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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게시판 스크랩 감동글 시각 장애우 금정산을 오르다
시카고레이더스 추천 0 조회 10 06.01.26 14:2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06년 1월 22일. 일요일.

 

가슴 뭉클함이란 이를 말함인가.

가난과 역경을 이겨온 감동 시리즈를 수없이 보아 왔지만

이렇게 하루의 일과를 감동과 눈물의 현장에서 보낸 것은 처음인가 보다.

 

방학 중, 일요일이 아닌 평일에 등산을 하고 싶어 10여일 전에 가입한 부산중년 사랑방 카페에서

2주마다 실시하는 시각 장애우 동행 등반 행사에 처음으로 참가하여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우들과 함께 금정산 등반을 하게 되었다.

 

10시에 노포동 전철 종점에서 사랑방 회원 9명과 시각 장애우 7분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승합차로 양산군 동면 쪽에 있는 금륜사 아래까지 이동하였다.

 

이곳에서 산행대장인 사랑방 카페지기 하늘님의 간단한  주의 사항과 안내인 배정을 한 후,

안내인과 장애우가 서로 수인사를 나눈다. 이번에는 특히 보라님의 아들인 성문군도 참석하여

한 분을 안내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안내에 참석한 금서님, 은서님, 그리고 겨울 바다님이 안내인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또 정중님, 까리님, 진이님은 후방지원을,  나는 촬영을 맡게 되었다.

 

 

 

출발 신호와 함께 안내인과 장애우가 손이나 배낭끈을 잡고 산행을 시작한다. 길은 금방 오르막으로 바뀌고, 앞에선 안내인의 손이나 배낭끈을 잡고 어렵게 산을 오르는 장애우들이 애처롭게만 느껴진다. 집에 편히 있고 싶을 텐데 어이하여 이렇게 추운 날에 앞도 보이지 않는 악조건 속에서 힘든 등산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한 살림하느라 바쁘고 일요일에 가족도 있는데 기꺼이 안내를 자청하여 멀리서 달려와 봉사해 주시는 여성 회원님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보통 사람은 혼자서도 산에 오르기 싫다고  이불 잡고 뒹굴기나 하고, 맛사지나 다니는데...

 

일렬로 늘어서서 손과 배낭을 잡고, 뒤따르는 파트너를 안내하는 중계방송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평탄한 길이 아니니 끊임없이 길 상황을 전달해야 한다. "돌이 많습니다. 왼쪽으로 크게 디디세요, 머리를 낮추세요, 왼쪽은 낭떠러지입니다. 오른손으로 바위를 잡으세요....길이 집니다. 조심하세요...." 길상황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계속해서 안내를 하지만 간혹 미끌어지기도 하고 안내인의 발뒷꿈치를 밟기도 하고, 가끔 헛짚어 같이 넘어져 뒹굴기고 하고.... 어려운, 아니 눈물겨운 산행이 이어진다.

 

 

 

 

 

30분을 오르니 1차 목표지인 은동굴에 도착하였다. 마침 나그네에게 콩국을 준비하여 무료로 보시하는 착한 보살님 덕분에  잠시를 쉬며 지친 심신을 달래어 보며 파트너끼리 다정하게 대화도 주고 받는다.

 

이곳은 구 법륜사가 있던 부지로서 지금은 아래로 이사하여 철거중이라서 다소 을씨년스럽기도 하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관세음보살상이 등산객들의 안전 산행을 가호해 주는 듯하다. 앞 못보는 장애우들을 위하여 법륜사 사적비도 읽어 주며  이곳이 절터임을 확인한다.

 

 

 

법륜사 보살님의 고운 마음과 관음보살의 가호 속에서 산행을 재개한다. 혼자서도 오르기 어려운 경사진 암벽을 옆으로 돌아 계속 나아간다. 불어 오는 바람이 차갑지만 이내 등에는 땀이 흐르고 가쁜 숨을 헐떡인다.

 

중도에서 바라보는 다음 목표지인 장군봉이 해를 등진 시커먼 모습으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봉우리도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나 되어 보여 오늘 산행이 결코 쉽지 않은 코스임을 알 수 있다.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풍경도 아찔하지만, 봄이면 철쭉이 절경을 이룬다는 설명도 들으며 산행은 계속된다.

