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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화령~봉황산~비재~갈령삼거리~형제봉~피앗재~만수동 제11-1소구간 ○. 산 행 일 : '09. 4.02<목>교통은 현암 자가용을 이용. ○. 인 원 : 4명 (준산. 현암. 백연님.미소님.)
○. 소요시간 :화령 04시 54분출발~ 8시간 30분소요됨.(아침.점심.휴식포함.)
○. 날 씨 : (맑은날인데 뿌연구름 많음). 바람약간. 시원. 조망별로... ○. 산행코스 : 화령-봉황산-비재-못제-갈령삼거리-형제봉-피앗재-피앗재산장-만수계곡
★도상거리:18.0km[화령재-<4.5km>-봉황산-<3.6km>-비재-<3.7km>-갈령삼거리-<0.6km>-형제봉-<1.4km>-피앗재-<4.2km>-만수계곡
화령! 상주시 화서면과 외서면을 잇는 이 고개 또한 300미터 남짓으로 그리 높지는 않다. 택리지에서도 이 고개에 대하여 말하기를 “속리산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산줄기가 화령과 추풍령이 되었는데, 시내와 산의 경치가 그윽하다. 모두 낮고 평평하여 살기에 알맞으나 산이라고는 할 수 없다. ” 이곳 지형에 대한 옛사람들의 지리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표현이라 하겠다.
또한 이 지역을 일러 중화(中化)지역이라 일컫는데, 이는 옛적 상주목에 속하던 중모현(지금의 상주시 모동면, 모서면)과 화령현(지금의 상주시 화서, 화북, 화동, 화남)을 이루던 이 일대의 지역을 통칭하는 말이다. 대부분의 백두대간이 도의 경계를 이루는 것과 달리 이 곳은 아예 대간의 동서를 경상도(상주시)가 차지하고 있다.
이는 삼국이 각축을 벌이며 국경을 뒤바꾸던 역사의 반영이기도 한데, 우뚝 솟은 백두대간이 천연의 국경 노릇을 하며 우리네 문화와 풍토를 가름지었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역설적이게도, 지역과 지역을 나누는 요새같은 산은 평화의 중재자가 되고,
지역과 지역을 이웃하게 만드는 낮은 산은 오히려 화를 불렀으니(6·25 때도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었다), 이로써 또 한번 백두대간의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살필 수 있겠다. 이렇듯 백두대간의 고갯길은 높낮이나 위치에 따라 역사적, 지리적 의미를 달리하지만 분수령으로서의 구실은 같으므로 대간 등성이로서의 지위만큼은 동등하다.
04시 54분 화령재에서 보은쪽으로 도로를 따라 약 50m진행하면 49번 지방도로 삼거리가 나오고 갈림길 사이로 백두대간 이정표가 우리를 반깁니다.
06 :00 봉황산 산불감시초소에 도착합니다. (화령재에서 1시간쇼요.) 화령시내의 야간전경은 === 평화로움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넓은 안부를 지나 계속 오르니 감시초소가 보인다. 이 부근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동안 남쪽으로 화서면 일대가 조망되며, 북으로는 두리산 및 대궐터산 그리고 그 능선 들이 남동으로 힘차게 흐른다.
죽전고개 안부를 지나 오름길에 외로이 대간손님을 반기는 저 솔은 누구를 기다리나요! (-06 :16 죽전고개안부통과-)
봉황산 오름능선을 오르며 뒤돌아본 일출전경!
06 : 37분 봉황산 정상에 올라봅니다. <화령에서 1 :37분 소요.>
화령에서 봉황산(740.8m)이 그리 멀지 않다. 너머로 속리산을 빼고는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을 뿐 아니라, 군더더기 없이 봉싯한 자태가 봉황이라는 이름에 참으로 잘 어울리는 산이다. 화령을 넘어 화서로 향하는 포장도로를 낀 산 기슭을 따라 걷다 속리산 문장대로 향하는 샛길을 가로질러 솔의마을을 벗어나면서 서서히 높이를 올리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황산의 동쪽 봉우리에 이른다.
