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하모니카 계의 선구자들
하모니카의 유래는 기원전 3,000년 중국에서 만들어진 생(笙, sheng)이라는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이다. 18세기에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가 이 악기를 유럽에 처음 소개하였으며, 이 악기의 영향으로 풍금, 아코디언, 색소폰 그리고 하모니카가 만들어졌다. 최초로 하모니카를 발명한 사람은 1821년 독일의 악기 제작자인 크리스천 부시만(Christian Friedrich Ludwig Buschmann, 1805∼1864)이다. 아코디언 발명가로도 알려져 있다. 1857년 최초로 하모니카를 양산한 사람인 독일의 시계공 마티아스 호너(Matthias Hohner, 1833∼1902)를 현대 하모니카의 원점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모니카가 동양에 최초로 알려진 것은 1891년 일본인 히루마 켄파치(比留間賢八, 1896∼1936)에 의해서다. 190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에 걸쳐 하모니카는 만돌린과 인기를 양분할 정도로 인기 있는 악기로 가와구치 쇼고, 미야타 토호, 사토 히데로 등 전문 연주가가 태어났다. 복음 하모니카는 원래 독일 태생이지만 동아시아에서 특히 많이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 가와구치 쇼고(川口章吾, 1892∼1974) 일본에서 하모니카의 아버지라 불림. 독일에서 태어난 복음 하모니카를 일본인을 위한 악기로 혁신시킨 인물. 독일제의 원본과 음의 배열이 다른 것이 가와구치 쇼고가 고안한 일본식 복음 하모니카로 아시아에 광범위하게 퍼져 주류를 이루고 있음. 그는 음 배열을 변경하여 저음부 멜로디를 불 수 있도록, 또 반음 높은 하모니카를 제공하여 곡 중에 샵(#)과 플랫(b) 등 임시 기호가 나오는 고급 악곡도 연주가 가능하도록 하였음. 하모니카는 지금과 같은 악기로 진화하기 위해 많은 개량을 거친 악기로 끊임없는 현대화와 연주자의 헌신 덕분. 〈서양식 음계 배열〉 초기 하모니카는 불기만 하는 악기였지만 1826년 보헤미안 악기 제작자인 조셉 리히터(Joseph Richter)가 불고 마시는 것을 교대로 배열한 온음계 하모니카를 처음으로 제작하였음. 이것을 서양식 표준배열인 리히터 배열이라고 함. ... 사토 히데로(佐藤秀廊, 1899∼1990) 하모니카 연주자, 작곡가. 사토 히데로 선생은 1899년 동경에서 태어났다. 파리에 유학하며 화가의 꿈을 키웠으나 관동 대지진(1923년)때 오른 팔을 다쳐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고, 파리 유학시절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하모니카에 매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여러 가지 어려운 복음 하모니카의 주법을 개발 완성시켰다. 그는 베이스주법과 분산화음주법을 창안하고 1926년 독일 남부 트로싱겐 (Trossingen)의 '세계 하모니카 탄생 100주년 대회'에 참가하여 이 놀라운 진보된 기술로 우승을 차지한다. 그는 호너 사와 계약을 맺고 유럽 전역에서 100회 이상의 연주회를 열고 하모니카 보급에 공헌했다. 이 독특한 주법은 당시 유럽인에게 엄청난 기법이었으며, 그의 위업은 일본인으로서 음악으로 해외에서 인정받은 첫번째 사례가 되었다. 만돌린 주법과 비브라토 주법도 그가 개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1930년 사토 히데로를 중심으로 마이너 키 하모니카(Minor Key Harmonica)가 세계 최초로 일본에서 완성되었다. 1931년 그는 이 마이너 키 하모니카에 의한 순수무반주 형식 독주곡 '황성의 달 (환상적인 변주곡)'을 발표한다.
