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정희 대통령.. 역사상 가장 청렴했던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했을때 착용했던것들.. 그는 수선한 바지를 입은 해진 혁대, 고물 세이코 시계, 멕기가 벗겨진 넥타이 핀을 꽂고 있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근대화 혁명가 박정희 전기)]에서 인용.
일국의 대통령이 해진혁대,수선한 바지,멕기가 벗겨진 넥타이 핀 이 몬가?
★[1961~1969년도 업적]
1961년06월10일 농어촌 고리채 정리법 공포 1961년06월11일 재건국민운동전개(국민의식개혁) 1961년06월14일 부정축재 처리법 공포 1961년07월03일 반공법 공포 1961년06월30일 능의선 개통 1961년07월14일 원자력개원 1961년07월22일 경제기획원신설 1961년08월03일 김포가도 포장 기공 1961년08월08일 황지지선 기공(1961.6.13~1962.12.10) 1961년08월19일 섬진강 수력발전소 건설 1961년09월21일 춘천수력발전소 기공 1961년09월23일 대한 중선창연(蒼鉛)자가제련공장 준공 1961년12월22일 첫 학사자격 국가고시 1962년01월01일 연호를 서력으로 변경(연호에 관한 법률 제정) 1962년01월13일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 발표 1962년01월20일 상법제정공포 1962년02월01일 국민은행 발족 1962년02월02일 기술진흥 5개년계획 발표 1962년02월03일 울산공업지구설정 및 기공 1962년02월10일 국토건설단 창단 1962년03월01일 공문서의 한글전용실시(70년1월1일 관계법 제정) 1962년03월19일 핵분열 연쇄반응 일으키는 원자로의 임계도달 시험-양주군 노해면 1962년04월02일 농촌진흥청 발족 1962년04월30일 해양경비대창설 1962년05월12일 반공센터창설 1962년06월01일 무역진흥공사발족 1962년06월18일 건설부 신설 1962년07월13일 국민 의무교육 실시 1962년07월19일 국립소년직업훈련소 낙성 1962년09월10일 남양송신소 준공 1962년10월20일 해운센터기공식 1962년10월23일 한국케이블공업주식회사 송배전신 및 케이블공장 기공 1962년11월04일 광주디젤발전소 준공 1962년11월06일 동해북부선(옥계-경포대간)개통 1962년11월18일 과학자 우대정책 발표 1962년11월20일 제4시멘트공장건설 1962년11월25일 부정거래단속법을 제정 1962년11월28일 난민정착사업장 제방준공 1962년12월01일 마포아파트준공 1962년12월15일 김포,강화간 대교건설(~1970.1.26) 1962년12월24일 생활보호법제정 1962년12월28일 호남 비료 나주 공장 준공 1963년01월01일 교육자치제 실시 1963년01월10일 외자도입 강력추진 1963년01월18일 원호센터 준공 1963년01월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족 1963년02월01일 장충체육관 건립 1963년02월04일 지방문화재육성 1963년03월15일 동진강지역 종합개발공사 기공, 김해, 진도(63~69) 1963년03월21일 감사원 개원 1963년03월30일 원자로 가동식 1963년04월02일 무제한송전실시 1963년04월10일 부녀회관 건립 기공 1963년05월14일 남대문중수공사 준공 1963년07월20일 제대군인 개간농장 입주 1963년08월08일 한국나이론 공장 건설(대구) 1963년08월08일 국사교육통일방안 확정 1963년09월01일 철도청 발족 1963년09월01일 노동청 발족 1963년09월06일 국토종합개발계획조사착수 1963년09월06일 동대문 개축준공 1963년09월10일 문화재 보수 5개년계획확정 1963년09월17일 가족계획사업추진 1963년09월25일 직업재활원 개원 1963년09월26일 pvc 제조공장 기공 1963년10월10일 가정법원 개원 1963년12월22일 서독광부·간호원파견(1963.12.22~1966.1.30) 1964년01월01일 미터제 실시 1964년05월07일 울산 정유공장 건설 1964년05월07일 국립 중앙 의료원 설립 1964년07월01일 경주석굴암복원준공 1964년08월20일 감천화력발전소건설(부산) 1964년11월29일 울산 제3비료 공장 기공식-매암동, 충주비료와 미국 스위프트 투자단의 공동투자 1964년12월05일 제1회 수출의 날 제정, 1억불 달성/70년 10억불/77년 100억불/82년 200억불/85년 300억불/88년 500억불 달 