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산책을 나서
신축년 추석이다. 집안에선 윗대 조상 기제를 시제로 전환한 이후 처음 맞은 명절이다. 차례를 지내지 않아 고향 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새벽녘 잠을 깨 날이 밝아오길 기다렸다. 아직 동이 트려면 시간이 꽤 남은 네 시 반 현관을 나섰다. 시내버스도 다니질 않는 때라 가로등이 켜진 산책로를 걸어볼 요량이었다. 외등이 켜진 아파트 뜰에서 차도로 나가 퇴촌삼거리로 향했다.
무척 이른 시간임에도 나처럼 새벽 산책을 나선 이가 드물게 보였다. 반송공원 북사면 산책로는 보안등을 겸한 가로등 불빛이 훤했다. 천변으로 내려가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귀뚜라미를 비롯한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건너편 원이대로 가로등 불빛이 천변까지 비쳐졌다. 차도에는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었다. 창원천은 가을 들머리 잦았던 비로 수량이 늘어 소리를 내면서 흘렀다.
냇가는 이맘때 여뀌와 고마리꽃이 가득할 텐데 어둠이 걷히지 않아 볼 수 없었다. 수면에 작은 잎을 동동 띄워 예쁜 꽃을 피우는 노랑어리연꽃도 볼 수 없었다. 텃새가 되어 머무는 백로와 왜가리 녀석들은 냇물에 외발로 서서 날이 밝아오길 기다릴 테다. 반지동 아파트단지와 단독 주택지를 지날 때까지 산책객이 간간이 스쳐 지났다. 명곡 교차로에 이르니 상가 간판 불빛이 보였다.
창원천3호교를 지니니 동이 트면서 어둠이 걷혀갔다. 길섶에 코스모스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하늘은 먹구름이 몰려와 비가 오려는 기미였다. 대원동에서 창원대로 용원지하도를 건너 공단 배후도로로 접어들었다. 평소는 이른 시각도 갓길까지 주차된 차량을 볼 수 있었는데 명절이라 텅 비었다. 창원공단에서 규모가 가장 큰 현대 로템 공장은 휴무라 근로자들 출입이 전혀 없었다.
공단 배후도로 자전거길을 겸한 보도를 따라 걸었다. 길바닥에는 떨어진 은행 열매가 가득했다. 은행나무 아래는 일 년 중 자유낙하가 세 번 일어났다. 봄날 곡우 무렵 은행꽃이 피어 수분을 마치면 모양이 특이한 꽃이 떨어졌다. 은행꽃은 송홧가루처럼 바람이 인연을 맺어주었다. 초가을에 열매가 먼저 떨어지고 서리를 맞으면 노란 단풍이 물들었다가 초겨울에 은행잎이 떨어졌다.
덕정교 부근에서 고향을 지키고 계시는 큰형님과 통화를 했다. 추석 안부와 문집 간행 편집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유동 인구가 많은 추석 명절을 넘기고 언제 틈을 내서 고향을 찾아가기로 했다. 가덕도에 사는 작은형님과도 안부 전화를 나누었다. 해가 바뀌기 전 집안에서 결혼이 한 건 있어 형제자매들이 한 자리에서 얼굴을 볼 날이 예정되어 있다. 부산 생질이 장가드는 날이다.
공단 배후도로는 물론이고 건너편 봉암으로 가는 찻길에도 오가는 차량이 드물었다. 창원천이 남천과 합류하는 봉암 갯벌에 이르렀다. 마침 밀물이 밀려온 물때라 수면이 높아져 갔다. 천변 가장자리는 갈대가 이삭이 패어 바람이 일렁거렸다. 썰물이면 먹이활동에 나선 철새들을 볼 수 있는데 자취를 감추었다. 창원천 경계를 벗어나 남천 천변 산책로를 따라 걸어 삼동교로 올라갔다.
삼동교차로에서 보도를 따라 지하도를 건너 두대동 올림픽공원으로 갔다. 창원대로와 인접한 녹지공간은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숲을 이루었다. 거제로 건너가기 전 근무했던 교육단지 여학교와 가까웠다. 국화공원에 들리니 옥국은 때가 일렀고 구절초도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쉼터에 앉아 초등 친구가 정성 쏟아 제작한 창원천 생태 탐방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고 댓글을 달았다.
교육단지 보도를 걷다가 소나기를 만나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 안전지대에서 잠시 비를 피했다. 교육단지 벚나무 가로수는 단풍이 물들어 거의 나목이 되어갔다. 벚나무는 고목일수록 낙엽이 조락했다. 벚나무는 꽃도 일찍 피지만 낙엽도 일찍 졌다. 폴리텍대학 구내를 지나 창원스포츠파크 동문을 거쳐 반송 소하천을 따라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로 돌아왔다. 네 시간 넘게 걸린 산책이었다. 21.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