 

 

 

 

 

또 한참을 힘들게 오르니 드디어 능선까지 오르게 되었다. 짐작컨대 해발 600미터 정도는 되어 보인다. 능선을 타고 간다기에 좀 수월한 길인가 하였더니  이내 길은 좁고 가파르고 더욱 험한 길이 드디어 시작된다. 칼같은 좁은 바위를 밟고 지나기도 하고, 좁은 길에 나뭇가지에 찔리면서 나아가기도 한다. 평지가 아니고 끊임없이 오르락과 내리락을 반복하며 몇 개의 봉우리를 넘는다.

 

 

 

 

 

 

오르고 내리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다 가장 난코스인 암벽을 오르게 되었다. 정상인이 바라보아도 오금이 저려 올 정도로 가파르다. 내가 먼저  20미터 정도의 밧줄을 잡고 선두에서 힘들게 올라 본다. 그랬건만 장애우들은 힘든 표정없이 줄을 잡고 잘 올라 온다. 위에 올라 온 장애우들의 손을 잡고 끌어 주며 뜨거운 감동이 뭉클 솟아 나옴을 느낀다.

 

요즘의 .젊은 아이들은 게으르고 힘든 일을 하기 싫어하지만 이렇게 힘든 일을 자청해서 오르는 분들의 불굴의 의지를 또한 배우고 느껴야 한다. 요즘 하루하루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이들도 많지만 앞 못보는 이분들만큼은 살아 가기가 어렵지는 않으리라...

 

 

 

선두에서 안내하는 은서님은 가장 덩치가 큰 장애우를 아주 정성껏 잘 이끌어 준다. 다정하게 안내하고 쉴 때는 사탕도 권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부군은 복받은 분인 것 같다.

 

좁은 능선길을 가는 우리 일행에게 길을 양보하고 기다려 주는 산악인들의 경이로운 탄식과 격려가 이어진다. 우리 또한 뒤이어 오는 다른 일행에겐 먼저 가도록 길을 양보하며 마지막 고지인 장군봉을 향해 힘들게 오른다. 드디어 장군봉이 눈 앞에 바라 보이는 봉우리에 올라 잠시 쉬면서 단체로 사진에 담아 본다. 앞 못 보는 사람들이라 시선이 제각각이다.

 

 

 

 

잠시 쉬고 드디어 마지막 난코스인 장군봉을 오른다. 오르는 길도 힘들지만 또 저곳을 오르기 위해 내려 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주의해도 곳곳에서 조금씩 미끌어지고, 힘든 고행길은 계속된다. 석가가 설산에서 6년 고행을 한 것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라지만 이분들은 왜 정상인도 힘든 길을 찾아 오르는가?

 

산행대장님의 말씀으로는 한달에 두번씩 이런 산행을 4년째 하고 있단다. 처음에는 친구가 한 두번 해 보더니 도저히 계속하지 못하고 도와 달라고 청하기에 아예 자신이 떠 맡아서 하고 있다고 한다. 평탄하고 쉬운 코스로 하지 왜 이렇게 힘든 곳으로 하느냐고 하니, 장애우들이 더 원한다고 한단다.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어려운 곳으로 가자고 한단다.

 

그래도 사고라도 날까 걱정이라고 하니 4년 동안 한번도 사고다운 사고는 없었고, 오히려 정상인들보다 더 잘 타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많을 때는 40명 씩도 이끌고 산행한다고 한다. 이때 도우미가 필요해서 사랑방 카페를 만들었고, 수요일에는 회원들을 위해 산행하고, 두번째와 네번째 일요일에는 시각 장애우를 이끌고 산행한다고 한다. 오늘 온 사람들은 사상 점자도서관 회원들이라고 한다. 나도 해보지 못한 거룩한 봉사를 하시는 산행대장 하늘님의 선행에 고개가 숙여진다.

 

 

 

 

 

 

 

드이어 세찬 바람과 험한 바위를 넘고 넘어 장군봉(해발 734.5 미터) 정상에 올랐다. 우리를 위해 기다려 주는 사람들로 복잡하고 장소가 좁아서 기념 촬영도 못하고 내려 온 점이 아쉽기만 하다. 우리를 바라 보는 산악인들의 경이로운 시선과 환호가 정군봉 정상에서 울려 퍼진다. 실로 감격스런 순간이다. 겨울 차가운 바람을 헤치며 겨울 바다님이 파트너를 이끌고 정산 표지석을 지나고 있다. 파트너는 왼쪽 팔꿈치만 조금 보인다.

