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성산(聖山) 백두산(白頭山) 기행(紀行)
4. 아! 아!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白頭山)
우리 한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중국에서는 장바이샨(長白山)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도 이 백두산과 정상의 천지(天池)를 신성하게 여기는데 우루무치 천산산록에도 또 다른 천지(天山天池)도 있다.
이 백두산은 우리 한민족의 성산(聖山)일뿐더러 이 지역의 소수민족인 여진족(女眞族), 말갈족(靺鞨族) 들도 자기 민족의 성산이라고 한다는데 각각 백두산과 얽힌 개국신화(開國神話)들이 있다고 한다.
<1> 백두산 노천온천
우리를 태우고 온 버스는 장백폭포(長白瀑布) 앞 노천온천 입구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장백폭포는 천지에서 유일하게 바깥으로 넘쳐 나오는 물줄기(폭포)인데 중국으로 흐르는 송화강(松花江)이 된다.
백두산 천지에서 직접 흘러내리는 폭포를 장백폭포(長白瀑布)라 하는데,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을 흐르는 압록강(鴨綠江)과 두만강(豆滿江)은 장백폭포의 물이 아니고 백두산 기슭의 샘에서 발원한 시냇물이 강의 원류가 된다. 중국인들은 장백폭포(長白瀑布)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천지폭포(天池瀑布)라 부른다.
6월초인데도 백두산은 골짜기마다 눈이 덮여있고 날씨도 제법 서늘하다. 버스에서 내려 골짜기로 올라가자 갑자기 유황냄새가 코를 찌르며 자욱이 안개가 서리는데 가까이 가면서 보니 넓은 바위 위로 물이 흘러넘치는데 수증기를 무럭무럭 뿜어대는 노천온천이 보인다.
너럭바위 위로 흘러넘치는 뜨거운 온천수가 얼마나 아까운지... 여기에다 호텔을 지으면 얼마나 좋을까?
버스에서 가이드가 봉지에 오리 알을 담아가지고 나서기에 뭘 하려나 했더니 우리에게 두 개씩 나누어주며 온천물에 넣었다가 5분쯤 후 꺼내면 반숙이 된다며 각자 해 보라고 한다.
백두산 노천온천 / 오리알 삶기 / 송화강의 원류 장백폭포
바위 구멍에서 퐁퐁 솟아나오는 온천수에 오리 알을 넣었다가 나중 꺼내려고 손을 넣으니 기절한 만큼 뜨겁다. 이걸 어떻게 꺼내지?? ㅎㅎ
노천온천 조금 아래쪽에 허름한 온천욕장이 있는데 절로 헛웃음이 나온다. 입장료도 없고, 문도 없는 시멘트 가건물 두 칸인데 한쪽은 남탕(男池), 한쪽은 여탕(女池)이라고 씌어있다.
그런데 두 칸 사이에 웬 창문을? 그런데 문도 달지 않아서 구멍이 휑하니 뚫려있다. 바위에서 흘러내려온 물은 남탕과 여탕으로 들어가 욕탕을 채운 후 철철 흘러넘쳐서 다시 바깥으로 하염없이 흘러나온다.
아이고 아까워라.... 장백폭포가 저만큼 보이는데 눈이 많아 가지는 못하고 멀리서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2> 백두산 오르는 길
지금은 백두산 정상의 천지(天池)까지 관광버스가 올라간다지만 당시는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버스는 올라가지 못하고 별다른 교통편도 없었다. 가이드는 산 입구에 우리를 앉혀놓고 근처 공사장에 가더니 트럭을 한 대 빌려와 우리를 태우고 올라가며 울화통을 터뜨린다.
‘저런 돼지 같이 멍청한 여진족(女眞族) 놈들 같으니라고... 쯧쯧’ 하며 혀를 찬다.
중국 돈 200위안에 흥정이 되었는데 외국인이 쓰는 중국 돈인 외환폐(外貨兌換券)를 주었더니 못 보던 돈이라며 내국민이 쓰는 인민폐(人民幣)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같은 200위안이라도 외환폐가 인민폐보다 두 배는 더 가치가 있는데 무식한 사람들이다보니 인민폐를 달라고 했던 모양이다.
눈 덮인 포장도 되지 않은 길을 중간쯤 올라가다가 차를 세우고 골짜기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데 이곳 이름이 풍구(風口)란다. 정말 골짜기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가는 통로다. 풍구에서 내려다보이는 장백폭포와 잔설이 쌓인 계곡 풍경이 넋을 잃게 한다. 이곳이 2500m 이상 되는 곳이어서 그런지 조금만 언덕길을 걸어도 제법 숨이 가쁘다.
풍구(風口)에서 내려다보이는 장백폭포 / 백두산 계곡 풍경 / 백두산 입구
다시 차에 올라 눈 덮인 비탈길을 트럭은 용케도 미끄러지지 않고 덜덜거리며 올라가는데 트럭 뒤 짐 싣는 곳에 앉은 우리는 추워서, 무서워서 오들거리며... 얼마쯤 올라왔는지 갑자기 눈이 병풍처럼 쌓여서 길이 반쯤 묻혀있는 곳까지 와서는 트럭 운전수는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주저앉는다.
