지는 모르나 흙먼지 풀풀 날리는 고개는 곰들이 사람의 눈치 안 보고 살았을 것 같다. 고개 너머 새뱅이마을은 옛 모습은 다 사라지고 현대식 개량주택으로 분장을 한다. 비만 오면 도랑물을 타고 마을까지 올라오는 작은 새우를 새뱅이라고 했는데, “새로 생긴 마을”이란 이름이라 하여 좀 싱거웠다. 그러나 청정한 물에 새뱅이가 많이 모여들었으면 한다.
<곰넘이재>
애기붓꽃이 사람들의 발길에 밟힐까봐 몸을 한껏 낮추는 숲속으로 다시 들어가 고개를 넘으면 청천면 운교리이다. 마을 앞 하천에 구름다리를 놓았다고 하여 운교리(雲橋里)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특산물로는 토종꿀, 송이, 느타리와 표고버섯, 고구마와 고추 등이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애기붓꽃>
운교리마을을 가로질러 나가면 달천(達川)이 나온다. 달천은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북으로 123㎞를 흘러 충주시 탄금대 부근에서 남한강과 합류한다. 임진왜란 때 명(明)나라 장수가 물을 마시고 중국 여산(廬山)의 수렴약수보다 맛이 좋다고 하여 감천(甘川)이라고도 한다. 달천의 지역별 다른 이름은 달천강, 박대천, 청천강, 괴강 등으로 불리고 있으며, 오누이의 슬픈 전설이 있어 달내강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달천>
충청도양반들이 내를 건넜던 목교(木橋)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는지 통나무로 된 상판이 군데군데 꺼져 있어 출입을 막아 놓고 옆으로 시멘트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유지(維持)하기가 좀 힘들더라도 우리네 양반들이 걸었던 옛 모습을 되살려 찾아오는 후손들이 체험하는 장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목교>
<목교>
강 건너 사모바위(신랑바위)는 짝을 만나 밤새 놀다 갔는지 단애(斷崖)가 청정하기 그지없고, 조금 가파른 계곡을 따라 올라오면 달천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신부바위(선유대)는 밤새 희롱한 신랑바위를 바라보며 몸을 낮춘다. 그 사이를 유람선은 한가롭게 물 위를 선유한다.
<사모바위(신랑바위)>
<선유대(신부바위)>
달천을 따라 비탈길을 가다 평평한 곳에는 화전민들이 사용했던 두레박 샘이 있다. 이 샘은 양반길을 지나가던 나그네와 나무꾼들이 목을 축이며 쉬어가던 옥녀샘으로, 지금은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 우물 위에 두꺼운 뚜껑을 덮어 놓았다. 데크 길을 따라 몇 구비 오르락내리락 하며 양반길 출렁다리를 건너 도착한 곳은 갈론마을 옛 선착장이다. 그리고 옛 산막이길로 연결된 연하협구름다리가 멀리서 빨리 오라 재촉한다.
<옥녀샘>
<양반길 출렁다리>
<양반길 출렁다리 전경>
갈론마을의 원래이름은 갈은마을이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갈론마을로 변했는지는 알 수 없다. 연하협구름다리(2016년 9월에 개통)가 있기 전에는 괴산댐 밑의 외사리(수전마을)까지 괴산읍내에서 하루에 5번 운행하는 마을버스를 타고 와서 5.5㎞를 걸어야 했던 은둔지(隱遁地)였다. 연하협구름다리는 옛 산막이길과 충청도 양반길을 선박 대신 도보로 연결해 주는 이곳의 명물이다.
<연하협 구름다리>
<연하협 구름다리>
현수교(懸垂橋)로 된 연하협구름다리는 마음까지 출렁거리는 출렁다리이다. 나사(螺絲)형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구름다리는 길이 134m, 폭 2.1m로 이용시간(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을 정하여 운용하고 있으며, 어린이와 노약자는 보호자와 동행하고, 뛰거나 난간을 흔들지 말아달라는 등 안전수칙을 당부하기도 한다. 다리 밑 호수 위로는 배들이 물살을 가른다.
<연하협 구름다리>
구름다리를 건너면 산막이옛길이 종점이며 기점인 연하협(煙霞峽)이다. 산이 장막처럼 둘러싸인 협곡(峽谷)으로 ‘안개(연기)도 쉬었다 가는’ 오지(奧地) 중의 오지이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측으로 꺾으면 흙먼지 날리는 흙길이다. 아마 사람들이 많이 밟고 다녔다는 증표이리라.
