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가쁘다
정 해상
아차 싶었다. 물고 있던 말이 무심코 튀어나간 것이다. 목젖 근처로 내뺀 혀를 탓할 겨를도 없이 나는 대뜸 그의 눈치부터 살폈다. 묵묵히 저울판에 돼지목살을 올려놓고 저울눈을 가늠하던 오십대 초반의 덩치 큰 털북숭이 주인이 나를 힐끔 돌아봤다. 대꾸는 없었다. 잠시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그는 느닷없이 목살을 잡아채듯 들어 올려 반절짜리 신문지가 펼쳐진 도마 한복판에 세차게 메다꽂았다. 순간 나는 움찔했다. 마치 곤장으로 물볼기를 치는 듯 한 소리와 함께 목살이 도마 위에 착 달라붙었다. 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위압감이 삽시간에 밀려왔다. 그러나 다행히도 난삽한 질문 따위엔 말려들지 않겠다는 듯이 그는 말 한마디만 딱 뱉었다. 그것도 반말 투로.
“팔천 구백 원.”
지폐로는 부족해서 주머니 속의 동전까지 꺼내 셈을 하는 동안 그의 스멀거리는 시선이 온몸에 느껴졌다. 같잖은 질문이나 하는 궁상맞은 처지를 얕잡는 것이 분명한 그는 아마 나를 저울눈에 파리쯤으로나 여기고 있을 것이다. 치켜 올라간 그의 입 꼬리에 걸친 미소는 틀림없이 가소롭다는 의미리라. 이런 푸대접을 받고도 도마 위에 축 늘어진 목살을 꼭 사야만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일순 머리를 스쳤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슬그머니 치밀어 오르는 분기(忿氣) 탓이었다.
“그 저울의 무게를 정말 모른다고요?”
목살을 건네받고 돌아서 출입문을 열다가 나는 그를 향해 또다시 같은 질문을, 이번엔 도전적으로 던졌다. 그것은 심리전에 입각한 고도의 초강수(超強手)이자 회심의 한방이었다. 순간 나는 스스로의 대견스러움에 뭔가 울컥하는 전율을 느꼈다. 날 짓누르던 위압감을 떨치고 그에 저항하는 절대적인 용기, 혹은 구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상쾌한 떨림으로 온몸이 짜릿하기까지 했다. 이윽고 그가 반응을 보였다. 재갈 먹인 말처럼 침묵을 지키며 숫돌에 칼을 갈고 있던 그가 드디어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각오는 했지만 꽤나 살벌한 기운이 그를 휘감고 있었다. 손에 들린 날선 칼도 한몫 거들었다. 천천히 고개를 쳐든 그는 허공을 향해 숨을 크게 한번 내뱉은 뒤 본격적으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밤송이를 코밑에 매달아 놓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두툼한 그의 입술은 벌어진 틈새로 드러난 알밤 같았고 그 주변을 둥글게 에워싼 수염은 밤송이의 드센 가시들처럼 바짝 곤두서있었다. 핏발이 선 두 눈에선 금세라도 광선이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이미 셈도 끝났겠다, 대꾸할 가치도 없으니 빨리 사라지라는 경고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낯빛이 확 바뀐 그가 어찌나 위압적이었던지 부라린 그의 눈에 겨우 맞서던 나의 기세는 그 대목에서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내 질문이 과연 시빗거리 축에나 드는가 하는, 분(忿)대신 비굴을 잔뜩 담은 표정으로 슬그머니 뒤돌아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온 신경의 촉수들이 뒷덜미로 떼 지어 몰려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족히 한 뼘은 넘어보이던 두께의 나무도마에 예리하고도 섬뜩하게 칼이 내리꽂히는 소리가 와락 내 등을 타고 넘었다. 서슬 퍼런 잔향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나는 황급히 정육점을 빠져나와 허둥지둥 달아났다. 칼을 들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양손을 허리춤에 걸친 그가 침묵하던 재갈을 풀고 내 뒤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얼핏 보았기 때문이었다. 자칫 된서리를 맞을 수도 있다는 본능적인 판단이었다. 선미 집으로 통하는 골목입구에 다다른 나는 담벼락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오십여 미터를 죽어라 뛰어온 탓에 숨이 턱까지 차있었다. 답답해진 가슴을 주먹으로 마구 두드려 봐도 소용없었다. 기운을 차릴 수 없었고 계속 숨만 가빴다. 나는 땡볕이 장악한 근처 담벼락에 등을 대고 앉아 눈을 감았다. 강한 어지럼증과 함께 눈앞이, 정말 눈앞이 노래졌기 때문이었다.
