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사지(靈岩寺址) - 쌍사자석등 곁 무지개계단을 오르며

[세석평전]

영암사터 - 오지로 가는 길

차를 타고 답사를 다니다 보면 나라에서 자동차도로 하나는 잘 닦아놓았다는 찬사가 절로 일어난다. 거미줄 같은 고속도로에, 능숙한 터널공사로 질러가는 길을 척척 뚫어낸 솜씨에는 감탄사마저 나온다. 그러나 국토의 운영에서 심심산골의 오지는 오지대로 남겨두어야 했던 것 아닐까?

자연의 원래 모습을 간직한 첩첩산골은 문명에 찌들어 살아가는 현대인을 달래줄 수 있는 심신의 위안처다. 살다 보면 그런 오지에 한번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가 있게 마련인 것이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의 내린천은 그런 오지의 대명사 격이었다. 인제에서 소양강 상류를 따라 비포장길로 1시간은 족히 들어가는 깊은 산, 깊은 계곡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홍천군 상남면에서 뒤로 넘어 들어가는 길이 생겨 오지의 깊은 맛이 사라져버렸다. 막다른 오지로 들어간 처연한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거기에 뭐 그리 급한 일이 있다고 길을 뚫어낸 것인가? 설악산과 오대산 사이 선림원지가 있는 양양군 미천골은 정말 오갈 데 없는 ‘하늘아래 끝동네’였다.

그러나 여기는 허리를 가로질러 들어오듯 새 길이 뚫려 지금은 이쪽저쪽으로 가는 중간길목이 되었다. 이렇게 돼서 과연 무엇이 좋아진 것인가? 6시간 걸리던 길을 4시간 만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지만, 그래봤자 덤벼드는 것은 도회지 사람들이고 생기는 것은 ‘파크’라는 이름의 모텔과 ‘가든’이라는 이름의 숯불갈비집뿐이다.

지난 세월 비장의 오지들은 그렇게 하나씩 잃어버렸고, 가뜩이나 좁은 땅덩이가 더 좁아져버렸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발상은 오지를 마치 벗어버리고 싶은 불명예로 여기며 서울에 도달하는 시간이 짧을수록 좋다는 생각에서 나온 현상이다. 본래 시·군이란 높은 산으로 가로막혀 1일생활권이 시내·읍내로 형성되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그 경계로 삼던 산을 뚫어 사통팔달로 길을 내고 보니 군청·시청 소재지가 갖고 있는 고유의 도시 기능이 사라져버리고 있다. 경상남도 함양에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의 중간 나들목이 생기자 외지 사람들이 함양으로 많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함양사람들이 대전 ‘홈에버’에 가서 장을 보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 역류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황매산 영암사터는 서부경남의 오지 중 오지에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에 있지만, 해발 1108m의 높은 황매산이 합천·산청·거창의 3개 군을 갈라놓은 깊은 산중의 폐사지다. 영암사터에 한번 가본다는 것은 정말 큰맘 먹기 전에는 불가능한 곳이었다.

1985년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발행한 <합천 영암사지 고적조사보고서>에는 이곳의 위치와 환경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여기는 서부경남의 가야산과 지리산을 연결하는 중간지점에 있는 황매산의 남쪽 기슭으로 주위는 모두 산으로 둘러싸인 첩첩산중이다. 부산에서 영암사지를 가려면 합천군에서 삼가면으로 가 거기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가회면으로 가서는 다시 버스를 이용해야만 겨우 2km 전방인 대기(大基)국민학교 앞에 이르고, 여기서 도보로 올라가야 한다. ”

20년 전, 내가 답사회원들을 이끌고 이곳 영암사터에 왔을 때 김해에 사는 한 회원은 “강원도 깊은 산골오지의 문화유산을 볼 때면 경상도 사람으로서 마냥 부러움을 느꼈는데, 이제는 그런 열등의식을 말끔히 씻게 되었다”면서 “여기는 ‘서부경남 자연과 문화유산의 자존심’”이라고 기뻐했다.

