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균형, 시소)
어렸을 때는 매일 놀이터에서 놀았다. 여러 놀이 기구 중에 특히 시소를 좋아했다. 나는 시소가 영어(seesaw)라는 사실도 다 커서 알았다.
주로 세 명이서 놀았기 때문에 우리는 시소를 조금 특이하게 탔다. 둘은 양 끝에 앉고, 나는 가운데 서서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왔다 갔다 하며 균형을 잡았다. 우리 셋은 어느덧 균형을 맞춰 유지하려는 공동의 목표가 생겼고 한동안 이런 시소 놀이를 즐겼다. 친구들은 몸무게가 비슷하지만 같지 않다. 같다고 한들 내가 가만히 있어도 균형을 잡을 수는 없다.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양 끝의 친구들은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나는 한쪽으로 기울어지려 하면 반대쪽으로 힘을 주어 균형을 맞춰야 했다. 힘을 줄 때도 너무 확 줘서도 안 되고, 힘을 주고 있는 동안에도 언제나 반대쪽에 힘을 줄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사는 것도 시소와 같다. 이상과 현실의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균형을 맞춰야 한다.
여행가가 꿈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아무리 여행이 좋다하더라도 매일 여행 갈 생각만 하고 여행만 갈 수는 없다. 그렇게 가는 여행은 그다지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생각하여, 여행 갈 돈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돈을 벌어야 한다고 밤낮으로 돈만 벌고 쉴 때도 돈 벌 생각만 하는 것이 맞는 생각인가? 이렇게 이상을 버리고 현실만을 사는 것은 맞는가 생각해보자.
상상의 실현을 위해 지금 그리고 현실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 현실은 가혹하고 힘들다. 하지만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내가 겪어 이겨야 할 당면 과제이다. 그 고통을 이기고 견딜 원동력이 이상이다. 평일에는 일찍 일어나고, 하루 종일 일에 치이고, 상사한테 욕먹고 야근까지 한다. 정말 이렇게는 너무 힘들어 못 살겠다. 그런데 주말에 여행 갈 생각을 하면 즐거워진다. 버티니깐 즐거운 여행을 갈 수 있다. 다음 여행 갈 때부터는 사진도 찍어 보자 생각해서 비싼 카메라도 살 계획이다. 이 꿈같은 카메라를 위해선 반년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이렇게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생겼다.
이상으로 생각하는 여행을 가기 위해 평소에 어려움을 참고 일을 한다. 참고 견뎌내고 가는 여행이라 더 재미있다. 아무리 축구가 좋다고 해도 주말에 조기 축구를 하니 좋지, 축구 선수가 되어 축구를 해야만 하는 것이 지금처럼 즐겁겠는가? 나는 내가 하고 싶을 때 잠도 실컷 자고 공을 차고 싶었지, 오늘은 자고 싶은데도 축구를 해야 하고, 성적이 중요하고 감독 말에 따라서 축구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사무직을 하는 것보다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현실을 견디기에 덜 힘들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떻게, 무엇을 하든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상과 현실 속에서 잘 살 수 있을까?
이상과 현실은 같을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현실은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고 떠날 수도 없는 곳이다. 하지만 이상은 갈 수 없는 상상 속의 저곳이다. 이상이 현실이 될 수도 없고, 현실이 된다 해도 그건 더 이상 이상이 아닌 또 다른 현실이 된다. 일주일에 한 번 하던 축구가 너무 좋다고 축구가 직업이 되면 축구는 더 이상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된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이 같을 수는 없지만 간극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축구를 좋아하지만 어쩌다 보니 공대를 졸업해 전공 관련 회사에 다니고 있다. 축구가 좋다고 축구 선수가 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그래머라면 축구 게임을 만들 수도 있고, 소설가라면 축구를 소재로 글을 쓰는 등 이상을 현실 속으로 스며들게 할 수 있다. 전쟁에 대한 게임을 만들거나 소설을 쓰는 것보다 축구에 관한 것을 한다면 좀 더 즐겁고 효과 좋게 일할 수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의 음악을 만든 히사이시 조는 이상과 현실에서 균형을 잘 맞추고 사는 사람이다. 그는 영화음악이나 광고음악 등의 상업적 음악도 작업하고, 솔로 앨범도 만든다. 영화음악이나 광고음악은 자신의 음악적 상상을 발휘하기 보단 의뢰한 사람을 만족시켜야 하는 일이다. 그는 그러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을 솔로 앨범 작업을 통해 발산하여 해소한다. 영화음악이나 광고음악 등을 하면서 소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솔로 앨범을 만들 때 부담 없이 남 눈치 안 보고 마음껏 만들 수 있다. < ‘나는 썼고 너는 못썼다(강병민, 책나무출판사, 2018)’에서 옮겨 적음. (2022. 2.12. 화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