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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지금도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일은 꼬박꼬박 챙기는 편이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달 진저브레드 인형을 직접 굽고 다락방에 모셔둔 장식용 구슬과 솔방울, 은종들을 꺼내 달고 마지막으로 줄 전구들에 오색 불을 밝히면 춥고 어둡던 겨울의 실내는 환하고 훈훈해진다. 타샤 할머니처럼 코기 코티지 숲에서 갓 자른 나무를 고집할 수도, 진짜 촛불을 꽂아 두는 사치를 즐길 수도 없지만,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어야만 빙 크로스비의 캐럴도 운치 있게 들린다. 1884년, 알버트 왕자가 영국 왕실에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운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서부터 너도나도 전나무며 가문비나무를 구해 집으로 끌고 가게 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영화 <나홀로 집에>에서 꼬마 케빈이 질질 끌고 가던 거대한 가문비나무가 무려 90달러라는 사실은 존 그리삼의 소설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되었다.
페루로 봉사활동을 떠나는 딸을 공항에서 전송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세무사인 루터는 부인 노라를 대신해 화이트 초콜릿 450그램과 피스타치오를 사기 위해 빗속을 뚫고 가게로 달려간다. 치즈가게 앞에서는 산타가 종을 딸랑딸랑 흔들고, 허브가게 앞에서는 <루돌프 사슴코>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가짜 눈을 뿌려 놓은 가짜 나무에다 줄 전구를 걸고 있는 늙은 담뱃가게 주인이 있는 크리스마스 대목이 루터에게는 짜증스럽다. 그나마 쌀쌀맞은 여인의 손에 먼저 낚아채진 화이트 초콜릿은 사지도 못한 채, 피스타치오만 오버코트 주머니에 쑤셔 넣고 자동차로 뛰어가는 루터의, 비에 젖은 양말은 발목까지 얼어붙어 있다. 그런데도 화이트 초콜릿을 사오지 않았다며 투덜대는 부인이 차 문을 닫고 가게로 달려가자, 루터는 뜨거운 바람에 발이 간지럽게 녹여주는 것을 느끼며 크리스마스를 건너뛰는 상상을 한다.
트리도 없고, 쇼핑도 없고, 의미 없는 선물과 팁이나 소란도 없고, 교통 체증, 군중, 생크림케이크, 술도 없고, 누구에게도 꼭 필요한 게 아닌 햄도 없고, <루돌프 사슴코>나 <눈사람 프로스티>도 없고, 사무실 파티도 없고, 허비되는 돈도 없고…. (19쪽)
루터는 6,100달러나 들었던 지난 크리스마스 때처럼 끔찍한 악몽이 현실이 되지 않아야 한다며 다짐다고, 크리스마스 날 로라와 함께 그 절반 돈으로 호화 유람선 일주를 떠나기로 한다. 트리를 세우지 않는다는 데, 선물 교환도 않겠다는 데 동의하며 질질 짜는 노라를 간신히 달래 결정한 크리스마스 건너뛰기는 이웃들의 철저한 몰이해 속에 급기야 사진과 함께 《가제트》지의 메트로 섹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기사로 실린다.
루터 크랭크 부부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사뭇 어둡다. 햄록 스트리트의 모든 이웃들이 집을 장식하고 산타를 기다리느라 분주한 가운데, 크랭크 부부는 크리스마스를 건너뛰고 유람선 관광을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웃들이 전했다. 트리도 없고, 전구도 없고, 지붕에 프로스티도 세우지 않았다. 프로스티를 지하실에 감추어 둔 집은 헴록 스트리트에서 유독 이 집뿐이다…. (132쪽)
회교도도, 불교도도, 유대인도 아닌 감리교 신자인 프랭크 부부가 크리스마스트리도 사지 않고, 크리스마스 파티에도 참석하지 않고, 눈사람을 지붕 위에 세우지 않았다는 것이 이웃들의 욕을 들어 마땅한 것인지, 크리스마스가 6,100불이나 지불해야 하는 사치스러운 연중행사인지는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실감나지 않았다. 나라도 단 한 번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600달러짜리 드레스를 사 입고, 새 구두를 사 신고, 생크림 케이크 5개를 사먹어야 한다면 루터처럼 크리스마스를 건너뛰고 싶을 것이다. 집집마다 눈사람 프로스티를 강제로 지붕 위에 설치해야만 무사히 시즌을 넘어갈 수 있다면 크리스마스 악몽을 매일 밤 꾸게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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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성탄은 조용히, 거룩히 지내야 한다. 고대 영어인 ‘Cristes’는 예수를, ‘Maesse’는 미사를 뜻하는 바, ‘크리스마스’의 유래만 봐도 ‘그리스도의 미사’란 근엄한 뜻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나는 오래전부터 요셉과 마리아, 아기예수가 이룬 성가정의 참의미를 되새기며 되도록 사람 만나는 약속은 피해 왔다. 대대로 천주교 신자인 우리 집안사람들은 자정미사를 마치면 집으로 돌아와 이브의 밤을 고요히 지내려고 노력해왔다. ‘글로리아 인엑 첼씨스 데오(높이 계신 주께 영광을)’를 실현하는 크리스마스를 나기 위해서는 일찌감치 선물용 양말을 머리맡에 두고, 크리스마스용 가족영화를 보여주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면 된다. ‘마음 착한 이에게는 땅에서 평화, 하늘에서는 주님께 영광’을 주제로 한 마음 따듯한 영화들을 보는 한적한 크리스마스이브야말로 행복 그 자체다.