그러나 황매산 영암사터는 더 이상 오지의 폐사지가 아니다. 이제 영암사터로 들어가는 길은 네 가지 선택이 가능해졌다. 삼가에서 가회로 들어가는 동쪽 길, 산청군 단성에서 단계마을을 거쳐 가회로 들어가는 남쪽 길, 양민학살의 현장인 거창 신원면에서 가회로 들어가는 서쪽 길, 합천댐을 돌아 대병면에서 들어가는 북쪽 길. 사면으로 길이 뚫려 깊은 산중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게 되었다. 옛날에는 여기에 오면 막다른 곳에 다다른 마음의 안정이 있었다. 아름답고 거대한 황매산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영암사터에 오면 오지의 폐사지가 불러일으키는 처연하면서도 따뜻한 서정의 분위기가 있어 좀처럼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영암사터에는 그런 느긋함이 없다. 빨리 둘러보고 어디론지 가야만 할 것 같은 부산스러운 분주함이 일어난다. 아! 정말 싫다. 옛날의 영암사터로 돌아가고 싶다. 물어내라고 소리치고 싶다.

단계마을의 돌담길

그러나 서부경남의 자존심이 송두리째 무너진 것은 아니다. 어느 길로 가든 영암사터로 가는 길은 황매산이 펼쳐놓은 산자락을 돌아가면서 전형적인 서부경남 산골의 풍광을 만나게 된다. 가파른 강원도의 궁벽한 산골과 달리 산자락이 넓고 길게 퍼지면서 계단식 천수답이 층층이 펼쳐져 있고, 손등에서 다섯 손가락 퍼지듯 산마다 물줄기를 흘러내리면서 적지 않은 논밭을 일구어 산골마을들이 넉넉해 보인다.

특히 단성에서 단계마을을 거쳐 영암사터로 가는 길은 옛 마을을 지나는 향토적 서정이 물씬 배어 있다. 산청군 신등면 단계마을은 참으로 정겨운 묵은 동네다. 이런 산골에 이처럼 아름다운 옛 마을이 있다는 것이 신기로울 정도다. 그러나 이 마을의 역사를 보면 고려 때는 단계현으로 독립했다 조선 세종 때 단성현에 편입되었다고 하니 결코 예사롭지 않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단계리는 산청군 신등면 소재지다. 면사무소·우체국·파출소·교회·천주교공소·마을회관·장터·학교가 있어 작은 읍내 같은 분위기다. 이 마을의 형성 과정을 보면 전형적인 씨족마을이다. 고려 때 입향조는 자세히 알려진 바 없으나, 조선 세조 때는 진양 유씨가 먼저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집안에 안동 권씨가 사위로 들어오면서 줄곧 두 씨족이 같이 세거(世倨)해 왔으며, 인조 때는 대사간을 지낸 권도(權濤·1573~1644)라는 인물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 안동 권씨 집안의 외손인 순천 박씨가 들어오면서 세 성씨가 반촌을 형성했는데, 특히 순천 박씨 집안은 부농으로 성장했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진양 유씨, 순천 박씨, 안동 권씨의 당당한 고가(古家)가 곳곳에 널찍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중 예닐곱 채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1862년 진주민란이라고 불리는 농민항쟁 때 안핵사로 내려온 박규수가 민란의 배후로 지목한 요호부민(饒戶富民)은 바로 이런 세력가들을 지칭한 것으로 생각된다.

마을의 자리앉음새를 보면 한쪽으로는 전암산(696m)·둔철산(812m)의 높은 산이 둘러싸고, 반달 모양으로 흐르는 사정천을 따라 마을이 들어서 배(舟)모양을 하고 있다. 마을에는 돛대가 있을 만한 자리에 해묵은 느티나무가 있어 그 연륜과 풍수를 말해준다. 내가 영암사터로 가던 길에 아무런 예비지식 없이 이 마을에 들르게 된 것은 돌담길이 너무나 아름다워서였다.

집집마다 호박돌이라고 불리는 냇돌을 이 맞추어 쌓은 것이 여간 보기 좋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새마을사업·소읍가꾸기사업을 하면서 간간이 시멘트 블록 담장이 둘러 있어 옛 돌담길의 정취가 물씬 풍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돌담이 남아 있는 이 골목 저 골목을 한참 돌아다녔다. 마을 남쪽 끝에는 단계초등학교가 있는데 학교 담장도 돌담이었다.

더욱이 학교 정문은 옛날 서원에서 볼 수 있는 세 칸 솟을대문이다. 얼마나 고맙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전통을 살린 대문 형식도 멋스러웠지만 현판이 아주 재미있었다. 양쪽 곁문에는 ‘즐거운 학교’ ‘꿈을 심는 교육’이라는 의례적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지만, 가운데 대문 위로는 한자로 ‘삭비문(數飛門)’이라고 쓴 현판이 높직이 걸려 있었다.