*
서대문에 있는 금화초등학교에 다니던 나는 금화산 고지대에 형성된 판자촌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말이 서대문구 천연동이지, 산 4번지 산 5번지 하는 식으로 주소를 매긴, 말 그대로 산이었고 나와 여섯 살 난 남동생은 땟국을 질질 흘리던 산동네 아이였다. 삐삐선이라고 불리는 통신선으로 집집마다 연결시킨 스피커에선 온종일 같은 방송이 동네에 울려 퍼졌다. 주파수를 변경하는 채널이 몇몇 주인집에 고정되어있는 탓에 세든 집들은 단지 스피커를 켜고 끌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괜스레 기분을 들뜨게 하는 새마을운동 노래에 발맞추어 아침마다 이 동네 저 동네로‘호마이카’밥상다리 고치는 일을 나서던 마흔 살의 엄마는 공치는 날이 잦았고 수입은 늘 불안정했다. 공장에서 기숙하며 껌 포장상자에 풀칠을 하던 십대 후반의 누나도, 쇠 강판을 가공하는 프레스기계에 손가락이 잘린 후, 군 면제를 받고 청춘의 객기에 휘둘려 동네건달들과 어울리던 갓 스물 넘은 형도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지 못했다. 비좁은 판잣집 단칸방에 여섯이란 식구는 버거웠기에 한창 청춘의 때인 그들은 그저 맴돌 뿐이었다. 모두들 제 앞가림조차 힘든 고단한 시절이었기에 엄마는 결코 서운한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방임은 아니었지만 집의 상황과 그들의 처지를 감안한다면 사실 묵인에 가까웠다.
친척의 양자로 입적된 아버지의 호적 탓에 뜬금없는 분을 시어머니로 봉양해야하는 엄마의 고충은 누구보다 심각했다. 일을 나갔다가도 끼니때면 어김없이 그분의 식사를 챙기기 위해 귀가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친척들은 그분을‘평화할머니’라고 불렀는데, 병든 남편과 결혼해서 평생을 처녀로 수절한 분이라는 얘기를 귀동냥으로 들은 적은 있었지만 왜 그렇게 부르는지는 알지 못했다. 엄마도‘본실 댁’이라고 불렸으나 그 역시 누구도 설명 해주지 않았다. 자식을 돌보기 힘든 곤궁한 산동네에서 아이들은 누구나 그렇게 자라야했다. 그런 연대감 때문인지 산동네 아이들은 별다른 불만 없이 모두들 친하게 지냈다. 그즈음 나는 아궁이의 연탄불을 제때 가는 것과 밥 짓기를 익혀 엄마를 조금씩 돕기 시작했다. 연탄을 갈 때마다 피어오르는 지독한 가스에 익숙해지는 것, 그리고 솥단지를 태우지 않고 고슬고슬한 밥을 짓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꺼지는 젖은 연탄이 특히 나를 괴롭혔다. 한 아궁이로 구들을 데우고 밥을 지어야 하는 겨울에는 항상 긴장해야 했으므로 나는 겨울방학이 그다지 즐겁다거나 기다려지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속 모르는 엄마는 나를 대견스러워하며 내게 맡기는 일의 양을 조금씩 늘려갔다. 특히 물지게를 지는 일은 몹시 고역이었다.
한번은 혼자서 시장을 다녀오라는 심부름을 받았다. 난생처음이었다. 민둥산을 뒤덮은 무허가 판자촌을 차례로 철거하며 차곡차곡 들어서기 시작한 아파트 공사현장을 빠져나온 나는 마침내 아스팔트로 된 평평한 길에 다다랐다. 이제껏 내려온 길은 험한 산길이었고 아이 홀로 심부름을 보내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드디어 드높은 담장을 두른 한옥들이 좌우로 위용을 과시하는 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하나같이 돌계단 여러 개를 밟고 올라서는 높이에 대문들이 있었으니 안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단 한집도 대문을 열고 사람들이 왕래하는 것을 못 봤기 때문에 과연 사람 사는 집들이 맞는지, 하는 의심을 품곤 했다. 밤에만 드나드는 도깨비들이 사는 집이라 해도 별반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곳을 지날 때면 늘 친구들이나 엄마와 함께여서 그랬는지 무서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비웃는 표정으로 째려보며 담을 키웠고 성벽을 방불케 하는 높은 담벼락에 침을 뱉는 객쩍은 용기까지 부렸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그곳을 지날 때면 항상 가슴이 울렁대며 숨이 가빠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족할 만큼의 숨을 들이켜기 위해 매번 입을 크게 벌리고 달리기를 막 끝낸 사람처럼 헐떡여야 했다. 숨 가쁜 장소가 달리 존재한다는 것, 어린 내 입장에선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때였다. 가쁜 숨을 버티며 그곳을 막 지나려던 순간 마른하늘이 찢어지는 듯 한 굉음이 내 귀를 덮쳤다. 뉘 집 대문이 문턱과 뻑뻑하게 맞물려서 마찰하며 내는 끔찍한 소리였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나는 양손으로 눈 가면을 하고 몸을 바짝 움츠린 채 근처 골목으로 내달렸다. 전봇대에 몸을 숨기고 숨을 헐떡이면서도 지금이야말로 호기심을 해결할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어쨌든 용기를 내야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잠시 후, 잔뜩 목을 움츠려 이마를 뒤로 젖힌 뒤 열린 대문을 향해 얼굴을 슬쩍 내밀었다. 우스꽝스럽고도 불편한 자세였다. 