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새우(=대하) 먹으러 가는 길이다. 9~12월이 왕새우 제철이기 때문이다. 시기에 맞게 해야 하는 것이 있다. 서울 혹은 경기도 주변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강화도, 그 중에서 바닷가에 위치한 해운정으로 정했다. 9월말 가을 하늘 아래 강화도 논길을 달리고 있다.
양쪽에 늘어선 은행나무들, 지금은 초록세상이지만 1~2달 후 노란색으로 익으면 노랑세상이 될 것이다.
해안서로 331번지에 위치한 해운정은 양식장에서 기른 왕새우를 판매하고 있는 곳이다. 아래 사진 도로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선도 없다. 그냥 알아서 잘 주차해야 한다. 그냥 앞으로 계속 달리면 바닷가로 떨어진다. 반대편에 보이는 육지가 궁금해 지도를 찾아보니 석모도이다. 석모도의 해명산(320m) 봉우리도 보인다.
아래 사진과 같이 파란 물통과 컨테이너 건물 사이의 흙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곳이 입구이다. 정식 게이트는 없다. 들어가보니 좌석도 정식 건축물 안이 아닌 흙바닥에 테이블을 붙여 놓은 조악하기 그지없는 레스토랑이다. 양식장으로 시작했다가, 이래저래 하나씩 세간을 늘려 테이블 놓고, 천막치고, 전기를 끌어와 만든 무허가 건축 식당처럼 보였다^^
천막 아래 흙바닥 위에서 구워먹는 왕새우이지만, 바닷가 식도락의 낭만을 품어본다. 바닷가 테이블에 자리잡기 위해 11.30분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딱 한자리 남아 있었다.
장소도 조악하지만, 서비스로 친절하지 않다. 손님이 직접 카운터로 나아가 주문하고 돈 내야 한다. 2인 기준 45,000 1kg 대하와 4,000원짜리 라면이 기본이다. 여기에 음료수를 더하면 2인 기준 50,000원이 넘어간다.
천막과 해안가의 경계선에 둘러쳐져 있는 비닐장막은 일회용 노란 테이프로 붙여져 있다. 인테리어 라고는 하나도 없는, 인공적 멋무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에는 발디딜 틈도 없다고 한다. 그러니 돈들여 인테리어를 뭐하러 하겠는가.
부루스타에 불 켜고, 냄비에 은박지 깔고, 굵은 소금을 두텁게 깐 자리에 살아 있는 왕새우 투하 후 뚜껑을 닫아걸었다. 가열을 하니 살아 있는 왕새우가 뚜껑을 치고 올라온다. 팔딱거리는 과정, 죽어가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자들도 있다만, 나는 쳐다보기 싫어 고개를 돌렸다. 정말 보기 싫었다.
오늘의 먹잇감이 붉은색이 되었다. 문득 죽어가는 새우로부터 고개를 돌린 내 행동에서 야비한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보기 싫은 것들을 애써 안 보려고 외면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나 하면서. 그냥 결과물을 중시하고 과정을 생략한 적도 여러번이었는데 하면서.
바닷가 건너로 석모도가 보이는 가운데, 바람막이 철판을 둘러치고, 브루스타 위에서 익은(혹은 죽은) 새우들의 머리를 가위로 싹둑싹둑 동강내고 있다. 그리고 나선 몸통을 손으로 까 먹어야 한다. 비닐장갑이나 까먹을 도구같은 것은 없다. 손에서 냄새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물티슈로는 택도 없고, 비누로 2번 씻어도 여전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먹겠다고 바글바글 몰려든다.
처음엔 불편하다 싶었지만, 금새 맨손으로 다까먹었다. 그리고 아래처럼 머리만 댕강댕강 남았다. 의지가 있는 사람이면 머리에 남아 있는 살을 파먹어도 됀다. 동행인은 조심스레 젓가락으로 머리를 헤집으며 남아 있는 살점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 코스로 라면을 준다. 4천원이라 뭔가 다른가 했더니, 그냥 일반 라면맛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달걀로 안 풀어준다. 왕새우 한마리는 "서비스다 옛다!" 하는 느낌일 뿐이다. 다 먹고 보니 옆에서는 머리만 남은 왕새우들을 여기에 넣고 있다. 그랬으면 국물맛이 더 낳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요즘같은 세상, 시설과 서비스 면에서 판단해 볼 때, 상중하 중 '하'라고 평가하겠지만, 그래도 인간들이 바글바글하다. 바글바글 몰려오니 시서로가 서비스는 없어도 된다는 자신감을 가졌으리라.
바다를 구경하며 왕새우를 먹었으니, 이제 후식 차례이다. 해안가 근처로 드라이브를 하다가 '스페인 마을'이라는 곳에 들어섰다.
왕새우집 해운정에서 아래로 10~15분정도 드라이브길이다.
주차를 하고 입구로 들어가고 있다. 처음에 이곳이 바닷가 전망의 카페로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규모가 무지하게 크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구조인데, 아마도 지형적으로 해안가 기슭에 지은 건물인 듯했다. 바닷가가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나중에 지도를 살펴보니 주차장은 총 3곳이 있고, 카라반 세우는 곳도 있고, 해안가에서 들어가는 곳도 있는 규모가 방대한 호텔이 포함된 복합리조트였다.
커피와 디저트를 주문하는 곳이 어딘지 찾을 겨를도 없이, 그냥 아래와 같은 광경이 펼쳐지는 바람에 일단은 여기저기 구경을 하기로 했다. 스페인 마을이라는 타이틀 답게 왼쪽 아래를 보면 갤러리(Galeria) 엘 보스케(El Bosque)라고 씌어 있는 표지판이 보였다. 보스케는 숲이라는 스페인어인데, 이곳의 자연적인 지형과 연계하여 이름을 지은 듯했다.
커피를 주문하는 공간 카페 '마르베야(Cafe Marbella)'에 들어섰다. '마르베야'를 검색해 보니, 스페인 '말라가(Malaga)' 주의 지중해 도시 지명이다. 2018년 말라가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알았으면 갔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는대로 본다고 하지 않던가.
이곳에서는 콜드브루를 비롯한 커피류, 과일음료 및 팥빙수, 그리고 디저트류를 판매한다. 식사를 하는 레스토랑은 별도의 공간에 마련되어 있다.
여기저기 다녀보니 갤러리 공간도 존재한다. 그림도 판매하고, 도기류도 판매한다. 아래 사진의 주연은 내부의 그림이 아니라 외부에 있는 나무이다. 그래서 내부는 깜깜하고, 외부는 환하다. 촬영자의 주제에 따라 같은 장면도 다르게 연출할 수 있다.
이곳을 설명하는 브로셔를 찾았다. "스페인 마을(España village)"은 강화도 화도면에 있는 복합문화단지로 리조트, 레스토랑, 카페, 베이커리, 갤러리, 기념품샵이 있는 힐링공간이다. 숙박시설도 있고 공연장도 있다.
초소가 설치되어 있는 바, 군인이 보초를 서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관광지역으로 변모하기 전의 경계태세가 느껴졌다. 사실 북과 가까운 곳이다.
스페인에서 돈키호테와 산초를 빼면 섭하다^^
아래층으로 내려왔는데, 절벽이 보였다. 지형을 이용하여 절벽 아래는 1층, 절벽 위는 2층으로 건축 설계한 것이다.
주변으로 둘레길도 있고 자작나무 숲길도 있다. 지나가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