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0주년 기념 여행 (부곡온천, 남해 국립공원) 조 흥 제 1987년12월27~28일. 12월17일이 나의 결혼 20주년 기념일이다. 67년 12월17일 결혼한 이래 결혼기념일 날 외식 한 번 못해 보고 기념사진 한번 못 찍어 이번에 큰 맘 먹고 (사실은 집 사람의 권유) 부곡온천과 남해 해상 국립공원을 다녀오기로 했다. 평소 산만 좋아했지 관광지는 다니지 않아 해상의 절경인 남해해상국립공원을 한 번 가 보았으면 하던 중 잘 되었다싶어 집 사람이 원하는 온천과 내가 좋아하는 해금강 코스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이 코스로 일정을 잡았다. 27일 9시40분 영등포역에서 부산행 통일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준비물로는 세면도구, 의류, 지도와 열차시간표를 준비하였다. 열차시각표 책자는 전국의 기차, 고속버스, 항공, 시외버스, 해운편이 수록돼어 종합여행안내도이다. 여행은 언제나 즐거운 것, 나는듯이 미끄러져 가는(무궁화호, 새마을호 열차가 나오기 전) 통일호 열차는 주위의 산하를 바꾸어 놓으며 변해가는 대지를 나에게 선사하였다. 열차 시각표에서 대구에 도착하는 시각, 대구에서 부곡에 가는 차 시간과 요금, 부곡에서 충무까지 직접 가는 차가 없어 마산끼지 가는데 마산까지 가는 시각과 요금, 마산에서 충무까지의 시간과 요금, 충무에서 여수까지 가는 배편의 시각과 요금, 여수에서 관광지인 오동도 서울까지의 열차 시간과 걸리는 시간 등을 따로 적었다. 수원, 천안, 대전, 김천을 거쳐 낙동강을 건너 1시30분경 대구역에 도착했다. 역 광장 옆에 있는 대구시민회관 전시실에 들러 아마추어 시인서예를 구경하고 근방 식당에 들러 갈비탕으로 식사하고 서부터미널행 시내버스에 올랐다. “아가씨, 서부터미널이 아직 멀었습니까?” 좌석에 앉았다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참하게 생긴 처녀에게 물으니 “서부터미널예, 아직 멀었어예.” 독특한 경상도 사투리가 무척 어색하게 들렸다. 경상도 사투리도 서울에서 사는 사람과 현지인의 말투가 다르다. 서부터미널에서 내려 3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부곡행 직행버스를 타다. 새로 생긴 구마고속도로를 달려 1시간만에 부곡온천에서 내렸다. 첩첩산중에 손바닥만한 시가지에 거대한 장금(莊級)여관이 즐비하다. 이곳 명물인 부곡하와이 근방에 ‘만석장’이란 여관에 들었다. 저녁 8시경 나와 부곡하와이 나이트클럽에 들르니 손님도 없고 쓸쓸하여 나와서 식당에 들어가 저녁 먹고 들어와 방에 달린 목욕탕에 들어갔다. 온천탕이란다. 텔레비전, 침대, 식탁 등이 겸비한 방이었다. 10시경 자리에 들었다. 28일 5시40분에 일어나 짐을 챙겨 정류장으로 나왔다. 6시40분에 출발하는 마산행 직행버스를 타고 안개가 짙게 깔린 도로를 달리는 버스는 무척 불안하게 느껴졌다. 동쪽 하늘에 붉은 색이 드리우는 것을 보니 해가 뜰 모양이다. 썰렁하던 차내가 창녕에 도착하니 버스에 꽉 차게 사람이 탔다. 달리는 차중에서 어느 한 사람 깨어 있는 사람은 없었다. 마산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인가 보다. 다라와 뻬께스를 들은 몸베 차림의 아줌마들은 마산항에 생선 사러 가는 아줌마들이다. 7시30분 마산에 도착, 시가지는 넓고 깨끗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곳은 처음 와 본다. 이은상씨의 ‘내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결 눈에 보이네’를 떠 올리고 바삐 충무행 직행버스에 오르다. 7시50분 출발, 꽤 긴 마산 시가지를 빠져 나와 2차선의 좁은 도로를 달리는 차중에서 가끔 높은 고갯길의 지그재그로 달리는 차에 현기증을 느끼기도 하였다. “저 논에 파란 것이 무어예요.” 집 사람이 묻는다. “글세, 남쪽지방엔 자운영이란 풀이 있는데 그것이 아닌지 모르겠네.” 자운영이란 갈아엎어 거름을 하기 위하여 논에 심는 풀이다. 가끔 바다를 끼고 달리는 것이 충무 근방에 온 모양이다. 9시20분 충무에 도착. 택시 타도 “항구로 갑시다.”하니 “어느 항구요.”한다. ‘이곳에는 항구가 한두 군데가 아닌가 보다.’고 느끼고 여수 가는 엔젤호를 타려고 하는데요하니 조금 후에 바닷가에 네려 주었다. 