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벌식은 표준일까요?
"예" 또는 "아니오"로 짧게 답한다면 둘 다 맞는 답은 아닙니다.
'세벌식'을 다루는 분야는 한글 자판만이 아닙니다.
한글을 부호값으로 나타내는 데에 쓰이는 '한글 부호계'(한글 코드)에도 세벌식이 있습니다.
세벌식 부호계인 '첫가끝 부호계'는 3-90 자판이 한창 보급되던 1990년대 초반에
이미 국제 규격인 유니코드에 실렸습니다.
완성형이니 조합형이니 따지며 다투던 것에 가려서 관심을 못 받았을 뿐,
첫가끝 부호계는 일찌감치 '표준이 된 세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벌식 자판은 표준이 된 것이 없다."는 말은 맞지만,
"표준이 된 세벌식이 전혀 없다."고 하면 틀린 말입니다.
'공병우 세벌식'을 두루 살피면 자판, 글꼴, 부호계로 요소를 나눌 수 있습니다.
타자기에서는 이 요소들이 기기 하나에 함께 구현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두벌식 자판으로도 세벌식 글꼴이나 세벌식 부호계를 쓸 수 있는 것처럼,
이 요소들이 복합해서 쓰이거나 따로 논의될 수 있게 분야가 나뉘어 있습니다.
공병우 선생께서 돌아가신 1995년부터 공세벌식 자판은 틀림없이 암흑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한글 부호계 쪽까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첫가끝 부호계가 1990년대에 유니코드 1.1에 들어는 갔지만,
아직 첫가끝 조합형의 운용 방안이 못 박히지 않았고 프로그램으로 널리 쓰이지 못했습니다.
유니코드 2.0에 가나다 차례로 들어간 완성형 한글 부호계가 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첫가끝 부호계는 요즘한글을 나타내는 부호계로서는 설 자리가 마땅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첫가끝 조합형은 요즘한글까지 나타낼 수 있음에도 주된 방향을 옛한글 쪽으로 틀어야 했고,
옛한글 쪽의 필요에 맞추어 첫가끝 조합형의 세부 운용 방안을 확정하고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작업이 2000년대와 2010년대까지 이어집니다.
이 작업에 '21세기 세종계획'이라는 종합 연구 사업에 참여한 학계와 업계의 관계자들이 힘을 기울였고,
공병우 선생과 옛 한글 문화원에 인연이 있던 분들이 특히 많은 힘을 보탰습니다.
그 덕분에 '공병우 세벌식'에 뿌리를 둔 세벌식 부호계가 서서히 실효성 있는 표준이 되어 갈 수 있었습니다.
블로그 '글걸이'에 "한글 문화원이 보급한 세벌식 자판"에 이어서 "표준이 된 세벌식?"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깃거리를 바꾸어서 한글 부호계 쪽의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첫가끝 조합형이 왜 필요했는지를 더 절실히 깨달으려면, 먼저 쓰인 한글 부호계와 한글 표현 방안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긴 서론에 머물러 있고, 4~5째 글부터 차차 첫가끝 조합형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려 합니다.
2014년에 한글문화원 314 자판안이 나온 것도 첫가끝 조합형을 표준으로 만든 일과 관련이 없지 않습니다.
첫가끝 조합형을 표준으로 올린 성과는 세벌식 자판을 표준화하는 데에도 귀감이 될 자산입니다.
하지만 '한글 자판'과 '한글 부호계'가 특성이 다른 면도 있고,
짧지 않은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한글 부호계' 논의 과정을 한글 자판 분야에서 제대로 본받지 못하는 면도 있습니다.
세벌식 자판을 쓰던 사람들에게는 첫가끝 조합형이 세벌식 자판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잘 알려지지 못했고,
첫가끝 조합형을 표준으로 올린 분들은 세벌식 자판에 얽힌 최근 동향을 모를 수 있었습니다.
아는 정보와 생각이 서로 어긋나 있다 보니 곧바로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어려웠고,
표준화 작업을 행동으로 옮기더라도 전략상 빈틈이 생길 만 했습니다.
저는 314 자판안이 나온 때에 왠지 모를 정보 격차를 느꼈고,저 또한 잘 모르고 있던 지식들이 많아서 배경 지식을 정리하여 공유할 필요를 느꼈습니다.연재하는 글을 통해 되도록 많은 지식을 깊고 정확하게 다루고 싶지만,개인 사정과 정보 처리 능력의 한계로 느릿느릿 뒷북을 울리게 될 것 같습니다.
3째 글에서 확장 완성형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갈빛목소리 님의 글을 인용했는데,미리 인용 허락을 받지 않은 점을 너그러이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차례대로 쭉~ 천천히 읽어볼께요.^^
고맙습니다.
팥알님, 제 글을 인용하신 것, 괜찮습니다. ^^
허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되도록 최근 글 가운데에서 적절한 예를 들기 위해 꼭 필요한 글이었습니다.
좋은 글을 이렇게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고맙습니다.^^
4째 글을 올렸습니다.
언제 글을 끝맺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야 긴 서론을 끝내고 다음 글부터 어쩌면 짧을 수도 있는 본론에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