그는 여러 제자를 키운 바 있는데, 지금도 제자들을 통해 전해오는 그의 가르침으로는 “하모니카는 대중을 위한 악기이지만 그 음악은 예술이라야 한다. 따라서 최고를 지향하여야 한다. 멜로디는 음표의 연속은 아니며, 하나의 시다. 시로 표현할 수 없으면 그것은 단순한 소리의 연결이다. 음악 이란 소리로 표현된 예술이고 테크닉이 아니라 마음이다.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진정한 연주가다”고 설파하였다. 78세 나이에 열린 독주회(사토 히데로의 ‘낭만적 하모니카 독주회’ CD)에서는 그의 음악에 대한 자세나 하모니카에의 끝없는 애정이 보여진다. 그의 연주를 보면 화성적으로는 하모니카의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다양한 수법을 이용하고 있다. 주로 주화음을 반주로 사용하고 있지만 그 이외의 화음은 주의깊게 음을 선택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화음의 종류가 많고 색채감을 주고 있다. 또 메인이 되는 주법을 각 곡에서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각각 독립해 있으면서 전체가 하나로 정리되어 들리도록 꾸며져 있다. 그의 작품속에서 리듬과 모티브가 철저하게 겹친 곡으로 만들어 내는 점은 하모니카계에서는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작곡기법에 그가 통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카데믹한 정식 음악교육을 받지 않은 그로서는 그 대신 방대한 곡을 듣고 분석하고 시험삼았을 것이며 그 속에서 소위 일본적 주법을 끌어 낸 것일 거라고 후세사람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 테크닉을 사용하더라도 자기현시적이지는 않았다. 연주곡을 들어보면 필요한 곳에 필요한 정도밖에 테크닉을 사용하고 있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때문에 그의 작품은 어려운 곡이더라도 과시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다. 음악에 있어서 기술은 중요하지만 그것은 여러 수레의 바퀴중의 하나라는 점을 그의 음악은 증명하고 있다.
그는 일본 하모니카의 대가 오오이시 마사미 등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었다. 그의 제자들은 ‘음악의 기교를 가르치는 것은 쉽지만, 혼을 불어넣는 법을 전하는 것은 실로 어렵다’, “나는 어떻게 하면 나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육성할 수 있을까 늘 부심하고 있다”라는 그의 가르침을 하모니카 지도에 있어 가장 근본으로 생각하고 있다. 예술로서 하모니카 연주와 지도에 생애를 바친 그의 경력은 하모니카계에서 길이 빛나고 있으며 이러한 그의 정신은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에 전파되고 있다. 그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佐藤秀廊 상은 일본하모니카 예술협회로 부터 하모니카 음악발전에 기여하는 사람에게 주는 가장 영예로운 상이 되었다. 복음 하모니카의 주법을 개발 완성시킨 인물로 일본인 최초로 해외에서 명성을 얻은 위업을 이룸. 마이너 키 하모니카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그에 맞춘 곡을 작곡한 마이너 하모니카의 아버지. 베이스주법, 분산화음주법, 만돌린주법, 비브라토주법(바이올린주법) 창안, 이를 살린 편곡으로 예술성을 높여 하모니카 음악의 신기원을 열었음. 1926년 첫 유럽 방문, 독일에서 열린 ‘하모니카 100주년’ 일본 대표로 참가하여 세계 대회 우승. 1943년 복음 하모니카의 주법을 집대성하여 ‘하모니카의 일본적 주법’ 출판. 〈일본적 주법〉 현재 일본을 비롯 아시아권에서 연주하고 있는 복음 하모니카의 독주법은 일본적 주법이라고 불리고 있음. 일본적 주법은 1920년대 초기 사토 히데로 선생에 의해 집대성된 것으로서 3도, 5도, 8도 등의 중음주법, 그 응용인 분산화음주법, 그리고 바이올린주법, 만돌린주법 등이 현저한 특징.