놀란 남생이처럼 목을 움츠리고 비스듬히 서있으려니 말이다.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분명 낮도깨비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 또래의 어여쁜 소녀가 서있는 것이 아닌가. 노란 원피스의 소녀는 정말 예뻤다. 나는 소녀를 머릿속에 새기려고 뚫어져라 보고 또 보았다. ‘제발 금화에 다녀라! 금화에 다녀라! 네 이름을 꼭 알아내고 말거야.’나의 주문은 소녀를 태운 검은 승용차가 약국 앞길에 서있는 키 큰 버드나무 뒤로 사라질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어느새 남생이 같던 내 목이 학처럼 길어져 있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심부름을 떠올렸다. 엄마가 이미 밀가루 반죽을 마쳤을지도 모른다는 강박이 일자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서둘러야 했다. 영천시장에서 내가 사야 할 것은 반죽에 넣을 그것, 부추였다. 나는 요리조리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난 지름길을 능숙하게 지나 시장을 향했다. 세 가지 이유로 기분이 좋아져 있었기 때문에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고소하고 기름진 부추 전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상거래에 관한 심부름의 과업을 맡을 정도의 신임을 받았다는 기특한 존재감, 그것이 특히 기분 좋았다. 게다가 드높은 한옥에 사는 또래 소녀도 눈여겨 봐두지 않았던가. 어느덧 시장 입구에 들어선 나는 좌판을 두리번거렸다. 붐비는 행인들 속에서 여기저기를 기웃대자 질척한 나물을 두 손으로 감싸며 물기를 쥐어짜던 한 아주머니가 덥석 내 손을 잡아끌었다.
“고놈 착하게 생겼네, 뭐 사러 왔냐?”
“네에? 어......,부추요.”
“그래? 이리 따라 오거라.”
가게뒤쪽으로 간 아주머니는 나무궤짝에서 부추를 두어단 꺼내 신문봉지에 넣어서 내게 건넸다. 그리고는 내민 돈을 잡아채듯 가져가서 확인도 없이 전대에 바로 쑤셔 넣었다. 혹시 돈이 부족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었다. 시장을 벗어나 집으로 가는 길은 왔던 길보다 더 멀게 느껴졌다. 조급한 마음에 뛰고 걷기를 반복했으나 산동네의 오르막이라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집이 가까워질수록 왠지 가슴이 벅차오르는 희열로 인해 기분만큼은 날듯이 좋았다. 심부름의 과업을 이뤘다는 성취감에 이어 고소한 부추전이 전리품처럼 보장되어 있다는 것에서 승자의 만찬이라고 해도 좋을 기대마저 느껴지는 것이었다. 어여쁜 또래소녀도 보았겠다, 손에 잡힐 듯 말 듯 하게 교태를 부리는 어떤 독특한 감흥이 나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이 바보 같은 녀석아! 야무지게 살아도 숨 가쁜 세상인데......,”
엄마는 그 매운 손으로 내 등짝을 두 번 후려갈겼다. 걸음이 밀릴 정도로 세찬 손 매질에 나는 비명 같은 울음을 터뜨렸지만 울음 끝은 짧았다. 매의 강도와 횟수가 내 울음의 길이에 비례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는 엄마의 표정에서 노여움이 빨리 사라지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엄마 손에 이끌려 산자락중턱에 있는 쓰레기터의 정상에 서자, 깎아지른 듯 한 절벽에 선 것처럼 어지럼증이 났다. 높은 담장이 있는 한옥들을 지날 때 나타나던 울렁거림과 함께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엄마의 따가운 시선 또한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자칫 꾀병으로 몰렸다간 낭떠러지 같은 이 쓰레기더미 위를 구를 수도 있다는 두려운 생각이 머리를 스친 것이다. 이것이라도 잘해야 한다. 그나마 엄마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실수 없이 부추를 버려야 한다. 발아래로 까마득히 펼쳐진 쓰레기더미 위로 나는 봉지속의 부추를 쏟아냈다. 시큼하고 퀴퀴한 냄새와 함께 누런 국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나는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과업은 실패요, 만찬은 취소되었지만 쪽마루에 놓여있던 밀가루 반죽이 자꾸만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뒤돌아서서 집을 향했다. 볼에 남은 눈물자국을 양손으로 닦으며 뒤따르던 내게 엄마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 것을 보냈다고 썩은 부추를......,쯧쯧쯧!”
엄마는 부추대신 김치를 잘게 썰어 김치전을 부쳤다. 나와 함께 시장에 가지 못해 서운할 뻔했던 동생은 자신의 발목이 삐었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하면서도 방금 전의 처량했던 형이라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삼키듯이 허겁지겁 김치전을 먹어치우는 날 빤히 쳐다봤다. 그러나 약 올리려는 의도가 분명하게 삔 발목의 발가락을 보란 듯이 꼼지락거리는 동생의 꼬락서니가 여간 얄미워 보이지 않았다.