1964년12월06일 서독방문(유럽국가 첫 방문), 8일 뤼프케 대통령, 9일 에르하르트 수상과 정상회담 1965년01월25일 제2한강교 개통 1965년02월24일 한국원양어선단 결단(원양어업추진) 1965년03월19일 방공 포병대대 창설 1965년03월23일 청소년 선도 국민 궐기 대회 1965년04월01일 치산녹화 10개년 계획 확정 1965년06월01일 김해간척공사 기공 1965년06월22일 한일협정 정식조인(동경), 8월14일 국회비준(야당불참), 12월18일 비준서 교환(서울) 즉시 발효, 국교정상화 1965년08월31일 해인사 경판고 보수 1965년09월15일 제2 영월 화력발전소 준공 1965년10월15일 율곡사 및 율곡기념관 낙성 1965년11월13일 경호천 종합개발 준공식-칠곡군 북삼면 1965년11월23일 민방위법 제정(민방위대창설:1975.9.22) 1965년12월02일 식량증산 5개년계획 확정 1965년12월03일 서울·춘천간 도로포장공사 준공 1965년12월07일 진삼선 개통(사천~삼천포) 1965년12월16일 국내(텔레스)개통 1966년01월19일 정선선 개통(예미, 증산, 고한 간) 1966년01월27일 경북선 개통(점촌~예천 간) 1966년01월27일 한국과학기술원 설립 1966년02월04일 한국과학기술 연구소(kist)발족 1966년03월03일 국세청 발족 1966년03월03일 수산청 발족 1966년04월09일 인천제철공장 기공 1966년04월29일 경인공업단지 건설 1966년05월03일 울릉도 추산 수력발전소 준공 1966년06월08일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지구 전천후 농업용 수원개발사업 준공 1966년06월09일 팔당수력발전소 기공 1966년06월22일 한군군장비현대화계획발표 1966년08월03일 산림청 신설 1966년11월09일 김삼선 기공 1966년11월09일 충남선 기공 1966년11월28일 서울 분묘 보수 1966년11월30일 밀양 영남루 보수 1966년11월30일 서울 종각 보수 1966년12월06일 부여 정림사지 정비 1966년12월17일 아시아 개발은행 건설 1966년12월18일 법주사 대웅전 보수 1967년01월24일 청평·의암 ·화천 수력발전소 건설 1967년02월10일 대도시 그린벨트설정(서울, 부산 등) 1967년03월04일 영남화력발전소 제2호기 기공 1967년03월30일 원자력청 발족 1967년03월30일 과학기술처 신설 1967년04월01일 구로동 수출 공업단지 준공 1967년04월13일 서해안 철도건설 1967년04월25일 종합민족문화센터 준공 1967년04월26일 안중근의사 동상 이안 1967년04월29일 천체과학관 준공 1967년05월01일 국립광업연구소 설립 1967년09월19일 구미전자공업단지건설 1967년09월23일 제1한강대교, 강변도로건설 1967년10월01일 국립묘지정화, 현충탑건립 1967년10월03일 포항종합제철공업단지기공(1973. 7. 3 완공) 1967년11월23일 한국수자원개발공사발족 1967년12월01일 농어촌개발공사발족 1967년12월20일 성산포 어업전진기지 준공 1968년00월 0일 포항항 건설(~1973) 1968년01월22일 대간첩작전본부발족 1968년02월07일 경전선개통 1968년02월11일 병기공장(m16소총)건설착수 1968년03월22일 석유화학계열공업 기공 1968년04월01일 예비군 창설 1968년04월13일 서울대학교 이전 건설 1968년06월13일 「레이다」기지 준공 1968년07월05일 방위산업육성3개년계획확정 1968년07월22일 중앙선,태백선전철화(~1974.6.20) 1968년07월23일 동해안공업도시개발착수(묵호,북평, 삼척) 1968년07월24일 해양주권선언발표(대륙붕 자원확보 및 개발) 1968년07월29일 축산개발 4개년계획 확정 1968년08월30일 영남화력발전소(울산가스터빈)건설 1968년09월09일 제1회 한국 무역 박람회 1968년02월01일 경부고속도로(대구-부산간)기공식 1968년11월01일 제주도 포도당공장준공 1968년11월08일 동양화학공업주식회사준공 1968년12월02일 소수서원 해체 복원 1968년12월0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 1968년12월07일 지리산 등 9개지역국립공원지정 1968년12월11일 광화문복원 1968년12월16일 한국 투자개발공사 설립 1968년12월21일 경인·경수고속도로준공 1969년00월00일 교육제도개혁(중학교무시험, 고교평준화, 대학입시예비고사제) 1969년02월05일 농업진흥공사 발족 1969년02월15일 지하수개발공사발족 1969년02월15일 한국도로공사발족 1969년02월22일 농업기계화 8개년계획확정 1969년03월01일 국토통일원 개원 1969년03월01일 가정 의례 준칙 공포 1969년04월28일 현충사 중건 준공식 1969년04월28일 불국사 복원 정화작업(1969~1973) 1969년06월04일 부산 화력발전소 준공(21만kw) 1969년06월17일 마산수출자유지역공업단지조성 1969년07월03일 울산 알미늄 공장준공 1969년07월29일 서울신도시건설착수(한강이남.