 

장군봉 정상에 올라서니 일망무제로 넓은 전망이 펼쳐지며 눈 아래에는 널찍한 평지가 카펫처럼 깔려 있다. 정상에 올라온 장애우들끼리 감격의 포옹도 나누고, 정상에서 내려 오는 금서님의 어깨 뒤에는 비록 장애우가 붙잡고 있지만  천군만마를 이끌고 개선하는 장군처럼 가벼워 보인다.

 

 

 

 

 

시간도 두 시가 다 되어 중식을 하였다.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을 꺼내어 둘러 앉아 식사를 한다. 식사 시간만은 장애우들도 안내인의 도음이 없이 자기들끼리 해결한다. 같이 해도 좋을 건데 싶어도 우리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주려는 배려이리라.....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난 후에 하는 식사 시간의 즐거움이 우리만 하랴. 즐겁고 따스한 사랑이 진하게 스며 드는 식사를 끝낸 후에 하산을 시작한다. 역시 지정된 파트너와 같이 한다. 교대도 해 주면 좋으련만  지정된 안내인이 끝까지 하겠다고 한다. 고달픔 속에 배어 있는 진한 인간적 교감이 통했으리라..... 

 

바로 내려 가기가 허전하다고 해서 금샘으로 가는 길을 오른다. 한 30분을 가니 한 분에게 다소 급한 연락이 와서 중도에 바로 내려 가기로 하였다. 금샘을 바로 눈앞에 두고 가기 아쉬웠으나

작년 가을에 와서 보았다고, 아니 마음으로 느꼈다고 한다. 그들은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본다고 한다, 하여 심안(心眼)이라고 한다.

 

내려 오다가 피곤한 안내인을 위하여 안마로써 답례를 해 주겠다고 한다. 고마운 제의를 뿌리치지 못하고  전문 지압사들의 지압과 안마를 조금씩이나마 받아 본다. 별로 한 것도 없는 나에게도 안마를 해 준다.  무겁던 어깨가 시원해 지고 머리도 가뿐해 진다. 전문가의 손길이 역시 다르긴 다른 모양이다.

 

 

 

은혜를 알고 보답을 한 줄 아는 착한 사람들이다. 안내를 하여도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지고 미끄러져도 불평 한마디 안하고, 항상 고분고분 잘 따라 준 그분들께 감사드리고, 성의를 보여 주는 그분들이 고맙기만 하다.  이 세상, 나의 경험으로도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일이 적지 않은데.....

 

잠시를 쉬고 마지막 하산을 계속한다. 올라가는 길이 멀었던 만큼 내려 오는 길도 가깝지는 않다. 자그마한 계곡도 건너고, 진흙길도 건너고.....한참을 내려오니 드디어 범어사로 내려 오게 되었다. 길가에는 훈훈한 사랑의 열기때문인가 벌써 개나리가 꽃망울을 머금고 우리를 반겨 준다.

 

 

 

범어사를 지나 주차장 옆의 화장실에 와서는 드디어 임무를 교대하고 화장실 안내의 마지막 봉사에 참여하였다. 마지막 자리에서 땀도 식히며, 안내로 지친 우리 회원들에게 노래 두 곡으로 선물을 남기시는 고마운 분들이다.  범어사 전철역에서 우리도 안내인 자격으로 전철 우대권을 배정받아 마지막 봉사를 하였다.

 

마침 한분이 나의 집과 가까운 민락동에 거주하여 전철을 두번이나 갈아타고 그분의 아파트까지 바래다 주었다. 심신이 힘들어서인가, 나보다 10년이나 젊지만 여태까지 나보다 더 많이 나가는 걸로 보았는데.....십년 전쯤에 사고로  생사의 고비를 겨우 넘기었지만  실명되어 힘들게 살아왔고, 아직도 싱글이라는 어두운 목소리가 자꾸 나를 맴돌고 있다.

 

그분의 등불이 되어 주실 분은 어디에 계실까.....두 정거장을 걸어 오는 나의 마음은 즐거움과 어두움이 교차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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