“복 나가, 새끼야!”
얼떨결에 튀어나오고 말았다. 자중해야 했는데 방귀 뀐 놈이 성을 낸 것이다. 동생이 재빨리 엄마의 표정을 살폈다. 물끄러미 우리를 보던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가서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한 뼘 쪽마루에 걸터앉았다. 참빗질로 넘겨 쪽을 찐 머리에서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올이 저녁바람에 살랑대며 엄마의 귓불을 간지럼 태웠다. 동생과 나는 슬그머니 머리를 맞대고 김치전을 입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엄마는 한밤 자고 일어나면 조금씩 다가와 있는 철거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백여 동의 시민아파트가 완공되면 남겨진 산등성이 곳곳에 사태막이 공사를 시작한다는 정부발표에 엄마는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한동안은 그 일로 철거민들이 밥벌이를 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돈 터라 엄마는 누구보다 빨리 동사무소에 일꾼신청을 해놓았었다. 하지만 엄마의 기대 뒤엔 큰 걱정거리 하나가 도사리고 있었다. 철거된 자리에 들어설 여덟 평짜리 아파트의 입주권이 그나마 집이랍시고 무허가 판잣집을 가진 주인에겐 당연했지만 그 집에 세든 세입자까지 과연 챙겨줄 것인가에 대한 거대한 불안이 그것이었다. 처참한 몰골로 철거된 집들이 군데군데 모아져 이미 커다란 능(陵)의 모습을 이루었고 그 곁을 바삐 오가는 굴착기들이 씩씩대며 덤프트럭에 철거된 더미를 퍼 올려 담고 있었다. 얼핏 왕릉을 파헤치는 도굴 현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에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단지 쓰레기더미일 것이다. 숨 가쁘게 살아온 산동네 철거민들의 치열한 삶의 증거들이, 죽은 왕과 함께 묻힌 부장품보다 더 귀하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조금은 슬퍼 보이는 엄마의 어깨가 석양빛에 붉게 물들자, 닳고 닳은 엄마의 소맷자락이 마치 황금색 띠를 두른 왕비의 소매마냥 반들거렸다. 동생이 또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양말을 뚫고나온 작은 엄지발가락을 보니 김치전이 목에서 넘어가지 않았다.
*
땡볕의 열기는 신문지에 싼 목살이 익을 것처럼 굉장했다. 금세라도 핏물이 배어나올 것 같은 고깃덩이를 들고 있으려니 축 늘어진 죽은 쥐라도 움켜쥔 것 같은 연상이 자꾸 되어서 더 이상 들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무릎이 심하게 저렸다. 아! 연상이라, 연상이라. 불현듯 몇 년 전 여름, 송추의 차가운 계곡물과 골짜기의 서늘함이 떠올랐다. 계곡을 겨냥하고 감각을 잘만 들볶으면 의식의 일부라도 그곳의 찬 느낌을 공유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효과는커녕 외려 열기가 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분에 넘치는 호사를 두고 볼 수 없다는 듯이 기억에 근거한 상상력은 물론 현실의 모든 것조차 단숨에 태워버릴 것처럼 땡볕이 더욱 맹렬하게 눈을 부라린 것이다. 최면으로 위안이나마 삼으려다가 화만 돋운 격이었다. 바짓가랑이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골목에 걸어 들어간 나는 마침 파라솔을 펼쳐놓은 듯 한 오롯한 나무그늘을 발견했다. 세상없어도 쉬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내달린 나는 그늘 속으로 훌쩍 몸을 던졌다. 텀벙, 하며 멱 감는 소리가 실제로 귀에 들리는 듯 했다. 오아시스가 따로 없었다. 그늘 안팎의 온도차이가 굉장했다. 조금 전까지 땡볕에 있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담 위에 걸쳐놓은 고깃덩이에서 배어나온 핏물이 담벼락을 적셨다. 무뚝뚝하고 성질 더러운 정육점 주인의 험궂은 얼굴과 섬뜩한 칼이 문득 떠올랐다. 그러자 그곳에서 느꼈던 젠장맞을 오싹함이 순간적으로 등골을 타고 내려 똥끝으로 바짝 타들어갔다.
*
“아들, 냉큼 앞장서야지!”