이곳에서 다시 급하게 아래로 떨어졌다 솟구친 다음, 왼쪽 기슭을 길게 휘돌다가 정상 아랫부분에서 왼쪽으로 급하게 꺾은 다음부터는 급한 경사가 꼭대기까지 이어진다. 금강으로 흘러드는 송천의 발원지이기도 한 이 산은, 화령의 진산답게 화서면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속리산 천황봉도 가늠이 될 만큼 조망도 빼어나다.
봉황산에 올라 기념촬영 한장촬깍! 봉황깃철에 날려 추억만들기 날립니다.
강철과도 같은 인생 길 백두대간을 닳았나요. 솔성과 견성을 아직도 못 깨우쳤느냐 봉황산이 껄껄대며 조롱속의 세벽이슬 날립니다.
연두빛 남동풍 심안(心眼)에 매달리고 진달래 꽃망울 시공속으로 조급함을 달려며 급해도 때를 기다리는 진달래 한수배우라네. 대간길도 마찬가지 쉬엄 쉬엄 조심 조심 오르라네
까닭없이 급한 마음 스스로 학대하고 쫓아내니 제버릇 급한성미 대간능선에서도 그대로라네. 탐진치 3독을 날려보내고 정 혜 계로 허공을 삼켜보리라.
봉황산의 내력을 상주시에서 알려줍니다.
봉황산을 내려와 암릉구간을 통과하며 바라본 봉황산의 기암군.
암릉지역을 벗어나니 = 아름다운 낙옆길 평화로움을 느끼며 비재로 향합니다.
뒤돌아본 봉황산 정상부.
비재로 향하는 대간길의 여유로움은 하늘의 길. 마음의 길. 한 길이라.
공변됨에 밝고 진리에 밝아 만물과 통하니 보이고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묘하게 하나로 꿰뚫었다 나를 건지고 만 생명 건지니 깊은 깨달음의 조화로다.
통나무 계단길 아래로 비재가 보입니다. 왼쪽 화남면 장자동에서 상주시 외서면 갈령으로 넘어가는 지방도입니다.
통마무 계단길을 내려와서 뒤돌아봅니다.
봉황산 막 지나서 암릉을 돌고 나면 공원길을 산책하는 듯한 편안한 걸음으로 비재까지 내려설 수 있다. 지금은 비재라고 부르지만, 나는 새의 형국과 같다 하여 비조령(飛鳥嶺)으로 불렸다는 이 고개에서부터는 급한 오름길과 내림길을 이어간다.
특히 못재 직전의 가파른 암릉은 발끝의 감각을 짜릿하게 하며 산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08시 20분에 비재에 도착합니다.<화령에서 3 : 20분 소요.> 쉬지도 않고 바로 철계단을 올라 갈령삼거리로 향합니다.
왼쪽으로 내려가는 도로는 어디로 가는길이가요=화남면 장자동이랍니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 상주시 외서면 동관리로 가면 갈령으로 가는 길이랍니다.
비재에서 철계단을 올라 왼쪽을 바라보니 왼쪽 철계단 모서리에 화령재~비재~형제봉안내이정표가 있읍니다. 형제봉까지 3시간을 가르키고 있읍니다.
능선에 올라 비재를 바라봅니다. 등산의 근본은 우주의 본질인 심신의 자유를 얻는것입니다. 무한한 우주 생명의 에너지를 직접 대 자연에서 체험하는 것입니다. 코를 통한 호흡. 피부를 통한 호흡. 체위를 통한 호흡. 심성을 통한 호흡등 다양한 상황에서 우주생명의 에너지를 충분희 만끽하며 형제봉으로 향합니다.
생강나무가 노란색 꽃향기로 화사한 말을 전해옵니다.
대 자연의 충만한 에너지와 함께 하는 대간산행을 만끽하여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풍요롭고 건전한 정신문화를 선도할 수 있으며 맑은 정신을 회복하고 자연과 동화하며 바르고 참된 정신을 배양해서
자성(自性)의 정(定). 혜(慧). 계(戒).를 세우는것이 내가 백두대간을 따라가는 이유라 생각한다.
왼쪽멀리 서북쪽으로 삼형제봉을 바라보며 기암지대를 통과합니다.
