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남진 서른다섯.
큰재 민영봉 웅이산 용문산 무좌골산 들기산 금산 추풍령.
햇살은 이미 여름을 머금고 있었고 산세는 밋밋했지만 20km의 긴 거리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큰재에는 백두대간박물관 비슷한 건물이 있었다. 공원처럼 꾸며진 공간과 백두대간을 안내하는 박물관건물이 있었다.
새벽 다섯시에 시청에서 출발해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식사하고 7시 40분경 큰재에 도착해 사진을 찍고 7시 50분경 산행이 시작됐다. 큰재에서 웅이산을 향해 출발했다. 밋밋한 오르막을 조금 걷다가 오르막이 조금씩 거칠어지더니 결국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나고 한참을 오르는데 백패킹배낭을 짊어진 남자가 앞에 나타났다. 그 남자는 혼자서 산에서 먹고 자며 백두대간 북진하는 중이라고 했다. 중산리에서 출발해 텐트에서 먹고 자며 15일 만에 이제 곧 큰재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이정도 속도라면 대략 60일 정도면 진부령에 도착할 것이다. 대단한 도전이요 대단한 용기였다. 5분 정도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그 사람이 진부령까지 무사히 안전하게 도착하기를 빌어본다.
오르막을 올라 첫 번째 만난 봉우리가 민영봉이었다. 민영봉에서 숨을 돌린 후 내리막을 한참동안 걷다가 다시 오르막이 시작됐는데 민영봉을 오를 때보다 훨씬 오르막의 강도가 높았다. 물론 그동안 대간길의 난이도에 비하면 아주 높은 편은 아니었다.
민영봉에 도착하기 전에 계단을 새로 설치하려는 듯 젊은 친구들이 지게를 이용해 자재를 나르고 있었다. 아마도 북진 때는 새로 설치된 계단을 밟고 내려올 것이다.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웅이산에 도착해 사진을 찍고 용문산을 향해 출발했다. 웅이산 이후의 오르막은 웅이산의 오르막보다는 밋밋했다. 녹음이 짙은 산속 등산로는 호젓한 오솔길처럼 싱그러운 분위기의 길도 있었다.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보다는 밋밋한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평지가 많았다. 평지를 걸을 때는 숲속 오솔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바람이라도 살랑살랑 불었더라면 등산의 느낌이 아닌 산책하는 느낌이었을 텐데 바람의 약했던 것인지 바람은 솦속까지 불어오지 못했다.
용문산을 지나 무좌골산을 향해 걷는데 앞서 갔던 주명이가 영진이와 함께 식사하기 위해 되돌아오고 있었다. 구조대장 주명이는 산행 때 적어도 한사람은 구조했다. 언젠가는 영진이의 마음까지 구조할 것이다.
무좌골산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식사하고 있었다. 나도 옆에 자리를 잡고 라면을 끓였다. 사람들이 속속 도착해 함께 식사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들기산을 향해 걸었다. 한참을 걸어 콘크리트가 깔린 임도가 나오고 산길이 나오더니 다시 임도가 나오기를 반복했다. 앞서가던 사람들이 나무그늘이 드리워진 콘크리트 임도에 누워 쉬고 있었다. 그곳에서 잠시 쉬다가다시 출발, 잠시 후 임도에서 벗어나 산속으로 들어섰다. 산길로 들어선 길은 대부분 내리막이었다. 가끔 오르막도 있었지만 경사는 심하지 않았고 동네 뒷산처럼 싱거운 오르막이 이어졌다. 크게 어렵지 않은 오르막을 오르자 들기산이었다. 들기산에서 사진 몇 장 찍고 다시 출발, 내리막과 오르막이 이어지더니 마지막 오르막을 오르자 금산이었다. 금산 정상은 볼품이 하나도 없었다. 정상이랄것도 없었다. 오르막을 오르자 깎아지른 절벽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 절벽에는 철망이 바닥까지 길게 설치되어 있었다. 돌들이 굴러떨어지지 못하도록 설치한 철망이었다. 그 아찔한 절벽은 두려움까지 느껴졌다.
금산에서 내려오니 마을이 나타나고 포도과수원을 지나 추풍령이었다. 추풍령에 도착해 수박 두어조각 먹고 음료수 몇 잔 마시고 목욕탕으로 이동, 목욕 후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당진에 도착하니 여덟시가 조금 넘은 시간어었다. 다섯시에 출발해 20km정도 걸었는데도 당진도착 시간은 꽤 이른편이었다. 이제 당진에서 산행지까지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질 것이다. 그리고 두어번의 무박산행을 진행하고 나면 산행거리는 짧아질 것이다.
가끔 백도대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달 중년여성 둘이서 백두대간 북진하는 모습을 봤을 때, 그리고 이번에 혼자서 백패킹으로 한 번에 진행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백두대간종주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한반도에서 태어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북진을 완주했음에도 나는 백두대간 종주의 의미를 다 헤아리지 못한다. 남진을 끝내면 알수 있을까? 어쩌면 대간을 평생 걸어도 알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백두대간을 걷는 자체로 행복하다. 그걸로 충분하다.
백도대간 남진 서른다섯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