매표소에 들러 표를 사고 표를 보니 10시50분에 출발하는 배다. 2시간의 여유 있어 한산도에 갔다 올 수 있느냐고 물으니 갔다 올 수 없단다. 충무를 비롯한 한산도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이 승전한 전적기념관이 많이 있어 한번 가보고 싶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었다. 근방 식당에서 아침 먹고 항구 가를 걷다. 지저분한 바닷가에는 공사가 한창이다. 항구와 시장을 돌다가 부둣가로 나와 건너편에 있는 배가 접안하는 곳에 줄을 서다. 시간이 되자 저 멀리 바다에서 선수(船首)가 일어선 배가 들어오는데 필시 저것이 엔젤호일 것이다. 그 배는 틀림없이 우리 앞에 정박했다. 내 예상은 갑판도 있고 큰 줄 알았는데 조그맣고 갑판도 없다. 배 중앙에 승무원과 기관사가 있고, 뒤쪽과 앞쪽에 계단 밑으로 객석이 있다. 이 배는 52톤이고 시속 32 노트, 여수까지 1시간40분이 걸린다. 선가는 서울-부산 통일호 열차보다 비싸다. 배가 달리자 고속버스 달리는 정도의 속력인 것 같다. 충무항의 커다란 섬(마륵도)이 보이는데 그 좁은 협해를 빠져나가 멀게 가깝게 보이는 섬 사이를 헤치고 나간다. 나는 배 앞자리에 앉아 창 밖에 펼쳐지는 절경들을 찍었으나 유리창 안에서 찍힌 사진이 얼마나 잘 찍힐지 의문이다. 바다에 하얀 볼 같은 것이 수천-수 만개 떠 있는데 그것이 김 양식에 쓰이는 도구다. 나는 앞뒤로 다니며 선내에서 섬의 경치를 찍으며 다니니 안내양이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핀잔한다. 그러나 그에 말에 주저앉을 내가 아니다. 사랑도에 들러 사람을 내려놓고 떠나는 사이 부두 밖 경관을 사진 찍고 주위를 살펴보니 사랑도 건너에 있는 산이 톱날같이 날카로운 것이 험해 보였다. 우리 자리 앞에 두 사람이 술 한 잔 먹으며 애기하는데 자기들은 어제 저녁 술 먹다 이곳으로 왔다는 것이다. 대구서 왔는데 사전 계획 없이 부산에 와서 차를 대 놓고 배 타기 전 집에 전화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수에서 바로 대구에 가실건가요?” 물으니 “내려 봐야지요. 목포까지 갈지도 몰라요.”한다. 교육청에 있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그렇게 팔자가 좋은지 모르겠다. 처처에 김 양식장 흰 물체가 많이 있다. 멀고 가까워지는 섬들의 열병식을 보며 엔젤호 뒤쪽 허연 파도를 가르며 골을 킨 고속의 엔젤호의 상처를 보니 넓고 길다. 앞을 보니 무척 빠른 속도로 나아간다. 등대가 섬에만 있고 등대지기가 있는 줄 알았는데 바닷 가운데 무인도가 무수히 많다. 배가 또 기항하는 곳에 꽤 큰 집과 굴뚝과 공장이 있다. 큰 도시구나 하고 지도를 보니 삼천포 ‘삼천포 아가씨’라는 노랫귀절을 떠 올리며 와 보기 쉽지 않은 이번 남해안 일주여행에 한가지라도 더 보고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삼천포를 떠나 한참 가니 앞에 실오라기 같은 것이 공중에 떠 있다.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현수식 남해대교다. 교각이 없이 양쪽에 커다란 교각만 세우고 양쪽에 줄을 드리워 다리를 유지하는 식으로 미국의 금문교가 그런 다리다. 남해대교 건너 남해도에 배를 대다. 조그마한 산들이 보이는 저 섬이 하나의 군을 이루는 큰 섬이다. 남해군을 떠나 남해대교 밑을 지날 때는 안내양이 설명이 있었는데 높이가 68m란다. 그러나 가이드에는 남해군 설치면과 노량을 잇는 전장 660m, 폭 12m, 높이 80m라고 되어 있다. 현수교 밑 바다는 물살이 세어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이 왜군의 대선단을 끌어들여 수십 척을 침몰시킨 바다다. 임진왜란 때 3대 전적지 중 한 곳인 노량해전인 이곳을 지나니 이순신장군이 봉의 눈을 부릅뜨고 뱃머리에 올라 북을 치며 전군을 독려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한데 벌써 그 일이 400여년 전의 일이라니. 시간의 저쪽에 이곳에선 대혈전이 벌어졌다니 그때의 대혼전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 1시경 여수항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남쪽 끝 여수반도에 있는 도시다. 여수-순천 반란사건 때 많은 피를 흘렸던 곳이다. 