솔향기 솔솔 바람따라 기암지대를 넘어갑니다.
기암 중앙부를 넘어갑니다.
화창한 봄날입니다. 앙상한 가지마다 불타듯 피어난 아름다운 저 진달래. 아름다운 저 꽃들도 사나운 비 바람에 어지러이 흩날리는 것을 보면 가련하다고나 할까요.
인간 세상 모든 일 이와같지 않던가요. 성공이다 행복이다 하면 어느새 사나운 운명앞에 꺾이고 짓밟혀 마치 흩날리는 가련한 꽃잎 같은 것이 아니던가요.
사람이 아무리 정으로 산다 하나 그 정이 얼마나 오래 갈것인가요. 울고 웃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그것 모두 부질 없다.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이나 구공역시 구족이다.
티끌세상에 깊이 빠져 아둥다웅 다투고. 이익이다 손해다 계산하며 열심히 살아봐도 그것 모두 헛된 일. 지난 세월 되돌아 보아도 부질없는 인생살이일 뿐. 백년을 살아도 후회없는 삶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차라리 비 바람에 쫓기는 봄꽃 속에 서서라도 생사문제 해결에 내 인생을 다 걸겠읍니다. 벗꽃 진달래 휘날리는 가운데 어느새 봄은 저만치 흘러가고 있읍니다.
삼형제봉을 바라보며 우보걸음으로 한발 한발 오릅니다.
저 오름능선을 올라야 형제봉이랍니다.
형제봉 오름능선상에서 뒤돌아본 봉황산 능선군.
만날때의 악수는 반갑다는 뜻이요. 헤어질 때의 악수는 또 만나자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석별의 정으로 봉황산과 악수를 하며 형제봉으로 향합니다.
솔씨한톨이 바람을 어루다 잘못 헛디딘 돌벼랑 틈사이에 어쪄랴 자라비집고 아스리도 섯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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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재(천지)주위를 느릿한 걸음으로 둘러보며 못재로 향합니다.
못재,
이름처럼 항상 물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습지를 이루고 있는 이곳에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못재의 맞은편에 솟은 대궐터 산에 성을 쌓은 견훤이 이곳 못재에서 목욕을 하여 힘을 얻어 세력을 넓혀 가자,
이를 안 황충이 못에 소금을 풀어 견훤의 힘을 꺾었다는 것이다.
이는, 광주의 한 처녀가 지렁이와 정을 통하여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나이 열다섯 살이 되자 스스로 견훤이라 일컬었다는 삼국유사의 기이편에 전하는 얘기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못재에서 그 옛날 견훤과 함께 목욕을 하는 상상을 하며 조금만 나아가면 이내 속리산의 동남쪽 자락에 닿는다.
올라서면 형제봉, 내려서면 갈령이다. 피앗재로 향한다.
다음 차례에는 피앗재에서부터 속리산 문장대를 넘을 예정이다.
화령재 출발하여 09 : 54분에 못재에 도착합니다. <화령재에서 4:54분소요.>
해발 650m의 못재에 도착합니다.
백두대간에 있는 유일한 습지죠!.
왼쪽으로 억새에 둘러쌓인 습지가 보이며
못재 위에는 충북알프스로 가는 이정표가 있읍니다.
구병산으로 가는 길이죠.
못재 위는 680봉인데 넓은 평지에 헬기장이 있읍니다.
다시 내리막길 시작 나무에 비재와 충북알프스로 길이 갈라진다는 이정표가 걸려 있다.
직진하면 갈령 삼거리.
바위가 길을 막아 왼쪽으로 세 번 우회를 하여 721봉을 넘어서니 갈령 삼거리다.
왼쪽으로 형제봉이 우뚝하다.
충북 알프스라 부르는 구병산 갈림길입니다.
못재지나 헬기장 봉우리에서 형제봉을 병풍삼아 기념촬영 한장 남깁니다.
구병산 능선의 아름다움도 만끽하며 ~!
백두대간 능선길 자유자재로 들며 날며 내 마음대로다
첩첩산중 대간 길을 남김 없이 밟고 나서
내 마음의 대간능선 내가 밟아보련다.