여의도.한강개발) 1969년08월19일 범어사 대웅전 보수 1969년10월07일 남강「댐」준공 1969년11월01일 농어촌근대화촉진법발표 1969년11월29일 관악산 기상레이더 건설 1969년12월26일 제3한강대교 건설
★[말많던 유신 그러나 그의 업적은 눈부실정도로 아름답다.]
중화학공업정책 육성 선언(1973. 1. 12) 공업진흥청 신설(1973. 1. 12) 현대울산조선소 기공(1973. 3. 25, 제1호선 진수 : 1974. 2. 15) 중화학공업의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온산, 창원, 여수~광양, 군산~비인, 구미 등 5개 대단위공업단지 조성 계획(1973. 3. 26) 춘천, 대전, 원주, 청주, 전주, 이리, 광주, 목포 등을 지방공업개발 장려 지구로 지정(1973. 5. 4) 중화학공업(철강, 석유화학, 비철금속, 기계, 조선, 전자)건설계획 확정(1973. 5. 24) 서울 부산에서 처음으로 가격표시제 실시(1973. 6. 1) 기능공 양성정책 수립(1973. 7. 10) 주안단지(5공업단지) 준공(1973. 7. 15) 정수직업훈련원 개원(1973. 7. 18, 현 서울정수기능대학) 호남종합화학기지 내 에틸렌계열공장 4개, 프로필렌계열 2개, 기타 7개 총 13개 공장건설계획 확정(1973. 8. 2) 구미전자공업 1단지 조성 완료(1973. 10. 5) 옥포조선소 기공(1973. 10. 1, 준공 : 1981. 10. 17) 이리 수출자유지역 착공(1973. 10. 17, 준공 : 1974. 12) 충주 제6비료공장 준공(1973. 10. 26) 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창원, 온산, 옥포, 죽도, 안정, 여천 지정 (1974. 3. 27, 창원 : 종합기계공업기지, 온산 : 석유정제·비철금속 공업기지, 옥포·죽도·안정 : 조선공업기지, 여천 : 종합화학공업기지) 동남산업단지관리공단 설립(1974. 4, 창원, 울산, 온산, 안정국가 산업단지 관리) 창원기계공업단지 조성(1974. 4) 죽도조선소 기공(1974. 4, 준공 : 1980. 12. 5) 기업공개와 건전한 기업풍토 조성을 위한 박 대통령 특별지시 발표(1974. 5. 29) 주안단지(6공업단지) 준공(1974. 11. 5) 쌀의 완전 자급자족 달성(1976년) 대청다목적댐 기공(1975. 3. 27, 준공 : 1981. 6. 30) 여천석유화학단지 합동 기공(1975. 11. 10, 준공 : 1980. 1. 29) 통일벼보다 질이 좋고 다수확품종인 밀양21호와 23호를 개발하여 77년부터 통일벼를 없애고 신품종으로 대체할 방침을 수립(1975. 11. 20) 청평 양수댐 기공(1975년, 준공 : 1980. 12. 18) 근로자 재산 형성 저축제 실시(1976. 1. 19) 한국기술검정공단법안 마련(1976. 5. 18, 기술인력관리, 자격, 검정의 일원화) 포항제철 제2기 확장공사 준공(1976. 5. 31) 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확정 발표(1976. 6. 18) 국산자동차 포니 첫 수출(1976. 6) 반월 신도시 건설 발표(1976. 10. 2, 기공 : 1977. 3. 30) 특별소비세법 제정(1976. 12. 22) 초고압송변전시설 준공(1977. 4. 30) 월성 원자력 1호기 기공(1977. 5. 15, 준공 : 1982. 3. 10) 여수화력 2호기 준공(1977. 6. 30) 부가가치세 시행(1977. 7. 1) 제23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우승(1977. 7. 10) 여수 제7비료공장(남해화학) 준공(1977. 8. 4, 기공 : 1973. 10) 서부산업단지관리공단 설립(1977. 11, 반월, 시화, 아산, 석문국가 산업단지 및 천안 외국인전용단지 관리) 연초댐 기공(1977. 11, 준공 : 1979. 12) 수출 100억 달러 기념식(1977. 12. 22)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돌파(1977년) 종합행정정보망 구성키 위해 행정전산화 10개년 계획 마련(1978. 