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 이야기/ 저 김주경
녹차와 홍차의 차이는?
근본적으로는 같다.
홍차는 중국 무이산 차농들이 소나무를 태워, 그 연기로 녹차를 말리는 과정에서 우연히 탄생했다.
녹차의 밋밋한 맛보다, 더 풍부하고 과일향과 소나무향 까지 나는 붉은 빛의 홍차는 마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홍차의 탄생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도 있다.
녹차를 실은 배가 더운 적도 지방을 지날때, 차가 발효 되서 홍차가 됐다는 설인데, 생잎도 아니고 다 말라 비틀어진 차가 적도 지방을 지난다고 다시 발효 될리는 없다.
그냥,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홍차는 중국보다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영국에는, 17세기가 되서야 홍차와 설탕이 전해지는데, 영국인들은 홍차를 광적으로 좋아했다.
일하다 오후 4시, 지칠 때, 따스한 햇살과 녹색 정원의 여유로움을 즐기면서, 음악과 함께 마시는 한 잔의 홍차는 인생의 갈증을 적시는 단비와 같았을 것이다.
17세기 후반의 영국에서는, 오후 4시 정원에 앉아서 홍차의 여유를 즐기는 게, 최고의 사치 중 하나 였다.
산업혁명 이후, 대부분의 도시민들은 공장 노동자가 됐으며, 빈민층은 어릴 때부터,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이 들은 보통 하루 14~16시간을 일했다.
그것도 냄세 나고 더러운 환경 이였고, 하루 종일 햇볕 한 번 못 보고, 어두운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바쁠 때는 새벽 3시에 출근해서, 밤 10시까지 일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사람들에게, 오후 4시에, 따사로운 햇살 속, 꽃이 핀 정원에 앉아서 홍차 타임을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꿈 같은 일 이였을 것이다.
많은 영국인들은 이런 홍차 타임을 가지고 싶어 했다.
홍차가 아니라, 홍차를 즐길 수 있는 경제적, 정신적 여유를 더 바랬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홍차는 너무 비싸서 일부 부유층이 아니면 마실 수 없는 물건 이였다.
홍차는 부와 여유를 상징하는 물건 이였다.
당시, 영국인들에게 홍차는 환상과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 더욱 갈망하게 된다.
(홍차 타임을 즐기는 그림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청나라는 영국에게 홍차를 대량으로 패키지 구매를 강요했다.
영국이 필요한 만큼의 소량 구매는 불가능했다.
몇 번의 협상이 있었지만, 결국 중국의 말을 어길 순 없었다.
홍차는 멀리 미국으로도 건너 갔다.
역시, 그 곳에서도 홍차는 마력을 발휘했다.
인기 폭발 이였다.
하지만, 안 그래도 비싼 홍차에 영국은 자신들의 이익으로, 무거운 세금까지 얹어 버렸다.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인들은 가혹한 차세에 반항해서, 네델란드 같은 나라에서 무과세 홍차를 밀수해서 마셨다.
당시, 영국은 홍차의 패키지 수입으로 인한 재정 고갈을 미국에서 보충하고 있었다.
그러니, 영국은 이걸 보고만 있진 않았고, 미국인들 역시, 조직적으로 영국에 반항하기 시작 했다.
미국인들은 인디안 복장을 하고, 한밤 중에 보스톤 항을 습격해서, 영국배에 실려 있던 342상자의 홍차를 모두 바다에 던져버렸다.
보스톤 차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영국은 분노했고, 미국은 일치단결해서 영국에 대항 했다.
미국 독립전쟁이 시작 된 것이다.
이 독립전쟁의 도화선은 홍차와 세금 이였다.
결국, 영국은 이 전쟁에서 지고, 식민지인들은 미국을 건립하게 된다.
이후, 미국에서 홍차는 영국의 압제의 상징이 되버렸다.
때문에, 미국인들은 홍차보단 커피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홍차로 청나라가 폭리를 취하다 보니, 유럽인들은 여기에 불만을 가졌고,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이, 영국 식민지 였던 인도 다즐링 지방과 지금의 스리랑카 실론에서 상급의 홍차 재배에 성공한 것이다.
이 성공으로 인해서 홍차 가격은 내려갔고, 홍차는 대중화의 길로 접어 들었다.
이제, 영국 일반인들도 홍차 타임, 오후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감격 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자신들이 마시는 홍차가 가혹한 노동력 착취로, 신음 하는 스리랑카인들에 의해, 만들어 지고 있었다 는걸 말이다.
그때, 마신 실론티 홍차는 스리랑카인들의 눈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스리랑카인들은 가혹한 압제와 강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여담이지만, 환상의 홍차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이 한 잔의 홍차를 마신 영국 여왕은 누구도 이 홍차를 마셔선 안된다고 얘기하고, 홍차 제조업자에게 기사 작위까지 내린다.
이후, 이 환상의 홍차는 누구도 맛 본 적이 없다.
물론 제조 된 적도 없다.
사람들은 궁금해 했다.
얼만큼 훌륭했길래, 홍차 한 잔에 기사 작위까지 내린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 미스테리에 대해 추적하고, 생각해서 내린 결론은 마약 성분이 다량 함유된 홍차라는 것이다.
여왕은 영국이 아편쟁이들이 넘치는 중국 꼴이 날 까봐, 서둘러 사태를 진압한 것이다.
거기다, 제조업자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기사 작위까지 내린 것이다.
기사 작위 하나로 중국이 당한 일을 방지 했으니, 여왕은 대단히 현명했다.
첫댓글 홍차에 저런 사연이 있었네요.
홍차전쟁이 유명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