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벨 牧師와 外孫子 D. 린튼 家門
유진 벨 財團 設立, 휴 린튼 代 이어 宣敎
※參照 : [讀者 여러분은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巡禮招待. 楊林洞, 麻浦 外國人 宣敎師 墓園》(2009.12.6 게재)을 먼저 參考하시면 도움이 되실 줄 믿습니다. 執筆者 注.]
■韓國에서 4代에 걸쳐 宣敎 奉仕활동ㅡ.
미국의 유명한 선교사 집안 린튼 가문의 어른 드와이트 린튼 목사(한국명 인도아)가 2010년 1월11일 미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별세했다. 향년 82세ㅡ. 애틀랜타 인근 게인즈빌에 있는 체스트넛 교회에서 열린 한 장례식에 참석한 뒤 린튼 목사는 이날 밤 승용차편으로 귀가하다 교통사고로 변을 당했. 다. 유족은 부인 마지(알츠하이머병) 여사와 아들, 그리고 딸 베스 등ㅡ.
《光州開化의 아버지》로 구한말 근대 교육과 의료사역을 펼쳤던 유진 벨 선교사(1868-1925)의 외손자, 린튼 목사…. 그는 한국(全州)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선교와 봉사활동을 전개한 뒤 은퇴해 게인즈빌에 머물러 왔다.
청소년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고,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1952년 한국으로 돌아와 25년간 줄곧 光州에 머물며 의료봉사활동을 전개하고, 1973-1978년 지금의 서구 양림동 湖南神學大 학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은퇴후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1992년 세계적인 부흥전도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북한 金日成 주석의 초청을 받고 북한을 방문했 때, 통역으로 동행하기도 했다.
특히 린튼 가문은 1995년 북한주민을 돕기 위해 설립한 인도주의단체 `조선의 기독교 친구들(Christian Friends of korea : CFK)'를 설립할 때는 주도적 인 역할을 했다. 그는 또 91년 애틀랜타 인근 한인타운 밀집지역인 덜루스에 `오픈도어(open door) 커뮤니티 교회' 를 개설하고 젊은 한인 이민 2세들과 함께 지냈다.
■韓國에서의 린튼 家門의 榮光ㅡ
린튼 목사의 외조부 유진 벨 선교사…. 1895년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로 한국에 온 후 木浦, 羅州, 光州 등, 전라도 지방에서 활동하며 많은 학교, 병원, 교회를 세우고 봉사활동을 했다.
벨 선교사의 사위 윌리엄 린튼(1891∼1960·한국명 인돈) 목사는 장인의 유지를 받들어 한국의 독립을 후원하는 하면서 1959년 大田 한남대를 설립하는 등, 교육봉사에도 앞장섰다. 2006년 윌리엄 린튼의 손자이며 미국의 세계적 생명공학기업인 `프로메가(PROMEGA)' 대표인 빌 린튼 3세가 이 대학을 방문해, 500만 달러의 재정지원을 약속했으며, 최근 린튼 글로벌 칼리지까지 설립T다.
윌리엄 린튼 목사에게는 아내 베티(한국명 인애자)와의 사이에 4남이 있다. 셋째가 휴(1926-1984.한국명 인휴), 넷째가 이번에 세상을 달리한 드와이트 목사다.
휴 린튼의 맏아들 스티브(59.한국명 인세반)는 1994년 유진 벨 재단을 설립, 대북 의료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둘째 존(50.한국명 인요한)은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소장으로 있다.
■유진 벨 宣敎師의 外孫子임을 强調ㅡ.
고인인 D. 린튼 목사는 평소 4대에 걸친 한국 사랑을 표시해 왔다. "나와 내 형 휴 린튼은 구한말 근대 교육과 의료사역을 펼쳤던 유진 벨 선교사의 외손자다."라는 긍지를 잊지 않았다.
"1895년 시작된 유진 벨 사위 윌리엄 린튼(1899~1913년)과 형님 휴 린튼, 4세대인 외증손자 스테판·존·짐 린튼 등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북한선교 활동에 열정을 바치고 있다"고 득의의 표정을 과시해왔다.
고인의 형인 휴 목사는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해 전남 順天 외국인 묘지에 잠들어 있다. 휴 목사의 부인 베티(한국명 인애자)여사는 順天에서 결핵재활원을 운영해 30년 이상 결핵퇴치사업을 전개해온 공로로 국민훈장, 호암상 등을 받았으며. 현재는 노스캐롤라이나 블랙마운틴에 머물고 있다 . 블랙 마운틴의 산 중턱에 위치한 베티 린튼 할머니의 집은 미국을 방문하는 북한 대표단이 머물다 가기도 하는 등 남북한 인사들의 응접실 구실을 하고 있다.
서울 마포 양화진에 있는 서양인 선교사 제1묘역에는 전남지역 초기 선교사로 木浦지방에서 활동한 최초의 여성 선교사인, 샬롯 위더스픈 벨(Charlotte Ingram Witherspoon Bell, 1867~1901) 묘가 있다.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로 헌신적으로 봉사하다가 34세의 젊은 나이로 양화진에 안장되었으며, 호남지역에서 위대한 선교 업적을 이룩한 유진 벨(Eugene Bell) 선교사의 첫 부인이다.
■유진 벨 牧師, 그는 누구인가?
유진 벨(Eugene Bell, 1868-1925)은 구한말에 미국의 남장로교에서 한국에 파송되었던 선교사이다.