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의 화교들 사이에서는 일본적 주법을 개량한 고급3도반주법, 텅블럭킹을 이용한 아르페지오 분산화음주법(琶音分析奏法), 혀를 사용하여 큰북의 테와 같은 단속음을 내는 화설주법(花舌奏法, 小鼓奏法), 저음부를 더욱 확대한 10도 분산화음주법, 저음과 고음 위아래로 영향을 끼치는 교류분산화음주법(交流分散和音奏法) 등을 창안하여 사용하고 있음. ... 미야타 토호(宮田東峰, 1898∼1986) 하모니카 연주자, 명인. 12세에서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해 독학으로 주법 마스터, 17세에 레코드 첫 녹음. 도쿄하모니카협회 창립, 일본하모니카연맹 설립에 참여. 하모니카의 보급, 개선, 편곡, 지휘, 작곡 등에 일생을 걸었으므로 하모니카의 아버지라고 함. 일본의 하모니카 보급에 지대한 공헌을 함. 일본에서 최초로 하모니카 합주단(이후 미야타하모니카밴드)을 결성, 레코드와 리사이틀에 의한 보급 활동과 함께 악기 개량 등에 힘씀. 저서로는 ‘하모니카 교본’, ‘미야타 하모니카 독학’, ‘음악에 산다’ 등. ... 모리모토 요시오(森本恵夫, 1923∼) 하모니카 연주자이자 편곡자, 하모니카의 대가. 1941년 제3회 全 일본 하모니카 독주 콩쿠르 1위 우승. 1942년 코부네 코지로(小船幸次郞, 1907∼1982) 사사. 작곡법 수학. 1960년 제7회 나카야마 신페이(中山晉平, 1887∼1952) 음악상 작곡 부문 1위 수상. 1968년 제2회 세계 하모니카 페스티벌(스위스 루체른) 상급 부문 세계 2위 수상. 1971년 제4회 세계 하모니카 콩쿠르(독일 트로싱겐) 상급 부문 세계 제2위 수상. 1978년 요미우리 교향악단과 동물의 사육제(생상스) 공연. 1981년 하모니카 생활 40년 리사이틀 개최. 1991년 제3회 세계 하모니카 챔피언십 우승. 1997년 제19회 일본 하모니카상 대상(일본하모니카연맹) 수상. 영화, TV, 레코드, 광고음악 등의 분야에서 신경지 개척. 15,000곡 이상 녹음.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기보다 클레식컬한 느낌이나 하모니카 음색을 잘 살려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연주가 특징. 앨범(CD) : 내 마음의 하모니카(わが心のハ-モニカ) ... 오이시 마사미(大石昌美, 1930∼)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하모니카의 거장. 1930년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나 12세 때부터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 1948년 NHK 노래자랑에 출전해 하모니카로 최초의 합격자가 됨. 1949년 세계 하모니카의 거장 사토 히데로(佐藤秀廊)에게 사사, 하모니카의 연주기교와 예술성 체득. 1975년 독일에서 개최된 세계 하모니카 경연 대회 입상, 그 후 라디오 프로그램의 레귤러로 약 3500곡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하모니카’로 호평을 얻음. 1986년 서울에서 콘서트 개최. 경주 나자레원 위문. 한일 친선에 힘씀. 1988년 필리핀 방문. 6개 초등학교에 5,000개의 하모니카를 선물하고, 아울러 현지 어린이 지도. 수차례에 걸쳐 해외 초등학교를 방문하고 현지의 아이들에게 하모니카를 지도하는 등의 활동으로 ‘도레미파大使’로 환영받음. 1992년 샹송 하모니카를 연구 개발하여 실용신안으로 등록. 1996년 프린스호텔 계 전국 15곳에 디너 콘서트 출연. 1998년 오이시 마사미 다큐멘터리 방송(NHK 라디오재팬). 1999년 한국 콘서트 투어. 2005년 하모니카 인생 60주년 기념 파티와 콘서트 개최. 2007년 희수(喜壽) 기념 ‘노래하는 하모니카’ 전4집을 비롯 약 40종의 음반을 냄. 레퍼토리는 클래식, 샹송, 동요 창가, 가요, 민요, 일본풍의 노래 등 폭넓은 장르를 가지고 있음.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숨결로 마치 노래처럼 연주하는 것에 매력이 있음. 앨범(CD) : 마음의 하모니카(心のハーモニ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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