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닦이가 배우, 판사로…인생역전 가능했던 이유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47)
지난 2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휩쓸어 화제였다. 영화 중 지하 밀실에 숨어 살며 초점 잃은 멍한 눈빛으로 가정부 남편역을 쇼킹하게 해낸 사람이 있다. 무명 연극배우였던 박명훈으로 우연히 봉 감독 눈에 띄어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기생충으로 유명세를 타자 인생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기뻐했다. 이처럼 우연한 기회로 뜨는 사람들이 있다.
브라질의 대도시 리우데자네이루 중앙역, 가난하고 글 모르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대신 써주고 연명하는 노처녀가 있다. 비용은 편지 1달러, 우편비용 1달러, 합계 2달러다. 오늘도 중앙역 한구석에 삐거덕거리는 책상을 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사연도 가지가지다. 방탕한 아들을 용서하겠다는 아버지, 하룻밤을 보낸 연인을 그리워하는 젊은이, 감옥에 갇힌 남편을 눈물로 기다리는 여인 등.
영화 '중앙역'의 감독은 1,500여 명의 소년을 대상으로 배역을 물색했으나, 구두닦이 소년에 꽂혀 전격 캐스팅한다. 그 소년은 뛰어난 연기로 자신과 영화의 운명을 함께 바꾸었다.
어느 날 종적을 감춘 남편에게 편지를 보내려고 한 여인이 예닐곱 살 먹은 남자애를 데리고 온다. 처음에는 남편을 원망하는 내용을 막 토해내다가 마음을 좋게 고쳐먹고 달래듯 다시 쓴 편지는 “여보, 당신이 떠난 지 오래지만, 제 마음은 늘 당신과 함께하고 있어요. 당신이 아파트 키를 가져 가버리고 (중략) 내게 무슨 짓을 했건 난 당신을 믿어요. 당신이 떠난 뒤 예쁜 사내아이가 태어났어요. 이제 제법 커서 아빠를 보고 싶어 하네요. 우리 집 주소는….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하는 아나(Ana)”
브라질·프랑스가 합작한 ‘중앙역(Central Station)’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1998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간절한 사연을 대필해 주는 중년 여성 도라(Dora: 페르난다 몬테네그로)는 전직 교사로 냉소적이고 괴팍하다. 순박한 사람들의 희망과 그리움이 담긴 편지를 우체통이 아닌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게 일이다.
그런 그녀 앞에 사라진 남편에게 편지를 보낸 여자의 아들, 조슈에(Josue: 비니시우스 드 올리베이라)가 나타난다.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자 고아가 되어 중앙역을 맴도는 그를 도라는 불법 해외입양 조직에 팔아넘긴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을 느껴 그를 필사적으로 다시 빼내 온다. 그 일로 밀매단의 추격을 받게 된 도라는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되자, 할 수 없이 죠슈에와 함께 그의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조슈에는 자신을 팔아넘긴 도라가 사기꾼 같고, 도라는 그가 부담스러운 짐이다. 마음씨 좋은 트럭 운전사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가 있다는 곳으로 도착하나…
‘도라’역의 페르난다는 브라질의 국민 배우다. 그녀의 깊이 있고 섬세한 연기가 인상적이다. ‘중앙역’으로 일약 스타가 된 올리베이라는 내면의 슬픔을 감추고 아버지를 찾아가는 역을 당돌하면서도 실감 나게 연기한다. 그가 캐스팅된 배경이 흥미롭다. 한 소년이 가난하여 학교 문턱도 못 가보고 리우 공항에서 구두닦이로 살아간다. 비가 오는 날 구두를 닦지 못해 돈을 못 벌자, 비행기를 타려는 한 신사에게 다가가 빵 사 먹을 돈을 구걸한다. 나중에 돈을 돌려주겠다고 하면서. 며칠 뒤 신사가 공항으로 돌아왔더니, 그는 정말 그 돈을 돌려주었다고 한다.
그 신사는 ‘중앙역’의 월트 살레스(Walter Salles) 감독이다. 그는 1500여 명의 소년을 대상으로 배역을 물색했으나, 그 구두닦이 소년에 꽂혀 전격 캐스팅한다. 소년은 기대를 뛰어넘는 실감 나는 연기로 그 자신과 영화의 운명을 함께 바꾼다. 구두를 닦으면서 거친 밑바닥 인생을 일찍이 경험한 탓일까. 다부지고 시니컬하게 막다른 골목에 몰린 소년의 절박함을 실감 나게 연기한다. 그는 이후 배우가 되어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수상도 하고, 브라질 최고의 인기 배우가 된다.
'구두닦이 판사'로 잘 알려진 서정암 변호사는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에 늦깎이로 입학한다. 졸업 후 면접에 몇 번 실패하자 고시에 도전, 합격하여 판사로 일하다가 변호사가 된다.
한국에도 이런 소년이 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시골에서 어머니 농사일을 돕다가 초등학교를 마치고 상경, 버스터미널에서 구두닦이를 시작한다. 구두 닦을 때 발을 올려놓는 일명 개다리에 단어장을 붙여 놓고 공부를 한다. ‘구두닦이가 그렇게 공부하면 뭐가 달라지냐’고 많은 사람이 측은하게 쳐다보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희망을 버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공부한 끝에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에 늦깎이로 입학한다. 졸업 후 취업 면접에 몇 번 실패하자 고시에 도전, 합격하여 판사로 일하다가 변호사가 된다. ‘구두닦이 판사’로 잘 알려진 서정암 변호사다. 그는 지금도 어린 시절 어려움을 기억하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틈틈이 장학금을 전달한다.
어릴 때 구두닦이가 이렇게 유명 배우나 변호사가 되기도 한다. 브라질의 구두닦이 소년은 꾼 돈을 되돌려주는 자존심이 있다. 한국의 구두닦이 소년은 마음속 촛불 하나로 꿈을 이룬다. 그런 당당함, 자기 확신 그리고 가슴에 타오르는 불꽃이 있다면 못할 일이 없다. ‘중앙역’은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한번 감상하기를 권한다. 그리고 당돌한 구두닦이 소년, 올리베이라를 만나보기 바란다.
[출처: 중앙일보] [더오래] 구두닦이가 배우, 판사로…인생역전 가능했던 이유
첫댓글 정말 대단하네요
환경이 최악임에도 성공할 수 있는건....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