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문화유산 '고인돌'
우리나라의 고인돌이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된 것 다 아시지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엔 고인돌이 얼마나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또 얼마나 될까?
먼저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약 3만기 정도입니다. 남한에 2만기, 북한과 길림성 요녕성에 1만기정도입니다.
전세계적으로는 5만기 정도 됩니다. 우리나라의 3만기를 빼면 2만기정도가 여러곳에 있는데 그가운데 1만기정도는 유럽, 1만기는 동남아시와 그 외지역에 산재해 있지요
그러면 우리나라에 고인돌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겠지요. 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유까지도 ...,
고인돌에 관한 자세한 내용 입니다.
"고인돌"
고인돌은 커다란 돌을 가지고 만든 구조물로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여러 유적가운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상당히
일찍부터 조사/연구되기 시작하였다.
유적분포를 보면 주변지역인 중국에서는 주로 요동반도에 있으며,
남부지역인 절강성에서도 가끔 찾아지고, 일본은 구주지역에서만 나타난다. 우리나라에는 이들 지역과는 비교가 되지않을 만큼 수만 기(基)에 이르는 많은 고인돌이 내륙은 물론, 제주도를 비롯한 여러지역에 까지 퍼져 있다.
고인돌은 주로 강을 낀 낮은 구릉지대나, 주변의 자연지세에 알맞은
골짜기 방향이나 강/해안선을 따라서 있다. 수적으로 많이 분포하는
평안도/황해도 /전라도지역은 서해안에 인접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바다와 고인돌사이의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인돌의 기능은 죽은 사람을 묻기 위하여 만든 [무덤고인돌]이 거의 대부분인데, 그 형식은 밖으로 드러난 덮개돌[蓋石]을 받치고 있는 굄돌[支石]에 따라 몇가지로 나누어지며, 덮개돌 밑에 있는 무덤방[墓室]의 짜임새는 만든 방법과 재료에 따라 여러가지가 있다.
탁자식(북방식/전형)고인돌은 판판한 굄돌을 세워서 지표위에 네모꼴의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려 놓은 형식이다. 오늘날
남아 있는 고인돌을 보면 덮개돌의 무게를 받고 있는 굄돌의 긴 벽은
그대로 있지만, 고인돌을 만든 다음 나들이문 역할을 한 것으로 짐작되는 짧은 벽(막음돌)은 거의가 파괴되어 없는 상태이다. 이러한 형식은 주로 황해도나 평안도의 서북지방에 많이 있고, 드물게는 강화/고창/나주/거창에서도 찾아지고 있다.
바둑판식(남방식/기반식/변형)고인돌은 땅위에 놓인 3∼4개 또는
그 이상의 받침돌이 덮개돌을 받치고 있는 것으로, 땅속에 있는 무덤방은 구덩/돌널/돌덧널 등 여러가지가 있다.
구덩식(무지석식/개석식)고인돌은 땅위에 커다란 덮개돌만 드러나
있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분포되고 있어 고인돌의 기원문제를 밝히는데 중요하다.
고인돌의 발굴조사 결과 제천 황석리와 양평리/달성 진천동/춘천 중도유적에서는 사람뼈가 나왔다. 그리고 껴묻거리로는 민무늬토기를
비롯한 여러가지의 토기와 간돌검/화살촉 등의 석기 및 드물게 청동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최근 승주 내우/여천 적량동유적에서는 한 곳에서 여러 점의 비파형동검이 나왔으며, 속초 조양동유적에서는 이른 시기의 부채꼴모양의
청동도끼가 찾아지기도 하였다. 드물게는 꾸미개인 굽은옥[曲玉]과
대롱옥[管玉]이 출토되기도 한다.
제천 황석리유적에서는 사슴이나 소과(科)/돼지 등의 짐승뼈가 찾아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고인돌을 만들 때 있었던 제의(祭儀)나
묻힌 사람의 영생을 바라는 내세의 믿음에 관한 자료를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고인돌사회의 사람들이 무덤을 만들 때 가지고
있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X]자 새긴 자갈돌이 옥천 안터와
화순 대전유적에서 찾아졌다.
고인돌을 만든 시기를 밝혀주는 방사성탄소 연대측정결과는 얼마되지 않으나, 양평 양수리고인돌의 연대측정값이 3,900 B.P.(MASCA
4.140 B.P.)로 밝혀져, 뗀돌도끼와 함께 신석기시대 부터의 자료로 보게하는 큰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충북 옥천 안터고인돌에서도 늦은 시기의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며, 담양 문학리/중원 하천리/제천 함암리고인돌에서는 이른 철기시대의 토기나 쇠똥[鐵滓]이 출토되어, 이 고인돌은 늦은 신석기시대부터 만들어지다가 청동기시대에 널리 퍼졌고, 이른 철기시대까지도 가끔 쓰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나라에 집중적으로 퍼져 있는 고인돌에 관하여서는 바다를 통해 동남아시아나 중국 동북부지역에서 전해졌다는 전파설과, 주변지역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많은 고인돌과 그 축조연대가 이르다는
점에서, 주변지역과 관계없이 자체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자생설이 있다.
커다란 덮개돌을 옮겨 고인돌을 만드는 데에는 훌륭한 기술과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하였을 것이며, 이러한 기술과 노동력은 선사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지금까지 밝혀진 여러 자료로 보아, 고인돌을 만들던 때에는 사람들이 공동체의식 속에서 참여하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