오만상을 찌푸리고 서있는 동생의 삔 발목에 대고 혀를 날름거린 나는 껑충 걸음으로 엄마를 앞장섰다. 낮게 흐느끼는 동생의 울음이 발목을 잡고 늘어졌으나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다. 엄마 또한 매정하게 뒤돌아보지 않고 내 뒤를 따랐다. 나는 영천시장에 올 때마다 매번 지네의 뱃속에 들어서고 있다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독립문 쪽으로 난 시장입구를 지네의 머리로 치면 반대편은 지네의 꼬리였다. 몸통이 되는 시장중앙통로는 워낙 폭이 좁아 손수레행상이 오갈 때마다 행인들이 비켜서야 할 형편이었지만 길이만큼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중앙통로의 좌판을 서너 개 지날 때마다 좌우측으로 사람 하나 드나들 정도의 비좁은 통로들이 마치 지네의 발처럼 끊임없이 꼬무락거리며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통에, 없는 것이 없는 지네 뱃속은 밤낮없이 인파로 붐볐다. 만일 공중에서 영천시장을 내려다볼 수 있다면 독립문과 서대문 형무소를 향해 머리를 조아린 채 끊임없이 꿈틀대는 거대한 지네 한 마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붉은 석양이 깔리는 저녁이 되면 좌판마다 매달린 백열전구들의 불빛과 함께 잔뜩 독 오른 붉은 지네의 위용은 그야말로 장관일 것이다.
“도라지, 근에 얼마요?”
이리저리 좌판을 둘러보던 엄마가 드디어 흥정을 시작했다. 시장바닥의 질척한 느낌이 싫어 까치발을 세우고 한발 한발 조심스레 엄마 근처로 다가갔다. 고무신이 바닥에 끌리며 나를 따랐다. 둥글게 뭉쳐놓은 나물 몇 가지가 비스듬히 통로 쪽으로 기울어진 좌판 위에 놓여있었다. 줄느런히 늘어선 출발 직전의 달리기 선수들 같았다. 좌판 모퉁이에 쪼그려 앉은 나는 물이 가득한 빨간 대야에 슬그머니 손을 넣어 껍질 벗은 도라지를 톡톡 건드리다가 별생각 없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숨이 덜컥 막혀버렸다.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은 나는 가슴을 감싸 쥔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동공이 자꾸 위로 떠올라 눈썹에 매달리려 했다. 놀란 엄마는 질척한 장바닥에 급히 나를 눕히고 잽싸게 내 허리띠를 끌렀다. 그리고는 가게주인을 향해 악쓰듯이 냅다 소리를 질렀다.
“찬물, 빨리 찬물 좀 갖고 와욧!”
숨이 가쁜 정도가 아니었다. 숨통이 조여드는 통증은 끔찍했다. 내 주위를 둘러싼 행인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고 분간할 수 있는 것이라곤 빛과 어두운 형체뿐이었다. 그때였다. 행인 사이로 물바가지를 들고 다가오며 소리치는 그 아주머니, 버서석거리는 엄마의 치마 소리와 섞였음에도 내게 썩은 부추를 건네던 그 아주머니의 목소리까지 기억났다. 자꾸 혼미해졌다. 엄마는 특유의 매운 손으로 내 뺨을 여러 차례 후려쳤다. 아프지도 서럽지도 않았다. 의식이 점점 더 아득해져가는 그 순간 환한 색채가 눈에 들이닥쳤다. 칙칙한 색의 옷들이 대부분인 행인들 틈에서 눈부시게 환한 노란 원피스차림의 그 소녀가 거짓말처럼 그곳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선미야, 여기서 뭐해? 무슨 일이냐?”
선미? 그래, 네 이름이 선미였구나, 그러나 몰려드는 졸음을 막을 수 없었다. 선미의 아빠인 듯 한 아저씨의 얼굴이 내 눈 안에 들어찼다. 낯설었지만 포근함이 느껴졌다. 나는 편하게 두 눈을 감았다. 마치 신장개업집 앞에서 흔들리는 공기인형처럼 나의 상체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날 들쳐 업고 영천시장을 벗어나 서대문 네거리 쪽으로 달려가는 아저씨를 엄마와 선미가 뒤에서 바짝 쫒고 있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나무에 접 붙은 것처럼 그늘에 머물다보니 그늘 밖 열기가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골목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나돌아 다니는 자체를 미친 짓으로 여길만한 말복 오후, 집집마다의 창문을 아무리 눈여겨봐도 흔히 어른거릴법한 움직임은커녕 마치 전염병이 돌아 인적이 끊긴 동네처럼 짖는 개 한 마리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선풍기 앞에서 무기력하게 비몽사몽 하고 있을 동네 주민들과 짖어댈 기력도 없이 보온병 속처럼 데워진 개집 구석에 틀어박혀 긴 혓바닥을 늘어뜨린 채 가쁜 숨만 몰아쉬고 있을 개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갑자기 개처럼 짖고 싶었다. 마당에 붙들린 개들이 나를 따라서 두른 사슬을 탬버린처럼 흔들며 바닥을 차다가 개밥그릇 뒤엎는 소리마저 사잇가락이 되는 활기를 채우고 싶었다. 그러나 그깟 소동으로 그늘에서 쫓겨나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늘에 박혀있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땡볕에 나가야할 때를 결정하는 것은 역시 고역이었다. 담 위에 걸쳐놓은 고깃덩이가 젖은 신문지를 비집고나와 핏물에 이어 육즙을 내고 있었다. 한층 길어져서 이젠 도저히 손에 쥘 수 없을 정도로 흉물스럽게 늘어진, 실제 쥐처럼 변해있었다. 나는 발치를 위협하는 땡볕과 그만큼 좁아진 그늘을 보았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함께 넘실대다 방심했는지, 어느덧 땡볕에 밀려 남아있는 그늘이 겨우 서너 뼘에 불과했다. 나무 위를 보았다. 여전히 날 노리고 있었다. 더 이상 숨는 것도 무리였다. 그늘의 틈새를 찾아낸 땡볕이 급기야 날카로운 빛의 검으로 나를 정통으로 내리찍기 시작했다. 어느새 등 언저리와 정수리까지 덕지덕지 번진 땡볕, 흡사 데인 것처럼 쓰라렸다.