뜻을 새기자면 ‘자꾸(數) 날갯짓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즉, 어린 새가 나는 것을 배우기 위하여 날갯짓을 하는 것이 곧 배움이라는 것이다. 본시 배우고 익힌다는 ‘습(習)’자에 ‘날개 우(羽)’자가 들어가는 데도 이런 내력이 있다. 옛 사람들은 이렇게 자연을 통해 인생의 교훈을 많이 담아냈다.

내가 문화재청장을 지내면서 전국에 있는 돌담길 마을 18곳을 문화재로 등록시킨 것은 이 단계마을에서 받은 깊은 인상 때문이었다. 단계마을 돌담길은 2006년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260호로 등재되었고, 이후 시멘트담을 다시 돌담으로 복귀시켜 놓는 2.8km에 달하는 돌담길 복원사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돌담길을 복원하면서 외지에서 들여온 발파석으로 새 담장을 쌓은 것이다. 본래 각 마을의 돌담길은 그 동네 돌로 쌓았던 것에 매력이 있는 것이다. 이 동네 사정천의 냇돌을 주워다 정성스레 쌓을 때 돌담길의 원 모습이 살아나는 것인데 사방공사 하듯, 허름한 축대 쌓듯 해 놓아 또 다른 이질감이 생기고 만 것이다.

부여 반교리 돌담길 같은 모범사례도 있지만 단계마을의 돌담길을 비롯하여 예천 금당실, 대구 옻골마을 등 많은 마을 돌담길 복원사업이 이런 시행착오를 불러일으켰다.

나로서는 뒤늦게 강력한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과연 지금 얼마나 본래의 취지에 따라 고쳐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게는 이제 이래라 저래라 할 권한도 없다. 솔직히 말해서 단계마을 앞을 지나기가 겁날 뿐이다. 그래서 이번 영암사터 답사길에 나는 단계마을을 들르지 못하고 합천댐을 돌아 들어갔다.

황매산 화강암 연봉들

입소문이라는 것이 무서워, 영암사터가 환상적인 폐사지이고 황매산의 철쭉꽃이 아름답다는 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이제는 합천군이 내세우는 계절축제의 명소가 되었다. 그 덕에 요즘에는 절터 초입에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주차장에서 영암사터까지는 산자락 두어 굽이를 돌아가는 편안한 등산길이다.

어느 만큼 가다 황매산으로 오르는 길을 버리고 영암사터로 향하면 이내 해묵은 느티나무가 있어 절터 초입임을 알려준다. 여기서 사람들은 대부분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 절 마당으로 곧장 들어간다. 그러나 나는 항상 오른편 아랫길로 내려가 석축 아래에 서서 삼층석탑과 쌍사자석등이 황매산을 병풍으로 삼아 오롯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절 마당으로 돌아 들어간다.

영암사터는 장대석으로 쌓은 석축으로 절터가 3단으로 나뉘어 있는 바, 그 아랫단부터 경내로 들어가는 동선을 유지하려는 뜻이다. 사찰이든 궁궐이든 살림집이든 모든 건축에는 진입 동선이 있어 그 동선을 따라갈 때 건축의 자리매김(site)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누구든 영암사터가 등진 황매산을 처음 보게 되면 그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만다.

삼각형으로 뾰족이 솟아오른 산봉우리가 예닐곱 굽이로 길게 펼쳐져 있는 눈부신 하얀 빛의 화강암 골산(骨山)이다.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이 배산(背山)의 아름다움은 차라리 신령스럽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오죽했으면 절집 이름을 불교적 이미지가 아니라 영암사(靈巖寺)라고 했겠는가?

이번 답사길에 우리 일행이 영암사터에 와서 황매산을 유달리 눈여겨보았던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가야산관광호텔에서 묵을 때 진주에 사는 내 친구인 경상대 김덕현 교수가 같은 지리학과 기근도 교수와 함께 와서 밤새 놀았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그들은 학교에 일정이 있어 같이 가지 못한다고 하여 헤어지는 인사로 버스 안에서 기근도 교수의 영암사터에 대한 즉석 강의를 청해 들었는데, 모두 거기에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저는 문화유산보다 영암사터의 배산을 이루는 황매산의 화강암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 자연에서 너무 흔해서 귀한 줄 모르고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갯벌이고 또 하나는 화강암입니다.

