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드대간 남진 서른여섯.
추풍령 눌의산 장군봉 가성산 괘방령 여시골산 운수봉 백운봉 황악산 형제봉 여정봉 삼성산 우두령 24km.
가야했다. 가야만했다. 걸어야했다. 걸어야만했다. 우리에겐 아직 걸어야할 길이 남이있었기에.
당진시청에서 밤 11시에 출발했다. 날이 더울 것이 예상되어 밤에 더 걸으려고 11시에 출발한 것이었다. 중간에 황간휴게소에 들러 식사하고 1시 50분경 추풍령에서 출발했다.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죄측으로 꺾어져 아스팔트길을 걸어 이정표가 서있는 곳에서 다시 죄측으로, 굴다리를 통과해 다시 좌측으로 꺾어져 걷다가 드디어 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타났다. 오랜만에 산길이 아닌 일반도로를 잠시 걸은 것이었다.
산길로 들어서자 웃자란 풀들이 길을 숨겨놓아 길을 찾기 힘들었다. 다행히 장광희대장이 길을 잘 찾아 걸었다. 하늘은 흐렸고 짙은 안개가 어둠을 더 짙게 만들었다. 헤드랜턴 불빛은 짙은 안개로 흐리게 지워지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대간 길을 더 흐리게 지워놓고 있었다. 잠시 들판으로 이어지던 길은 숲속으로 들어섰고 은근한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짙은 안개로, 혹은 간밤에 내린 비로 나뭇잎에 매달려 있던 물방울이 비처럼 쏟아지기도 하고, 안개와 어둠은 심술궂게 등산로를 헛갈리게 했다.
어둠과 안개에 가려진 등산로를 부지런히 걸었다. 밋밋하던 오르막은 어느순간 가파르게 변해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아챘다. 산은 서있었다. 우뚝 선 산은 등산로를 수직에 가깝게 만들어 놓았는데, 그 우뚝선 오르막의 끝은 눌의산 정상이었다.
추풍령에서 1시간 20분정도 걸어 눌의산 정상에 도착했다. 추풍령에서 괘방령, 괘방령에서 우두령까지의 산행이 힘들 거라는 건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후미에서 걸을 생각이었다. 다행히 김효진대장이 후미에서 함께 걸었다.
내 나름대로 준비를 했는데, 배낭에는 얼음물이 4병 얼지 않은 물이 7병 총 11병의 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물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았다. 처음에는 내 예상과는 달리 물이 거의 필요없었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과 서늘한 날씨는 잠시 서있으면 오히려 추위를 느껴야할 정도였다. 밤이었고 서늘했고 바람이 시원했기 때문에 괘방령까지는 물이 별로 줄지 않았다. 황악산까지도 꽤 많은 물이 남아 있었지만 우두령에서는 물이 반병밖에 남지 않았다.
눌의산에서 한참동안 내려와야 평지가 나타났다. 오른 만큼 내려가야했다. 경사도 심해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걸어야했고, 간밤에 내린 비 때문인지, 아니면 짙은 안개가 지나가며 나뭇잎에 매달아 놓은 물방울이 떨어져 내린 탓인지, 젖어있는 등산로는 경사도 심해 몹시 미끄러웠다. 김효진대장은 후미에서 걸으며 뒤에 오는 사람의 불빛이 보이지 않으면 걸음을 늦춰 걸으며 불빛이 서로를 놓치지 않도록 조절하며 걸었다. 나는 앞에서 걸으며 길을 찾아야 했다.
어둠은 장군봉에 도착해서도 가시지 않았다. 여전히 하늘은 깜깜했고 안개는 걷히지 않았으며 헤드랜턴은 주위의 어둠은 몰아낼 수 있었지만 안개까지는 몰아낼 수 없었기에 눈앞은 뿌옇게 흐려있었다. 장군봉에 오를 때도 봉우리는 도도하게 서있었다. 이번 산행의 특징은 모든 봉우리가 뾰족하게 서있다는 것이었다. 이희철님은 참으로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무박산행의 좋은 점만 찾아서 즐겼고 단점은 아예 생가조차 하지 않았다. 무박산행은 이래서 좋고 일반산행은 저래서 좋다며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다.
모두 힘들어했다. 가파른 경사로 인해 모두 힘들어했고, 지치는 속도가 평소보다 빨랐다. 속리산을 지나서는 추풍령까지 힘든 코스가 거의 없었기에 이번 산행이 더 힘들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장군봉에서 한참을 내려왔다. 여전히 등산로는 기파르고 미끄러웠다. 아직도 어둠은 우리의 걸음을 방해하고 있었다. 장군봉에서 내려와 한참을 걸었다.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나고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니 가성산이었다. 가성산에 도착했을 때도 어둠은 흐리게 남아있었다. 아직도 해는 얼굴을 내밀기 부끄러워했고 안개는 떠나기 싫은 듯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가성산을 지나서부터는 헤드랜턴이 필요치 않았고, 얼마 후 거짓말처럼 안개가 걷혀있었다. 어둠과 함께 안개도 걷혀버린 것이었다.
