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과 나눔 그리고 드림의 영성
요 13:1-17 / 이기복 목사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과 함께 세 가지 기념비적인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것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과 다른 하나는 공관복음에 기록된 것으로 최후의 만찬을 행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 세 가지는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나 오늘 우리들이 꼭 실천해야 할 세 가지 중요한 영성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기념비적인 일을 성 고난주간 중 목요일에 행하셨습니다. 세 가지 사건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요, 동시에 제자들과 주릴 믿는 모든 사람들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삶의 형태임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1. 나눔의 실천입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성만찬 상에 둘러앉을 때마다 나눔의 공동체가 될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미리 제자들에게 자기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우연이거나 피할 수 없는 오해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 그 죽음은 바로 인류에게 자기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는 새로운 유월절의 의미를 갖는 것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 자신이 친히 유월절의 어린 양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그의 피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제물이요, 그의 살은 인류 속에 새로운 삶을 불어 넣어주는 새로운 영과 생명의 양식이 된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3-55).
결국 성만찬의 깊은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어 받는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그의 생명을 함께 나누어 갖는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요 6:56-57).
우리가 주의 성만찬 상에 참여함으로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그 생명의 본질을 서로 나누어 갖는 데 있음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나눔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명을 얻었으며 서로 예수님의 같은 생명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나누어 갖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사업주와 사원 사이에 벽을 쌓고 서로의 진실한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불목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는 어려움을 당한 자, 소외된 자, 고통을 받는 자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없는 자들과 함께 나누는 생활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의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모든 것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여유가 있든지 없든지 항상 나누어 주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대화를 나누고 우리의 마음을 나누며 우리의 물질을 나눌 때 우리는 거기서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룩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 안에서도 남을 배격하고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와 절친한 사람들과만 교제를 하고 나누는 생활을 하는 극히 제한적이고 이기적인 생활을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 자기들끼리만 어울리고 나누던 바리새인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의 본질인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나누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복음입니다. 다른 것을 다 나누어 준다고 하여도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입니다.
2. 섬김의 영성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일을 통하여 섬김의 영성을 배워야합니다. 공관복음서인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유월절에 주님과 마지막 만찬을 마친 자리에서 예수님의 제자들끼리 서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다툼과 논쟁의 내용은 누가 제일 높으냐, 크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신 예수님께서 다시 교훈을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낮은 사람처럼 해야 하고 또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해야 한다.......나는 너희 가운데 섬기는 자로 왔느니라”
오늘 본문에 보면 만찬을 마치신 예수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길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그냥 말로 하는 것 보다 행동으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 오신 목적이 섬기는 종으로 오셨음을 친히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것은 하나의 가르침과 교훈을 주기 위함만이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인 본문에 보면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길 극진히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셨기에 섬김의 자리에 기꺼이 내려 가셔서 제자들의 말을 씻으실 뿐 아니라 그들의 모든 죄를 씻으신 것입니다. 섬김은 진정한 사랑의 열매입니다.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신 예수님은 특별히 사탄의 이끌림을 받은 가롯 유다를 더욱 불쌍히 여기셨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 큰 사랑의 손길로 그를 돌이키려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을 팔기로 작정한 가롯 유다는 속으로 당항하기도 하였겠지만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하고 만 것입니다. 사랑은 일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받아 드릴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편 베드로는 예수님이 자기 발을 씻는 것에 대하여 이해 할 수도 없고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거절하였습니다. 그의 명분은 스승께서 어떻게 제자의 발을 씻을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생각도 교만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섬김을 거부하는 것은 바로 섬김을 받으려는 생각이요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는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지 아니하면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자가 된다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셔서 섬기는 자가 되심으로 이룩한 공동체 안에서 누가 감히 섬김을 받으려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섬기는 자가 되셨다면 우리도 마땅히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세족식을 통하여 베푸신 두 가지 기념비적인 행동은 바로 우리 교회와 우리들이 지향해야 할 목표입니다.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 이보다 더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반드시 멀리 가서 선교적 과업을 달성하는 것만 아닙니다. 바로 내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나누고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우리의 교만을 십자가에 못 박읍시다. 우리의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립시다. 그리고 겸손함으로 서로를 나누며, 서로를 섬기는 성도가 됩시다. 그리할 때 우리교회가 놀라웁게 변화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3. 드리는 영성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드리는 영성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밤을 지새우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통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 것입니다. 처음에는 예수님도 인간의 몸을 입으신 분인지라 자신을 드리는 것을 두려워하여 십자가의 잔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여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자신을 온전히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드림의 최고의 영성은 바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성 금요일 예배에서 십자가 7언을 낭독을 합니다. 그리고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상에서 드린 7가지 기도는 예수님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기도입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며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얼마나 성스럽고 위대한 기도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서 처형을 받는 강도가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하는 호소에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도 예수님이 정말 자신을 드리는 기도입니다. 마지막까지 흉악한 강도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절규하십니다. “엘리 엘리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여러분은 이 울부짖음이 원망으로 들리십니까?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당하는 가장 큰 아픔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솔직한 울부짖음이요 기도입니다.
그리고 최후로 자신을 맡기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큰 소리로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라는 기도로 십자가 위애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 위에서 피 한 방울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모두 드렸습니다. 진정한 영성은 드리는 영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