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가기 전 본래면목 시급히 찾아야
순치제가 출가 결심하고 지은 시
실은 야사일 뿐 출가 기록도 없어
진신 알고자하면 무명서 벗어나야
몸은 멸함 있지만 마음은 불멸해
안동 봉정사 고금당(古金堂).
未生之前我是誰 我生之後我是誰
미생지전아시수 아생지후아시수
長大成人纔是我 合眼朦朧又是誰
장대성인재시아 합안몽롱우시수
(태어나기 전에 나는 누구였던가?/ 내가 태어난 뒤에 나는 누구인가?/ 자라서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를 알게 되었지만/ 눈 감고 죽은 뒤에 또한 나는 누구일까?)
이 시문은 순치제(順致帝 1638~1661)가 임종 전 출가를 결심하고 지은 출가시(出家詩)라고도 하고 왕비인 현비(顯妃)가 죽었을 때 슬픔을 이기지 못해 제위를 내려놓고 오대산으로 출가하였다고도 하나 실은 야사(野史)일 뿐이다. 순치제는 청나라 제3대 황제다. 순치제는 출가하였을까? 그렇지 않다. 그 어디에도 순치제가 출가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불교를 좋아했던 황제이기는 했다. 순치제는 제왕의 자리에 오른 지 18년인 1661년 천연두로 병사(病死)하였으며 그때 나이가 24세다. 참고로 이 시문은 7언 40구 280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가운데 일부를 주련으로 삼았다. 시제는 순치황제귀산사(順治皇帝歸山詞), 순치황제출가게(順治皇帝出家偈)라고도 하며 오대산 청량사(淸凉寺)에 비석이 있으나 이는 후대에 세워진 것이다.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에 나는 누구일까?’ 구절은 선종의 냄새가 진하게 묻어난다.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의 나는 누구였는가? 하는 것은 곧 본래면목(本來面目)과 같은 뜻으로 선종에서는 이를 부모미생전면목(父母未生前面目) 또는 부모미생시(父母未生時), 부모미생이전(父母未生以前)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어투는 아직 어떤 조짐도 발생하지 않음을 말해 분별이나 차별성이 없음을 뜻한다.
‘반야심경’에서는 조견오공개공(照見五蘊皆空)이라고 하여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오온이 모두 텅 비어 있기에 자아(自我)는 실체가 없고 다만 오온의 일시적인 작용에 불과하나 범부는 오온의 집착으로 인하여 본심을 깨닫지 못한다고 하였다.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여 나고 죽음의 윤회를 거듭함으로 고액(苦厄)이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하고 되묻고 있다. 중생이 자심을 망령되게 집착하여 마음 밖에 색을 보지만 색이 마음으로 인하여 있음을 알지 못한다. ‘반야심경’에서는 색이 공과 다르지 않다고 하여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고 하였는데 시문에 적용하면 ‘진짜 참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재(纔)로 알려졌지만, 중국에서는 방(方)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방(方)은 부사다. 동사 앞에 쓰여서 ‘겨우, 비로소’ 란 뜻으로 쓰였다. 중생은 태어나자마자 오온이 지배하고 있으며 연기법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중생이 자신의 진신(眞身)을 알고자 한다면 무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고 망념에 빠져들면 괴로움의 바다에 빠져드는 것이다.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하여 세월불대인(歲月不待人)이라고 하였다. 세월이 더 가기 전에 본래면목을 시급히 찾아야 한다.
사람은 인연이 다하면 이승을 마감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오온으로 이뤄진 몸은 환신(幻身)이라 멸함이 있지만 마음은 불멸한다. 인연을 쫓아서 몸을 이뤘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대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본래면목의 자리는 그대로 있다.
합안(合眼)은 명목(瞑目)을 말하므로 곧 죽음을 뜻한다. 몽롱(朦朧)은 눈이 흐리멍덩하여 볼 수 없는 것을 나타내며 합안(合眼)을 뒷받침해 의미를 강조한다.
노자(老子)는 사람은 누구나 다 태어나서 살다가 죽음으로 들어간다고 하여 이를 출생입사(出生入死)라고 했다. 불교에서는 이보다 더 깊은 이치를 내세워 ‘그대가 날 때는 어디로 왔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그 도리를 말해보라고 한다.
‘금강경’에서는 “여래는 오는 곳도 없고 또한 가는 곳도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라고 했다. 그러기에 대오견성(大悟見性)이 필요하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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