“선미?”
“그래, 나. 이혼남 챙기는 사람은 그래도 나밖에 없지?”
“쳇!……그동안 잘 있었어?”
“오늘 시간 나? 괜찮으면……들러.”
“들러?”
“복날이잖아, 삼계탕 해먹자. 마을버스 내리면 건너편에 털보네 정육점이라고 있을 거야. 목살 조금 사와. 우리 집 골목 기억하지? 쭉 들어와 장미빌라 끝동.”
선미는 결혼과 비켜서기 위해 사귀던 나조차 단칼에 끊을 정도로 독립적이었다. 독신에서 더 나아가 싱글 맘을 진지하게 고려중이라는, 천편일률적인 가정의 틀을 깨고 싶어 하는 그녀의 주관 탓에 난 항상 힘들었다. 충격요법이랍시고 슬쩍 디밀은 이별이란 단어 앞에서조차 조금의 망설임도 없던 그녀의 단호한 선택은 어렵사리 운을 뗀 나의 말문조차 막아버렸다. 되로 주고 말로 받게 된 나의 상심은 컸다. 같이한 추억의 시간들이 덧없다 못해 그녀만을 위했던 유희처럼 여겨졌고 나의 감정이 한껏 조롱당한 뒤 뒷골목에 버려진 듯 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견디다 못한 나는 이별을 빙자한 설득의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그 행동이 내 의중을 전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녀와의 상황을 어찌 수습해야할지를 미루기만 하던 나는 그녀와 당분간 연락을 끊고 지냈다. 그러다보면 서로의 혼란스러웠던 감정 따위는 흐지부지 되리라 믿었고 양가부모들이 동의한 결혼문제 또한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해결될 것으로 판단했다. 또래여자들이 막연하게 꿈꾸는 독신생활을 동경하는 정도로 가볍게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역시 녹록치 않았다. 문제는 오히려 내게서 발생했다. 곳곳에 도사린 삶의 변수들을 모두 피하며 내 의도대로 산다는 것, 나로서도 역부족이었다. 선미 앞에서 이별이란 단어를 꺼낸 순간부터 조직적으로 훼방을 놓으려는 듯 한 수많은 변수의 지뢰들이 내 발아래에 좍 깔려버린 것이다. 선미와 연락을 끊고 지내는 동안 나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던 프로덕션의 애니메이터 여자후배들과 어울렸다. 술을 마실 때마다 연민에 빠지는 우울함을 습관처럼 즐기던 나는 내게 유별난 관심을 보이는 어느 후배와 몇 차례 어울리다가 예정에 없던 결혼이라는 수순을 밟아야했다. 하고많은 변수의 지뢰들 중에서 임신이라는 발목지뢰를 제대로 골라 밟은 것이다.
“식을 올려야지 어떡하랴, 그나저나 선미 부친께는 뭐라 해야 할지……. 연락을 안 드릴 수도 없고……쯧쯧!”
어머니는 더 이상 내 등짝을 후려치진 않았다. 대신 표정을 굳게 닫고 문 밖 허공을 응시하며 옛날처럼 혀를 찰 따름이었다. 갓 제대하여 취업준비중인 동생이 옆에서 싱겁게 웃고 있었다. 형수 될 여자가 자기보다 어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동생과 언뜻 눈이 마주쳤다. 동생이 피식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숨길 수는 없었다.
선미에게 충격을 주기 위함이었다지만 막상 닥친 이별에 대해 진지한 고민 없이 시간의 묘약에만 맡긴 내 실수였다. 투정어린 내 방황의 책임도 면키 어려웠을 뿐더러 자기연민에서 비롯된 정욕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나는 이미 임신해버린 후배 서영과 별 도리 없이 봄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그해 가을, 우리부부와는 별개의 혈액형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자, 핏줄도 모르는 머리 검은 짐승을 거둘 수 없다는 어머니의 완강함에 밀려 처가의 별 저항 없이 아들의 친권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써주고 이혼을 했다. 아내 서영은 아이와 함께 그녀의 이모 댁으로 거처를 옮겼다. 고향집대신 친척집 더부살이를 택한 그녀의 처지가 가련했건만 그녀는 의외로 그리 슬픈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토록 짧은 기간 동안 숨 가쁘게 벌어진 일들을 하나하나 치를 때마다 나는 작은 행동이나 결정 하나가 초래한 엄청난 결과들을 보면서 매번 깜짝깜짝 놀랐다.