어제 본 창녕 관룡산도 화강암 골산이고, 오늘 아침에 보는 가야산도 화강암이고, 지금 가시는 영암사터 황매산도 화강암입니다. 우리나라는 화강암의 나라입니다.

화강암은 땅속에서 마그마가 굳어져 지표로 올라와 침식당하면서 노출된 것입니다. 이 화강암이 석영·장석·운모로 구성되어 있음은 중·고등학교 때 배워서 잘 알고 계시겠지요? 화강암에 물이 들어가면 알갱이가 풍화하는데, 석영은 우리가 모래사장에 누웠다 일어날 때 등에서 바로 떨어지는 것이고, 운모는 필름처럼 반짝이는 것으로 금모래라고도 하고, 장석은 뽀얗습니다.

이 화강암이라는 녀석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입니다. 첫째, 화강암은 하천에 모래사장을 만들어 줍니다. 화강암이 심층풍화한 것이 모래입니다. 서울 상계동에 블록 공장이 많았던 것은 도봉산·아차산에서 내려온 모래가 중랑천이 범람하면서 공급해 주기 때문이었죠. 경포대해수욕장의 모래는 설악산 쌍천계곡에서 흘러내린 것입니다.

둘째, 화강암이 땅속에서 오랜 세월 풍화하면 비옥한 들판을 만들어줍니다. 호남평야가 바로 화강암지대입니다. 셋째, 화강암 지대는 지하수가 맑고 깨끗해 우리나라 돌산의 물은 독일의 비델이나 프랑스의 에비앙은 따라올 수 없는 생수입니다. 넷째, 화강암지대는 배수가 잘됩니다. 도시를 형성시킨 분지를 보면 서울·춘천·안동·거창·충주 등이 모두 화강암지대입니다.

그리고 화강암은 수직절리와 수평절리가 발달해 여러 형태의 바위덩어리로 나타나면서 아름다운 산봉우리를 형성시킵니다. 금강산처럼 판구조가 큰 것도 있고, 인수봉처럼 솟아오르기도 하고, 설악산 울산바위처럼 흔들바위로도 나타납니다. 여러분은 이제 황매산에 가셔서 화강암의 또 다른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강암의 성정(性情)을 보면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화강암은 무엇보다 단단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굳게 뭉쳐 있을 때는 아름다운 바위와 산봉우리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분해될 때는 확실하게 부스러져 모래사장을 만들어주고, 물을 빨아들여 맑게 걸러주고, 비옥한 농토를 만들어줍니다. 이것이 화강암입니다.”

현장에서 듣는 강의는 학습효과가 뛰어나다. 우리는 그런 화강암의 성질과 성정을 생각하며 신령스러운 황매산을 더욱 오래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다.

영암사터의 석축과 가람 배치

영암사는 대단한 절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지금 남아 있는 유물들을 보면 모두 나말여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삼층석탑(보물480호)·쌍사자석등(보물353호)·영암사터귀부(보물489) 등 보물이 3점이고, 영암사터 자체는 사적 제131호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다.

영암사터는 두 차례의 발굴조사 결과 황매산 자락의 비탈을 이용하여 아래쪽에서부터 석축을 쌓아 3단의 권역을 형성하며 계단식으로 올라서 있음이 확인되었다. 맨 윗단에는 금당과 쌍사자석등이 있고, 그 아랫단에는 삼층석탑, 그 아랫단에는 회랑식 건물의 승방(僧房), 그리고 그 아래로는 요사채(寮舍寨)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람 배치가 자연적인 지형을 살리면서 불(佛)·법(法)·승(僧)의 정연한 질서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암사터가 모든 목조건물을 잃어버렸음에도 우리에게 화려한 폐사지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황매산도 황매산이지만 석탑·석등·석축 등이 옛 모습을 남김없이 전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가지런히 쌓아 올린 석축은 다른 절집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영암사터에 들어서면서 바로 만나는 승방권역의 석축을 보면 긴 직사각형의 장대석을 이 맞추어 쌓으면서 높은 곳은 11개의 단으로 이루어졌는데, 아홉째 단과 다섯째 단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네모난 쐐기돌이 돌출되어 있는 것이 아주 멋스럽다.

그 자체로 현대건축의 디자인 같다는 감동을 준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이것을 일종의 장식으로 알고 있다. 어느 날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이 뜬금없이 나에게 이렇게 물어왔다.

"영암사터 석축을 보니 네모난 돌들을 멋지게 붙여놓았던데, 그게 무슨 법식이 있는 겁니까?”