2. 20) 전 국토의 토양정밀조사 완료(1978. 2. 23) 고리 원자력발전소 준공(1978. 4, 기공 : 1971년) 충주 다목적댐 기공(1978. 6. 3, 준공 : 1986. 10) 제24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개막(1978. 8. 30, 부산) 주요 도시간 장거리 자동공중전화 개통(1978. 12. 31) 쌀 4천만 섬 수확(1977년) 인천화력발전소 3, 4호기 준공(1979. 4, 착공 : 75. 5) 고리원자력 3, 4호기 기공(1979. 4. 9) 원자력발전소 9, 10호기 울진에 건설키로 확정(1979. 6. 12) 온산 동제련소 준공(1979. 12. 11) 공산댐 기공(1979년, 준공 : 1981년) 삼량진 양수댐 기공(1979년, 준공 : 1985년) 수출국 1961년 25개국에서 163개국으로 확대(1979년) ===================================================
★[한국과학기술원 kist설립1966년]-이공계를 대육성..
[펌]경제원조속 kist 고집-대통령보다 많았던 과학자들의 월급이야기
'한국과학의 메카' 키워내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설립할 때다. 그 때 kist 연구원들의 봉급이 너무 많아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는 항의가 청와대까지 빗발쳤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kist에 들여온 최신 컴퓨터 시설을 보며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朴대통령은 한달에 한번꼴로 이 연구소를 방문했다
. 당시 초대 소장이었던 최형섭 박사가 청와대로 불려가 연구원들의 봉급표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여줬다. . 朴대통령은 '과연 나보다도 봉급이 많은 사람이 수두룩하군' 하면서도 그 표대로 봉급을 주도록 했다. 당시 kist 연구원들의 봉급은 국립대학 교수의 세배였다. . 고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기술에 대한 애정을 읽을 수 있는 일화다. 朴대통령은 '개발도상국가에서의 과학기술 발전은 국가 원수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는 미국 스티븐 데디에 박사의 연구결과가 그대로 맞는다는 사실을 입증케 한 대통령이었다. . 외국에서 밀가루 한 부대라도 더 얻어와야 했던 시기에 kist를 미국의 원조를 받아 설립했으며, 한국과학기술의 총 본산으로 키웠다. . kist는 그 뒤 한국생명공학연구원.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 20개 가까운 전문연구소를 배출하면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맏형'역할을 해왔다. . "kist는 정부 예산을 쓰면서도 정부의 회계 감사나 사업계획의 승인을 받지 않고 자율적인 연구를 했다. 또 연구예산은 정부가 깎지도 않았다. 그 모두가 박정희 대통령이 전폭적으로 밀어줬기에 가능했다." 최장수 과기처 장관이기도 했던 최형섭 박사의 회고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 朴대통령은 kist를 설립한 뒤 3년여 동안 한달에 한번꼴로 들렀다.연구 현장이나, 연구동 신축 현장을 둘러보기도 하며 연구자들을 격려했다는 것이 그 당시 연구현장에 있었던 과학자들의 말이다. . 朴대통령은 당시 과기처 장관을 수시로 부르거나 메모를 보내 과기정책을 챙겼다. . 朴대통령이 서거하기 1년 전쯤인 1978년 11월 21일 최형섭 당시 과기처장관에게 보낸 메모에는 "중국이 과학기술을 육성하기 위해 해외 화교 과학자들의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아시아개발은행(adb) 계모 이사의 편지를 동봉하고 계씨의 구상을 구체화할 것을 주문했다. . 朴대통령의 이런 관심을 받고 성장한 kist는 포항제철 설립,통신의 현대화, 중화학공업 기틀 마련 등 한국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 오늘날 한국의 과학기술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대덕연구단지도 朴대통령의 작품이었다. .