가이드는 몇 번 실랑이를 하더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걸어가자고 한다. 눈길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으며 10여분 걷는데 고산증세인가 숨이 턱까지 찬다. 다행히 곧바로 눈에 덮여있는 기상대가 보이고 바로 언덕 너머가 천지였다.
지금은 중국 쪽이나 북한 쪽에서 천지를 오르는 여러 갈래의 등산로(東坡, 南坡, 西坡, 北坡)가 있다지만 당시(1990년)에는 중국에서 오르는 주 등산로조차 공사가 겨우 끝난 후라 도로사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중간쯤에는 이 도로를 닦다가 순직한 인부들의 추모비도 서 있었다.
<3> 아! 아! 천지(天池)
기념 촬영(1990년 6월) / 중국 천문봉(天門峰)에서 / 건너편이 북한 장군봉(將軍峰)과 계단
하늘에 구름이 좀 끼기는 했지만 제법 맑은 날씨로 백두산 전체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백두산 정상 부근에 기상대(氣象臺)가 있는데 거기에서 언덕을 오르면 곧바로 천지(天池)가 조망된다. 천지를 마주하자 엄청난 장관에 숨이 막히고 민족의 영산(靈山)에 올랐다는 감회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곳 백두산은 날씨가 너무 변덕스러워 3대가 덕을 쌓지 않으면 맑은 날씨에 천지를 볼 수 없다는데 조상님들의 음덕(陰德)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화창한 날씨는 아니지만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천지와 그 둘레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높고 낮은 눈 덮인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호수 천지(天池)는 둘레의 길이 14km, 깊이는 평균 수심이 200m로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384m 나 된다고 하는, 세계에서 가장 수심이 깊은 화산호수(칼데라호)라고 한다. 가이드는 빨리 사진이나 찍고 서둘러 내려가자고 연신 성화다. 날씨가 어떻게 변덕을 부릴지 알 수 없으니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나 벼르고 온 민족의 성산 백두산이고, 천지인데 금방 내려가자니...
벅차오르는 감회를 억누르지 못하고 일행 중 한 명이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외치자 가이드는 질겁하며 절대로 만세를 부르거나 태극기를 흔들면 안 된다고 한다. 이 백두산과 천지는 모두 한국 땅이었지만 한국전쟁(6.25)이 끝난 후 김일성이 전쟁을 도와준 중국의 요청으로 백두산을 반을 나누어 새로운 국경을 긋는 바람에 천지도 절반만 한국 땅, 절반은 중국영토가 되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중국 땅이다. 우리가 서있는 중국령 천문봉(天門峰)에서 천지 건너편으로 보이는 북한쪽 백두산은 최고봉인 장군봉이 높이 솟아있고 조금 낮은 곳에 북한 초소가 어렴풋이 보이는데 초소에서 천지로 내려오는 가파른 계단이 가물가물 보인다.
채근하는 가이드를 못 본 체 우리는 들고 온 간식 중에서 빵과 술, 과일들을 펼쳐놓고 제례를 올렸다. 일제히 재배를 올린 후 우리는 꿇어 엎드려있고 제일 연장자가 즉흥 제문(기도문?)을 읽고 다시 큰 절을 올리고.... 예정에 없던 즉흥적인 제례였지만 모두 엄숙한 얼굴이 되었다.
천지 부근은 키 작은 관목(灌木)들만 보이는데 고도가 높고 비바람이 심하고 춥다보니 키 큰 교목(喬木)들은 자라지 못하는 모양이다.
천지 부근의 키 작은 관목(灌木) 숲에 들어가 보았는데 관목조차 30cm 이상 자라지 못한다. 꽃을 보니 진달래가 틀림없는데 줄기가 모두 땅 위에 누워있는 모양새다. 꽃도 조그마하고 잎도 작고...
그리고 노란 꽃을 피우고 있는, 진달래를 닮았지만 좀 다른 첨보는 꽃이 지천으로 피어있어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백두산 노랑만병초(萬病草)라고 한다. 진달래 과에 속하는 노랑만병초는 황화두견(黃花杜鵑), 석남화(石楠花), 들쭉나무라고도 부른다는데 천지 주변은 온통 노랑만병초 천국이었다. 아! 북한 술의 유명 브랜드인 백두산 들쭉나무 술!!
백두산 정상 부근은 키 큰 나무들이 별로 없지만 아래쪽으로 좀 내려오면 숲이 울창한데 특히 하얀 껍질이 일어나는 자작나무숲(白樺林)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우리(음악 전공 팀)보다 사흘 전에 이곳으로 왔던 미술전공 팀은 진눈깨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몰아쳐서 중간에 도로 내려갔다고 한다. 사진을 찍으려 해도 셔터가 얼어 눌러지지 않았다고... 우리 음악전공 팀은 매우 운이 좋았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