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글을 쓰기 전에 저에 소개부터 해야할까합니다.
저는 전북 진안군 용담면 옥거리 운교부락에서 태어나 유년시절과 초중학교을 다니고 군입대후 청운에꿈을 않고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답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다가 건설업에 종사하며 작은 회사를 운영하였으며 여시같은 집사람과 아들하나 세식구가 단란한 생활을 하고있습니다.
제가 꼭이길을 가야 하는이유 중에 꼭 꼬집자면 저에 소개에서 알실지 모르지만 저에 고향은 댐건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든집과 삶에 터전인 옥토 그리고 저에 유년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뭍혀있는 학교마저 물속에 남겨두고 떠나왔습니다.
그학교 용담초등학교가 100년이라는 역사앞에 우뚝서있다는 것입니다.
1908년5월1일 개교하여 2007년3월2일 100회의 학생을 맞이하는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몰이라는 미명아레 타의로 페교된 학교를 생각하며 동문들만의 100년의연혁을 앞에두고 아픈기억만 되살릴뿐 아무것도 할수가없답니다.
단지 할수있다는게 기념행사뿐!
제가 향우회장 하면서 동문회 기념행사 집행위원회장을 겸하고있답니다.
왜 네가 이걸 고집해야 하나하고 생각 하면서도 우리는 무얼하고 여기까지 왔는가싶습니다.
저희 고향 용담은 삼국시대에는 백재땅으로 물거현이라 하였고 통일신라에는 청거현이라불리다가 고려1313년(고려충선왕5년)에 龍용潭담 이라고 붙혀진 이름입니다.
그러다가 조선1413년(태종13년)에 남원도호부 9현중 하나로 현감을 두엇으나 1665년(효종7년)에 현령으로 승격시켯으며 명칭도 옥沃천泉 이라 불리다가 1895년(고종32년)에 부 군을두면서 군내에 9개면행정구를 설치하며 용담군이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그뒤 일제의 호남평야 농업용수 계획하에 1914년 3월1일 문화와 역사도 짧은 진안군으로 통합되었으며 여러차레 댐건설 계획하다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댐은 전국에서 5대댐으로 단일군에 설치된 유일한 댐이며 이 커다란댐이 재기능을 발휘못하는 댐이된것입니다.
면적과 단위로보면 겨우년간 전력생산 24,000kw 완주군 고산읍에 있는 대아댐의 전주 익산 군산 식수보충댐으로서 국민의 혈세를 축내는 댐으로서 이상한 댐이 건설되어 실향민만 타향땅에 맴도는 신세가되어버렸습니다.
저는 고향을생각하면 가슴이답답하고 고향분을 만나면 슬퍼진답니다.
외롭게 떠도는 우리어머니도 안스럽고요.
제아무리 자식이 좋다해도 고향에서의 생활보다는 못한가봅니다.
항상 가고싶다 하실때는 가슴이미어진답니다.
저희 어머님도 저러는데 다른 고향분들은 어떠할까요?
그레서 이번기회에 우리용담초등학교 개교백주년 기념행사를기해서 용담 맑은물 과 퓨전음악 축제를 계최하기로했답니다.
제가 잘하는일인지는 봐야하겠지만 이번 2007년 5월 26일 오전10시30분에 행사를 하기로 했답니다.
많은분들게서 협찬해주시고 도와주셔서 성대하게 치루어질거라 믿습니다.
이게 제가 꼭이길을 가야하는 이유입니다.
불가에서 죽어서 천국보다 살어서 지옥인 이승이 좋다! 라는말씀과 구하라 그러면 엊으리라 하는 성경말씀을 한번더 세겨 봅니다.
잘쓰지 못하는 글 읽어주셔서 갑사합니다.
첫댓글 고향을 떠나도 마음은 언제나 고향이지요. 잘 읽고 타향살이도 익숙하면 곧 정든답니다. 가내 두루 편안을 빕니다.
언제나 고향은 좋은곳으로 추억의 내 어릴적에 놀던곳~~ 그곳이 있었기에.....현재의 나....그리운 곳이지요...좋은 모임이 되시어 고향분들과 회포를 푸시기를.....축제 즐거운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