한참을 걸었다. 이제 심한 오르막은 없었지만 정돈되어있지 않은 길을 걸으려니 힘들었다. 내리막을 걸어 내려오니 포장된 2차선 도로가 나타나고 드디어 괘방령. 2코스를 걸은 사람들이 시작한 지점이었다. 산행이 끝나고 알았는데 2코스를 걸은 사람들은 1시간 동안 비를 맞았다고 했다.
괘방령에서 사진을 찍고 여시골산을 향해 걸었다. 여시골산 또한 만만찮은 경사였다. 괘방령에서 여시골산까지 거리는 짧았지만 경사는 어느 정도 있었다. 여시골산에서 잠시 쉬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여시골산을 기념하고 운수봉을 향해 출발했다. 운수봉까지는 거리가 좀 있었다. 경사도 심했고 힘든 여정이었다. 많이들 힘들어했다. 문준식은 괘방령에서 탈출하려다 그냥 진행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참석한 산행이 무박인데다 난이도가 높아 힘든 모양이었다.
백운봉을 지나고 선유봉을 지났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독려하머 계속 걸었다. 가끔은 제멋대로 자란 풀들이 등산로를 가려 발밑에 뱀이라도 숨어있을까 두렵게 했고, 나뭇가지들이 길게 자라 등산로를 가로막고 있는 곳도 있었다. 난관이 곳곳에 놓여있었다. 나뭇가지들은 얼굴을 때렸고 가파른 등산로는 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고 평지를 잠시 걷고 다시 짧은 오르막을 오르니 드디어 황악산. 황악산 아래에는 구경모부회장님과 강덕환님 문형호형님과 장서호형님 등이 모여 식사를 막 끝낸 상태였다. 나는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삼겹살을 구웠다. 삼겹살이 익기도 전에 이순옥대장이 올라오고 곧이어 김현기형님과 최건묵형님이 올라오시고 곧바로 이희철님과 서정희 김효진대장이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배가 꽤 고픈 모양이었다. 식사를 하는 중에 김도운대장님과 문준식이 도착해 함께 식사했다. 식사를 마치고 함께 황악산 정상에 다시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황악산 정상의 높이는 1111m였다. 이에 얽힌 추억을 최건묵형님께서 들려주셨다. 오래전 황악산에 오르다 잠시 쉬고 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올라오더니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며 빨리 올라가자고해서 이유를 물으니 황악산 높이는 1111m요, 11월 11일 11시 11분에 황악산 정상에서 사진을 찍으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마침 오늘이 11월 11일이요, 잠시 후면 11시 11분이니 빨리 올라가야 한다고 하기에, 지금 내가 일어나 빨리 걸으면 행운을 만나기도 전에 저승사자를 만나게 될 것 같으니 나는 신경쓰지 말고 얼른 가서 행운을 잡으라고 하셨단다. 그래서 평생 황악산의 높이는 잊히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황악산에서 우두령까지도 많은 난관이 남아있었다. 지금까지보다는 많이 수월했지만 몇 개의 봉우리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형제봉이 가로막고 있었고, 형제봉을 넘어서니 바람재 정상과 여정봉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정봉을 지나 능선을 걷는데 하늘이 맑게 개어 파랗게 색칠되어 있었는데, 누군가 파랗게 칠해진 하늘에 하얀 물감으로 점점이 구름을 그려 놓은 듯 멋진 풍경을 펼쳐 놓고 있었다. 그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은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있었다.
삼성산에 도착해 사진을 찍고 내리막을 걸어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우두령에 도착해 산행을 끝냈다.
또 하나의 산을 넘었다. 그 산을 넘는데 도움을 주신 많은분들.
낮에 등산대회에 참석해 권용순누나 윤경옥대장과 등산대회에 참석했다 예고도 없이 깜짝 등장해 감동을 준 정순미누나 합덕에서 마지막 버스를 타고 시청에 오셔서 1시간 반동안 기다리시느라 지루하셨을 최건묵형님, 그리고 등산대회를 진두지휘하느라 지친몸으로 참석해준 박소정 상록총무님 등산대회 응원하러 갔다가 달려와준 김영진, 내 전화에 선뜻 달려와준 문준식, 바쁜일을 뒤로하고 달려와 사람들을 챙겨준 김효진대장, 그리고 시간이 되면 무조건 달려오시는 김현기형님. 일찍 내려와 하산주 차리느라 고생한 송진하 진심으로 가슴깊이 감사드립니다. 백두대간은 혼자서 이루기 힘든 꿈이기에 우리가 함께 꿔야하는 꿈입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꿈을 함께 이루어주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가슴깊이 감사드리며 후기를 마칩니다.
백두대간 남진 서른여섯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