“갑자기 그건 왜 물어봐요? 스님한테도 그런 섬세한 면이 있었어요?”

“주지를 맡고 보니 절집의 돌 하나하나를 다시 보게 되는구먼. 그게 생각나 우리 절에도 축대를 쌓으면 벤치마크해 보려고.”

“그게 멋지다는 것을 아는 걸 보니 명진당도 안목이 높아졌습니다, 그려. 그러나 그건 겉보다 속이 더 멋있는 거여.”

“속이라니?”

“그건 장식으로 붙여놓은 것이 아니라 속에 깊이 박혀 있는 팔뚝만한 긴 돌의 머리가 그렇게 나와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축대가 튼튼해지죠. 경주 감은사 석축에도 이 팔뚝돌이 있고, 석굴암 천장에 돌출해 나와 있는 것도 똑같은 것이에요.”

“아항, 그런 거로구먼. 우리 선조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단 말야. 그러니까 장대석 사이에 돌로 만든 대못을 박아놓은 셈이군.”

아! 바로 그거였다. 나는 평소에 이 쐐기돌을 보고 팔뚝돌을 ‘끼워 넣은 것’으로 알았는데, 스님 말을 듣고 보니 땅에 대고 ‘대못질’하듯 박은 개념이었다. 가르쳐주려다 오히려 한 수 배운 셈이었다. 영암사터의 석축에서 선조들이 뭐가 달라도 다르게 한 것은 금당의 석축을 쌓으면서 석등 자리를 앞으로 돌출시키고 양 옆으로 무지개계단을 놓은 것이다.

영암사터는 비탈을 고르면서 권역을 나누었기 때문에 터를 넓게 쓸 수 없었다. 간신히 금당 자리를 앉혀 놓았지만 석등을 세울 만한 공간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석축을 앞으로 내쌓으면 승방권역이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 문제를 선조들은 아주 간단히, 그러나 아주 슬기롭게 해결하였다.

다름 아니라 석등을 앉힐 만큼만 철(凸)자 모양으로 내쌓은 것이다. 그리고 돌출된 석등 자리 양 옆으로는 승방권역에서 금당으로 오르는 돌계단을 설치했다. 이 돌계단 또한 영암사터의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이다. 통돌을 깎아 여섯 단의 디딤돌을 새겨놓아 조심조심 오르게끔 되어 있다.

우리나라 절집의 구조를 보면 부처님을 뵈러 걸어가는 동안 어떤 식으로든 자신도 모르게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또 몸을 숙이게 하는 건축적 장치가 들어 있다. 대부분은 만세루 아래를 통해 몸을 숙이고 들어가게 되어 있거나 대웅전 앞은 축대로 막아놓고 양 옆으로 에돌아 들어가게 해놓은 것이다.

그런 중 관촉사 해탈문은 몸을 숙이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게 해 놓았고, 개심사는 거울못에 외나무다리를 걸쳐 놓아 조심하지 않고는 법당으로 오르지 못한다. 그런데 영암사터에서는 좁다란 계단에 디딤돌을 얕게 새겨 발뒤꿈치를 허공에 매달고 오르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사다리 모양으로 곧게 뻗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지개 모양으로 호를 그리며 휘어져 있다.

그 곡선의 아름다움을 나는 무어라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고작해야 무지개의 한 자락을 오려놓은 것 같다는 표현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한국의 자연과 건축’이라는 주제로 강연할 때면 영암사터를 빼놓은 적이 없다. 한번은 포항공대 교수연수회에 초청강연을 가서도 이 돌계단을 보여주면서 무어라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하고 지나갔다.

강연이 끝난 다음 교수들과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토목과 교수 한 분이 내게 한 수 가르쳐줄 듯이 말을 걸어왔다. “아까 슬라이드로 보여준 영암사터 돌계단 정말 멋있습디다. 토목공학도 입장에서도 감탄이 절로 나오던데요. 그런데 다른 건축은 아름다움의 특징을 다 잘 표현하면서 이 멋진 돌다리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갔습니까?”

“좀처럼 표현할 문구가 잡히지 않아서 그랬어요.”

“그러면 이렇게 정직하게 말하면 어떨까요?”

“어떻게요?”

“사인(sin)12도의 각도를 유지하고 있다고요.”

‘사인 12도!’ 그것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처음 듣는 감격스러운 단어였다.