<연하협 부근의 낚시>
<연하협 구름다리 아래 순시선>
괴산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경치가 뛰어나고 강물이 빠르게 흘러 살여울이라고 부르던 곳에 “해와 달과 별의 삼신(三神)이 내려와 목욕하다 날이 밝아 하늘로 가지 못하고 삼신바위가 되었다”고 하는데,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이 바위에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삼신바위>
삼신바위에서 산막이마을 쪽으로 내려오면 노수신의 적소(謫所)였던 수월정(水月亭)이 나온다. 수월정(충북기념물 제74호)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이조좌랑으로 있던 노수신(盧守愼, 1510∼1590)이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명종2년(1547년)에 순천에서 진도로 보내져 19년간 섬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명종20년(1565년)에 이곳으로 옮겨와서 2년 만에 선조가 즉위하자 풀려나 벼슬이 영의정까지 올랐다. 본래는 연하동에 있었으나 괴산댐의 건설로 수몰되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노수신 적소(수월정)>
<노수신 적소(수월정)>
수월정의 안동네가 산막이마을이다. 시간에 쫓겨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옛날의 귓틀집이나 너와집은 현대식으로 주택개량을 했는지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마을 입구에는 물레방아를 돌려 방아를 찧어 안반데기에 찐쌀을 올려놓고 떡메로 내려치어 떡을 만드는 인절미체험장에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물레방아>
<떡메 체험장>
강 건너 절벽 위에 정자가 있어 가보고 싶지만 그저 먼발치에서 눈인사만 나누고 천장봉(437m) 입구를 지나면 다래술동굴이 나온다. 다래는 산골짜기 깊은 계곡에서 잘 자라며 추위에 강하다. 산막이 옛길 주변에는 다래덩굴이 많이 자라고 있어 터널모양으로 조성하여 자연 속에 묻어나는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든 장소이다.
<강건너 절벽의 정자>
<달래술 동굴>
파란 물 위로 뱃고동을 울리면 절벽 위에는 특이한 석질(石質)로 이루어진 바위가 괴산을 상징하는 뫼산(山)자 형상을 바위가 우뚝하다. 자연이 만든 해독(解讀)할 수 없는 상형문자가 신비롭게 새겨져 있어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괴산호에 잠긴 연하구곡의 하나인 병풍바위 위에는 병풍루를 세워 호수를 바라보며 쉴 수 있는 쉼터가 있다.
<괴산바위>
<병풍루>
한걸음 옮기면 골짜기 안의 바람이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땀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얼음바람골이 한기를 느끼게 해주고, 길옆의 옹달샘은 옛날 앉은뱅이가 지나다가 물을 마시고 난 후 벌떡 일어나서 갔다하여 앉은뱅이약수가 여자엉덩이 같은 참나무 밑 둥에서 힘차게 뿜어낸다.
<얼음바람골>
<앉은뱅이 약수>
또 아름다운 여인이 옷을 벗고 무릎을 꼬아 앉아 있는 모습으로 자연의 교태를 그대로 연출하고, 이 길을 오고가던 사람들이 여우비(여름철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와 여름 한 낯의 뜨거운 더위를 피하며 잠시 쉬어 가던 여우비 바위굴이 쉬어 가라고 한다.
<여인의 교태를 부리는 참나무>
<여우비 바위굴>
인정이 많은 이 산의 산신령이 호랑이를 타고 와서 이곳에 터를 잡은 후부터 이곳에서 기도하면 잉태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는 산신령바위는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 그 옆에는 호랑이가 드나들던 호랑이굴이 있는데, 혹시 산신령이 타고 내려왔다는 전설을 뒷받침 해주는 것 같다.
<산신령바위>
<호랑이굴>
만나면 해어지기 싫어 항상 붙어 있는 연인처럼 온 몸을 껴안은 사랑목(木)은 지나는 길손의 마음을 애처롭게 한다. 비학봉, 군자산, 옥녀봉, 아가봉 좌우로 펼쳐진 호수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정자 망세루는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고 자연과 함께 편안한 느낌을 준다.
<사랑목>
<망세루>
우리나라 어디에 가든 소나무가 많지만, 산막이 옛길에도 사연이 많고 아름다운 소나무가 많이 있다. 소나무동산에는 소나무와 소나무를 연결하여 길다란 출렁다리를 만들어 걸어가면서 짜릿한 스릴을 만끽 할 수 있는 소나무출렁다리가 있는가 하면, 소나무가 사랑을 나누는 정사목(情事木)에는 소원을 기원하는 남녀들이 정성들여 빌어본다.
<소나무 출렁다리>
<정사목>
“저를 찾아오면 당신도 소중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연리지(連理枝)가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데, 그 옆의 소나무는 소원이 이루어졌는지 꽃가루를 듬뿍 안은 송화(松花)가 임을 향해 금방이라도 발진할 태세다. 아름다운 괴산호와 산막이 옛길에 흠뻑 취해 해찰만 하다가 내려오니 괴산댐이 나온다.
<연리지>
<송화>
괴산댐은 1957년 순수 국내기술로 만든 수력발전용 댐이다. 댐이 들어서면서 호수가 되었고 연하구곡이 물에 잠긴다. 대신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마을에서 산골마을인 산막이마을까지 연결됐던 십리길을 흔적처럼 남아있는 옛길에 덧그림을 그리듯 그대로 복원된 산책로는 자연이 살아있는 산과 물, 숲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괴산(槐山)을 각인(刻印)시켜 준다.
<괴산호와 괴산댐>
첫댓글 양반길로 아가봉으로 다녀 오셨군요,
그길 역시 제철 꽃은 만발하여 환영하셨겠구요, ㅎㅎ
지금 쌓는 건강의 탑은 오래까지, 아니 생애 다 할때가지
도움을 줄것입니다, 행복하소서!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몸이 허락할 때까지 다녀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