중앙일보
박방주 기자 | |
첫댓글 제가 빨강색으로 제목을 선정하는것은 훌륭한 대통령을 매도하면서 저 위에 애들을 더 사랑하는 무리들에게 배려하는 차원에서 사용하시는것이니 이해하시길^^나는 빨강색은 옷도 싫어하거든요^^
젠장..언제 봐도 아름답소....내 무듬에 침을 뱉어라...누가 그러겠소...
옵션님! 감사해요.우리라도 바로 잡아드리자구요^^저는 제 막내시누 한명있는데 절대 몬사모한테는 시집못가게 할거예요^^그것많은 올캐로써 막을려구요^^
뭔 업적이 이리 많다냐. 대단허이......
뭐...그런거까지야..그런데..요즘 놈현 조용하니 더 밤이 조용합디다..스발...ㅋㅋㅋㅋ
제가 침을 뱉어 드리죠......얼마든지.........침 아니라 할수만 있다면 그의 무덤을 삽으로 파낼수도 있습니다....
어제도 했듯..카리스마,,,추진력,,사심없는맘,,과학기술의추진력...이게 박통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상이죠...
왜 훌룽한 대통령을 삽질을 할라구요^^^님에 할아부지 산소가서 왜 재산안물려주었냐고 삽질해서 파내세요^^알았죠^^쯧쯧 불쌍한인생이군^^여자친구 맹글어서 얼렁 장가가요^^
어제 저도 했듯..대기업 육성의 부작용,정경유착...권력욕을 위한 언론통제와 탄압...사욕을 위한 인권과 민주주의 탄압....이 결과물로 2004년 대한민국이 아직도 고통받고 있지요....
크로바님...죄송하지만 전 결혼한 사람입니다...여자친구 만들면 불륜이죠^^
대기업반댄...중소기업...맞죠...대만 중소기업 잘나가죠,,근데 문디 다들 용산서만 보죠...대만 제품은 경젝력없지않나여..?
서계에 경쟁력 가진건 대기업인데...그걸 얼케 국내 고용으로 흡수시키나는 정책임다..
하늘님 그리고 님이 답글볼때는 제목 옆에 있는거 ( ) 클릭하고 보세요.실제 이것을 본 말없는 다수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고 싶네요^^다른님들도 그렇게 해주세요^^많이 보아야 할텐데^^말없는 순수한 젊은 우리나라의 보배님들이^^
옵션님...단순히 대기업만의 육성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그 대기업 육성이란것이 정경유착의 강한 고리와 수많은 부정부패로 이뤄진것이란 점이죠...결과물만 좋다고 그 엄청난 부패의 온상을 무시할순 없는거지요
결론은 국내 부품산업발전 시키수 밖에요..그래야 다들 취직하고 코스닥 돌아가고...근데 그뒤에 누가있냐..놈현임...
오늘날도 그런 과거의 구태가 남아있지요...대기업들의 엄청난 탈세와 분식회계....부당한 내부거래...기업보증....이런 것들때문에 우린 imf 를 겪었습니다....바로 박통때의 대기업 정책이 물려준 유산이지요
정경유착이고 나불이고 그때의 시대적 정서나 한국에 경제사나 한국적인 경제성장 방법으로 한거지요^^지금에 중국이라고 한국을 가상하세요^^
그런가요?? 정경유착이 경제성장의 한방법이라는 얘기는 머리 털나고 처음 듣는 경제이론이군요...^^ 대단하신 크로바님......ㅎㅎㅎ
케인즈도 프리드만도 정경유착이 경제성장 방법이라고 언급한 이론은 본적도 들은적도 없습니다...