부두에서 내려 엔젤호의 전신을 사진 찍고 택시로 여수역으로 나와 16시40분 출발하는 서울행 무궁화호 차표를 샀다. 그러고 택시로 오동도에 입구에 가서 내려 한강 인도교만큼 긴 다리를 걸어서 건너다. 우측 보도불록을 깐 언덕을 오르니 우측 절벽 밑에 푸른 바다가 보인다. 바다에 홀려 절벽 가로 가니 안부 사이로 푸른 바다가 멋있었다. 절벽을 기어 내려가니 건너편 직벽과 바닷물이 보인다. 그 중간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으면 좋은 바위가 있어 바닷가에서 놀고 있던 애들을 잡아 놓고 그 바위에 오르려고 하니 의외로 경사가 심해 포기하였다. 남녀 중학생 나이인데 두 쌍이다. ‘그놈들 참’한참 사춘기에 접어들 17,8세의 애들이다. 절벽을 올라 집 사람이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니 사양하는 폼이 아주 공손하였다. 땅콩과 오징어포를 주었다. 큰 길로 나와 오르니 동백나무에 꽃이 다닥다닥 붙었는데 필름이 없다. 10여분 동안 산 밑으로 뛰어 내려가 필름을 사와 사진을 찍고 수족관, 수족 바제관, 등대 등을 보았다. 등대 앞에서 마침 지나가는 고양이를 잡아 안고 사진 찍다. 내려오다 대나무 숲이 빽빽해 인상깊게 보고 기념품점에 들러 몇가지 물품을 사고 바닷가 음식점에 들러 식사. 이제는 시간이 없다. 여수 외항에 아름다운 점들이 더 못 보는 것을 아쉬워하며 걸어서 여수역까지 왔다. 4시40분에 차에 올라 자리를 잡다. ‘아듀! 여수’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뒷걸음질 치는 바다와 시가지를 보면서 땅콩과 오징어포와 소주와 감밥과 드링크류를 꺼내 놓고 먹으며 어둠 속에 잠드는 남녘의 풍경을 보았다. 여수와 맞닿은 여천에 차가 서자 우리 앞에 아기를 데리고 선 젊은 엄마가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들어 주는 언니가 차에 탄 어린 조카와 떠나는 동생에게 계속 손을 흔들다. 차가 떠나서도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드는 것이 보기 좋다. “아니고 나도 애기가 있는데 아줌마도 애기가 있네요.” 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앞에 섰던 애기 엄마는 앞에 앉은 애기 엄마에게 말을 건넨다. 그러나 묵묵부답, 애기를 안을 생각을 않는다. 앉은 사람의 양보를 기다리던 그 젊은 엄마는 빈자리로 가서 앉는다. 그것에 임자가 오면 다른 자리로 가고, 자기 자리를 놔두고 전전하는 애기엄마를 애처로운 눈으로 보고 있자니 내 앞자리에 앉아서 자리를 안 내 주던 아줌마는 자리에 드러누워 자는 척 한다. “저럴 수가 있나.” 나와 집 사람은 투덜거렸다. 그러자 드러누운 엄마의 애기가 뒷자리인 우리 좌석에 와서 장난을 건다. 아기의 천진난만함이 자기 엄마의 행동을 괘씸하게 본 뒤라 밉게 보였다. 홍익회 장수가 지나가자 귤을 한 자루 뽑아 드는 아이, 교육을 잘 못 받고 몰염치한 집 같은 인상을 받다. 먼저 자리를 전전하던 아줌마가 와서 같이 앉자고 하여도 자리를 내 주지 않으면 나도 거들어 주려고 하였으나 서울 갈때까지 오지 않았고 얌체 아줌마는 논산서 내렸다. 6시30분경 구례구에 도착, 왜 그러느냐고 어리둥절한 집 사람을 끌고 따라 가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객차 승강장으로 나와 앞에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이곳이 구례이고 저기 보이는 산들이 지리산이야, 이 골짜기로 올라가면 화엄사가 있고 그 뒤로 4시간 올라가면 노고단이 있어” “그래요, 그럼 나도 지리산 가봤네” 웃으며 농담을 하는 집사람. “이제 들어가요, 지리산 다 지나왔는데” “다 지나와? 남원까지 계속되는데. 이 밑에 보이는 강이 섬진강이야” 나는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 했으나 “그럼 혼자 보아요. 나는 추워.”하며 들어간다. 산을 좋아하는 나는 서너 차례 이 산을 찾은 적이 있다. 중산리에서 노고단까지 장장 67㎞의 종주, 달궁에서 뱀사골-임걸려-노고단-화엄사 코스, 새벽에 천왕봉에 올라 장엄하게 떠오르는 일출 광경을 보고 얼마나 가슴 설레었던가. 10시30분 영등포역에 도착, 20주년 결혼기념 여행에 막을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