“어쩔 수 없었다......라, 그래도 성을 물려줬으니 아빠노릇은 해줘야 되는 것 아냐?”
특유의 부드러운 말투에 실렸지만 가시 돋친 충고였다. 이혼직후 취기를 빌미삼아 응석이라도 부려볼 요량으로 선미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는데 갑자기 정신이 멍해졌다. 삶에 대한 가치와 목표도 없이 세월을 축내던 중에 떠밀리다시피 치룬 결혼에서 내가 누리고자 했던 의미는 진정 무엇이었을까. 반려자인지 한낱 여자인지, 아내에 대한 자각은커녕 마지못해 올린 결혼과 너그럽게 끝낸 이혼을 통해 작위적인 안정이나 이기적인 안위만을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 선미가 바라는 것은 어쩌면 나의 정직하고도 분명한 태도일 것이다. 결점을 인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명분도 없이 합리적인 이성의 판단을 눈감거나 주저해온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위선의 허울을 쓰고 뜨거운 가슴 없이 삶을 흘리던 나는 얼치기중의 상 얼치기였던 것이다. 그늘을 벗고 땡볕에 나선 나는 지금 선미에게, 또는 서영과 그녀의 아이에게도 갈 수 있는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몸을 돌려 담벼락을 마주한 나는 바닥에 손을 짚고 냅다 박차 올라 물구나무를 섰다. 허공에 뜬 두 발이 갈대처럼 휘청거리다가 곧 균형을 유지했다. 땡볕이 내리꽂은 빛의 검으로 인해 온몸은 이미 화상을 입은 듯이 열기가 대단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직 매사를 나름대로 저울질 해왔던 내가 나의 무게나마 스스로 버틸 수 있을지, 나와 연관된 일들의 경중을 따지거나 실리를 위해 이기적으로 들이댔던 잣대의 모호함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팔이 간헐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어금니를 앙다물고 버텼으나 한번 요동하기 시작한 팔은 멈추지 않았다. 경련이 일고 있는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게 부풀었고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목에는 불거진 핏줄이 유난했으며 울대뼈가 오르내리는 속도도 현저히 느려졌다. 간간히 거친 날숨에 섞여 나온 침이 마구 얼굴에 뿌려졌다. 도대체 왜 숨통이 조여드는 것일까. 늘 무기력한 내 유약한 요소와 더불어 주체할 수 없는 현실이 절박하게 맞물리기만 하면 마치 헤살을 놓으려고 뻗치는 요사스런 악의 기운처럼 다가와 숨을 가쁘게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나는 곧 땡볕 한가운데에 고꾸라졌고 숨통을 옥죄는 질식이 점점 더해갔다.
누군가의 등에 업힌 채로 퍼뜩 정신이 났다.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춤추는 공기인형처럼 내 몸이 좌우로 까딱거릴 때마다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땀 냄새와 비릿한 날고기 냄새가 났다. 그 덕이라고는 믿기 힘들었지만 신기하게도 숨구멍이 조금씩 트이고 있었다. 겨우 고개를 돌려 누군지를 살폈다. 기가 막혔다. 정육점 주인, 그 털북숭이였다.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게다가 샌들 뒤축이 바닥을 찧는 소리가 귓가에 요란하게 따라붙고 있었다. 나는 힘겹게 나머지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마치 바늘처럼 뾰족한 빛다발이 쏟아져 들어와 빈틈없이 망막에 꽂혔다. 그 순간에 눈을 감았는지, 뜬 채로 버텼는지조차 감각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심이 굉장했으나 어느 순간 차츰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를 들쳐 업고 맹렬히 뒤따르는 여자가 보였다. 샌들이 바닥에 번갈아 닿을 때마다 민첩하게 발목을 붙잡는 분주한 그림자가 짙고 선명했다. 반면 내 머릿속은 점점 하얘지고 있었다.
“결혼식장에서 스치듯 인사한 것이 전부인데 기억하기 힘들겠지. 나야 하나뿐인 조카사위여서 기억한 것뿐이고.”
아뿔싸! 연결고리의 매듭이 풀리는 순간 내 처지는 참으로 암담했고 처참했다. 그렇다면 선미는, 나를 그 정육점에 보낸 선미의 의도는 과연 우연이었던 걸까.