쌍사자석등과 금당 기단부의 돌사자

영암사터가 폐사지이면서도 화려한 환상의 나라 유적지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쌍사자석등이 있기 때문이다. 병풍처럼 둘러선 황매산을 향해 우뚝 서있는 이 쌍사자석등으로 인해 사라진 모든 것의 가치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쌍사자석등은 영암사터의 중심이고 핵이고 꽃이다. 쌍사자석등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놓인 위치가 이 유물을 더욱 빛나게 한다.

앞으로 돌출해 나온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석축 위에서 마치 호령하는 사령관처럼, 또는 교향악단의 지휘자처럼 홀로 우뚝한 것이다. 본래 석등은 받침대·간주석·화사석·지붕돌로 구성되어 형식상 변화의 여지가 많지 않다. 화사석에 조각장식을 넣거나 간주석을 고복형이라고 해서 장구 몸체처럼 형상화하는 정도다.

그러나 더욱 아름답고 화려한 석등을 만들겠다는 조형 의지는 통일신라시대에 쌍사자석등이라는 기발한 구성의 석등을 낳았다. 영암사터 쌍사자석등은 법주사 쌍사자석등(국보3호),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국보103호)과 함께 통일신라 불교미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쌍사자석등은 두 마리의 사자가 가슴과 앞발을 맞대고 화사석을 받치고 선 형상으로, 사자들의 뒷다리에 한껏 힘이 모여 있다.

그만큼 역동적인데, 발돋움을 하느라 슬쩍 올라간 사자의 궁둥이가 귀엽기 짝이 없다. 쌍사자의 뒷다리와 앞발 사이를 공허공간(空虛空間)으로 깎아낸 것은 조각적으로 기발한 발상이며, 조각적으로 대성공을 이룬 것이다. 만약 이 공허공간이 없었다면 이 쌍사자석등은 아주 답답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이 공허공간으로 인하여 우리는 시점을 옮길 때마다 쌍사자의 다른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쌍사자의 조각이 덩어리(mass)의 양괴감을 이용하는 데 머무른 것이 아니라 사면에서 두루 살피게 하는 공허공간을 창출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서양 근·현대조각사에서도 이런 공허공간을 적극 이용한 것은 헨리 무어에 왔을 때나 나타나는 기법인데, 우리 석공은 이미 9세기에 그 기법을 이용한 것이다.

영암사터는 화강암 돋을새김에서도 갖은 기교를 다 보여준다. 쌍사자석등이 올라앉은 금당의 기단부는 아름다운 곡선의 안상(眼象)을 장식해 넣고, 북쪽을 제외한 동·서·남 3면에 각각 한 쌍씩 6마리의 사자를 돋을새김으로 새겨 넣었다. 한결같이 배를 바닥에 대고 넙죽 엎드린 자세를 하고 있지만, 어떤 사자는 송곳니를 내민 채 눈웃음을 치고, 어떤 사자는 고개를 젖히면서 당찬 기세로 뒤를 돌아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

돋을새김을 강하게 하여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은 사실성이 있다. 무서운 짐승을 새겨 불법 수호의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이 이 조각장식의 본뜻이지만, 아무리 보아도 사나운 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사자라기보다 털북숭이 삽살개 같기만 하다. 이는 세계 각국마다 도깨비가 있지만 우리나라 도깨비만 인간적인 면이 강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점이 우리 미술에 나타난 한국인의 심성이다. 영암사터 금당 자리를 둘러보면 돌계단 난간석에 ‘가릉빈가’를 조각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가릉빈가는 사람 머리에 새의 몸을 하고 한없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천상의 새다. 이 가릉빈가가 날개를 활짝 편 모습으로 난간석을 조각하였는데, 쌍사자석등처럼 공허공간을 만들며 맞뚫림을 했다.

금당터 위로 올라가보면 불상을 모셨던 자리 지대석에는 아주 작은 팔부중상 조각들이 남아 있다. 이 또한 돋을새김으로 아주 사실적 조각솜씨를 보여준다. 도대체 영암사에 어떤 석공이 있었기에 이 좁은 공간까지 손길을 아끼지 않았는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이런 조각들로 인하여 영암사터 전체를 국가사적으로 지정했던 것이다.

조사당터의 돌거북

영암사터의 가람 배치에는 금당에 이르는 3단의 석축 외에 조사당터로 생각되는 독립된 건물터가 있다. 금당에서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바로 조사당터가 나오는데 여기에는 건물터 양 옆으로 비석을 잃은 돌거북이 한 쌍 있다. 이 두 마리의 돌거북은 고승의 사리탑과 함께 세워진 비석의 받침돌이다.