유진 벨 선교사의 외증손인 스티브 린튼(Stephen W. Linton) 박사가 1995년 유진벨재단을 설립하고, 이후 대북 의료 지원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어, 이제 '유진 벨'이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는 않다.
100여 년 전 유진 벨 선교사가 한국 땅에 들어와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며 교육과 의료 사업을 벌인 이래, 그의 한국사랑은 자손들에게 이어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4대째 이어지고 있는 유진 벨 가문의 한국사랑은 많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전해 준다.
유진 벨 선교사는 첫번째 부인 로티 위더스픈(Lottie Witherspoon Bell, 1867-1901)과 함께 1895년 4월[27세] 한국에 도착했다.
부인 로티 위더스픈은 1867년 5월 13일 미국 켄터키주(Louisville)에서 신학대학장의 딸로 출생했다. 1884년 유진 벨과 결혼했고,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로 1893년 임명되었다. 출발이 지연되어 1895년 2월 12일 샌프란시스코 항을 떠나 1895년 4월 9일 긴 여행 끝에 서울에 도착했다.
남편과 서울에서 얼마동안 활동하다가 호남지역으로 배치되어 1898년 목포로 옮겼다. 1896년 5월 27일 아들 헨리(Henry)를 낳고, 딸 샬롯(Charlotte)은 1899년 1월 6일 낳아 양육했다.
전라도 선교는 미국의 남장로교 한국선교회에 맡겨졌다. 이에 따라 유진 벨 선교사는 光州를 비롯한 전라남도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펼쳤다.
■샬롯 벨과 윌리엄 린튼의 結婚
유진 벨 선교사는 목포와 광주 여러 곳에 교회들을 세우고,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 잃은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벨 선교사는 교육과 의료 사역에도 중점을 두어 木浦에 정명학교와 영흥학교를 세웠고, 光州에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를 세웠으며, 光州에 최초의 종합병원인 광주기독병원(현 제중병원)을 세웠다ㅡ.
그가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던 도중, 그의 아내 로티 위더스픈이 헨리와 샬롯 두 자녀를 낳고 1901년에 3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로티 위더스픈은 심장병에 걸렸으나, 치료도 받지 못하고 고생하다가 남편이 전도 여행하는 중에 홀로 세상을 떠나 양화진에 묻혔다. 선교 사역 초창기에 당한 이런 시련에도 벨 선교사는 한국 땅에서 선교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그는 1904년 마가렛 벨(Margarlet W. Bell)과 재혼했으나, 마가렛 벨은 1919년 3월 제암리교회 학살 사건을 조사하고 光州로 돌아오다가 병점역에서 열차와 자동차가 충돌하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후 유진 벨은 호남 지방 선교에 헌신, 격무로 건강이 악화돼, 1925년 9월 28일 57세로 별세후 光州 양림동 묘역에 잠들어 있다ㅡ.
유진 벨의 딸 샬롯 벨(Charlotte Bell)은 光州에서 출생해 성장기를 미국에서 보냈다. 성인이 돼 아버지 벨에게 돌아와, 선교를 위해 群山에 있던 윌리엄 린튼(William A. Linton, 1891~1960)과 결혼했다. 그 후 全州 기전여고, 全州 신흥고 등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설립한 학교 교장으로 활동했다.
■유진 벨 財團의 設立
유진 벨로부터 시작되어 윌리엄 린튼 가문으로 이어진 한국 선교의 사역은 윌리엄 린튼과 샬롯 린튼의 세째 아들인 휴 린튼(Hugh M. Linton, 1926-1984)이 이어 받았다.
휴 린튼은 1926년 群山에서 태어났으나, 신사참배 거부로 가족이 강제 출국 당한 뒤에는 미국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그는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부인 로이스 린튼과 함께 한국의 선교사로 들어와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선교 사역을 이어갔다.
휴 린튼과 로이스 린튼의 둘째 아들인 스티브 린튼과 막내 아들인 존 린튼은 자신들의 외증조부인 유진 벨 선교사의 한국 선교 사역 100주년을 기념하여, 1995년에 유진 벨 재단을 설립했다.
유진 벨 재단은 한국과 미국에 각각 독립된 재단을 두고 비영리단체로 활동 중이다. 북한에는 모두 400억 원이 넘는 의약품과 의료 장비를 전달했다. 북한 동포를 위한 인도주의적 지원 사업을 지금까지 12년간 전개해온다.
1997년 북한의 보건성으로부터 결핵 퇴치 공식 지원 요청을 받아, 전라남도 順天에 있는 順天기독결핵재활원 내 해외사업부 소속으로 '유진 벨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유진 벨 재단 이사장인 스티븐 린튼은 어린 시절을 전라남도 順天에서 보내며 자라서, 자연스럽게 남북한의 분단 현실의 아픔을 목도하였다.
재단법인 유진 벨(한국) ; 서울 마포구 서교동 395-166 서교빌딩 605호 (122-740) 전화: 02-336-8461 팩스: 02-3141-2465
Eugenebell Foundation (미국) : P.O.Box 5099 Hasienda Heights, CA 91745-0099 Tel: 626-824-8211, Fax: 951-769-5879
홈페이지 : www.eugenebell.org
고인 장례 일정은 아직 정해 있지 않다. 애틀랜타 한인교회협의회는 고인이 한국을 위해 헌신한 점을 우러러 유족들과의 협의를 거쳐 적극 장례를 지원하게 된다.(201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