“골목어귀에서 한참을 서있더군. 그러다가 뜬금없이 물구나무를 서더라고. 그걸 보고 난 무릎을 탁 쳤지. 그리고 가게로 냅다 뛰어 들어간 거야. 뒤집어 놓으니까 진짜로 저울이 지 무게를 달더라니까? 그리고 나가보니까 자네가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드려요. 이모부...님”
“일단 응급실에 빨리 가보자고. 젊은 사람이 강단도 없이 왜 그리 팩팩 쓰러져? 자네 간질 있나? 마지못해 조카도 불렀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를 정도로 정말 부끄러웠다. 나는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짓눌렸다. 언제나 뜻밖의 상황이 펼쳐지고 나는 그저 속절없이 내던져진 채 그저 선택만 할 뿐이지 않는가. 운명을 이끈 우연이든 우연을 가장한 누군가의 의도였든 간에 나는 오직 선택만 할 뿐, 내 인생을 통틀어 계량과 통계나 분석을 통해 주도면밀한 판단으로 계획된 삶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지 않은가. 사실 걱정은 안 되었다. 무엇을 택해도 낯선 삶이라면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겠는가. 시작도 몰랐고 끝도 알 수없는 정체불명의 삶이 어디로 흐른들 그것이 지금 내게 무슨 상관이랴.
이모부의 목을 살포시 끌어안았다. 땀으로 흥건한 면 셔츠가 피막처럼 휘감긴 그의 넓은 등에 머리를 기대니 숨쉬기는 무척 편해졌으나 목이 메어왔다.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바람을 가르듯이 달리는 서영은 마치 한 줄기 빛을 쫒아 어둡고 참담한 동굴을 막 헤쳐 나온 생존자처럼 악착스럽고 야무져 보였다. 큰 눈망울은 여전했고 가끔씩 입술 사이로 하얀 치아를 살짝 드러내며 뛰고 있었다. 그녀의 등에 업힌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의 눈망울에 불안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고 좀처럼 떨어져 나갈 기세가 아니었다. 나는 아이를 향해, 그 불안을 향해 손을 쑥 내밀었다. 그러나 아이는 슬그머니 서영의 등 그늘 속으로 몸을 움츠려 숨고는 파닥거리는 가슴으로 가쁘게 숨으로 내쉬었다. 나는 아이를 향해 내민 손을 결코 내려놓지 않았다.
- 끝 -
첫댓글 35회 소설부문 금상을 수상한 정해상 선생님의 작품입니다^^
박진감 넘치는 리얼리즘. 탄탄한 구성력에 가슴을 뛰게 하는 설레임.
가슴 따스한 이야기를 전개하던 이미지에서
철학을 담고 돌아오신 정해상 선생님께 많은 박수 부탁드립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부끄러워서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이리 신경을 써주심에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아정샘의 기대에 부응 해낼지는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볼랍니다. 꾸벅!
문학수상집 한권 시상식장에서 받아와서 읽고있는 중입니다.
작가의 아스라한 시선의 너머 화두를 따라가봅니다.
"아스라한 저 너머는 어렴풋 했다... 그곳은 공의 경계마다 언어의 정원이있고, 자음과 모음이 미로를 이룬 곳이며, 사색의 깊은 호수에 감수성이란 눈과 비가 늘 내리는 곳"이라고 하네요.
아.......!!
저보다 우리 회장님은 더 아름다운 표현을.....^^
아무래도 문학쪽으로 큰 재능을 품고 계신듯.....
박회장님, 민망하게스리 왜그러십니까? 제 눈에 아스라해 보이는 것들에게 이미 수없이 앵글을 들이대셨잖아요.
이리 수상소감까지 들먹이시다니 민망해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입니다.
쥐띠끼리 쥐구멍 찾는 일이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니지만요. 고맙습니다.
제가 11월8일 오전에 필리핀에서 돌아오니, 저녁에 인사동에서 뵐 수 있겠네요.
숨이 가쁠 만큰 치밀한 묘사가 가슴에 와닿는 글이네요...역시.....
.....역시.....금상을 받을 만큼 대단하십니다요......^^
종선샘, 챙겨주신 책,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습니다. 언제나 따스한 시선과 마음씀씀이가 느껴지는
님의 인품이 항상 저를 설레이게한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과 세밀한 묘사가 기가 막힙니다.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역시나!!! 하면서요.
멋지십니다 정선생님.^^
과찬이십니다. 현숙샘, 아무튼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가을이 가고
성탄즈음에는 뵐 수 있을지요. 한근협의 웰코미행사가 12월21일이니 기대해보렵니다.
수상집을 들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정샘 소설부터 읽었습니다. 역시 금상작품이구나. 하며
몇번을 감탄했습니다.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멋진작품 계속 부탁드립니다. ^^
서영샘의 한마디는 칭찬과 부담을 섞어놓은 칵테일처럼 느껴져요.^^
동기라서 팔짝팔짝 서로 좋다고 뛰다가도 선배 문인이라는 각성을 하는 순간 민망, 그리고 또 민망해지는
약간의 부담...하지만 박샘의 이해와 저의 취기가 맞물리기만 하면 헤어날 수 없는 우리의 우정!
보기만 해도 정말 기분 좋아지는 박샘을 제 영원한 동기라 감히 칭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보고시포.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