헬기장에서 충분하게 여유를 만끽하고 갈령삼거리로 향합니다.
신비로운 자연의 극치와 반야의 지혜 광명이 빛나는 혜안(慧眼)으로 이어지기를 염원하며.
10 : 50분 갈령삼거리에 도착하였읍니다. <화령에서 5 :50분소요.>
갈령 삼거리 리본을 바라보며....
갈령으로 향하는 오솔길.
갈령 이정표.
갈령은 형제봉과 두리산의 목이다.
이곳에서 시작된 계곡물은 장각골과 합쳐지고
용류리에서 오송골 화양천과 합수되어 영강을 만들고
퇴강리 부근에서 낙동강과 만난다.
육신의 눈이 아닌 반야지혜의 눈으로 천지 자연을 마주 대하면 그 사이에 세속적 욕망이나 티끌은 찾아볼 길 없다.
인간 세상의 번뇌망상을 벗어난 천지 자연과 하나가 된 사람은 그대로가 청정극락이 아니든가.
맑은 기운으로 염불하며 형제봉으로 향합니다.
- 일본이 '천왕봉'을 천황봉'으로
속리산의 최고봉인 상봉의 본래 이름은 천황봉(天皇峯)이 아닌 천왕봉(天王峯)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도, 현재 속리산의 최정상 자리에 속리산번영회가 1994년에 세운 돌비에도 ‘天皇峯’이라 써놓고 있으나, 이는 일제시대에 왜곡시켜 놓은 왜색 산봉 이름이다.
유형원의 ‘동국여지지’, 송시열의 ‘보은군속리산사실(報恩群俗離山事實)’ 성해응의 ‘동국명산기’,
김정호의 ‘대동지지’ 등의 속리산기에 의하면, 속리산의 현 천황봉은 본래가 천왕봉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천왕봉이 천황봉으로 바뀌어 불리게 된 것은 한일합방 직후.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조선총독부 조선임시토지조사국에서 전국 지리를 조사하면서 제작한
‘근세한국오만분지일 지형도’에 속리산의 상봉을 ‘天皇峯’으로 표기한 이후부터의 일이다.
산 이름, 봉 이름 등을 접하면서 일본 천황을 인식하게 하려고 한 저의가 깔려있는 의도적 개명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 표기부터 서둘러 바꿔야 할 것이다.
11 : 35분 형제봉에 도착합니다.<갈령에서 6 :35분 소요.>
왼쪽으로 속리산 천왕봉이 육중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오른쪽으로 문장대가 아스라이 백두대간을 형성하며 청화산으로 넘어갑니다.
형제봉 정상아래 할미바위랍니다.
실바람에 솔잎들 바스락 거리면 마음속 깊숙히 고독이 일어납니다.
고독을 간직하고 외로이 서 있는 할미바위.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모두 시원하고 상쾌하여 나도 모르게 염불하며 산속을 서성거린다.
"나무아마 타불"
속리산 천왕봉과 그 동능 그리고 북쪽멀리 청화산과 북동쪽으로 도장산이 병풍처럼 둘러있읍니다.
화북면 용유리, 상오리 등은 천혜의 요새와도 같은 곳에 자리를 잡고있다.
감탄을 자아내며 바라보다 천천히 하산하기 위해 발길을 떼어 놓는다.
내려가는 길에 보이는 아기자기한 바위들은 산행에 있어서 보너스다.
속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 속리산 기암들은 절리가 만든 작품이다-
속리산을 이루는 화강암은 백악기 말 9000만 년~8000만 년 전,
바로 한반도에 공룡들이 넘쳐나고 있을 당시 마그마가 변성퇴적암의 기반암을 뚫고 관입한 후
지하 약 3~4㎞ 부근에서 식으면서 굳어져 형성된 것이다.
지하 약 3~4㎞ 부근 깊은 곳에 있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는 오랜 지질 시대를 거치며
지속적으로 지반이 융기함과 함께 피복 물질들이 침식과 풍화를 받아 차츰 깎여나가면서 지표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화강암체가 온갖 기묘한 형태로 변모한 것은 ‘화강암 재단의 마술사’인 절리(節理) 작용 덕분이다.
