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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나비 - 허수경
때로 버려지는 아픔이여 때로 노래하는 즐거움이여
때로 오오하는 것들이여 아아 우우 하는 것들이여
한 세계를 짊어진 여린 것들의 기쁨이여
그 기쁨의 몸이 경계를 허물며 너울거릴 때 때로 버려지는
아픔과 때로 노래하는 즐거움의 환호 그 환호의 여림
때로 아아 오오 우우 그런 비명들이 짊어지는 세계여
때로 아련함이여
노곤한 몸이 짊어지고 가는 마음
나비 - 나태주
날개 접고 풀줄기 끝에
앉아있을 때보다는
날개 활짝 펴고
진저리치며 꽃의 가슴 속
꿀을 빨고 있을 때
꽃의 꿀을 빨 때보다는
바람 속에 날개 하느적이며
날고 있을 때
그 조그맣고 어여쁜 날개 몇 장으로
드넓은 하늘을 펼쳤다
접었다 그러할 때.
나비 - 유경환
나래를 쳐라 나래를 쳐, 청산 가는 나비 훨훨훨 벌 지나 남빛 강 건너 또 계곡을 날고.
나래 아프면 청무우밭 쉬고 나래 지치면 절벽을 찾고 나래 부러지면 남빛 강에 떨어져 죽고...
나래 - 그 부드러운 나래 한 쌍으로 하늘 치며 하늘로 거슬러 오르는 나비의 꿈, 눈부신 햇덩이
훈장으로 붙이고 하늘로 녹아버릴 나비의 가슴.
비바람 가려서 달밤을 날고 달밤을 나를 땐 전설꽃 무늬, 노을 속 지날 땐 불꽃 무늬, 남빛 강 건늘
땐 청동무늬, 모래처럼 쏟아진 별무리 밤하늘에 흘리고 간 나비의 유언.
끝없는 잠, 숨죽은 밤하늘 어디서든지, 반드시 고운 여인 하나 죽어가리라는 어지러운 춤, 하늘에서
흩뿌리는 눈물 하늘에 흐느끼는 나비의 시.
뉘 시켜서 아니라 스스로 그 작은 목숨 걸고 나래치는 아름다운 넋 풀잎에 이슬지듯 소리도 없이
남몰래 나래 치며 사라질 너, 너에게 끝 있음을 노래 부르고 나에게도 끝 있음을 노래 불러라.
나래를 쳐라 나래를 쳐, 청산 가는 나비 훨훨훨 벌 지나 남빛 강 건너 또 계곡을 날고 청산에 불붙으면
나래에 불 당기고 불보래 속에서 나래를 쳐라.
나비 - 함동선
꽃을 찾는 너를 따라 어릴 때의 들이 되기도 하고 비가 내린 어제는 부엉이 소리 은은한 가랑잎이 되어 여린 날개를
가렸다 내 이마의 주름처럼 굵어만 가는 철조망 건너 아버지 산소가 목구멍에 걸린 생선가시가 되어 밥 먹을 때마다
뜨끔거린다 가진 것은 시간밖에 없으니 오는 한식에는 작고 그래서 무리 지으면 더 예쁜 꽃다지로 피어 내 고향을
들러올 너를 기다릴 거다
나비의 꿈 - 김정란
나비를 보았다.
깊은 밤, 내 숨소리 허공을 향해 올라갔을 때.
우리의 기질이 나비의 날개를 가진다면
우리는 다만 있는 일만으로 족하리라. 왜냐하면
버려버릴 것을 모두 가벼운 날갯짓으로 벗어버린 후에
우리는 알몸으로 비로소 남아 있을 수 있으므로.
그때에 내가 내 육체를 향해 새삼스러이 말을 걸리라.
"안녕! 예쁜 나여!"
나비는 언제나 내 영혼의 깊은 곳을 찾는다.
"가능하면 더 깊은 곳을"
어느 날인가 나는 그가 수줍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금이 간 영혼을 사랑해."
"어째서지?"
"잘 몰라, 하지만 어쨌든 그들에게선 좋은 냄새가 나."
그리고 그는 날아갔다.
나는 덜덜덜 흔들렸다.
그리고 조금 뒤엔 바람이 칠흙이 그리고 핵이 남았다.
꿈꾸는
핵
나는 다시 나비를 보았다, 아니 오히려 가졌다.
내가 모든 여행길의 돌짝밭에서 돌아올 때
조심스러운 비상으로
다시 시작하는 나비.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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