사리탑은 절 서쪽 1.5km 떨어진 곳에 모셔져 지금도 깨진 조각들이 여럿 있다. 사리탑은 절 뒤로 모시고 그분의 공적을 담은 비석은 이 조사당 앞에 모셨던 것이니, 이 돌거북은 분명 영암사를 창건한 스님과 그 뒤를 이은 고승의 비석을 받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마리는 하대 신라의 작품이고, 한 마리는 고려 초기의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면 어느 것이 앞선 양식일까? 이것을 양식사적으로 분석하면서 판별해 보는 것은 미술사학도들의 좋은 현장학습이 된다. 먼저 두 마리 거북의 모습을 보면 비슷하면서도 세부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건물 왼쪽(북쪽) 거북이는 머리를 약간 아래로 향한 얌전한 자세로 등에는 여섯 모 난 귀갑무늬 위에 구름이 꽃처럼 피어 있다.

비좌 양쪽에는 물고기 두 마리가 새겨져 있는데, 한쪽은 서로 꼬리를 물고 돌고 있고, 다른 한쪽은 연꽃봉오리를 서로 차지하려는 듯 다투고 있다. 조각을 깊이 새겨 형상이 또렷하다. 이에 비해 건물 오른쪽(남쪽) 거북이는 목을 곧추세우고 여의주를 물고 있는 입을 크게 벌리고 있어 우람함을 강조한 듯한 과장이 있다.

살짝 옆으로 비튼 네 발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듯한 동감이 일어난다. 등에는 구갑무늬가 새겨져 있지만 각을 얕게 새겨 정교한 맛은 없다. 어느 것이 먼저일까? 영암사를 비롯하여 유서 깊은 선종 사찰을 보면 하대 신라의 개창조 부도와 고려 초 중창조의 부도 및 부도비가 공존해 있다. 고달사·연곡사·태안사·봉암사 등에서 똑같이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 경우 부도든 부도비든 중창조의 것은 개창조의 그것을 모델로 하면서 약간의 변형이 가해져 있다. 그래서 중창조의 그것에는 매너리즘 현상에 나타나는 긴장의 이완이 있고 또 형식적 과장이 들어간다. 조형적 밀도를 보면 단연 개창조의 것이 야무지고, 중창조의 것은 섬세함이 약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영암사터 돌거북의 경우 왼쪽 것이 개창조의 것이고, 오른쪽이 중창조의 것이 된다.

사실 이와 같은 것은 양식사적 훈련이 없다 하더라도 미술에 안목이 있는 분이면 생래적 감각으로 둘을 비교해 조형적 밀도만 따져본 다음 바로 알아낼 수 있다. 오래 전의 일이다. 내 누님뻘 되는 분들의 점잖은 모임에서 나에게 답사 인솔을 부탁해 이곳에 올 때 나는 버스 안에서 영암사터에 대해 설명하고 나서 시험문제를 내듯 이 돌거북의 시대적 선후관계를 맞혀 보라고 했다.

그리고 일행이 쌍사자석등을 둘러보고 나서 조사당터에 와서 돌거북 한 쌍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갑자기 나와 친한 누님 한 분이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유 교수님, 이렇게 쉬운 것을 시험문제로 냈어요? 북쪽에 있는 것이 오래된 것이고, 남쪽 것은 그것을 흉내내면서 변형시킨 것을 한눈에 알겠구먼! ”

순간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문제를 내면서 재미있게 보자고 한 말이었지만, 막상 듣는 사람은 시험을 치듯 긴장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또 맞히지 못한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영리한 누님이 회원들을 곤경에 빠뜨리지 않게 하려고 나에게 닦달하듯 큰소리로 외쳤던 것이다.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마웠다. 나중에 그 누님께 사과드리고 나서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알아냈느냐고 물었더니, 그 대답이 더더욱 명답이었다. “알기는 뭘 알어. 둘 중 하나를 찍어 말한 것이지. 그게 틀렸다면 나 혼자만 틀린 것이 되잖아?” 이럴 때면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는 말이 절로 나오고 만다.

영암사터의 내력과 미래

영암사터는 남아 있는 유물로 보아 하대 신라에 창건된 절이고, 발굴 결과 고려 말까지 유지되었던 것까지는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깊은 산중의 오지에 어떤 인연으로 누가 창건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삼가현 읍지> 어디에도 영암사라는 절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는다.