화강암은 지표 가까이로 올라오면서 점차 압력 하중이 제거됨에 따라 팽창한다.
이때 암체에는 팽창에 의해 금이 가면서 갈라지는 절리가 발생한다.
절리의 방향과 발달 정도에 따라 그 암괴의 형상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수직 방향의 절리가 탁월할 경우 암주(巖柱) 모양의 기둥 바위들이 발달하는데,
입석대를 중심으로 문장대에 이르는 종주 능선을 따라 주로 분포한다.
판상의 수평 절리와 수직 절리가 서로 동일한 간격으로 형성된 격자상 절리가 발달할 경우는
모서리 풍화가 진행되어 핵석(核石·tor)이라고 하는 돌알(돌탑) 바위들이 발달하는데,
문장대에서 청법대 그리고 칠형제봉으로 이어지는 곳에 주로 분포한다.
그리고 수직보다는 판상의 수평 절리가 탁월할 경우는 평탄한 너럭 형태와 돔 모양의 바위들이 발달하는데,
경업대를 비롯하여 배석대, 학소대, 봉황대, 산호대 등이 이에 속한다.
형제봉에서 백두대간 기념촬영 남깁니다.
하늘을 무심히 떠도는 흰 구름에 싱싱하게 푸른 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천지 자연의 소화로다.
마음속에 삼독 오욕이 텅 비어버리니 오히려 한가롭다.
세상의 욕심 경계를 벗어나 푸른 산 높은 소나무에 깃들어 고고함을 느끼며
티끌 세상 잊었으니 세월이 간다고 슬퍼할 것 없지요.
형제봉 정상에서 속리산 천황봉을 배경삼아 ~!
형제봉에서 촬영한 속리산 전망입니다.
803.3m봉을 지나 피앗재에서 왼쪽계곡으로 하산하였읍니다.
대간능선은 피앗재에서 639m봉을 지나~ 667m봉에서 왼쪽으로 725m봉을 넘어
전망바위에서 윗쪽 깔딱고개를 넘으며 대목리 갈림길을 지나 천황봉에 오릅니다.
오른쪽 갈령 건너 두리봉과 암봉 그리고 대궐터봉이 멋진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며
화령에서 형제봉까지 줄곳 친구가 되어 주었읍니다.
할미바위를 배경삼아 추억한장 남깁니다.
형제봉 내려와 기암으로 형성된 형제봉 정상부를 촬영하여 보았읍니다.
형제봉 앞 기암군들~!
줌으로 당겨도 보았죠!
형제봉 정상을 내려오며 솔향기를 스치듯 추얷한장 찰깍!
피앗재에 오후 1시에 도착합니다.
잠시 휴식후 바로 만수동 피앗계곡으로 내려갑니다.
피앗재에 있는 이정표.
오후 1시40분 피앗재 산장에 도착하였읍니다. <화령에서 8 : 40분소요.>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며 택시로 다시 화령으로 이동하여 현암의 자가용으로 갈아타고
화령마을로 이동하여 손두부에 맛갈나는 김치로 안주삼아 시원한 맥주로 하산주를 마무리 하고
서울로 이동하여 엉타리 식당에서 돼지 삼겹살로 저녁만찬으로 마무리하며
오늘의 산행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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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요한 대간 능선길 ~! = 함께 한 모든 산우님께 감사드리며 항상 맑은 아름다움 잘 운영하시길 염원합니다. -합장- "스바하"
덕분에~ 몇년만에 대간 능선길을 걸었습니다.., 그리도 그리웠던 백두대간.., 가는곳마다 이른 진달래가 반겨주더군요..즐거웠습니다.., 다음 산행때까지 건강하십시요.., 저도 함께 할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준산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덧글 감사해요~! = 미소님도 항상 맑은 아름다움 잘 운영하시길 염원하면서 대간길 항상 맑은 벗으로 이어가길 염원합니다. -합장- "스바하"
깔끔하게 정리하여 잘 올리셨네요. 다음 대간길 일정 잘 잡아서 공지해 주세요.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웃음가득한 오늘이 이어지길 염원하면서 즐산하시길 염원드립니다. -합장- "스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