국민을 결집하는 대통령의 리더싶 그것을 승화시켜 현대 정주영회장과의 호흠을 통해서 경제발전을 했따는거지요^^유착이라면 유착이겠지만 나라가 개발도상국으로 가는데에는 국가와 경제인과 호흡을 같이 해야할테지요^^서로 밀어주고 지원해주고 결집시켜주고 했던거지요.님에눈에는 유착이고 제눈에는 공조라고봐지네요
예를 들어보죠...대우의 분식회계 규모가 우리나라 예산의 3분의 1정도 규모였습니다..그래서 망했죠..결국 회계조작해서 뻥튀기한 금액이 그정도 어마어마한 규모라는 것입니다....이런 일들이 박통때는 일상처럼 일어났습니다
개눈에는 밥도 똥으로 보일테니까요??혹시 박대통령의 업적을 사실은 기름이 잘잘 흐르는 밥인줄 알면서도 젊은이들을 선동해볼까 싶어 똥으로 보는것은 아닌지요^^
박통때는 우리나라가 성장단계에 있을 시기죠...그러니까 이런 불합리가 경제발전이라는 명목하에서 묵인될수 있었습니다...하지만 박통 이후 나라 경제가 커지고 선진국 진입 바로 코앞에서 박통에게 물려받은 그 엄청난 부작용의 유산들이 마구 봇물처럼 터져버린것이죠
제가 지금의 젊은이들을 선동해서 무엇을 얻겠습니까?? 다만 박통 시절의 그 철권통치와 암울했던 시대를 겪어보지도 않은체....박통을 찬양하는 요즘 몇몇 젊은이들이 좀 안타까울 뿐이죠..그것 뿐입니다
인터넷상에서 현 대통령을 욕도하고 씹기도 하는 이런시대에 익숙해진 젊은이들에게 그 시대의 아픔과 고통이 와 닿을리가 없겠지요....선동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설득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습니다..다만 그 시대의 진실만을 말하고 싶은 뿐이죠
바라기님..그러나 과거가 현실에 도움되지 안흘까여?...지금 놈현보세요...바로 경제에 올인이죠...좀 틀린건가...ㅋㅋ
물론 옵션님 말씀도 맞습니다...과거가 현실에 도움이 되죠...박통의 공과는 명확합니다...아마 입장차이라면 옵션님은 공에...저는 과에 더 무게 중심을 두는 것이겠죠...다만 요즘 일어나는 이상한 박정희 신드롬에 대한 거부감은 어쩔수 없군요..
아하,,영웅시댑니다..그냥 다들 보시고 나중에 결정합시다...분명 박통과 그때 야당들하고...
옵션님 처럼 과거 박통시대를 경험해보신 분이라면 저와의 입장차이를 얼마든지 존중해 드릴수 있습니다,,,그 시대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박통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수 있을테니까요..다만 앞에서 말했듯이 요즘 나이어린 젊은이들의 박통에 대한 회귀는 확실히 이해하기 힘들군요
아뇨,.,.회귀라면 힘들죠...좋은건 버리고 나븐건 버리는 세대죠...
어제도 그랬듯...만약에 우리나라가 다시 어지러워진다면..만약에....전 그중에 다시 그런 사람 나오기 바랍니다..
난세에는 영웅이라....사실 정말 난세에는 옵션님 말씀처럼 박통같은 인물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하지만 박정희의 문제는 난세에만 그가 지도자로서 존재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지요...권력욕이란게 이처럼 무섭지요...
원래 정치란게 그렇듯...이 모든문제가 놈현에서 나왔죠...이제 미래로 돌립시다..
쉐들 이무듬은 내가 지키마...
도대체가 왜 돌아가신 분의 업적을 지금에 와서 들먹이는 이유가 무엇이죠?박통이 위대한 대통령이다 칩시다.인정한다 칩시다!그렇게 해서 달라지는게 무엇인데요?박근혜를 대통령이라도 만들어 달라는 겁니까?님의 글을 읽으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존경했던 마음이 없어져 버리네요.그걸 바라신 건가??????
박근혜를 사모한다는 박사모들이 요새 박정희를 띄우죠....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란거 밖에 내세울게 없잖아요.(박정희씨 아들은 마약 때문에 대놓고 내세울수는 없고) 꿈꾸는거 말릴 필요는 없지만 박근혜가 독재정권의 퍼스트레이디였단걸 온 국민에 세뇌시킬려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