더욱 이상한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황매산 아래에 몽계사(夢鷄寺)·사라사(舍羅寺)터가 있었다는 것은 명확히 기록되어 있는데 유독 영암사에 대한 언급만 없다. 폐사지의 절 이름이 영암사였다는 것은 마을에 구전되어온 것일 뿐, 기록으로 고증된 것도 아니다. 그러던 중 서울대도서관에서 ‘합천 영암사 적연국사(寂然國師·932~1014)비’의 옛 탁본이 발견되어 영암사라는 속전이 사실인 것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비문에 의하면 적연국사는 경상도 성주사람으로 13세 때 전라도 장흥 천관사에 들어가 중이 되고 37세에 중국에 유학하고 귀국한 뒤 성종이 스님을 대사로 봉하였고, 목종은 대선사로 승진시키며 임금의 곁에서 불법을 전하게 하였다. 그러다 80세가 되었을 때 스님은 가수현(嘉壽縣·오늘날 삼가면과 가회면) 영암사에서 조용히 주석하다 현종 5년(1014) 입적하니 향년 83세였으며 영암사 서쪽 산중에 장사지내고 나라에서는 적연국사라는 시호와 함께 자광탑(慈光塔)이라는 탑호를 내려주었다고 한다.

이 적연선사의 비는 조사당 남쪽에 있는 돌거북에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암사가 언제 폐사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 초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절터 발굴 때 나오는 도편이 조선 초 분청사기까지만 있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폐허가 되어 발굴 전까지만 해도 석축 아랫단은 밭이었다.

이런 영암사터의 유물을 오늘날까지 이나마 지켜낸 것은 전적으로 마을사람들이었다. 1933년 일본인이 몰래 쌍사자석등을 훔쳐가는 것을 막아내고, 1959년에는 면사무소에 있던 그 석등을 기어이 찾아와 절마당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주민들은 무너진 삼층석탑을 바로세우고 마을의 헌 집 두 채를 옮겨지어 놓고 이 절터를 지켰다.

지금 영암사터 삼층석탑 양 옆에 있는 허름한 건물이 바로 그것이다. 나라에서는 1984년 동아대학교박물관에 발굴을 의뢰하였고, 1999년 복원정비사업을 벌인 다음 2002년 3차 조사를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그 사이 절터 안쪽에는 영암사 새 절이 들어섰다. 그리고 앞으로 요사채권역에 대한 조사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볼썽사나운 허름한 집이다. 이것을 빨리 철거하고 그곳마저 발굴조사를 해야 영암사터는 더욱 아름답고 환상적인 절터로 각광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세월 나라에서 거들떠보지도 않던 시절 마을사람들이 관리소 격으로 지어 이곳을 지켜온 것인데 이제 와서 불법건물이라고 철거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나는 청장 시절 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것이 지금도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언젠가는 해결될 것으로 믿고 기다려보는데, 이 글을 쓰기 위해 문화재청 담당 부서에 문의하니 마침 청장 시절 나의 비서가 그 실무를 맡고 있었다. 영암사터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채 묻기도 전에 그의 대답이 먼저 나왔다.

“청장님, 잘됐습니다. 그 허름한 집들 철거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새 절 쪽으로 옮겨주기로 했습니다. 올해 철거하고 발굴에 들어갈 겁니다.”

이렇게 기쁜 소식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러나 나의 영암사터 답사기는 그때 가서 다시 보고 수정해야만 하게 되었으니 이 글은 개정을 기다리는 미완성 원고가 된 셈이다.(끝)

유홍준

1949년생. 1993년 펴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전3권)가 통합 200쇄, 판매량 230만 권을 돌파해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 작가로 기록됐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미술평론으로 당선한 이후 미술평론가로 활동해 왔다.

영남대 교수와 영남대박물관장,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을 거쳐 2004년 9월부터 2008년 2월까지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후 현재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전3권) <나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전2권) <화인열전>(전2권) <완당평전>(전3권), 그리고 알기 쉽게 간추린 완당평전 <김정희> 등이 있으며 간행물윤리위출판저작상(1998)과 제17회 만해문학상(2003)을 수상했다.

 

 

[妙不]

어느봄날 또가입시더 저도조아질라함니데이

[세석평전]

예,, 어느봄날 비라도 내리면 가심이 어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