재탕, 삼탕하는 단골 영화인 <34번가의 기적>이면 어떻고, <사랑의 크리스마스>면 어떻고,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면 어떤가? 볼 때마다 마음 훈훈해지고 마음 부자가 된 듯 넉넉해지는데. 그런 점에서 『크리스마스 캐럴』 역시 거듭 봐도 새롭다. 1843년, 초판 6,000부가 단 하루 만에 판매되는 인기몰이를 했던 찰스 디킨스의 스크루지 이야기는 내게 처음으로 ‘구두쇠로 살아가면 크리스마스 유령을 만나게 된다’는 무서운 교훈을 안겨준 동화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자신을 찾아온 동업자 말리의 비참한 유령과 크리스마스의 유령을 만나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두루 보게 된 스크루지가 하룻밤 사이에 제대로 된 사람으로 바뀐다는 이야기는 억지스럽지만, 그가 침대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외치는 이 부분만큼은 나이 드니 더욱 꼼꼼하게 읽힌다.
“나는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사는 거야.” 스크루지는 침대를 빠져나오면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이 세 영혼이 모두 내 안에서 애쓰고 있지. 제이콥 말리, 하느님,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위해 기도해야지. 그래,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지.”
특히나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로, 각별히 마법과 요정 부문에서 탁월한 화가로 평가받는 아서 래컴(1867~1939)의 삽화로 만나는 ‘코끝이 뾰족한 굽은 매부리코, 쭈글쭈글한 뺨, 뻣뻣한 걸음걸이, 벌겋게 충혈된 눈, 푸르스름하고 얄팍한 입술 그리고 심술궂게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the cold within him froze his old features, nipped his pointed nose, shrivelled his cheek, stiffened his gait; made his eyes red, his thin lips blue; and spoke out shrewdly in his grating voice)’의 스크루지 영감의 모습은 찰스 디킨스의 묘사로부터 한 치의 오차가 없다.
산타클로스를 믿던 어린 시절에는 북극 어느 마을에 가면 『폴라 익스프레스』에서처럼 진짜로 산타들이 일 년 동안 착한 아이, 나쁜 아이를 지켜본 뒤 착한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만드는 공장 같은 곳이 있다고 상상했다. 크리스마스의 환상은 산타클로스를 믿고 있을 때야만 가능하다. 1822년 클레멘트 무어는 자신의 시 <크리스마스 전날 밤>을 통해 니콜라스 성자를 여덟 마리의 순록들이 이끄는 썰매를 타고 선물을 주기 위해 굴뚝으로 집안으로 들어오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산타클로스의 모습으로 바꾸어놓았다. 그 후 수백 명의 화가들이 무어의 시에 삽화를 그려 많은 책으로 엮어냈지만, 내가 아는 한에서는 잰 브래트(Jan Brett)의 『크리스마스의 전날 밤The Night Before Christmas』이 최고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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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폴라 익스프레스』에서, 화려한 불빛으로 장식된 산타의 마을에서 한 해 한 명의 어린이에게만 돌아가는 행운을 잡은 주인공 소년은 산타의 썰매를 타게 되는데, 그만 산타클로스가 준 은종을 잃어버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크리스마스 아침, 소년과 여동생 사라는 선물포장들을 뜯다, 어젯밤 산타클로스가 준 은종을 발견한다. 은종을 흔들자, 어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은은한 소리가 소년과 사라의 귀에 들려온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여동생 사라도 더 이상 은종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소년만이 여전히 은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크리스마스의 마법을 믿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1년 중 가장 늦게 오는 계절인 겨울에 크리스마스가 있음은 다행스럽다. 눈이 내릴 때는 공기 중에 사과향 같은 냄새가 느껴진다는 타샤 투더 할머니처럼, 흰 눈이 소복하게 쌓인 화이트 크리스마스에 대한 소망은 어른이 된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 볼 수 없다고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볼 수 없기에 오히려 더 신비스러운 산타클로스를 믿는 아이들의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다려야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내게도 일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흰 눈 속에 파묻힌 크리스마스 아침에 눈을 뜨면 잊지 말고, 글 없는 그림책의 거장 피터 콜링턴이 전하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접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림의 내용인즉 이렇다. 어느 가난한 악사 여인이 아코디언을 매고 눈밭을 걸어 거리로 나갔다. 사람들은 선물과 크리스마스트리를 사 가지고 분주히 집으로 향하는데, 여인은 거리 모퉁이에 앉아 아코디언을 연주한다. 배고픔에 지친 여인은 급기야 전당포에 악기를 맡기고 돈푼을 얻었지만, 그나마 강도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에 상심한 여인은 성당 앞에서 앞서의 강도가 모금함을 털고 나오던 걸 목격하고는 모금함을 도로 빼앗아 성당 안으로 들고 들어갔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구유를 정리하고 난 여인은 집으로 돌아가다 눈밭에서 쓰러지고 만다. 신기하게도 동방박사와 마리아와 요셉 상이 눈밭에서 얼어 죽게 된 여인을 부축해 여인의 집으로 데려다 눕히고, 아픈 여인을 돌보기 위해 기적을 행한다. 피터 콜링턴은 잔잔하게 펼쳐지는 그림 이야기를 통해, 성서에서 따온 모티브의 현대적 적용으로 새로운 기적을 이뤄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명언 ‘가장 값진 선물은 자기 자신의 일부를 주는 것이다.’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는 이 그림책은 성탄의 진정한 의미가 사랑의 베풂에 있음을 일깨워주기에 소중하다. 상술에 물든 크리스마스가 자칫 본래의 의미를 잃고 핑계 삼아 하루 놀 수 있는 휴일로 전락되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다행히 이번 크리스마스는 조용하다. 아무쪼록 들뜨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소중한 가치를 새기는 성탄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